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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5년 07월 0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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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형 | 양장 도서 제본방식 안내 |
쪽수, 무게, 크기 | 364쪽 | 600g | 153*224*30mm |
ISBN13 | 9788927806615 |
ISBN10 | 8927806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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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진보하는가?
내 작은 아버지는 아직도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으신다. 믿기지 않는 이 사실은 진실이다. 그렇다고 그가 집에만 있는 백수도 아니다. 은퇴하지도 않은 현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핸드폰이 없다. 그는 말한다.
“뭐, 내가 불편하나?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지? 난 안 불편해.”
한다. 놀라운 통찰이다. 그렇다. 나는 불편하지 않다. 마음만 비우면, 나는 핸드폰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을 수 있을 것 이다. 내가 연락을 취하고자 한다면, 집전화도 있고, 이메일도 있고, 편지도 있지 않은가? 나는 오히려 나를 수시때때로 찾아서 나를 괴롭히는 것들로 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하려고 해도 늘 걸려오는 전화와 울려대는 문자에 시달렸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핸드폰만 없애면 될 일 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비우는 일이 쉽지 않다는 진실.
어쩌면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그 누구도 이 문제로 부터 쉽게 자유로워지지 못할 것이다. 자유란 용기있는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산물, 나도, 당신도 쉽게 핸드폰으로부터의 자유를 얻지 못한다. 핸드폰을 사랑하는 이 말고, 혹여나 이 수시 때때로 울려대는 핸드폰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하는 사람이라도 그렇다.
그 이유란 바로 사회 전체가 지나가는 흐름에 한 개인이 역행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물이고, 왕들의 기록물이고, 또한 혁명의 기록이라면, 지금 우리의 오늘에 혁명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른채 그 안의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그 역사에 기록될 여지는 없다.
우리는 그저 역사의 흐름에 몸과 정신을 맡겨 세상이 나아가는 대로 흘러갈 뿐이다. 혁명 이전의 생활을 흠모하는 자 역시, 역사의 흐름과 반대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아주 힘들다. 그것은 모두가 핸드폰을 사용하는 시대에 나 혼자 핸드폰을 사용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핸드폰이 없는 때가 훨씬 좋았어”라고 말하는 당신이라도 그것은 마찬가지.
아예 접하지 않겠다가 아니라 그저 조금만 늦게 접하고 싶다고 해도, 문명은, 진보는 언젠가는 내게 찾아온다. 세상의 흐름은 내 힘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없고 늦추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내가 피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내게 오고, 내가 늦추려고 해도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살살한 비에 옷 젖듯이 그렇게 내게 와있다. 문명의 흐름이란 거부할 수 없다.
라다크에서도 그랬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에는 이 곳은 바깥세상의 문명의 이기에 물들지 않은 곳이었다. 그렇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 곳은 서구로부터 밀려온 문명을 접할 수 밖에 없었고, 고유한 그들의 생활이 문명이란 이름의 흐름속에 묻히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러한 문명을 ‘선진’이라 말하며 추종했고, 설사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해도 그 사회에 다가온 문명의 흐름은 그 사회의 개개인이 받아들이거나 받아들이지 않거나 하는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본인의 의지에 따라서 문명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고 또한 그에 따른 굉장한 불편과 주변의 이상한 시선이 따를 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라다크의 전통은 많은 부분이 그 모습을 잃어갔고,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그 모습을 안타까워 했다. 그가 말하는 라다크의 전통이란 문명사회가 가지고 있지 않은 정이 넘치는 사회였으나, 서구의 ‘발달된’ 문명이 들어오자, 그들의 전통은 라다크 인들에게 조차 ‘발달되지 않은’, 미개한 것으로 인지되었기 때문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그들의 언어를 쓰며 그들의 문화를 진실로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그들 가까이에 있었기에 그들의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잘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라다크는 히말라야인근의 지역이다. 사진출처: flickr, Sam Litvin
나의 프레임 말고 당신의 프레임으로 당신을 보는 것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라다크를 대하는 모습은 우리가 얼마간의 시간동안 여행지에 가서 그곳을 관찰하는 일이 얼마나 피상적이며, 그것이 또한 얼마나 자신의 관점에 따른 관찰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라다크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삶 깊숙히 들어간다. 그래서 그들과 마음을 나누면서 그들의 생각을 읽고,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파악해 간다.
그것은 단지 그곳에 들러서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편견어린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피상적으로 살펴보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결과를 낳았다. 그녀는 라다크의 사람들이 어떤 것을 중요시 여기는지,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고 사물을 대하는지를 그들의 곁에 있으면서 그들과 대화하면서 오랜시간 알아나갔다. 그러한 과정으로 그녀는 라다크의 전통의 힘을 알 수 있었고, 문명에 의해 그들의 전통이 파괴되어 가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진실로 체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여행이든 그 여행을 하는 목적에는 다른 다른 환경에 둠으로써, 내 안의 나를 다른 시선으로 바라봄과 동시에 나와는 다른 곳에서 다른 생각을 하고 세상을 사는 이들을 만나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것이 얼마나 많은 효과를 거둘수 있는 지는 그들을 보는 나의 준비와 시각에 있을 것이다. 타인을 보고 그들을 판단하는 나의 프레임을 철저히 지우는 것. 그렇게 해서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라다크로 부터 배웠던 것들을 배우는 것. 그것이 바로 타인으로 부터 무언가를 배울 수 있는 가장 최고의 방법일 것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라다크 이야기로 부터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라다크의 전통과 그 전통이 문명에 의해서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이야기 하며, 어쩌면
“우리의 미래가 라다크의 오래된 전통을 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물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녀가 제시한 물음과 더불어 그녀가 라다크를 대했던 마음가짐과 그 방식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이것은 그녀가 예기하진 않았지만, 우리가 그녀의 이야기로 부터 얻은 분명한 소득일 것이다.
#옥님살롱
이 글은 내 네이버 블로그 옥님살롱에 게재한 글입니다.
만약 새로운 천년에 우리가 우리를 위협하는 환경재앙과 사회적 붕괴를 피하려면, 우리는 지구촌을 포기하고 세계화 경제에 대한 대안으로 지역중심의 경제를 껴안지 않으면 안된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1992년에 출간한 <오래된 미래-라디크로부터 배운다>에서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가 '서문'에 쓴 말이다. <오래된 미래>는 저자가 히말라야 산맥의 작은 마을 '라다크'를 16년에 걸쳐 관찰하고 체험한 끝에 내놓은 현장보고서이자 생태학의 고전이다. 그녀가 서문에서 밝힌대로 새로운 천년이 도래했고 벌써 10년이 지났다. 재앙에 가까운 환경파괴와 신자유주의에 따른 빈곤의 확산은 인류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무분별한 개발의 삽질은 녹색의 땅을 집어삼키고 그 안에서 오랜 기간 전통을 유지하며 살아왔던 사람들의 행복을 박탈한다.
자연과 공동체를 거침없이 유린하는 '문명'과 '개발'의 광기는 최근 방영돼 화제가 된 MBC 다큐멘터리 '아마존이 눈물'에서도 잘 보여졌다. 사실 '아마존의 눈물'이라는 다큐멘터리 때문에 <오래된 미래>를 다시 한번 들춰보게 됐다. 고전은 고전이라 세번쯤 읽는 것이지만 읽을 때마다 새롭게 다가온다.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단 말입니까?"
태어나서 지금까지 도시 생활의 매커니즘과 문화에 익숙할대로 익숙해진 내가 낯선 시골로 거주지를 옮긴지는 1년도 채 안됐다. 라다크인들처럼 "행복한가?"라고 묻는다면 아직까지는 "그렇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따뜻한 미소와 삶에 대한 한없는 사랑과 마음의 평화, 이웃에 대한 배려로 충만한 이들. 라다크인들에게 문명의 발달, 산업화, 도시화는 행복한 인생의 필요조건이 아니다. 경쟁의 원리 대신 상호부조와 연대의 원리가 작동하는 사회, 사람과 사람간의 연결망속에서 개인의 이익과 공동의 이익이 상충되지 않는 사회가 히말라야 속 작은 마을 라다크이다.
경쟁에서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사는 도시민들에 비해, 라다크인들의 삶은 안정되어 있다. 그들의 삶은 서로에게 상호의존되어 있지만 '의존적'이지는 않다. 도시민들에 비해 정서적으로 덜 의존적이면서 타인을 구속하지 않는다. 라다크 마을의 여성 체링 돌마는 이렇게 반문한다.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복하지 않단 말입니까?"
그러나 나는 어떤 상황에든 적응하는 능력, 상황에 상관없이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대단한 장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 라다크 친구들의 편안하고 대범한 태도를 이해하게 되었고, 내가 아무데도 가지 않은 것처럼 대해주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라다크 사람들은 아무것에도 우리처럼 집착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 대부분은 물론 우리의 삶에 그토록 영향을 미치는 집착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중략) 결국 그들의 만족과 마음의 평화는 그런 외부의 상황에 좌우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느다. 그런 것은 내면으로부터 온다. 라다크 사람들의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그들 주위와의 관계는 내면의 평정과 만족감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었다.(중략) 만족감은 자신이 삶의 흐름의 일부임을 느끼고 이해하면서, 긴장을 풀고 그 흐름과 함께 움직이는데서 온다.(p112~113)
개발속임수에 가려진 진실
지구상의 마지막 지상 낙원일것 같았던 라다크 마을도 개발과 현대화의 압력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서구식 경제와 문화의 유입은 공동체의 붕괴와 개인의 정체성 파괴를 가져왔다. 16년 동안 라다크의 변화를 목도한 저자는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분석한다.
라다크에 개발이 처음 시작된 지 16년쯤 되어서 나는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간격이 커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여자들이 자신감과 힘을 잃어버리는 것을 보았고,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나타나고 또 범죄가 극적으로 증가하는 것을 보았다. 다양한 심리적, 경제적 압력으로 인구가 증가하는 것을 보았고 가족과 공동체가 와해되는 것을 지켜보았으며, 자급자족 대신에 외부세계에 대한 경제적 의존이 심화됨에 따라 사람들이 땅으로부터 유리되는 것을 보았다.(p173)
개발은 현금 도입이 예외없이 발전이라고 전제한다. 주류경제에 의존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사실일지 모르지만 자급경제, 즉 지역자원과의 직접적인 관계에 기초를 둔 비화폐 경제 안에서 살고 있거나 거기서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다. 자신의 식량, 의복, 주거를 스스로 마련할 수 있는 이 사람들에게는 불안정한 현금수입을 위해 자신의 문화와 독립성을 버린다는 것은 삶의 질의 심각한 저하를 의미한다.(p174)
만약 개발이 지역의 자원에 기초해서 이루어지도록 한다면 그런 자원에 대한 지식을 키우고 북돋워야 한다. 표준화된 일반적인 지식을 외우게 하는 대신에 아이들에게 자기들의 환경을 이해할 수 있는 도구가 주어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좁은 전문화와 도시 지향의 서구식 교육은 보다 넓은 생태학적 관점에 자리르 내어줄 것이다. 이런 종류의 지역적 구체성에 기초한 지식은 전일적이면서 동시에 개발적인 것일 것이다. 그러한 접근방식은 전통적인 지식을 영속시키거나 재발견해내려고 할 것이다. 그것은 특정한 장소에서 몇백년간 계속되어온 생명의 그물과의 상호작용과 경험의 토대위에서 이루어질 것이다.(p196)
라다크의 비극을 지켜본 저자는 1980년 '라다크 프로젝트'라는 국제조직을 결성하고 정치적, 경제적 집중화에 반대하며 생태적, 공동체적 생활방식을 확산하기 위한 국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러한 국제적 활동이 필요한 이유는 서구문명에 의한 라다크의 퇴행적 획일화가 비단 라다크에만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개발이 필요하다
시골 농촌 마을은 공동체 문화의 성공과 생태적 개발의 대안 모델이 되지 못하고 있다. 도시와의 격차와 차별의 '한'이 지배하는 시골 마을, 이곳의 사람들은 여전히 도시적 개발을 동경하고 젊은이들은 마을의 탈출을 꿈꾼다. 지자체는 '지역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도시의 기업 유치에만 열을 올리고, 부족한 세수를 털어 삽질하기에 바쁘다. 이것이 현실이다.
삶의 진보와 지역의 발전을 위해 개발은 필요하다. 문제는 어떤 개발인가 하는 점일 것이다. 마을의 전통성과 공동체성을 살리면서도 자립적 지역경제의 선순환적 원리가 작동하는 개발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과연 마을공동체의 복원이 표준화되고 획일적인 개발과 현대화의 압력을 버텨낼 수 있을까. 나아가 파괴적 자본주의 극복의 대안 모델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오래된 미래'의 희망은 동경속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닌 생활세계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변화로 드러나야 할 것이다. 비로소 사람들의 관심이 농촌으로 쏠리고 마을공동체성의 복원을 시도하는 새로운 흐름들이 생겨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는 지류에 머무르고 있다. 이 흐름이 본류가 되기 위해서는 좀더 많은 상상력과 실험, 그리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간디가 라다크에 갔더라면 그의 마음이 갈망한 거의 모든 것을 거기서 발견했을 것이다.(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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