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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4년 06월 27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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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4쪽 | 488g | 153*224*18mm |
ISBN13 | 9788936434144 |
ISBN10 | 8936434144 |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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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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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시 성석제를 읽어야 한다
성석제라는 이름을 보면 벌써 그 무게와 두께가 다르다. 지금에 와 듣지 않아도 처음부터 그 이름에는 오래 전 일제 하 사실주의와 근대 단편소설의 황홀했던 태동기에서 존재했던 가슴 뛰는 저 소설가들의 도서관 목록들이 주르르 딸려 나올 것만 같은 것이다. 성.석.제. 소설보다 더 소설같이 자꾸만 읽어 들어가 보고 싶어지는 작가.
거짓과 참, 상상과 실제, 농담과 진담, 과거와 현재, 개성, 풍자, 해학, 입담, 나아가 무협지의 고수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그를 표현하는 수식은 더 이상의 수식이 아닌 대명사를 넘어 관용명사가 되어버리기까지 한 정도이다. 이쯤에서 그에 대한 평론과 그의 소설 읽기는 다시 새로워져야 한다. 아니, 그의 이야기 자체가 자꾸만 새로워질 수밖에 없는 대단한 마법을 지니고 있다. 다른 어느 소설을 보더라도 그의 이야기에는 예외 없음, 종횡무진, 특유의 말부림 등등 엎어 치고 뒤집고 날려 보내며 마침내는 유쾌, 통쾌한 무언가가 항상 있었기 때문이다. 재주꾼, 소리꾼, 온갖 꾼 꾼 중에서도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그리고 여기에 몇 가지 그의 이야기를 높이는 다른 찬송들이 더 있다.
이 책 투명인간 속의 표현처럼 정말 ‘지지리도 복이 없던’ 주인공 김만수처럼 작가의 다른 소설 속에서도 주인공들은 언제나처럼 한 마디로 지지리도 못.났.다. 거기에다 작가의 놀랄만한 입담이 가세해 불쌍하다 못해 괴이하기까지 하다. 여기 김만수의 다른 절친들을 한 번 보자. 단편집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서 농부 황만근은 모든 면에서 평균치에 훨씬 못 미친다. ‘욕탕의 여인들’의 주인공 대학생이 한다는 짓은 겨우 돈 많은 과부와 결혼해 한 번 잘 살아보려고 차례로 유복한 집안의 여성들을 만나러 돌아다니는 일이고, 또 다른 책 속에서도 주인공들은 마치 이상한 친목모임의 같은 동호회원들인 것처럼 대부분 세상과 섞이지 못하고 그 주변에서만 맴돈다.
2. 우리의 위대한 투명인간, ‘김만수’
성석제 작가와 작가의 소설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를 끝맺기 전, 오늘의 소설 ‘투명인간’에 대해 먼저 얘기를 나눠보자. 저 19세기 말과 20세기 중엽에 걸쳐 대단한 SF 환상문학 작품을 남겼던 허버트 조지 웰스의 소설 속의 초인과는 조금 다르다. “조금 다르다”는 표현을 쓴 이유는 우리의 김만수 또한 진짜 투명인간이기 때문이다. 아니, 정말로 남들에게 투명인간 취급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투명인간이 된 것이다. 소설 속 1인칭 화자인 김만수는 분명히 말한다. “어느 순간, 갑자기, 투명인간이 됐다.” 그런데 웰스의 주인공과 그 조금 다른 부분은 옛날의 투명인간이 자기 인체의 세포에 유리와 같은 성질의 빛의 굴절도를 줄 수 있게끔 해서 결국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하는 약품을 발명한 사나이였다면, 공교롭게도 김만수는 스스로의 과학적 발명을 통하여 투명인간이 된 것이 아니라 타인에 의해, 세상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투명인간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진짜로 사람들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었다는 이것이다. 김만수는 비정한 현실의 무게 속에서 끝내 투명인간이 되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투명인간은 역시나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참 모자라다. 너무 모자라서 기가 차 쓴웃음이 나올 정도다. 소설의 말미를 우선 보자. “투명인간이 되고 난 뒤에도 보통의 세상처럼 해도 되는 일, 안 되는 일의 한계가 있더라. 우리는 천사나 악마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냥 인간이다. 뭔가를 바꾸기 위해서는 서로를 알고 다 같이 노력을 해야 한다. 교통사고가 나기 직전에 브레이크를 밟아야 하는 것처럼.” 이미 이 투명인간 이야기의 첫머리와 끝자락에서 주인공 김만수는 동일하게 푸념한다. “그래서, 도대체, 투명인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웰스의 투명인간은 자기 육체가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된 것을 이용하여 그때부터 부와 권력을 얻기 위한 온갖 악행을 자행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시대가 다르다. 지금의 투명인간은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고달프며, 위태롭고, 절망적이다. 정말이지 엉망진창이다. 그리고 과거의 투명인간이 예견된 고립과 파멸의 길을 갔다면, 지금의 투명인간은 한 치의 앞도 볼 수 없을 정도로 더 깜깜하고 암담하다. 장님에, 앉은뱅이에, 말더듬이에, 어눌하기까지 온갖 불행상표를 다 붙여 놓아도 모자랄 판이다. 그러니 차라리 쓴웃음이 나올 수밖에.
3. 이것이 투명인간이다
자, 3대에 걸친 김만수의 가족은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그대로 겪으며 살아 왔다. 여기까지는 염상섭 소설 ‘삼대’가 겹쳐진다. 제1대, 독립운동 관련 책을 소지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었던 만수의 할아버지가 바로 이 투명인간이 된 인과의 시작이다. 그로 인해 가세가 기운 것에 대해 만수의 아버지는 평생의 반발심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엄청난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 김만수가 투명인간이 되게 하는 데 결정적인 약물로 작용한다. 이제부터는 과연 어떤 놈의 투명인간이 되어가는지를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 큰형, 베트남 전쟁에 참여했다 고엽제로 병사한다. 누나, 연탄가스 중독을 제 때에 치료받지 못해 바보가 된다. 여동생, 가열하게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동지 남자에게 그만 원치 않은 일을 당해 버린다. 남동생은 고문을 당한 이후 연락이 끊긴다. 그렇다면 결정적으로 투명인간인 김만수는 어떠한가. 오히려 형제들에 비해 못나고 못 배웠던 탓에 어려서부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주목할 것은, 늘 원치 않게 당해왔다는 것이다. 그 당해온 것이 온갖 불행이란 불행은 다 모아놓은 것이라 더욱 놀랄 만하다. 그러다 끝내는 투명인간이 되는 운명을 당하기에 이른 것이다.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회사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도리어 손해를 끼쳤다며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떠안고, 실종된 남동생의 새끼까지 맡아 키우지만 이 아이는 학교에서의 괴롭힘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아까운 생을 마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지만 고된 노동과 참을 수 없는 외면, 그리고 시시각각 다가오는 알 수 없는 불행의 그림자는 끝내 그에게 투명인간이라는 운명의 마침표를 찍게 한다. 그리고 이것이 끝은 절대 아니다. 다시 한 번 소설의 말미 김만수의 푸념을 리와인드해 보자. “투명인간이 되고 난 뒤에도 보통의 세상처럼 해도 되는 일, 안 되는 일의 한계가 있더라. 우리는 천사나 악마 같은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다. 그냥 인간이다…… 그래서, 도대체, 투명인간은 무엇이란 말인가?”
4. 현실과 비현실의 사이
성석제 작가의 가장 최근 작품 투명인간은 겨우 지난 해 여름에 출간된 도서이다. 바로 그 점에서 최근 한국사회의 가장 이슈화된 문제점과 폐부를 정곡으로 찌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투명인간의 주인공과 주인공의 주변을 맴도는 인물들이 모두 현 정권 하의 보이지 않는 어두운 면들을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주인공 김만수는 분명히 우리와 똑같은 시대의 오늘의 대한민국 사회를 고군분투하는 인물이지만, 이 주인공을 통해 보는 소설 속의 배경은 삼대에 걸친 한국 현대사회를 병풍처럼 모조리 껴안고 있다. 여기에 놀라운 사실 하나는 과거의 역사나 오늘의 역사나 한 치도 다름없이 문제를 거듭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오늘의 시대에서 읽는 투명인간 속의 과거 역사는 전혀 낯설거나 고루하지 않고, 여전히 반복되는 과오이기에 오히려 공감이 되고 새롭기까지 하다. 이 점을 작가는 잘 알고 있었기에 지난 현대사를 소설적 소재로 삼을 수 있었고, 김만수라는 지금을 사는 인물을 통해 그 때 그 시절의 부정을 오늘의 시대로 그대로 옮겨놓음으로써 다시 한 번 우리에게 거부감 없이 자연스럽게 문제를 환기시켜 주고 있는 것이다.
그 동안 그 시대를 대변해 주는 소설 속 여러 주인공들을 우리는 숱하게 읽고 느껴 왔다. 심지어 지난 19세기 천재 여성작가였던 메리 셸리의 소설에서는 프랑켄슈타인 박사라는 인물을 통해 경악스런 괴물이 탄생되기까지 하였다. 투명인간의 주인공 김만수는 인간임과 동시에 인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특별하다. 김만수가 진짜로 투명인간이 된 장면에서는 저 라틴아메리카의 비참한 고독을 눈물겹게 보여주었던 남미 작가 마르케스의 소설 ‘백년의 고독’ 속 환상적 인물들이 잠깐 떠오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백년의 고독’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마콘도 가문 최후의 인간이 돼지꼬리가 달린 채 태어나자마자 바로 새하얀 개미떼들에게 둘러싸여 먼지처럼 날아가 버렸고, ‘투명인간’에서는 무엇에 의할 것도 없이 한 번에 투명해져 사라져 버린다. 환상적 결말이지만 그렇게도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주인공 김만수의 무게가 고스란히 지금의 나에게 피부로 다가와서일 것이다. 거기에 어떤 함의나 은유를 찾을 것도 없이, 우리 모두는 투명인간임에 분명하다. 이것은 환상이 아닌 사실이다. 사실 마르케스의 소설 속 몽환적 인물들 또한 거기에 어떤 의미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온몸이 개미떼에 사로잡혀 하루아침에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려도, 목구멍이 찔려 분명히 죽었는데도 그 상태 그대로 끝까지 홀로 늙어가도, 평생을 흙과 석회만 씹어 먹으며 죽기 살기로 고독을 달래는 것도, 모두 그렇게나 외롭고 아팠던 그들이 처한 현실과 하나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소설 속의 인물들이 훨씬 현실적이었다. 소설 ‘투명인간’ 속의 전쟁과 고문, 배신과 희생, 소외와 착취, 그 모든 극한의 고통들을 어찌 현실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차라리 투명인간이 지금 시대의 그냥 인간보다 더 현실적인 인물일 것이었다.
5. 누구나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
존재감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그간 투명인간이라는 말로 빗대고 비아냥댔다. 그러나 이제부터 투명인간은 사회 속에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저 없는 듯 죽어 살아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비참한 인간의 상징과 전형으로 새롭게 표현되어야 할 것 같다. 지금부터는 이런 사람이 투명인간이다. 가장 못생기고 가장 덜 떨어진 것은 기본이고, 여기에다 쓸데없는 배려와 양보심은 가장 높아서 언제나 자신보다 가족과 친구, 동료들을 먼저 생각하는 바보 같은 이타주의자와 박애주의자. 그런데 우리의 투명인간의 대표 김만수만 투명인간인 것은 아니다. 어떤 식으로든 실패하고, 천대받고, 무시되고, 외롭고, 슬프고, 아프고, 힘들어 죽고 싶은 사람들은 다 투명인간인 것이다. 이제부터 여기저기 손만 들면 투명인간이 될 수 있다. 자기 피를 팔아 학비를 마련하다 베트남전에 참전해 고엽제로 죽은 것이 인생인 형, 연탄가스를 마셔 그만 지능이 떨어져 버린 누나, 학생운동을 하다 강간을 당해 시집 간 여동생, 노동운동 하다 고문 받은 남동생, 그리고 학교에서 따돌림을 참지 못해 자살한 우리 가엾은 조카새끼까지 다 다 투명인간 놈들이다.
만수네 6남매는 전쟁 직후인 1950년대 중반과 60년대 중반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다. 영락없이 우리 세대의 가장들이다. 그들은 모두 지난 시기의 국가적 성장 속에서 편리와 안녕을 배운 것이 아니라, 돌이켜 보면, 오로지 ‘포기’라는 단 하나만을 머리에 지긋하게도 익혔을 뿐이었다. 이상한 것은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던 오늘의 청년들 또한 결혼, 출산, 연애를 포기한 ‘삼포세대’라는 것이다. 이토록 심각한 취업난 속에서 삼포만이 아니라 인간관계도 집도 꿈도 희망도 모두 다 포기해버리고 마는 ‘다포세대’, ‘올포세대’에까지 이르고 있다. 큰일이다. 이러 다 너도 나도 우리 모두 다 투명인간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책 ‘투명인간’은 오늘의 시대에 너무도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세상이, 사회가 이 지경이라면, 여기에 구원은 있는 것일까? 있다면 어디에 있는 것일까
6. 개인과 사회의 구원
이 책에서 ‘투명인간’이란 저주스런 삶 자체이지만, 반드시 부정적 함의로만 쓰이지는 않는다. 고통이 극한으로 치달아 견딜 수 없을 때 자신의 몸에서 벗어나(또는 몸을 지우고) 투명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복이다. 억압과 착취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면 이게 구원일까? 아니다. 어떻게 말하든, 이 사회에서 버티지 못하고 밀려나 소외된 존재,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지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소설의 마지막, 다시 처음 얘기로 돌아가 투명인간(아마도 사라진 석수일 것이다.)이 김만수와 이야기를 나눈다. 투명인간 이전에도 그랬던 김만수는 투명인간 이후에도 삶을 긍정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에게 상대 투명인간은 세상의 악한 시스템을 거론하며 단정한다. “나 혼자 깨끗하게 산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라고. 그러자 김만수가 대답한다. “지금 이 세상이 이렇게라도 굴러가는 것이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누군가는 노력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 그렇게 하는지는 말하지 않겠다.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 결국 이 방법뿐인가? 이 소설은 강요하지 않지만 물음표를 던져 준다. ‘이게 최선인가? 고착화된 세상의 악마적 현실 구조를 타파할 방법이, 아니 고통에서 해방되는 구원의 방편이, 고작 긍정의 힘과 세상 질서에 순응하는 우직함뿐인가?’라고 말이다. 힘을 모아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기는커녕, 아군 적군도 구분 못 하고 계급배반투표 같은 자폭 행위만 일삼는 게 하층계급이다. 이런 자들에게 무슨 희망을 걸 수 있단 말인가. 어쩌면 저자는, 자본주의에 밀려나 이름만 덩그러니 남은 민주주의에 대하여 답답한 냉소를 보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아니면 이 현실을 덤덤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인지도. 나는 악 자체가 되어버린 사회구조 속 우매한 민중들에게 개혁과 변화를 얘기해 본들 그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확 든다. 하지만, 이런 고통 속 민중들을 변증법적 ‘정’(正)으로 보았을 때, ‘절대정신’이 보낸 구원투수 ‘반’(反)이 있게 마련이다. 그들은 누구인가. 압제를 해방으로 바꿔 줄 그들은 지성과 비판력을 갖추고 민중과 사회정의를 위해 격렬히 저항하는 진보주의자, 즉 운동권들이다. 그런데 정치사회적 함의로 가득한 영화 ‘나의 친구 그의 아내’는, 이 운동권 출신들이 주류권으로 편입해 권력과 부의 단맛을 보며 서서히 기득권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인격적 이상주의자이자 휴머니스트로 묘사한 386 운동권들이 실제로 정치.경제.사회의 주역으로 대거 진출했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타도 대상’으로 여기던 세력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건전한 프롤레타리아에게 상해를 입히고, 그들을 죽이기까지 한다. 민중은 어리석고, 진보세력은 타락했으며, 상황은 더 악화되어 간다. 그러니, 인간 해방, 민중 해방, 사회 구원의 길은 요원하기만 하다.
그런데 정작 구원은 전혀 다른 데 있다. 투명인간은 김만수가 교통사고를 당한 줄 알고 그를 찾아 나선다. 이것이 결국 죽었다는 건지, 아니면 애초에 김만수는 그 시간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건지 모호하지만, 우리는 이 문제를 뒤로 하고 소설의 마지막에 주목하자, “형. 만수 형.” 사회악에 적응하기 위해 영혼까지 내줄 작정으로 살던 석수의 외마디 외침이다. 석수의 자책과 개심을 말해 주는 절규다.
그렇다. 바로 이거다. 비트겐슈타인이 그의 책 ‘철학적 탐구’에서 말하듯, 사람이 죽은 것이지, 언어는, 의미는, 살아서 영향력을 행사한다. 김만수는 없지만, 그의 이타적 삶과 선의는 ‘만수 형’이라는 이름(언어) 속에 응축되어 되살아나고, 그것이 전달되어 속물 같은 석수를 변화시키는 힘(에네르게이아)으로 작용한다. 어떤 대상이든 이름이 불리는 순간, 그것은 스스로 생명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머물기 때문이다. 마치 김춘수의 시에 나오는 ‘꽃’처럼 말이다. 이제, 투명인간 김만수 개인의 구원이, 석수의 구원으로, 다시 사회의 구원으로 확장되고 있다. 나는 여기에서 희망을 발견한다. 이런 과정적 구원이 ‘궁극적 실재’의 구원 방법이 아닐까.
7. 투명인간의 삶, 투명인간의 희망
‘범죄의 재구성’, ‘타짜’, ‘전우치’, ‘도둑들’에 이어, ‘암살’에 이르기까지 현란한 이야기의 끝판왕을 보여 준 영화감독 최동훈은 한결같이 자신의 영화적 신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재밌어야 한다고. 뭐니 뭐니 해도 성석제 소설의 최고 장점은 한 마디로 끝장나게 재미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통찰은 말할 것도 없고, 인간 자체에 대한 항상 그립고 애틋한 시선이 깔려 있다. 절망적인 주인공의 상황 속에서도 이상하게도 성석제의 소설은 따듯하며 가슴 아리다. 그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남미의 마술적 리얼리즘 소설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작중 인물과 여러 장치와 상황들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서 있는 신기에 가까운 그의 능력을 입증한다. 여기에다 그 이야기를 구성해 내는 방식에 있어 자기 소설과 소설의 독자에 대한 작가의 고민과 애정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져 더욱 그는 특별하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서 작자는 묘비명의 형식을 빌어다 쓰는 신기함을 보였고, 어느 때에는 과거와 현실의 서로 다른 인물들이 기가 막히게 한 장 안에서 꼭 같이 있는 것처럼 어우러지기도 하는 등 과연 자유자재하며 신통방통하게도 여기저기의 차원에서 이야기들을 다 끌어내 와 때마다 한 상 제대로 차려 내어 보이는 것이다.
“우리를 제외한 온 세상이, 힘 있고 백 있고 돈 많은 인간들과 법과 체제가 한통속이 되어 우리의 명줄을 조르고 있었다. 화를 낼 기운도 없었다. 오히려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무력했고 두려웠고 절망에 빠졌다. 마누라부터 매일 울고불고했다…….” 형의 똑똑함도, 누나의 밝은 미래도, 그리고 우리 만수의 성실함도 다 사라져갔다. 그렇게 만수는 투명인간이 되었고, 우리 모두도 결과적으로는 다 투명인간이 될 것이다. 결국 투명인간은 다른 세계의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바로 이 시대의 지극히 평범한 이웃, 너와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뜻하는 것일 수도 있다. 성석제 소설의 다른 주인공들이 언제나처럼 우리에게 사방팔방으로 온 몸과 온 힘을 다한 곡예와 신기의 일상으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을 단 한번 정독을 하고 서평을 쓴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다른 소설과는 달리 극 중 화자가 딱 정해져서 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듣고 진술하는게 아니라 이야기 속 주인공 만수를 비롯한 주변인물들이 차례로 돌아가며 자신의 내면적 갈등을 드러내고 각각의 입장에서 가족들과 주변상황을 비판하고 좌절하고 사고하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려냈다. 이러한 기법이 처음에는 낯설기도 하고 헷갈려서 단락이 바뀌어 다음 인물로 넘어가는 첫 한두줄은 누구의 말이고 시선인지 단박에 알아채기 힘들었다.
이야기는 만수의 조부모와 어머니, 아버지, 그 형제들이 살아지나온 한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다. 만수의 조부는 다방면으로 유식한 인물이지만 독립운동혐의로 온가족을 개운리 산골짝으로 숨어들어가게 한 원흉이라며 아들과 손자에게 틈틈이 원망을 듣는다.
장남 백수는 착하고 영특해 대학까지 일사천리 들어갔으나 자원입대한 군에서 병사하고 막내 석수는 어릴적 부터 윗형 만수를 무시하고 형 취급도 안하는 이기적인 아이였다. 장녀 금희는 맘씨가 고와 항상 집안에서 천덕꾸러기인 만수를 감싸주고 남몰래 어려운 사정 불사하고 죽기 전까지 가족을 위하던 큰 오빠에게도 지극했다. 그런데 뭔 놈의 평지풍파가 이 집안을 그렇게도 들쑤시는지 하루도 바람 잘날이 없다. 간호조무산지 뭔지 되겠다던 둘째 딸 명희는 연탄가스중독으로 바보가 되고 석수는 어느 날 집을 나가 소식도 없다가 군입대를 안하려 별 수를 다 쓴 끝에 오영주라는 여자와 엮여 아들 태석을 남긴 채 자취를 감춘다. 금희는 식구들의 못마땅함을 뒤로 하고 일찍이 깜둥이 트럭기사와 결혼을, 어린 시절 앞길 하나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식구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던 만수는 공전 졸업 후 어느 새 세차장과 자동차부품공장, 세탁소, 가사일, 목욕탕청소, 음식과 신문배달등 안해본 일 없이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 식구들과 부모를 먹여 살리기 바쁜 가장이 되어 있다. 어찌 보면 지금의 현실 속에서 이런 만수 같은 캐릭터는 비현실적이다. 사람 좋고 믿음직하고 서글서글하니 누가 봐도 성실하고 티끌하나 없이 맑은 인물인데 다른 시선으로 보면 참 바보같고 이해 안되는 부분이 많다. 자신의 공장이 다른 채권단이나 투자자들에게 넘어갈 위기에 처해있을 때에도 공장을 지키기 위해 앞장서서 장기농성을 하고 투쟁하느라 '최후의 7인'의 치닥거리를 자처하는 모습은 기사식당을 운영하는 옥희를 비롯한 가까운 지인과 식구들의 입장에선 미칠 노릇일 것이다. 옥희 눈에 가시 같았던 진주도 만수와 결혼 후 버릇없는 태석과 앞가림 못하는 시누이, 끝도 없는 집안일에 신장병까지 겹쳐 하루가 다르게 짜증이 나고 사람 좋은 남편 만수에게조차 정이 다떨어질 지경이다.
소설 속에선 열심히 살고 부지런한 사람이 잘 사는 세상이란 없는 것 같다. 착한 만수 주위에도 그를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있고 서로의 속마음을 철저히 감춘 채 방어적으로 살아간다. 그는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식구들과 사람들의 희생의 발판이 되길 주저하지 않았으며 종국엔 사람들이 신경도 쓰지 않는 '투명인간'이 되어 버렸다. 슬프고 씁쓸한 일이지만 이건 결코 소설 속에 국한된 허구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날 더 괴롭게 한다. 좋은 취지로 사람들을 돕고 가족을 부양하고 책임자가 되고.. 그것들의 댓가는 과연 무엇으로 돌아올까.
나는 1980년대생으로써 이 책에 기술된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군부독재정권시대등을 관통하는 지난 세기의 역사가 어땠는지 잘 모른다. 할머니와 아빠의 이야기로 어렴풋이 그 시절을 짐작할 수 있었을 뿐 얼마나 치열하고 어렵고 힘든 삶을 산 이들이 많았는지 몰랐다. 전후 물질만능주의와 자본주의가 팽배하는 시대가 도래한 뒤 그들의 갈 곳은 없어진 것 같았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존재로 남았다. 투명인간. 참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 같지만 허무하기 짝이 없고 모두에게 버려진 듯한 운명에 처한 이들을 일컫는 말 치곤 참 잔인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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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방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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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품/교환 가능기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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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품/교환 비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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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품/교환 불가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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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피해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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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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