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날.
무대가 있다. 이곳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올리는 무대이다. 지금 이 순간, 햄릿은 무대 왼쪽에 있는 문으로 등장해 무대 가운데로 걸어가야 한다. 그리고 저 유명한 대사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이다."를 말해야 한다. 그러나 막 뒤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순간, 왠지 오렌지색 조명은 낯설고 바닥에 길게 드리워진 누군가의 그림자는 문득 늪처럼 바닥으로 가라앉는다.
빠른 심장 박동 소리를 느끼는 사이, 결국 햄릿은 평상시에 걷던 습관 그대로 신발을 끌면서 느릿하게 걷는다. 처치 곤란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었고 마땅히 둘 곳 없는 시선은 구두코를 향한다. 이제 무대 중앙. 지금은 무대 위니까 약간 더 큰 소리로 말해야 한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이다."
객석에서 햄릿을 지켜보던 연출자가 고함친다. "너 지금 뭐해!"
나는 햄릿이 아니다. 햄릿의 연기를 한 것 또한 아니다. 나는 무대라는 공간을 믿지 않았고 내가 햄릿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당연히 나는 내가 햄릿이어야 하는 수많은 이유 중 단 한가지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 사실만은 알게 되었다. 이건 사람들이 생각하는 연극도 연기도 아니라는 것을.
둘째날.
다시 그 무대 그 장면이다. 이제 나는 햄릿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본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이다." 이런 말을 하는 그는 심각한 고민에 빠진 사람이다. 나는 고민하는 햄릿이 되기로 한다. 대사를 여러 번 읊어보고, 이 대사를 할 때 어떤 모션을 취해야지 할지 연구해 본다. 몇 가지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이제 내가 보여줄 멋진 연기를 생각하니 설렘으로 가슴이 뛴다. 햄릿은 자신 있고 당당한 걸음으로 무대 가운데로 걸어간다. 그리고 고개를 숙인 채 손으로 이마를 짚고 아주 심각하게 말한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이다."
객석의 연출가는 햄릿을 노려보더니 결국 어이없는 듯 웃음을 터트린다.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정말 문제다..."
일주일이 흐르고...
햄릿은 더 이상 사람들에게 웃음거리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이다."라는 말의 전후에는 어떤 사건들과 심리의 변화가 있었는지, 하나씩 추정해보기로 한다. 햄릿은 왜 무대 가운데로 걸어가는지, 그 전에는 누구를 만났는지, 수시로 변할 햄릿의 심리 중 가장 중심에 있을 감정은 무엇인지. 만약 내게 생사의 결단을 내려야 할 고민이 생긴다면?
어찌할지 몰라 주저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햄릿은 팔짱을 끼고 한 곳에 가만히 있지 못하고 왔다갔다한다. 그리고 한숨을 자주 쉰다. 햄릿의 기분을 진실로 느낄 수 있는가? 그는 왜, 그리고 어떤 목적을 가지고 걷고 말하고 보는가. 내가 햄릿임을 믿고 있는 만큼만 보여주자. 과장된 거짓은 단지 눈속임일 뿐이지 않은가.
이제 햄릿은 자신의 행동과 말에 목적을 부여하기로 한다. 그는 천천히 그리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무대 가운데로 나가고, 무대 중앙에 이르러 팔짱을 낀 채 여기저기를 서성인다. 한숨을 쉬며 무표정한 얼굴로 말한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이다."
객석에서 정적이 흐른다. 말이 없는 관객들은 햄릿의 움직임과 마음을 좇아 울고 웃고 그리고 박수를 친다. 햄릿의 마음이 그들에게 전달된 것이다. 이 모든 행동은 '내가 만약 햄릿이라면', 이라는 질문에서 '나는 햄릿이다'라는 감정이입을 통해 나온 결과이다. '재현(再現)'을 거부하고 '실현(實現)'하고자 한 결과이다. 내가 진심으로 느끼고 공감하고자 했으며 그 정서를 아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자 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바로 스타니슬라프스키의 후예인 것이다.
단 한 번이라도 무대에 진지하게 서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내'가 연기해야 하는 인물에 어떻게 접근해가야 하는지, 그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해야하는지, 도대체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진실처럼 보일 수 있는지 또는 무엇이 진실인지 고민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들은 모두 스타니슬라프스키의 후예들이다.
20세기 초 스타니슬라프스키는 이러한 생각을 최초로 실험했고 그 결과를 보여줬으며 결과적으로 연극이라는 예술에 일대 변혁을 가져온 사람이었다. 그가 새로운 혁명을 일으키기 이전, 연극은 현실에서 괴리되어 있었다. 배우들은 틀에 박힌 과장된 연기를 했고, 무대는 교감과 감동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단지 자극과 즐거움을 위해 존재했을 뿐이다.
스타니슬라프스키(1863-1938)는 방직공장을 경영하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모두 예술을, 특히 극장을 사랑했다. 일요일이면 마차를 타고 서커스나 오페라, 발레를 자주 구경하러 갔고, 나중에는 모스크바 크라스나야 네거리에 있던 집과 류비모프까의 영지에 있던 별장에 가족 극장을 지을 정도였다.
그는 청년기에 '모스크바문학예술협회' 활동을 통해 연극계에 투신하고, 이어 1898년 평생 예술의 동반자인 희곡작가 네미로비치-단첸코를 만나 '모스크바 예술극장'을 창립하며 기존의 연극계에 '혁명'을 감행한다. 그는 극단에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을 도입하고 낡은 연기 방법에 맞섰다. 또한 무대관습에 따른 연기, 거짓된 페이소스, 유창한 낭독, 과잉연기에도 저항했다.
액세서리 같았던 오케스트라의 서곡이 폐지됐고, 오늘날의 공연 에티켓을 정착시켰다. 극의 내용도 역사-표사극, 환상극, 상징주의와 인상주의적 작품을 거치며 '진부한 틀'로부터 벗어나고자 했다. 특히 안톤 체홉의 희곡을 새로운 연극적 형태로 탄생시켜 1912년의 런던공연에서 '러시아 최고의 작품'이란 찬사를 받았던 <벚꽃동산>의 작업도 이 무렵에 완성됐다.
막심 고리키의 <소시민들>, 레프 톨스토이의 <어둠의 힘>을 공연할 즈음 스타니슬라프스키는 배우들의 연기, 즉 동작과 소리(대사)의 진실한 표현법에 고민한다. 마치 운명처럼 아주 우연하게 찾아오는 자아와 배역의 일치를 완벽하게 일궈내는 한 순간. 그 순간을 '스스로 창조해낼 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 그 '진실의 느낌'을 '집중이나 근육 이완과 마찬가지로 발전하고 훈련시킬 수는 없는가?'
이러한 탐구 속에 그가 고안한 '스타니슬라프스키 시스템'이 만들어졌으며 그 시스템에 따라 전 세계의 수많은 배우들은 '스스로 역의 형상을 창조하고 그 형상 속에 인간의 정신적인 삶을 열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무대 위에 훌륭한 예술적인 형식으로 변화'시켰다.
「배우로서의 어린 시절」, 「 배우로서의 소년 시절」, 「배우로서의 청년 시절」, 「 배우로서의 성숙기」 등으로 구성된 스타니슬라프스키 자서전 『나의 예술인생』은 정말 꼼꼼히 인내를 갖고 읽어야 할 책이다. 스타니슬라프스키가 무대에 오르고 연출했던 그 수많은 무대에의 기억을, 그 정서를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쉐프킨, 체홉, 톨스토이, 고리끼 등과 같은 당대의 예술가들에 대한 우정을 세세히 기록하고 있다.
연극에 대한 스타니슬라프스키의 탐구는 진지하고 치열하며 또한 성스럽다. 전세계 연극인들의 바이블로 손색없는 책이며, 삶이라는 또 하나의 연극 무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