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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발행일 | 2007년 05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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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05쪽 | 304g | 크기확인중 |
ISBN13 | 9788901065908 |
ISBN10 | 8901065908 |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1월 30일
『찬란한 멸종』 이정모 관장 북토크 11월 30일(토) 오후 2시
2024년 10월 31일 ~ 2024년 11월 28일
그래제본소 : 더 나은 어휘를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
2024년 10월 23일 ~ 2024년 11월 11일
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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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던 10대의 끝무렵에 읽었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오랜만에 펼쳐보니, 페이지들마다 연필로 그어진 밑줄들이 행간을 달리고 있었다. 간간이 발견되는 색볼펜의 괄호 안에 갇힌 문장이나 단어들이 당시 독서할 때의 고양된 마음을 고스란히 드러내어 보여주는 듯하다. 하지만 그때의 그 감동이 니체에 대한 뚜렷한 인식의 발로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알 수 없는 의문부호들로 채워진 매혹적인 문장들에 대한 경탄 내지는 충격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리고 나의 20대 초반, 생에 대한 절망의 무게는 생에 대한 선망과 정비례했고, 그 아릿한 혼돈 속에서 꽤나 치열하게 생을 살아내었다. 그 치열함은 어쩌면 뿌리깊은 니힐리즘Nihilism으로부터 달아나려는 무의식적 몸부림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치열한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나는 결국 그 깊은 공동空洞에 빠졌고, 의식적인 것은 아니었으나 카뮈와 쇼펜하우어, 그리고 니체를 읽었다. 세로로 인쇄된, 변색된 헌책에 밑줄을 그으면서 읽었던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과 DVD영화관에서 시간제 근무를 하면서 들춰보던 ‘즐거운 지식’은 그러나 아직까지 완독하지 못한 상태다. 오롯한 이해의 개념으로서의 완독 말이다. 그 전체적인 맥락만 대략 잡힐 뿐, 그 표현방식과 니체 사상 변천사의 근원 같은 것에 대해선 여전히 의문부호로 남아 니체는 책장에 꽂혀져 손이 타지 않았다. 이러한 형편에서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출간한 <HOW TO READ 니체>를 접하게 되었다. ‘니체 읽는 법’을 조금 쉽게 터득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를 품고.
이 책의 저자는, 영국 워릭대학교 철학과 교수이자 대학원장이며 저명한 국제 니체 학회지의 편집자, 키스 안셀 피어슨 Keith Ansell Pearson이다. 그는 ‘느리게 읽기를 가르치는 자, 니체’라는 제목의 서문에서 “‘그(니체)’는 반복해서 ‘잘 읽는 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느림의 친구 혹은 ‘느리게 읽기를 가르치는 자’ 같은 비시대적이고 친숙하지 않은 표현으로 자신을 표현했다. 니체는 읽기가 깊이 있는 사고를 요구하는 예술의 일종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라고 니체의 표현을 인용하면서 자신의 책에 대한 의도를 소개한다.
HOW TO READ 니체? - 느리게, 깊게.
이 책은 10장으로 나뉘어져 있고, 각 장의 시작은 니체의 원전에서 발췌한 니체의 핵심사상을 실어놓고 있다. 그리고 그 사상이 곧 그 장의 주제로 이어진다. 저자는 니체의 사상에 영향을 미친 철학자들과 니체가 영향을 미친 철학자들을 소개하면서 원래의 사상과 영향을 받은 사상의 차이점과 공통점까지를 논하는데, 쇼펜하우어와 소크라테스 칸트 등 친숙한 사상가들의 사상과 니체 사상과의 연관성과 차이점을 단편적인 인용문과 함께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결코 니체가 신의 죽음을 이야기한 첫 번째 철학자는 아니다. 헤겔 역시 <종교 철학 Philosophy of Religion .1827>에서 “신이 죽었다”는 구절을 포함한 루터교의 찬송가를 인용하며 신의 죽음에 대해 논하고 있다.
- p. 58, 제 3장 ‘늙은 신은 죽었다’중에서
니체의 악마는 소크라테스의 악마를 닮은 듯하다. 소크라테스는 신적이고 초자연적인 경험을 통해 나타나 자신이 의도한 일을 하지 못하게 설득하는 목소리로 악마를 설명한다. 그러나 니체의 아포리즘에서 나오는 악마의 전언은 우리를 설득하거나 무언가를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나 우리의 이후 선택에 관해 본질적인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해줄 깨달음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 p. 125 ~ 126, 제 7장 ‘그 어떤 인간들보다 높이’ 중에서
니체 사상과 관련된 철학자들에 대한 소개는 니체 사상의 근원과 흐름에 대한 이해를 도와줄 뿐만 아니라, 니체 이외의 철학자들의 사상에 대한 이해로까지 미친다는 점에서 유익하다. 그러나 이 책의 전체적인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저자의 니체에 대한 해석이다. 니체 원전에서 발췌한 문장들을 인용한 개인적인 해석과 객관적인 해석이 자상하게 이어진다.
몇몇 연구자들은 니체의 영원회귀를 죽음의 순간에 직면하는 계시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때 가장 고독한 시간이란 말 그대로 한 개인의 실제적 임종 시간을 의미하게 된다(이 아포리즘이 죽어가는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말에 대한 아포리즘 바로 뒤에 온다는 점 역시 이런 해석의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이런 해석이 가장 고독한 순간이라는 표현을 너무 문자 그대로 해석한 결과인 것 같다.(이 글은 사실상 단지 “어느 날 혹은 어느 날 밤”이라는 표현으로 시작된다). 나는 오히려 이 시간을 인생에서 가장 비참하고 고단한 시기를 맞아 위안과 구원을 찾지만, 그런 것은 결코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는 그런 시간으로 보고 싶다. - p.126, 제 7장 ‘그 어떤 인간들보다 높이’ 중에서
이러한 방식으로 저자는, ‘디오니소스적 세계관’ ‘반기독교’ ‘반형이상학’ ‘명랑주의’ ‘자유정신’ ‘초인의 개념’ ‘영원회귀’ 등에 이르는 니체의 중심적 사상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러한 책의 구성은 적극적인 독서의 지향을 야기한다. 나의 경우에는 이 책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즐거운 지식’을 곁에 두고 인용문에 대한 아쉬움이 남을 때면 펼쳐보고는 했다. 그런데 두 가지 책을 놓고 독서를 하다 보니 같은 원전이지만 그 번역에 있어서의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책에 비하여 (내가 가진 책이 좀 더 오래 되었다고는 하지만), ‘HOW TO READ 니체’의 문장은 난삽하지 않고 수사법에 있어서의 오류도 눈에 띄지 않아서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이에 대해, <즐거운 지식> 110, '인식의 기원'의 한 부분을 비교해 보겠다.
인식의 기원. - 엄청나게 오랜 시간에 걸쳐 지성은 오류 외에는 만들어낸 것이 없다. 그중에서 몇몇 오류는 유용하고, 종족 보존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우연히 이런 오류를 습득하거나 물려받은 사람은 자신과 후손을 위한 싸움에서 보다 큰 행운을 얻었다.
<HOW TO READ 니체>
인식의 기원. - 오랜 세월 동안 지성은 오류만을 파생시켰을 뿐이다. 이들 가운데 소수의 오류만이 종족을 보존하는 데 유용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러한 오류에 우연히 마주치거나 선조로부터 이를 계승했던 사람들은 그 자신과 자손을 위한 투쟁에서 행운이었다는 편이 나을 것이다.
<즐거운 지식, 청하, 초판-1989년, 8쇄-1996년>
이 책은 일견 단숨에 니체를 이해할 수 있는 마법의 문장들이라도 들어있을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결국 그토록 ‘난해하다’는 ‘니체’의 원전을 토대로 한 글이며, 이 책을 쓴 저자 역시 오랜 시간 동안 니체를 연구한 학자로서, 니체적(특히, 난해함이라는 점에 있어서) 사유와 표현방식에서 그리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야겠다. 앞서 소개한 서문의 ‘느리고 깊게 읽기’는 굳이 의식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이 책의 첫 장을 펼치면서부터 느릿느릿 깊게 사유하고, 반복해서 문장의 머리와 꼬리를 오락가락하는 독서에 길들여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점이 오히려 이 책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철학적 사유의 속성’인 ‘깊게, 읽고 사유하는 기술’을 고수하면서 다각도의 분석과 전복적인 해석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렇다. 니체가 말한 바와 같이 절대적 진리도 영원한 사실도 없다. 이 명제는 ‘역사적으로 사유하기’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HOW TO READ 니체’ 역시 ‘니체 읽는 법 - 느리고, 깊게’에 유익한 책이지 니체 해석에 대한 절대적 독선이 들어있는 책이 아니다.
철학은 완성이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삶이 끝나지 않는 한, 세계와 인류에 대한 본질 탐구와 사유도 계속될 것이므로. 계속되어야 할 것이므로.
이런 견지에서, 이 책은 니체적 사유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하기 위한 사람들, 니체를 한 번도 접해보지 않았으면서 이 책을 니체 읽기의 발판으로 삼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유익하리라는 생각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느리고 깊게 읽기’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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