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는 세계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고, 가장 많이 출판되었으며, 가장 널리 읽혀온 책이다. 어떤 책도 성서만큼 폭넓고 깊이 있는 연구와 분석의 대상이 되지는 못했다. 수십 세기 동안 연구가 이루어졌으면서도 성서 관련 서적이 지금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것은 성서의 복잡성과 성서 연구자들의 열성에 바치는 찬사다.
젊은이들을 위해 성서 첫머리의 책들을 다룬 작은 책을 두 권(Words in Genesis와 Words from the Exodus) 쓴 적이 있지만, 오래 전부터 관심 영역을 대폭 넓혀 새로운 책을 써보겠다는 거창한 계획을 품고 있었다. 아주 간단히 설명한다면 성서의 세속적 측면들에 대한 고찰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이 성서를 읽는 목적은 대개 윤리적·영적 가르침을 얻으려는 것이다. 하지만 성서에는 세속적 측면도 있다. 성서는 인류문명의 초기 4,000년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성서는 현대적 의미의 역사서는 아니다. 그 저자들이 현대 고고학 기법의 혜택을 누리지 못했고, 연대를 설정하고 자료를 조사하는 방식이 우리와 달랐으며, 역사에서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판단하는 기준도 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성서의 주된 관심은 기본적으로 가나안, 곧 지중해에 면한 아시아의 한 작은 지역에 영향을 미친 사건들에 맞추어져 있다. 세속적 관점에서 보면 이 지역은 초기 문명의 역사에 미미한 족적밖에 남기지 못했다. 따라서 현대 역사서들은 성서와는 대조적으로 이 지역에 상대적으로 작은 지면만을 할애하고 있다.
그럼에도 성서는 지난 2000년 동안 서구 문명에서 사용된 사실상 유일한 역사책이었다. 오늘날에도 성서는 가장 큰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고대사에 대한 성서의 견해는 다른 어떤 역사서의 견해보다 일반적이고 폭넓게 알려져 있다.
현대인들 중에서 네부카드네자르(개 공/느부갓네살)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면서도 페리클레스에 대해서는 들어보지도 못한 사람이 적지 않은 사정도, 네부카드네자르는 성서에 뚜렷이 언급되어 있지만 페리클레스는 전혀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단순한 사실에서 기인한다.
성서 외에는 어디에서도 그런 기록을 찾을 수 없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아하스에로스를 에스델(개/에스더)과 결혼한 페르시아 왕으로 알고 있다. 더불어 아하스에로스가 현대 역사가들이 흔히 크세르크세스로 알고 있는 인물이며, 그가 통치하던 동안 가장 중요한 사건이 그리스를 침공했다가 대패한 일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다. 역시 그 침공 사건이 성서에 언급되어 있지 않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이다.
또한 성서에 나오는 시삭이나 네코(개 공/느고)와 같은 중요하지 않은 이집트 파라오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성서에 나오지 않는 위대한 정복자 투트모세 3세 파라오에 대해서는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실존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운 니므롯, 세바(시바)의 여왕 같은 인물들은 성서에 이름이 올라 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만, 성서에 오르지 못한 당대의 영웅들은 망각 속에 묻혀 있다.
장소에 대해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사람들에게는 성서에 사건의 무대로 등장하는 세겜이나 베델 같은 가나안의 작은 도시들이 시라쿠사나 이집트의 테베처럼 지나는 말 정도로 가볍게 언급되거나 전혀 언급이 없는 고대의 대도시들보다 더 친숙하다.
게다가 성서에 등장하는 장소라 해도 그곳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성서에 언급된 것뿐인 경우도 많다. 대다수 사람들은 메디아 제국의 수도였던 엑바타나를 토비트 이야기와 관련해서 기억하고 있을 뿐 이 도시의 나머지 역사에 대해서는 캄캄하다. 만약 그들이 그 도시가 현대 국가 이란에 지금도 있으며 엄연히 한 지방의 수도라는 사실을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의 주 대상을 성서에 대해 최소한 일반적 수준의 지식은 가지고 있으나 성서 외의 고대사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독자로 설정하고 있다. 말하자면 빈 곳을 채우는 데 관심이 있는 독자, 성서의 장소와 인물들을 감싸고 있는 안개가 조금이나마 걷히면 성서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독자를 상정하고 있는 것이다(성서가 쓰여질 당시의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을 장소와 인물들이 수세기가 지나면서 희미해지고 불확실해진 탓에 이토록 중요한 책의 내용 자체가 쓸데없이 어려워진 것은 애석한 일이다).
온전히 성공하지는 못하더라도 나는 이것을 바로잡고자 한다. 예를 들어 니므롯이 누구였는지 알아보고,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시기를 밝히며, 다윗 왕국을 둘러싼 세계의 모습을 살펴볼 것이다. 이스라엘이나 유다와 싸울 때만 성서에 언급된 여러 왕들의 역할을 가려내며, 예수와 사도들이 만난 각기 다른 헤로데(개/헤롯)들 사이의 관계도 추적할 것이다.
--- 저자의 말
간단히 말해서 성서 밖의 세계를 성서 이야기의 견지에서 조명하고, 반대로 성서 이야기에 역사·전기(傳記)·지리 등 비성서적 측면들을 덧붙임으로써 성서의 사건들을 고찰하고자 한다. 그러다 보면 성서의 개별 사건들에 현대적 연대를 대응시키고 싶은 끈질긴 유혹을 받겠지만, 현대적 연대를 정확히 대응시킬 수 있는 성서의 사건은 거의 없다. 따라서 다소 자의적이긴 하지만 이해의 편의를 위해 역사를 몇 개의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 편리할 것이다.
문명 초기, 곧 B.C. 4000년∼A.D. 100년에 이르는 기간을 하나로 묶어 '성서 시대'라고 부를 수 있다. 이 가운데 B.C. 400년까지의 기간은 '구약 시대'고, B.C. 400년∼B.C. 4년까지는 '신구약 중간 시대', 그 이후의 A.D. 시기는 '신약 시대'다. 성서 시대는 다음과 같이 좀더 세분할 수 있다.
B.C. 4000년∼B.C. 2000년 원시 시대
B.C. 2000년∼B.C. 1700년 족장 시대
B.C. 1700년∼B.C. 1200년 이집트 시대
B.C. 1200년∼B.C. 1000년 부족 시대
B.C. 1000년∼B.C. 900년 다윗 왕국
그 다음부터는 서아시아를 사실상 지배했던 민족에 따라 시대를 구분하면 아주 편리하다.
B.C. 900년∼B.C. 600년 아시리아 시대
B.C. 600년∼B.C. 540년 바빌로니아 시대
B.C. 540년∼B.C. 330년 페르시아 시대
B.C. 330년∼B.C. 70년 그리스(헬레니즘) 시대
B.C. 70년∼A.D. 100년 로마 시대
유다인들은 그리스 시대의 마지막 한 세기 동안 마카베오 일족의 지도하에 잠시나마 독립을 누렸으므로, B.C. 170년∼B.C. 70년에 이르는 이 시기를 따로 '마카베오 시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을 쓰면서 감히 성서 연구에 '독창적' 기여를 하고 있는 듯 허세를 부릴 생각은 없다. 사실 나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다. 이 책의 내용은 모두 고대사 연구자들이 익히 알고 있는 자료들로 구성될 것이다(나의 판단으로 추정하는 장소들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그 사실을 밝히겠다).
다시 말해서 개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 자료들을 유용한 방법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 자료들을 결코 넉넉하다고 할 수 없는 한 권의 책 속에 소화하여 한 가지 일관된 태도로, 그리고 평균적인 성서 독자가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양식으로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형식에 전혀 구애받지 않으며, 어떤 엄밀한 규칙에도 얽매이지 않으려 한다. 장소나 인물을 반드시 성서에 등장하는 순서대로 논의하지도 않을 것이다. 어떤 장소나 인물에 대한 논의가 나중에 다른 장소나 인물과 연관지어 하는 것이 훨씬 유용하다는 판단이 서면, 그렇게 할 것이다. 어떤 사건을 뒤에 다시 논의할 생각이라면, 그 사건에 대한 논의를 주저 없이 불완전한 채로 남겨둘 것이다. 독자들에게 유용하거나 흥미로울 것 같지 않은 항목은 무시하고 넘어갈 것이며, 논의의 본줄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유익하다는 판단이 서면 언제라도 그렇게 할 것이다.
또한 이 책은 학술적인 개론서가 아니므로 본문 내에 출처를 밝히는 주석과 같은 부속 자료들은 싣지 않을 생각이다. 내가 이용한 자료들은 아주 일반적이고 평범한 것들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첫째가는 참고 자료는 여러 성서 번역본들이다.
a) 1611년에 처음 발행되고 <제임스왕 성서>로 잘 알려져 있는 흠정(欽定) 역본. 개신교의 여러 교파에서 사용되는 성서로, 대다수 미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하다. 달리 밝히지 않는 한 성서 본문은 이 역본에서 인용한다.
b) <개정표준성서> 토마스 넬슨과 그 아들들, 1946, 1952 및 1959년.
c) 성 요셉 <새가톨릭성서> 가톨릭 출판사, 1962.
d) <예루살렘 성서> 더블데이 출판사, 1966.
e) <마소라 원문에 따른 성서> 미국 유다인 출판협회, 1955.
f) 나는 특히 <앵커 성서>(더블데이 출판사)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이 번역본은 성서에 대한 가장 최근의 그리고 대단히 진지한 사유의 성과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외경(外經) 중 많은 부분은 <새가톨릭역본>에 실려 있는데, 나는 그 외에도 <제임스왕 성서>와 <개정표준성서>에 실린 외경을 사용했다. 또한 <새표준성서사전>(제3판, 펀크 앤 워그널스 출판사, 1936), <애빙던 성서해설>(애빙던 출판사, 1929) 및 <성서사전>(예수회의 존 L. 맥켄지 편, 브루스 출판사, 1965)을 참조했다. 이 외에도 백과사전, 사전, 역사서, 지리서 등 어떤 식으로든 작업에 유용하다는 판단이 서면 가능한 모든 문헌을 참고했다. 그 결과는, 그 결과는 당신이 책장을 넘기면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