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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7년 10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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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99쪽 | 492g | 136*196*30mm |
ISBN13 | 9788954603904 |
ISBN10 | 8954603904 |
2023년 09월 14일 ~ 2025년 03월 31일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1월 30일
뉴욕타임즈 21세기 최고의 책 100대 도서 『파친코』, 『채식주의자』 선정
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1월 08일
문학 PD가 보내는 백 번째 편지 : 100호 기념 기획전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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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독서모임의 토론도서에 파울로 코엘료의 '포르토벨로의 마녀'가 선정되었다. 기실, 나는 주변에서 와와 하며 너나 할 것 없이 입에 올리는 책은 당장 읽지 않는 편이라 코엘료의 그 유명하다는 '연금술사'도 아직 읽지 않은 상태였다. 이 작가의 책은 항상 주목을 받는 것 같아서 나중에 붐이 좀 가라앉거든 찬찬히 읽어보자, 읽고 내 생각을 온전히 정리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터였는데 이번 선정도서가 이렇게 정해진 바람에 예상보다 일찍 코엘료를 만날 수 밖에 없었다. 책을 어찌어찌 도서관에서 빌려오긴 했지만 마치 한 시간 당겨진 소개팅 자리에 나가는 것마냥 마음이 허둥거려 첫 책장을 넘기는 게 힘이 드는 바람에 모임 전날 밀린 내용을 한 번에 몰아 읽고 토론자리에 나갔더랬다.
우선, 책을 읽으면서 처음 눈에 띄었던 것은 한 화자의 일관된 서술이 아니라 여러 사람의 인터뷰를 모아놓은 형식이라는 것이었다. 주인공인 '아테나'에 대해 이야기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수정 없이 묶어놓은 형태인 이 소설은 그런 형식 덕분에 그녀의 진짜 모습을 쉬이 파악하기 어렵게 해놓았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 아이가 1000 피스짜리 직소 퍼즐을 맞추듯,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그녀의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는) 여러 가지 모습을 만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서술방식이 우리가 흔히 맞닥뜨릴 수 있는 '선입견의 한계'를 어느 정도 와해시켜줄 수 있어 좋았다고 생각한다. 소설 속에서의 그녀의 위치가 워낙 독보적인 만큼, 이 책이 한 화자만의 생각이 담긴 이야기였다면 자연스럽게 우리도 그와 같은, 혹은 그와 반대인 선입견을 갖기 쉬웠을 것 같은데 코엘료는 이 한계를 독특한 '인터뷰 형식'을 통해 가볍게 뛰어넘고 있다. 또한, 그러한 서술방식 덕분에 그녀가 가질 법한 신비감-손에 닿을 듯 말 듯한 그 느낌-을 나도 어느 정도나마 직접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것이 작가가 의도한 바이든 아니든.
책을 읽어나가면서 서술방식 다음으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테나라는 인물의 성격이었다. 사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토론자리에서 나는 이 책을 소독용 크레졸 희석액에 비유했는데, 이는 내가 아테나에게서 받은 인상이 그러했기 때문이다. 주변 상황이 어떻든 간에 자신의 성정을 잃지 않고 오히려 주변까지 자신처럼 물들여놓는 그녀가 꼭 소독액처럼 보였다. 그녀는 최고의 경지를 추구하는 수도자같기도 했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관철시키기 위한 운동가와도 같았으며, 동시에 누구나 자기 마음 속에 갖고 있을 법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을 그대로 구현한, 완벽성의 현현이기도 했다. 그녀는 여성성의 완성, 사랑의 전달, 그로 인한 자아의 완성을 그녀 생의 목표로 삼고 생의 순간순간을 충실히 걸었다. 스스로 충실히 살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살기를 스스럼없이 권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런 사람을 주변에서 찾아보기는 정말 힘들기에, 내가 만나고 또 책 안에서 읽은 사람들 중에는 아테나가 가장 소설적인-100% 픽션에 가까운-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녀의 진면목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앤드리아라고 생각한다. 비록 그녀는 책 속에서 아테나에 대한 험담만을 늘어놓고 있었지만, 정말 그렇게 느껴서 그랬다기 보다는, 자신이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 이미 다다른 아테나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위협을 느꼈다는 느낌이 드는 그런 험담이었다. 동시에 그녀 자신도 그런 (정신적, 사회적) 위치까지 도달하고 싶어한다는 욕망도 느낄 수 있었고. 나는 아테나가 추구했던 이상적인 공동체는 오히려 앤드리아가 더 잘 만들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테나는 너무 순수하다. 순수한 나머지 미처 자신을 따라오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컨트롤하기 어려워할 수도 있다. 아마 그녀 마음 속에서는 사람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어두운 감정들에 대한 생각이 있던 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이혼녀이기 때문에 영성체를 할 수 없음에 느꼈던 분노나 자신의 출생 때문에 언제나 느꼈던 불안정감은 항상 갖고있었을지언정, 질투, 특정 상대에 대한 열등감,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초조한 조바심같은 것을 느껴본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과 다른 사람을 비교하지 않는다. 그녀 마음 속에서의 비교대상은 그녀가 도달하고자 하는 어떤 최고의 경지일 뿐이었고 항상 그것을 바라보면서 한 발 한 발 내디딘다. 중간의 실패도 실패로 여겨지지 않을 만큼 그녀는 그 목표에 집중하고 있다. 사실 실패가 실패로 느껴질 때는, 자신에게 더 이상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때 혹은 남들과 비교해서 더 뒤쳐졌다고 생각될 때인 법인데, 그녀에게는 길고 긴 남은 생이 있고 자신이 갖고 있는 목표인 어머니적인 '사랑'을 구체화시킨 아들 비오렐이 있고 그 목표를 이루는 데 있어 남들과 어떤 성과를 비교할 필요도 없는 사람이다. 때문에 너무 깨끗하다. (사실 더러워질 필요가 없다.) 누구와 꼭 부대끼기 보다는 그냥 저 혼자 살아도 될 것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렇게 완벽한 나머지 마치 환영같기까지 한 사람을 앞에 내세워서 코엘료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걸까. 책의 제목에도 쓰인 '마녀', 실제로는 중세 시대의 앞서가는 여성 현자들이었다는 그 '마녀'라는 이미지를 아테나에게 덧씌워놓은 작가가 실은 책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도 아테나가 추구하는 것과 비슷한 것-내가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든가, 완벽성 등등-을 추구하라고 슬쩍 종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나도 어느 정도는 아테나가 가고 있는 길을 가고싶어하는 사람 중의 하나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 구석이 내내 불편했다. 책 속에서 그녀를 묘사하는 대목 중 '21세기를 사는 22세기의 여자'라는 대목이 있었는데, 사실 이렇게 묘사될 만큼 너무나 독보적으로 마이웨이를 걷는 사람에게는 그만한 배짱이 없으면 안되는 법인데, 나는 아직 그녀만큼 당당하게 한 보 한 보를 디딜 만한 배짱도 담력도 없기 때문이었다. 흉내는 낼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 신경 쓰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자유의지의 표상처럼은 난 살 수 없다. 가장 겁없어야 할 스물 여섯에, 나는 생쥐처럼 주변 바스락 소리에 움찔대며 산다.
다수가 가면서 자연스레 정해진 길을 벗어나 이유없이 다들 잘 가려하지 않았던 길목에 굳이 들어서는 사람에게 요즘 사람들은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 그 사람의 성공 여부에, 그 사람의 생각에, 그 사람의 성격에 각각 여유없이 빠듯하게 잣대를 들이대면서 '그것 봐, 혼자 튀는 짓 하더니 내 언젠가 저럴 줄 알았다니까.'라고 말할 수 있는 때를 고대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자유주의가 보편성을 획득한 이 시점에, 사람들은 이상스레 겁이 많아져서 자발적으로 '가던 길'만 가려고 한다. 그리고 '승산 있는' 일만 하고 싶어한다. 어떤 의미에서의 하향평준화다. 그 평준화의 잣대를 상관없는 사람들에게까지 들이대기 시작했다. 파시즘의 시작이다. 내 주변의 잠재적인 파쇼를 물리치고 어떻게 그녀같이 그 길을 걷는 성공을 손에 쥘 수 있을 것인가.
코엘료가 우리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든, 이건 어느 정도는 위험한 책이다.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만들고, 지금까지 믿고 살아왔던 '내 인생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바꾸길 은연중에 요구하기 때문이다. 아테나를 받아들일지 말지는 온전히 독자들이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것은 선택하고 말고를 떠나 달갑지 않아도 겪을 수 밖에 없는 일이다. 직시하고싶지 않았던 모습, 내 안의 판도라의 상자를 엿본 사람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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