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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2년 02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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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80쪽 | 442g | 크기확인중 |
ISBN13 | 9788932005850 |
ISBN10 | 8932005850 |
2024년 08월 21일 ~ 2024년 09월 30일
뉴욕타임즈 21세기 최고의 책 100대 도서 『파친코』, 『채식주의자』 선정
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0월 18일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0월 06일
문학 PD가 보내는 백 번째 편지 : 100호 기념 기획전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2024년 08월 02일 ~ 2024년 11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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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 선생의 타계 소식으로 인한 허망한 마음에 두문불출하다 <행복한 책읽기>에 대한 게으른 리뷰로 슬며시 세상 밖을 내다본다. 최근 들어 나의 책읽기는 오래 전 책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마음이 끄는 대로 다시 읽기 중이다. 이윤기 선생의 타계소식을 들었을 때 마침 읽고 있던 책이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였다. 거의 15년 만에 다시 꺼내 보는 책이다. 어찌 보면 이윤기 선생의 타계소식에 이렇게 마음 아파하며 일상의 일들에서 손을 놓게 만들어버린 이 끝없는 상실감에 빠지게 된 그 처음은 김현 선생이었다. <행복한 책읽기>를 통해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알았고 자연스레 번역가 이윤기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었었다. 에코뿐이더냐... 밀란 쿤데라, 토마스 만, 귄터 그라스, 소포클레스를 비롯한 고대 그리스 희비극들, ‘천일야화’와 ‘데카메론’까지 내 독서 영역을 넓히는 데 바로 이 책 한권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고 고백한다. 지금 내 책장에서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문지사 시집들과 한동안 빠지지 않고 사 모았던 무슨무슨 문학상 수상집들도 다 이 책 한권에서 비롯된 것들이다. 난해함으로 정평이 나 있는 작품들에 대한 도전의 용기 또한 이 책에서 얻었다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내 책읽기는 김현 선생의 신세를 많이 지고 있는 셈이다.
<행복한 책읽기>를 읽었을 때 이렇게 멋진 분을 유고작으로 처음 만났다는 사실에 너무나 아쉬워했었다. 훗날 알게 된 이야기지만, 김현의 빈소에서 문인들이 모여 “앞으로 백 년 동안 야만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며 김현 선생의 죽음을 두고 한 사람의 문인의 죽음이 아니라 한국 문단의 커다란 상실로 받아들였다 한다. 또 김현 선생의 제자인 시인 황지우는 김현 선생이 등단한 1962년부터 타계하신 1990년까지의 한국 문학은 김현 비평에 의해 축복받았다고 했다 한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의 김현 선생의 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을 보면서 가장 먼저 다가온 느낌 하나. 김현 선생과 동시대를 살며 글줄 깨나 쓴다는 혹은, 작가의 길로 막 접어들려는 신참들은 대단한 행운의 시대를 살지 않았나 싶다. 그의 절제된 칭찬에 창작 욕구는 마구 솟아났을 테고 그의 혹평은 날카롭고 아팠으리라. 하지만 작가라는 타이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열렬히 자신의 작품을 읽어주는 이가 있다는 것은 분명 행복이었으리라. 엄청나게 방대한 독서량이 눈에 띈다. 한 해 동안 쏟아져 나오는 거의 모든 저작물들을 챙겨 본 듯하다. 대가나 신참을 가리지 않고 그만이 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한 충고도 아끼지 않고 쏟아낸다. 몇 가지 옮겨보면...
황동규의 <악어를 조심하라고?>(문지,1986)도 활달하지만 직관의 깊이가 있다. 그 깊이를 성숙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명료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깊이라고 부르고 싶다. 성숙은 두터움이 더 강조되는 어휘이고, 명료성은 논리성 사상성이 더 강조되는 어휘이다. 직관의 깊이에는 그 모든 것이 다 어우러져 있다. 그의 그 깊이는 "계단을 기어 올라가 옥상 난간에 뜨거운 배를 대고"있는 악어의 시선의 깊이이다. 그 높이 있음이 별을 향한 초월적 바람의 의지가 아니라, 아래로 내려갈 수 없다는, 그러나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는 하강적 바람의 의지라는 데 그의 시의 특징이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높은 곳이 있다, 그러나 나는 내려가야 한다. 그것이 엘리트주의일까? (52쪽)
정호승의 <새벽 편지>(민음사,1987)는 애절하게 아름답다. 피 묻은 별의 그리움이라고 요약할 수 있는 그의 시는 절제된 슬픔 때문에 애절하다. 피 묻은 별의 그리움이란 자유를 향한 그리움에는 피가 묻게 마련이다는 정치적 상상력의 시적 치환이지만, 그 치환이 경직화되어 있지 아니한 것이 그의 시의 장점이다. 그러나 그 세계의 폭과 깊이는 좁고 얕다. (117쪽)
최하림의 <겨울 깊은 물소리>(열음사, 1988)를 공들여 읽었으나 깊은 감동을 받지는 못했다. 리듬하고 별 관계없어 보이는 전라도 사투리며, 라이 보리 같은 외래어도 눈에 설었다. 시, 말, 새, 바다 등의 어휘들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보면 그의 사유가 어디에 가 있나 짐작이 가지만, 그렇다고 좋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차라리 그의 산물 <말과 현실>이 더 절실하게 느껴졌다. 그는 결국 초기시의 세계로 되돌아왔는데, 초기시의 가난은 없어지고, 그렇다고 그 다음의 정열도 없어져, 기교만 남은 느낌이다. (131쪽)
최성각의 <잠자는 불>(민음사, 1988)은 읽힌다. 그러나 감동적이지는 않다. 울림이 옅어서, 재치도 재치 같지가 않고, 고통도 고통 같지가 않다. 그렇다고 마르셀 에메처럼 가볍게 날지도 못한다. 우화적이지도 않다. 그럼 뭣일까? 지루한 가벼움이랄까. 가난도, 사랑도, 데모도....다 둔하게, 지루하게 가볍다('잠자는 불' "앞으로 가는 고기"......'모르는 사람들') 악마 같은 고통이 더 필요하다.
김선학의 <현실과 언어의 그늘>(민음사, 1988)도 마찬가지다. 꼼꼼히 읽어보면, 별로 틀린 소리 같지 않은데, 지루하다. 모범 답안 같은 비평을 보는 지루함이다. (198쪽)
안도현의 <모닥불>(창비,1989)은 재미없다. 체험의 폭도 좁고(평교사의 지루한 체험), 사유의 깊이도 없다, 아니 없어 보인다. 통일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의식이 무의식을 완전히 억압하고 있다. 좋은 교사, 좋은 시민. 옳다고 알려진 것만을 사유하는 젊은 시인의 그 순응주의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의 재능이 이 정도였는가? (218쪽)
지금은 한국문학의 대가의 위치에 올라있는 김훈에 대한 글도 인상적이다. 한국일보 기자 시절의 김훈의 풋풋한 글에 대한 평이 절로 웃음 짓게 한다.
한국일보 사보(1987년 봄호)가 갑자기 내 손에 들어왔다. 웬일로 한국일보가 그것을 보내줬나 모르겠다. 천천히 읽어나가다가, 김훈의 '문학기행 유감'을 읽게 되었다. 그의 글은 기자의 글로서는 거의 파격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 드러냄 때문에 그의 글에 대한 찬반이다, 그의 남의 글에 대한 찬반은 매우 분명하고 확실하다. 그의 글을 보니까 아버지에 대한 그의 애정/증오가 그의 글쓰기의 밑바닥에 있음을 알겠다. 그는 깊게 사랑하거나 짙게 미워한다. .......그의 글은 거침이 없다. 생각나는 대로 쓰는 것 같으나, 그 생각난 대로 씌어진 것들은 훌륭하게 이음새 없이 붙어 있다. (96쪽)
김훈의 <내가 읽은 책과 세상>(푸른숲, 1989)은 김훈 특유의 화려한 수사의 모음이다. 그의 글은 이상하게도 일상적인 삶을 그가 묘사하고 있을 때에도 화려하다. 그 이유는 그가 "업과 더불어 짜증과 더불어 모자람과 더불어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는 데에 있다. 자기 삶의 체취가 진하게 배어 있는 글은 어떤 경우에도 수사쪽으로 기운다. 소박도 그때에는 하나의 수사이다. 그 수사가 남의 감정을 뒤흔든다. 그 수사에는 흔히 삶의 진수가 숨어 있다. "판소리의 바탕은 한국의 산하와 한국의 자연, 그리고 거기서 벌어진 삶의 내용 전체"(269)라든가 북을 만드는 데에는 "산전수전을 다 겪고 죽은 늙은 황소의 가죽이"(286)좋다. 라고 그가 쓸 때, 그의 수사는 수사 이상이다. 그의 책-세상 읽기는 사람 읽기에 다름 아니다. (266쪽)
자신의 글에 대한 자부심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김현의 비평을 통해서 시적 신분증을 얻었다 하는 송욱 선생의 글을 보면서 아마도 그 시대 문인들의 바람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되돌아가는 진로>(문예중앙, 1986년 겨울호)를 보니, 박태순이 내 글을 괴팍하다고 했다고 한다. 괴팍하다니.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썼을 뿐이며, 남들도 다 쓸 수 있는 글들을 쓰는 것을 삼갔을 따름이다. (57쪽)
책상을 뒤지다가 송욱 선생의 글을 한 편 발견했다. 아, 그런 글이 있었지. 학장을 그만둔 뒤 너무 쓸쓸해해서, 그의 시선집을 만들자고 말해, 거기에 해설을 썼는데, 책이 나온 뒤에, 중국 그림 전시회에서 복사판을 한 장 사다주면서 이 글을 주셨다. 과분한 사랑이었던 것 같다:
김현의 '말과 우주'를 읽고
사람의 몸은 거울이 없고 보면 제 눈으로는 제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되어 있다. 이는 아마 우리 존재가 실존적이라는 뜻을 드러내는 사실이리라. 그의 글을 일고 나는 대중탕에 걸려 있는 큰 거울을 생각한다. 내 온몸을 비추어주는 겅루을, 그러나 그의 글은 그러한 거울과 흡사하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매우 다른 측면이 더욱 중요한 아주 희귀한 거울이다. 이십대에서 사십대에 이르는 시인으로서의 내 전신상을 드러내주는 공간적일 뿐만 아니라 시간적인 거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내 시의 독자들에 있어서랴! 나는 그의 글에서 내 시적 신분증을 얻었다. 하물며 독자 여러분들에 있어서랴! 그의 이 글에서 내 시론인 시적 평전에 없는 방법을 보여준다. 하물며 내 시론의 독자들에 있어서랴! 우리는 그의 글을 읽고 비로소 시가 실존의 표현임을 깨닫게 된다. 시인은 제 눈으로는 자기 시의 온몸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는 아직 젊다. 그에게 장차 눈부신 변신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1987년 3월 16일, 송욱
마지막 몇 해의 일기에서는 죽음을 예감이라도 했던 것처럼 죽음에 대한 단상들이 눈에 띈다.
삶의 순간순간이 죽음과의 싸움인데 그것을 모르고 희희낙락 지낸다. 그러나 고통이 없다면 죽음의 실감도 없으리라. 많이 아프라, 죽음이 너를 무서워하도록. (232쪽)
어떻든 한 젊은 시인은 죽었고 우리는 살아남아 그를 이야기한다. 죽음만이 어떤 사람에 대해 아무런 말을 해도 괜찮게 만들어준다. 죽음은 모든 것을 허용한다. (231쪽)
젊고 재능 있는 시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던 김현은 그의 유고시집의 해설을 썼다. 바로 그 젊고 재능 있는 시인이 기형도다. 기형도의 누이를 만나 기형도의 살아생전의 이야기들과 가족 이야기를 전해 듣는 일화도 이 일기에서 소개하고 있다. 요절한 시인을 안타까워하더니 기형도가 세상을 떠난 그 다음해 김현도 48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다. 천재는 요절을 하는 건지, 요절이 천재를 만드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재능의 수혜를 오래도록 받고 싶어 하는 평범한 독자인 나에게는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29세의 기형도, 48세의 김현, 63세의 이윤기. 이들의 죽음이 안타까운 이유는 이들이 쏟아낼 미지의 글들을 손에 만져보지도 못하고 빼앗겨 버린 것 같은 애달픔이다. 그것들은 분명 눈부시게 아름다울 것이기 때문이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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