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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8년 09월 2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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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45쪽 | 412g | 140*205*30mm |
ISBN13 | 9788932019000 |
ISBN10 | 8932019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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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멀어서 얼룩으로만 드러나 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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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는 1970년에 태어나 대학은 영문과를 나왔고, 1993년에 등단해 지금까지 어느 작가보다 활발하게 필력을 쌓아 왔다. 그에 걸맞게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90년대 이후 너무나 많은 여성 작가들이 우리 문단을 장악(?)했던 점을 생각할 때 선이 굵은 남성 작가가 제 몫을 해주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겨진다.
나는 사실 김연수의 작품을 거의 읽지 않은 편이었다. 글을 쓰는 형식이 다른 탓도 있지만, 그가 쓴 글의 스타일이 나와는 맞지 않은 탓이 컸다. 시험공부를 위해 소설을 읽는 것은 아닌 만큼 억지로 독흥(讀興)이 일지 않는 작가의 작품에 매달릴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내 취향에 맞는 재미난 소설과 작가들이 많은데 굳이 책임감처럼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근래 갑자기 그가 쓴 장편 세 편을 모두 읽게 되었다. 느닷없이 시험을 보게 되어서가 아니라 내 필요 때문이었다. 이상(李箱)이라는 작가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그간 출간된 자료들을 살피다가 <꾿빠이, 이상>을 읽게 되었고, 마침 최근에 민생단 사건을 다룬 그의 소설 <밤은 노래한다>가 나와 또 읽게 되었다. 나 또한 간도 일대에서 있었던 우리의 독립운동이나 일본군의 작태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두 소설을 읽고 나는 김연수란 작가에 대해서는 아니지만, 그가 쓴 장편소설에 대한 몇 가지 단상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청탁을 받아 근래에 발표된 소설에 대한 얘기를 해 달라고 하기에 그가 떠올랐다. 처음에는 <밤은 노래한다>만 가지고 글을 쓰려고 했는데, 기왕 발표된 작품이 세 편인만큼, 또 두 편은 읽었으니 나머지 한 편마저도 읽고 내 생각을 밝혀야겠다고 판단하게 되었다. 그의 장편에 대해 얘기하면서 다른 작품을 읽지 않는다면 어쩐지 지도의 일부만 보고 목적지를 찾아가는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에 손에 잡은 책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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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세 편의 장편소설은 결국 ‘역사’를 소재로 하고 있다. 물론 역사라고 해서 광개토대왕 말 달리던 시절의 이야기는 아니고, 비교적 동시대에 가까운 시기의 일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1937년에 세상을 떠난 작가 이상의 주변을 떠도는 일들을 세 개의 에피소드로 모은 것이 있는가 하면, 1930년대 전반에 간도 일대에서 벌어진 끔찍한 내부의 유형 충돌이었던 사건을 다루기도 하고, 아주 최근 작가가 대학 시절에 겪었던 90년대 초반의 우리의 현실에서 취재한 작품도 있다. 2000년에 들어오면서 좋든 싫든 우리는 1000년대와는 결별을 하게 되었다. 고작 그 간극은 1초의 차이인데, 이전과 이후는 많은 것이 달라졌다. 그 조짐들이야 이미 세기말부터 드러났다고 해도, ‘1’과 ‘2’가 주는 숫자의 차이는 사람들의 의식을 엄청난 망각이거나 무모한 돌진이거나 차분한 천착이거나 또 다른 장벽 쌓기거나 새로운 변경(邊境)으로 몰아가는 것 같다. 이렇게 보면 그의 세 장편소설은 지난 세기에 대한 작가의 회고이거나 평가이거나 정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세 장편은 인물이나 사건은 전혀 별개라고 해도 작품이 가지는 성격에는 통일된 부분이 있다. 즉 모두 ‘후일담’이다. 이 후일담이라는 말이 마치 아직 공개되지 않은 일화를 소개하는 식의 깜짝쇼 같은 기분이 들어 개인적으로는 마뜩치 않다. 그러나 한 편으로 사건의 중심에서 거리를 두고 그 사건의 내면을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좋은 기법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소설은 과거의 일을 얘기하는 것이니까.
그러면 작가가 쓴 이 세 편의 후일담 소설은 과거의 일에 대해 우리들에게 무슨 계시를 들려주려는 것이었을까? 나는 작가가 우리가 정말 망각하고 지나가서는 안 될 우리의 일들에 대해 진지하게 대화를 하고자 했던 의도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만도 반감도 없다. 여기서 따지고 싶은 것은 그의 글 쓰는 방식에 대해, 그래서 결국은 ‘우리의 일’들에 대한 그의 보여주기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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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관심 때문에 세 편의 소설을 읽었으니 어쩌면 냉정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처음부터 가지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나라면 이렇게 했을텐데 라는 가정에 따른 오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의 작가의 장편에 대한 생각은 나만의 해답에 머물 수도 있다.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또는 화자)들은 하나같이 외부인들이다. 우연히 또는 어떤 의도 아래 소설의 핵심사건 속에 휘말려 들어 사건의 진행 과정을 경험하게 되고 이를 기록한다. 외부인이니 공정한 시선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그들이 너무나 외부인 티를 낸다는 것이다. 마치 외부인의 삶에 틈입해버린 핵심사건을 보는 듯하다. 그러므로 핵심사건은 소설에서 정당하게 대우받아야 할 중심적인 위치를 보장받지 못한다. 이상의 죽음과 그의 작품을 둘러싼 사실이 아닌 진실을 나는 <꾿빠이, 이상>에서 찾지 못했다. 또 90년대 초에 한국 땅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삶의 현장이나 그 의미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에서 발견하기 힘들었다. 민생단 사건을 겪으면서 억울하게 또는 허망하게 죽음으로 내몰렸던 또는 내몰았던 사람들의 고민과 고통을 <밤은 노래한다>는 별로 들려주고 있지 않다. 온통 그런 이야기들로 쓰여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하나같이 외부인들의 경험과 판단과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은 화도 났고, 상당히 실망했다.
이상이나 90년대 초반의 우리의 현실이나 민생단 사건의 내면은 이들 소설에서는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인테리어’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론을 지어도 아주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이 땅의 의식 있는 독자들의 관심을 끌어들이고, 나는 항상 시시콜콜한 주변 잡사 따위나 끌어들여 글발이나 세우는 작가가 아님을 보여주기 장치로 거창한 사건들과 인물들을 크리스마스트리의 금방울 은방울처럼 주렁주렁 매달아놓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책을 다 읽고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그 첫 장을 열 때의 설렘과 기대감은 깡그리 붕괴되고, 어설픈 구호나 적당한 인용이 혼재된, 그리고 또 다른 잡사들로 얽혀있는 작품 때문에 내동댕이처진 실망감이 셔츠에 묻어 지워지지 않은 커피 흔적처럼 남는다면 이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작품이 다루고 있는 사건의 비중이나 존재감 때문에 작품의 가치가 인정받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그냥 지워버려도 좋을 의미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시시콜콜 상세하게 묘사하고 하염없이 대화를 덧붙이면서도 정작 깊이 있고 심도 있게 다루어야 할 일들이 나오면 논설조나 사평(史評)을 쓰듯이 처리하고 있는 구성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작가의 독선과 월권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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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떠올랐던 단상은 장편소설은 무엇인가 하는 구태의연한 의문이었다. 단편을 열 개 모았다고 장편이 되지는 않는다.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흔들리지 않는 큰 틀이 있어야 장편이 아닐까? 특정한 이야기가 나오다가 갑자기 엉뚱한 이야기가 나오고, 크게 보면 연결 고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느슨한 데다 필연성도 갖고 있지 않은 듯이 보인다. 그러다 보니 결말도 요령부득으로 마감되어 버린다. <내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은 비슷한 소재를 다룬 소설 <살아남은 자의 슬픔>과 영화 <피아니스트>를 연상시켰고, 영화 ‘올드보이’의 어느 장면이 집요하게 드러난다. <밤은 노래한다>를 읽을 때는 두 편의 소설 <남부군>과 <무기여 잘 있거라>의 망령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불행하게도 이 두 편의 소설은 그런 소설들의 잔영만 남겨 놓았지 전혀 뛰어넘거나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지 못했다. 오랜 시간 소설의 소재를 탐색하고 다양한 자료를 검토하면서, 심지어 그 현장에 가서 긴 시간 사건의 숨결까지 느끼려고 애썼던 작가의 진지함을 소설은 전혀 보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더구나 사건에만 매몰된 나머지 사건의 흐름을 과장해 묘사했거나 안이하게 처리해 꼼꼼히 뜯어읽어보면 앞뒤가 안 맞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작가가 영문과 출신이어서 그럴까, 너무 번역 투의 냄새가 나는 문체 역시 눈에 많이 거슬렸다. 단 한 구절만 소개하자.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의 172쪽에 나오는 묘사다.
그렇게 말할 때면 양쪽 눈썹이 이마를 향해 일어서다가 이내 우울한 일직선을 그리며 다시 아래로 내려앉았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주 앉은 사람으로서는 눈썹 얘기를 꺼낸 것만으로도 대단한 상처를 건드린 듯한 죄책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이 글을 읽고 구체적인 영상이 떠오르는 독자가 있다면 대단한 상상력의 소유자라고 말하고 싶다. 이것이 제대로 된 우리글인지도 조금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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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답게 그의 작품에는 몇몇 사람들의 멋들어지면서 함축적이고 아주 짧은 ‘헌사’가 띠지에 적혀 있다. 솔직히 비평가라는 사람들이 이런 찬송가나 부를 줄 밖에 모른다니 심히 우울해진다. 한국 비평에 대해 큰 기대를 접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도대체 작가의 명성에 경도되거나 부차적인 잇속을 위해, 작품을 읽고는 썼다고 느껴지지 않는 글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김연수는 몇 십 년 뒤 또는 한 세기 뒤에 ‘한국문학전집’이 나온다면 당연히 수록될 작가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그는 우리 문학사에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 이 글을 읽고 “그러면 너는?”이라면서 삿대질을 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나는 이 글은 어차피 나의 독서평에 지나지 않는 글이라는 점을 들어 정중히 고개를 숙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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