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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 2009년 09월 0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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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게...'
비틀즈 전집이 너무 좋다는 주위의 성화가 빗발쳤지만 별로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새삼스럽게 웬 비틀즈? 그랬다. 옛날 비틀즈의 녹음을 담당했던 스탭들이 다시 애비로드에 모여 원본과 비교하면서 철저하게 리마스터링을 했고 그래서 음질이 아주 좋아졌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비틀즈라면 실로 오래 전에 충분히 들었고,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제법 모아 두었던 비틀즈의 음반들은 2000년경 LP를 모두 내칠 때 함께 사라졌는데, 그렇다고 지난 10년간 특별히 아쉬울 일도 없었다. 게다가 요즘 워낙 싸고 질 좋은 박스 세트에 광분하다보니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상당한 지출이 있었다. 비틀즈 전집은 가격적으로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고작 CD 14장 박스 세트일 뿐인데 30만원대라면 전집으로서의 좋은 점도 별로 없을 것 같았다. 세트와 함께 낱장 발매도 되었다니, 음질이 그렇게도 훌륭하다면 그냥 내가 좋아하는 음반들만 따로 몇 장 구입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 카잘시안 L씨가 찾아 왔다. 늘 그런 것처럼 음반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는 이미 그 전집을 갖고 있었다. 그가 직접 원본과 비교해서 들어 보았는데, 음질이 너무나 좋아서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고 나지막하게 이야기했다. 비틀즈를 새롭게 듣게 되었다고. 이야기는 비틀즈의 음악으로 옮겨 갔다. 그와 내가 철저하게 공감한 것은 아마도 이 세상에 비틀즈처럼 누구에게나 매력적으로 인정받는 아티스트는 없다는 사실. 사람들은 클래식이나 재즈 또는 팝이나 월드 뮤직처럼 다양한 장르 중에서 자신이 선택한 특정한 음악들을 듣고 다른 장르의 음악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비틀즈는 언제나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도 예외로 인정받아 왔다. 더구나 비틀즈의 팬들은 196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으로부터 형과 삼촌들의 시대를 자신의 시대로 착각하고 살아온 나와 같은 사람들을 거쳐, 지금의 10대까지 실로 시대와 연령을 초월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열심히 비틀즈의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니, 내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L씨가 자신도 중복되는 음반 때문에 망설였지만, 사고 나서는 정말로 만족한다는 말로 내 가슴에 비수를 깊이 꼽고 돌아갔다.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마침’ 나는 비틀즈 음반이 거의 없는 것이 아닌가. CD로는 화이트 앨범과 발췌 음반 한두 장뿐이고, LP로는 낡은 라이센스로 <러버 소울>이나 <애비로드> 정도가 있을 뿐이다. 갑자기 내 마음이 크게 동요하며 그 틈을 타고 잡생각들이 마구 떠오르기 시작한다. 만약 낱장 발매된 것을 한두 장 사서 들어 봤는데, 음질이 너무 좋으면 어떻게 하지? 게다가 음반계의 마당발 P에 의하면, 1차 수입분은 이미 매진되었고, 2차 수입분도 조금 더 지나면 구하기 어려울 거라고 하는데...
그래서 샀다. 그리고 오늘 받고서, 지금까지 연속해서 세 장을 듣다가 이 글을 쓰는 거다. 솔직히 감동했다. 무엇을 상상하건 그 이상일 것이라는 모 광고의 캐치프레이즈가 생각날 정도다. 보너스로 들어있는 DVD야 이런 전집류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개별 CD는 모두 Enhanced CD로 PC에서 음반에 관련된 정보를 볼 수 있게 했고, 함께 포함된 부클릿에도 상당히 신경을 쓴 것 같다. 비틀즈를 이렇게 좋은 음으로 들을 수 있다는 것에 한참을 감탄했고, 비틀즈의 음악이 담고 있는 깊이에 새삼 감동했다. 한편으로는 음반 제작사들에 대해서, 일반 CD로도 이렇게 좋은 음을 담을 수 있으면서 왜 그동안 그렇게 엉터리 음질의 CD들을 팔고 SACD니 뭐니 해서 사람들을 복잡하게 했는지 몹시 화도 났다. 요즘 CD들의 음질은 아주 좋은 것들이 많은데, 옛날 LP시대의 음반들도 이렇게 좋은 음으로 만들어서 다시 발매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디지털 신기술의 위업이라면 나는 앞으로 디지털을 찬미하리라.
우리는 왜 오디오에 탐닉하는가? 기왕이면 더 좋은 소리로 듣고, 더 큰 음악적 감동을 얻기 위해서다. 물론 이 답변은 교과서적인 것이다. 좋은 오디오 기기가 그 주인에게 바치는 기쁨은 단순히 소리 측면 말고도 많이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오늘, 비록 내가 교과서적인 것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교과서가 틀리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 리마스터링된 비틀즈 전집을 들은 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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