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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세 번째 이야기

박노자 | 한겨레출판 | 2009년 06월 22일 리뷰 총점8.6 정보 더 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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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6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323쪽 | 456g | 153*224*30mm
ISBN13 9788984313378
ISBN10 8984313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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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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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저자 소개 (1명)

저 : 박노자 (Vladimir Tikhonov, Park No-ja,블라디미르 티호노프, 朴露子, Владимир Тихонов)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까지 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태어났다.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영화 [춘향전]을 보고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 2001년 한국인으로 귀화하기 전까지 본명 '블라디미르 티호노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St. Petersburg)에서 태어났다.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영화 [춘향전]을 보고 받은 충격 때문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동방학부 한국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이후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서 고대 한국의 가야사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모스크바 국립대학교, 러시아 국립 인문대학교 강사를 거쳐 학생과 강사의 신분으로 한국에서 대학 생활을 보냈던 그는 '박노자'라는 이름으로 한국에 귀화한다.

박노자를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잘 아는 외국인', 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난 한국인'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귀화한 것은 스스로 한국사회에서 국적, 또 외국인과 내국인이라는 장벽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리트머스지가 될 것을 결심했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노르웨이 오슬로대학 한국학 부교수로 재직 중이다.

박노자는 한국 사회에 대한 변함없는 애정과 날카로운 논리로 지식인들은 물론 일반 독자들 사이에서 화제를 불러 일으킨 바 있다. 세계사를 보는 거시적인 혜안 속에서 치열하게 인문학적 성찰의 삶을 살아온 그는 『당신들의 대한민국』,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등의 저서를 통해 '토종' 한국인보다 진한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그는 한국을 잘 아는 외국인보다는 러시아를, 또 세계를 잘 아는 한국인에 가까운 그는 한국 사회를 그 주춧돌부터 다시 살펴본다. 누구나 당연하다고 믿고 살던 권위주의의 서까래며 집단이기주의의 기둥이 그 앞에서는 대번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폐품이 되고 만다. 이제까지 나왔던 많은 한국인 비평, 비판보다 서너 길은 더 깊은 통찰이 있고 무엇보다 저자가 한국에 대해 가지는 애정이 든든하다.

두 번째 책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다 : 박노자의 북유럽 탐험』는 북유럽식 사회주의를 실현하고 있는 노르웨이 사회의 이모 저모를 소개하고 있다. 상하의 질서와 복종을 강조하는 우리의 일반적인 문화와 달리, 다양성의 존중과 소박한 삶을 생활의 주요 철칙으로 여기고 있는 노르웨이 사람들의 평등한 인간 관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박노자는 북유럽 사회에 비추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을 되돌아보는데 그치지 않는다. 외견상 선진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이면에 존재하는 제3세계에 대한 차별, 인종주의와 극우 민족주의의 발호 등을 예리하게 포착해 내면서 평화로운 일상에 젖은 그들보다 모순과 부조리를 뛰어넘고자 하는 우리에게 오히려 더 큰 희망이 있음을 역설한다.

『하얀 가면의 제국 : 오리엔탈리즘, 서구 중심의 역사를 넘어』에서 보여주는 한국 사회는 '동양을 타자화하여 비화하는 서구중심주의적 인식'과 서양을 정형화·범주화하는 '서양/비서양'식의 이분법적 인식 속에 좀 더 원어에 가까운 영어 발음을 위해 아이의 혀에 가위를 들이대는 부모들이나 '영어공용화'가 식자층 사이에서 설득력 있게 논의되는 사회는 오리엔탈리즘이 지배하는 곳이다. 또한, 후세인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과 미국과 유럽을 아무런 비판 없이 모범으로 삼을만한 미래로 여기는 자세에 대해서도 '맹목적'이라 일갈한다. 그는 우리에게 묻는다. 그 시선은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리고 그 시선을 만들어낸 곳이 어디인지, 우리 안에 있는 서구제국주의의 시각을 돌아볼 것을 권한다. 근작으로 『길들이기와 편가르기를 넘어』,『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후퇴하는 민주주의』, 『씩씩한 남자 만들기』『리얼 진보』(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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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리뷰

박노자, 드디어 그의 총론을 드러내다!
김성광 (comma99@yes24.com) | 2009-09-16
박노자를 처음 접했던 2002년. 그는 새로웠다. 한국사회의 패거리 문화가 지닌 배타성, 위로부터 강요된 민족주의, 이른바 '진보'사이에서도 만연한 권위주의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장착된 전근대성을 드러내며 우리가 얼마나 부조리한지를 느끼게 했다. 때마침 유행하던 '우리 안의 파시즘' 담론과 맞물려, 2000년대 초반 우리 스스로를 본격적으로 진단하는 시각이 자리잡는데 나름의 기여를 했었다.

내부자이면서 외부자. 러시아 출신이면서 우리 말을 겁나게 잘했던, 한국인보다 더 한국인을 잘 안다다던 그의 견해는 신선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것들이, 우리가 그렇게 좇던 '선진국' 유럽의 기준으로는 얼마나 낯설고 비합리적인 것인지 드러났다. 이런 점에서는 홍세화가 수행했던 작업과 유사한 것이었다. 실제로 대학가에서 새내기가 들어왔을 때 건네는 책선물이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에서 「당신들의 대한민국」으로 교체되기도 하였다.

이후 박노자는 자신의 전공인 한국사 - 가장 눈에 띄는 작업은 식민지 시기 '사회진화론'에 대한 작업이었다. 대표적인 저서로 『우승과 열패의 역사』가 있다. - 에 매진하면서도 한국사회에 대한 발언을 계속해왔다. 하지만 우리의 폐부를 찌르는 그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그가 구상하고 있는 '전체적인 그림'을 알기는 힘들었다. 내가 게을러서 그의 글들을 일일이 찾아보지 않았기 때문이겠지만, 적어도 그의 단행본들 중에서는 명확히 확인할 수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는 자신의 '총론'을 드러낸다. 바로 이 책에서. 그리고 나는 그의 총론을 나름 요약해본다.

그는 자신의 총론을 위해 '사회주의', '혁명'이라는 단어와 '복지국가'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조금은 어색한 이 조합을 활용해 문장을 구성해보자면, '사회주의와 혁명을 긍정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복지국가'가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정도가 되겠다. 그리고 이 말은 이 책에서 "국가권력의 평화적 탈환을 꿈꾼다"라고 표현되기도 하는데, "앞으로의 우리 사회가 필연적으로 국가 주도적 발전을 할 것이기 때문"이란다.

신자유주의로 일자리를 잃는 이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좌절이 사회적 불만으로 조직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가의 철권통치가 강화되든지, 일자리를 창출하고 안정된 생활을 가능케하는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게 되든지 어느 쪽이든 국가의 역할이 커질 것이란 얘기다. 그리고 이 두가지 방향 중 국가가 어느 방향으로 가느냐는 국가운영의 주체에 달린 바,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다중(多衆)을 중시하는 자율주의적 분위기의 '신흥 좌파'들에게도 많은 걸 배우고 있지만, '국가권력의 평화적 탈환'을 꿈꾸는 '구식 좌파'로 남아 있다." 그렇다. 그는 국가를 '탈환'하고, 사회안전망이 강화된 '복지국가'를 향해 (왼쪽으로!) 핸들을 꺾고자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국가를 탈환하여,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누가 국가운영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가? 박노자는 '자유주의 세력'은 그런 막중한 임무를 책임질 수 없음을 명백히 한다. 여기서 자유주의 세력이란 '민주당'과 다수의 시민단체를 말할 수 있을 듯 하다. 한국사회에서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구도가 우파와 좌파, 진보와 보수의 구도인 것처럼 곧잘 여겨지지만, 박노자는 이 구도를 흔든다. 민주당의 강령을 세계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좌파는 커녕 다소 우익적인 자유주의로 분류하기 알맞고, 그만큼 한국의 정치지형은 우편향 되어있음을 말한다. 때문에 실제로 박노자는 민주당과 지난 정권을 '보수'로 규정한다. 그러니 그가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라는 구호를 선택한 것은 혁명적이라기보다는 최소한의 균형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유주의 세력이 복지국가 프로젝트를 책임질 수 없다는 판단은 '노무현 정권 '에 대한 실망을 근거로 한다. 국가보안법 등 각종 악법을 폐지하고, 관료제를 보다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삼성 등 각종 대자본을 적절히 견제하고,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 하는 등의 개혁 프로젝트들은 모두 좌초되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이를 한국사회의 '지배연합', '재벌의 지위' 등의 해체를 염두에 두지 않는 자유주의의 태생적 한계로 규정한다. "개인 노무현은 최다의 사람들에게 최대의 행복을 가져다주고 싶어하는 '착한사람'이었지만, 정치인 노무현은 그 수단으로 '시장'과 '경쟁'을 선택하는 최악의 오류를 범했다."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잘 요약하는데, '시장' 또는 '경쟁'을 버리지 못하는 자유주의자들은 '개혁'이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을 넓게 남겨두고 있다는 것이고, 결국 '복지국가'라는 중차대한 프로젝트를 맡기에는 태생적으로 무능하다는 것이다.

때문에 박노자는 새로운 세력에 눈을 돌린다. 자유주의의 왼쪽에 있는 세력들. 바로 좌파. 좌파에도 무수히 많은 갈래들쳀 있지만 '국가권력의 평화적 탈환'을 꿈꾸는 그는 진보정당에 관심을 주지 않을 수 없다. 정당은 국가운영 - 즉, 집권! - 을 염두에 두는 조직형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민들이 강부자 정권에 투표를 하는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에서 진보정당이 설 땅은 좁디 좁을 수 밖에 없는 오늘의 현실에서 미래에 대한 낙관론은 금물이다. 경기에 민감한(=생활이 안정적이지 않은) 자영업자들의 수가 많은터라 '분배'보다는 '성장'에 매력을 느끼기 쉽고, 토건적 경제성장 시스템으로 인해 서민들도 지역 경제에 콩고물을 떨어뜨려 줄 대형 건설사업을 물어올 능력이 있는 '가진자'에게 투표하기 때문이다. 또한 서구에서 자본주의의 가혹한 착취에 맞선 민중들이 저항으로 '복지'를 쟁취한 것과 달리, 압축성장한 한국에서는 '복지'라는 화두를 국가가 먼저 선점했다는 것도 이유로 거론된다. 한국인들은 스스로 권리를 쟁취한 경험이 거의 없는 '시민 아닌 시민'이라는 낯설지 않은 분석이 여기서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는 진보정당이 자리를 잡기에 너무 척박한 토양이다. 이같은 어려움 때문에, '국가운영'을 위해 진보정당을 얘기한 그가 역설적으로 "'진보 정당의 집권 계획' 이야기는 당분간 하지 않는 게 현실적일 듯 하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성패와 무관하게 의미있는 소수로 남는 것도 현재적으로 중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당장의 '탈환 가능성'은 없다는 말이다.

후퇴. 또 후퇴. 그는 끊임없는 미래로 과제를 넘긴다. 사회주의와 혁명에서 진보정당과 복지국가로. 그리고 진보정당과 복지국가라는 '현실적 과제'를 다시 미래의 일로.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진짜 시민사회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그가 본 한국의 시민사회는 저지와 반대는 잘 하지만, 명확한 프로젝트는 없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활동했던 시민운동가들은 모두 '한 운동' 했던 이들이지만, 정권교체가 되지 않았더라도 추진되었을 신자유주의 프로젝트를 열심히 처리했다. 다른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또한 정권에 합류하지 않은 민주화 운동세력-시민운동 세력은 반대와 저지 이상의 구호를 외치지 못했다. 박노자는 명확한 프로젝트 - 그의 경우에는 '복지국가' - 를 지니고, 굳이 시민운동이 정권과 관계맺을 것이 아니라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는 진보정당이 집권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을 시민사회에 요청하는 것 같다. 그는 온 나라를 총파업과 데모로 마비시킬 만큼의 '비폭력적 실력 행사'가 가능할 수준의 사회적 연대가 가능한 시민사회를 얘기하고 있다. 국가를 탈환한다는 것이 단순히 정권만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프로젝트를 교체한다는 의미라면 이 수순은 당연한 것이다. "한 나라의 국민은 그 국민의 자질에 맞는 사회체제와 정부를 가진다"는 말처럼, '복지국가' 프로젝트에 대한 대중적인 동의와 승인, 내면화가 없다면 국가 탈환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밑'으로부터의 투쟁을 '진짜 시민사회'라는 단어로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가 말하는 시민사회는 단순히 '시민단체'가 아닌 것이 된다. 국가 외부의 모든 영역을 말하는 것이며, 그 영역을 '복지국가'라는 큰 그림에 동의하는 시민들-민중들의 힘으로 가득차게 해보자는 말이다. 그래서 시민의 힘으로 국가의 움직임을 강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같은 구상이 단지 몇몇 단체의 역할로 가능할 리가 없다. 그는 지금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라는 큰 프로젝트에 (몇몇 단체가 아닌) 다수의 시민들이 동의했던 것처럼, '민주화 프로젝트' 이후 소실되었던 프로젝트를 '복지국가'라는 이름으로 부활시켜 보자는 것이다.

그의 총론은 이처럼 명확하고 매끄럽다. '복지국가'라는 선명한 방향성, 자유주의자가 아닌 좌파라는 추진주체, 진짜 시민사회의 형성이라는 방법론까지. 하지만 본인도 예상하다시피 좌파를 자임하면서 '혁명'을 기각했다는 것은 비판의 화살과 마주할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그는 혁명을 현실적인 방안으로 보지 않는 이유를 몇가지 제시하는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박노자가 혁명을 대하는 관점이다.

그는 혁명이란 - 그 의도와는 무관하게 - 목적을 위해서는 젖먹이라도 죽일 수 있는 상황이며, 혁명군이든 반혁명군이든 도살, 겁탈, 강간 등이 뒤따르게 되는 혼돈의 상황이라 규정한다. 때문에 가급적이면 혁명과 같은 상황이 오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해 민중의 삶을 지키고, 복지수준과 제 권리를 신장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같은 그의 입장은 혁명이라는 사태가 오지 못하도록 대중을 달래서 미연에 방지하자는 지배계급의 낡은 구상과는 다른 것이다. 그는 올바른 길을 위한 혁명이라는 것도 "민중들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러운!" 과정이기에, 그 길을 피하면서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면 가급적 피하자는 것이다. 때문에 '혁명을 피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가 실패했을 때 결국 혁명적인 사태가 도래하게 된다면 혁명을 부정해선 안된다고 말한다.(내겐 혁명의 편에 서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즉, 그에게 혁명이란 민중들을 가혹하게 눌렀을 때 발생하는 자연현상(끔직한 재난!)과도 같은 것이고, 가급적 사전에 문제를 해결하는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혁명을 꿈꾸는 이들에게 말한다. 당신들의 이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혁명이라는 과정이 너무나 끔찍한 과정이라고. 그리고 한 마디 더 덧붙이는데, 지금은 - 특히 서구나 대한민국에서는 - 혁명의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낮다고 말한다. 그는 이미 복지수준이 높은 서구민중들과 반주변부(대한민국을 포함)에서는 체제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동의를 얻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제국가('차르'체제)가 농민들을 가혹하게 눌렀던 러시아 혁명 시기에 비해 오늘날의 자본주의 중심부-반주변부에서는 혁명이 동의를 얻기가 힘들다는 것이다.(대중없는 혁명은 쿠데타다!) 때문에 이같은 상황에서는 혁명보다는 급진적 개혁이 현실적이며, 때문에 '복지국가'라는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라 그는 설명한다.

나는 지금 느낀다. 박노자를 처음 만났을 때, 그 새로웠던 기분. 그가 던진 생소한 질문들. 그 느낌을 나는 이 책을 읽고 다시 받았다. '좌파'란 '혁명을 꿈꾸는 자'라는 정의가 흔들리는 듯 하다. '복지국가'와 '좌파'란 사실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복지국가'라는 담론은 좌파와 우파의 어설픈 섞어찌개가 되기 쉽다. 하지만 솔직히 그의 총론은 충분히 합리적이며, 조금 솔깃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사실 나도 '혁명'이 두렵다. '목적을 위해서는 젖먹이라도 죽일 수 있는 상황이며, 혁명군이든 반혁명군이든 도살, 겁탈, 강간 등이 뒤따르는' 상황을 맞고 싶지도 않다. 아무래도 집회때 피켓을 드는 것과 혁명에 나서 총을 드는 것은 다르지 않은가. '가능하다면' 혁명이 오기 전에 문제를 '잘' 해결하는 것을 나도 바란다. 가능하다면!

그렇다. 과연 그것은 가능한가. 현재의 체제를 완전히 리셋하지 않고도 모든 이들의 행복한 삶은 가능한 것인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복지국가라는 이름으로 보장할 수 있는 공공성은 과연 어디까지인가?(만민평등이란 가능한가!) 오늘날 신자유주의 하에서 북유럽-그 유명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복지달인들! - 도 복지의 해체 압력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하에서의 복지국가란 비전이 있는 것인가? 세계경제가 - 서브프라임 사태만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 침체를 겪어왔고, 선진국과 후진국의 격차가 양극화되는 상황에서, 세계경제의 상위권 국가들이 복지국가를 운영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하위권 국가들을 착취한 댓가로 누릴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혁명 외에도 우리에게 훌륭한 수단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의 총론이 옳다면 좋겠지만. 나는 아직 그에게 묻고픈 너무나 많은 질문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혁명을 가급적 피하고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박노자의 총론에 너무나도 호감이 가지만 내겐 아직 그의 총론이 믿음직스럽진 못하다. 하지만 그래도 이 책은 명확한 프로젝트를 지니지 못한 우리 사회에 그는 중요한 고민거리를 훌륭하고 두텁게 던져준다. 그러니 우리 사회의 앞날에 대한 고민을 이 책에서부터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박노자라는 '활발한 사회참여형 지식인'은 이 책에서 비롯된 온갖 질문과 고민에 답변해 줄 기력도 시간도 충분히 예비하고 있을 것이니, 우리가 가슴에 품은 질문들에 어떤 애프터 서비스를 해 줄 것인지 앞으로의 저작들을 기다려 보는 즐거움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책 속으로

--- pp.31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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