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방학에 나는 더위를 피해 동네 도서관으로 종종 피서를 가곤 했다. 도서관 구석진 의자 위에 누군가 읽고 놓고 간 책이 있었다. 바로 이이화 역사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뒷간 이야기라는 책이었다. 뒷간? 순간 나는 아직도 시골 할머니 댁의 밭으로 나가는 쪽문 뒤에 있는 조그만 뒷간이 떠올랐다. 할머니께서 얘기해 주신 뒷간 도깨비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나는 그곳에 얼씬도 하지 않았지만 뒷간은 언제나 나에게 궁금한 곳이었다. 그래서 이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예전부터 나는 뒷간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뒷간 이야기를 해 달라고 졸랐다. 그럴 때면 언제나 할머니께 더러운 얘기를 좋아한다고 핀잔을 듣기 일쑤였다. 그래도 나는 뒷간에 살고 있다는 성질 나쁜 도깨비가 궁금해서 이야기를 계속 청할 수밖에 없었다. 큰 눈을 껌벅이며 웅크리고 있다가 볼 일을 보러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해서 온 몸에 더러운 똥을 뒤집어씌운다니 얼마나 우스운가. 하지만 내가 그런 일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몸이 움츠러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듯 뒷간은 똥과 도깨비가 살고 있는 더럽고 무서운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누구도 알려 주지 않았던 뒷간에 대한 나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책이 더운 여름 구석진 의자 위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읽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가지고 있던 뒷간에 대한 내 생각이 조금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중 하나는 바로 뒷간이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뒷간은 우리가 요즘 쓰고 있는 화장실의 옛날 말로 절에서는 해우소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양반들은 동사 또는 서각이라고 불렀고 측간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 고모할머니께서는 변소라고 부른다. 볼일을 보는 곳에 대한 이름이 이렇게 많은 것은 아마도 옛날이나 요즘이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할 것 엇이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 곳이라 불리는 이름도 많았나 보다.
그렇다면 뒷간은 왜 뒷간이라고 했을까? 뒷간은 뒤에 있는 방이라는 뜻이다. 뒤는 사람의 똥이나 엉덩이를 완곡하게 이르는 말이고 간은 장소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까 뒷간은 똥과 오줌을 누는 곳이라는 말인 것이다. 참 예쁜 이름인 것 같다. 현재 우리는 화장실이라고 부르는데, 뒷간이라는 이름이 더욱 멋있는 것 같다.
뒷간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많지 않다. 아마 옛날 사람들도 우리 할머니처럼 더러운 이야기는 하기가 싫었던 모양이다. 아무튼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뒷간의 기록은 신라시대의 것이다. 부춛돌이라는 2개의 돌을 갖다 놓고 그 위에 올라앉아 똥을 누웠다고 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길가에 2개의 돌이 나란히 놓여 있으면 우리나라 최초의 뒷간이 생각나서 웃음이 나오곤 했다.
그러면 더러운 똥은 어떻게 버렸을까? 옛날 사람들은 똥을 거름으로도 쓰고 약으로도 썼다. 똥에 재나 지푸라기 등을 섞어 발효시키면 농사지을 때 거름으로 쓰여 똥을 아주 귀하게 생각했다. 박지원이 쓴 예덕선생전이라는 책에는 1910년 수원에서 똥을 상에는 30전, 중에는 20전, 하에는 10전을 주고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똥을 상 중 하로 나눈다니 생각만으로도 웃음이 나왔다. 만약 지금도 그렇게 똥을 팔 수 있다면, 내 똥은 얼마에 팔 수 있을까?
똥은 볶거나 달여서 여기 저기 약으로 쓰였다고도 한다. 옛날 소리꾼은 연습을 많이 해서 목이 많이 상하면 똥물을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미친 사람들은 말린 돼지 똥을 푹 달여서 마셨다고 한다. 더러운 똥을 약으로 쓰다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만약 내가 아파서 똥을 먹어야만 한다면 나는 아마 아픈 것을 선택할지도 모른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을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라는 말이 생겼나 보다.
이 책을 읽으니 우리 선조들이 똥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도 그런 똥사랑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되었다. 똥을 이처럼 귀한 물건이라 여겨 옛날 사람들은 똥과 그런 똥을 누는 뒷간을 아주 소중히 여겼던 모양이다.
뒷간 도깨비 이야기는 사람들이 뒷간을 아무렇게나 사용하지 않게 하려고 어른들이 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뒷간에 들어가기 전에 도깨비가 화나지 않게 헛기침을 하거나, 아무데나 똥을 누지 않도록 하여 미끄러지지 않고 소중하게 뒷간을 쓰게 하려는 옛날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일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쩌면 진짜 뒷간 도깨비가 살고 있어 함부로 뒷간을 쓰는 사람들을 혼내 줄지도 모른다.
어쨌든 이 책은 뒷간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와 옛날 사람들의 생각이나 생활을 알게 되어서 매우 재미있었다. 더럽고 무섭게 생각했던 똥과 뒷간에 대한 나의 꽉 막힌 궁금증이 이이화 할아버지의 뒷간 책을 읽고 뒷간에서 볼일을 보고 난 것처럼 시원하게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