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비극
불멸의 위대성을 보여주는 비극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조부 리처드 셰익스피어는 농부였는데 스트랫포드 북방 4마일 지점에 있는 스니터필드 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훗날 빚에 쪼들려 죽게 되는 장남 헨리와 극작가의 부친이 되는 차남 존이었는데, 그는 농산물 판매 사업으로 부유한 경제적 기반을 스트랫포드에서 잡는데 성공하였기 때문에 이 고장의 행정까지도 깊이 간여한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는 1557년, 스트랫포드 근처 윌름코트의 지주인 로버트 아든(Robert Arden)의 막내딸 메리 아든과 결혼하였다. 그들 사이에서 여덟 자녀가 태어났는데 윌리엄은 셋째로서 장남이었다. 그가 1564년 4월 23일에 태어났다는 확실한 기록은 없다. 다만 4월 26일에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과 53세 되던 해인 1616년 4월 23일에 사망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그렇게 추정할 뿐이다. 그의 소년 시절에 관해서도 자세한 것을 알 수 없는데 다만 그래머 스쿨(Grammer Shool)에 다녔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고, 1580년까지 그 학교에서 수학했다고 상상할 수 있다. 왜냐하면 윌리엄이 13세 내지 14세 되는 해에 부친의 사업이 부진하여 1578년에는 그의 아내의 재산을 처분해야 할 처지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법원의 소송문제, 형 헨리와의 관계 등으로 가세가 기울었던 것이다.
윌리엄이 18세 되던 해인 1582년 1월 27일, 그는 여덟 살이나 연상인 앤 해더웨이(Anne Hathaway)와 결혼하여 후에 스잔나, 햄니트, 주디즈의 삼 남매를 얻게 된다. 그가 21세 되던 1585년서부터 1592년까지의 그의 행적은 알 길이 감감하다. 별 신통한 기록이 날아 있지 않아 여러 가지로 추측을 해보는데, 그 중에 가장 믿을 만한 것은 사슴 도난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스트랫포드를 떠나 런던에 잠적하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18세 되던 해인 1582년 결혼 직후 런던으로 나왔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1585년, 쌍생아를 낳았을 때 애들이 런던에 있었어야 했는데, 그런 기록은 없고 아내와 자녀들이 스트랫포드에 남아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추측이 나온 근거는 1601년까지 가족들이 스트랫포드에 남아 있었다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1592년에는 셰익스피어가 런던에 있었을 가능성은 확실하고, 그때 이미 극작가로서의 그의 존재가 런던 극계에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이즈음 그는 런던 무대에서 배우로서 활약하기로 했다.
1593년과 1594년, 런던의 극장은 질병의 유행 때문에 일시적으로 폐쇄되었는데 이때 그가 이탈리아 여행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할 수 있다. 1593년에 《비너스와 아도니스》가 셰익스피어 이름으로 출판된 최초의 작품집이 되었고, 그의 〈소네트〉의 대부분이 이 시기에 씌어졌다. 1596년 여름까지 그는 로드 체임버얼린 멘 이라는 극단에 가담해서 연기도 하고, 이 극단을 위해서 작품도 썼다. 그리하여 아들 햄니트가 죽은 1596년까지 시, 희곡, 사극, 비극 등의 작품을 썼다. 그가 32세 되던 이 해에 우리는 그의 이름으로 된 14개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는 경제적으로 윤택해지고, 연극계의 중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우댐프턴 백작을 위시한 거물급들과의 광범위한 사교 생활에 큰 몫을 차지하게 되었다. 1596년부터 1600년까지 그는 주로 시 작품을 많이 써서 희곡 작품에 있어서의 시의 기능을 탐구했고 언어와 극중인물과의 상관성을 심화시키는 극작술을 연마하게 된다. 1596년 8월 2일, 11세의 아들 햄니트가 스트랫포드에 매장된다. 그리하여 아더왕자의 죽음을 다룬 《존 왕(King John)》이 같은 해 말에 씌어진다. 아들의 죽음을 계기로 하여 그는 스트랫포드에 다녀간다. 그곳에서 옛 친구들과 가족들을 만나고 기울어진 가세를 바로 세운 다음 이후 14, 5년 간을 대부분 런던에서 생활하게 된다. 글로우브 극장이 1599년에 템즈 강변에 세워졌기 때문에 그는 그 근처에서 주로 생활했을 것이다.
1600년은 극작가로서의 셰익스피어에게는 중대한 전환기가 된다. 즉 경쾌한 희극의 세계가 자취를 감추고 무겁고 비통한 일련의 비극작품이 쏟아져 나오게 되는 것이다. 《줄리어스 시저》,《트로일러스와 크리시더》, 《끝이 좋아야 모든 것이 다 좋다.》, 《자에는 자로》, 《오델로》, 《아덴스의 타이몬》, 《리어 왕》, 《맥베드》,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햄릿》,《코리올레이너스》등의 작품인데 1608년에 이 같은 작품세계는 종막을 고한다. 이러한 비극세계가 형상화된 내적 원인에 대해서는 알 도리가 없다. 1601년의 에섹스 경의 처형, 같은 해 부친 존의 사망, 에섹스 경의 반란에 말려든 그의 후견인 사우댐프턴 백작의 종신형의 감옥생활 등 갖가지 일들이 셰익스피어의 정신세계에 큰 타격을 주어 깊은 실의와 절망감에 사로 잡혀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다만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1607년, 장녀 스잔나가 결혼하고 그의 유일한 손녀 엘리자베드가 태어나는 가정적 경사가 있었던 반면 런던에 질병이 유행하여 막내 동생 에드먼드를 27세의 나이로 잃게 되는 슬픔도 있었다. 또한 그의 모친 메리 아든이 1608년에 사망했다.
이 무렵에는 셰익스피어가 그 동안의 맹렬한 작품 활동과 역사적 사건의 중압과, 가정생활의 고뇌로 퍽 기진맥진 피로해 있었을 것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셰익스피어가 언제 런던을 떠나 스트랫포드로 갔는지 확실한 연대는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1605년부터 1609년까지 계속된 런던의 질병을 피하여 그는 스트랫포드로 갔을 것이 짐작된다. 1610년에는 적어도 고향 땅에 있었던 것이 분명한 것은 1610년부터 1614년까지 사이에 상당한 부동산을 스트랫포드에서 사들였기 때문이다. 물론 고향에 있으면서도 런던으로의 나들이는 자주 했었다. 1616년 1월 25일, 그는 유언장을 작성하여 3월 25일에 서명했다. 1616년 4월 23일, 그는 53세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셰익스피어의 초기 시절에 대해서도 우리는 아는 바 드물지만, 그의 후기 시절은 더욱 더 깊은 신비에 묻혀 있다. 그는 이 세상에다 그 자신의 뚜렷한 모습을 나타내진 않았지만, 작품 속에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라는 이름을 영원히 지워지지 않도록 새겨놨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세계
영국에서 최초로 희극 작품이 나온 것은 1550년이며, 최초의 비극 작품이 햇볕을 본 것은 1560년이었다. 셰익스피어가 1601년까지 이미 《헛소동》, 《십이야》, 《햄릿》등을 썼다고 볼 때, 16세기 후반에 있어서의 영국 희곡의 급격한 발전상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셰익스피어가 영국 극계에 데뷔하는 시기에 영국 희곡의 근대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1590년대에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서 활약을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이 시기에 나라의 보호를 받고 있었던 극단들―the Admiral、s and the StageChamberlain Company―이 마련되었고, 또한 여러 극장들이 개설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훌륭한 작가의 탁월한 작품과, 안정된 극단과 극장의 개관이 시기적으로 일치가 되어 영국 연극의 황금시절이 이루어진 것이다.
1590년대 초에 극단에 진출한 셰익스피어는 약 10년간 사극과 희극에 중점을 둔 창작생활을 해왔는데, 1600년(36세)을 경계로 하여 셰익스피어의 희곡세계는 일대 전환점을 마련하여, 어두운 인생의 뒤안길과, 인간의 고뇌, 절망, 죽음 등의 주제를 주로 다루는 비극시대로 돌입하게 된다. 사랑과 믿음에 근거한 인간의 행복, 기쁨, 사회적 유대감 등을 그는 희극세계 속에서 주로 다루었는데, 비극세계에 이르면, 햄릿의 대사처럼 '숭고한 이성, 능력, 모습, 거동의 무한한 가능성, 틀림이 없는 놀라운 행동력, 천사 같은 이해력, 신처럼 보였던' 인간이 '먼지 덩어리로 보이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낙천적 인생관이 염세적 인생관으로, 희망적 세계관이 절망적 세계관으로 바꾸어진 것이다. 존경하는 아버지를 잃은 햄릿은 사랑하는 모친의 도덕적 타락과 인간적 배신 앞에, 그리고 숙부의 배신, 어지러워진 나라 사정, 왕비의 죽음 등으로 깊은 절망감에 빠져 비통한 최후를 맞는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양가의 해묵은 불화 때문에 그들의 청순한 사랑의 죽음으로 끝난다. 이아고의 간계에 빠진 오델로 장군은 질투에 미쳐 선하고 착한 데스데모나를 살해한다. 딸들의 불효에 분노한 리어왕은 광야를 헤매고, 효심이 지극한 코딜리어는 그녀의 선량한 의지 때문에 가련한 죽음을 당한다. 맥베드 장군은 마녀들의 꾀임에 현혹되어 끔찍한 살인 행위를 범함으로써 스스로 치욕적인 죽음을 당한다. 거대한 악의 힘에 의하여 선한 의지와 행위가 무참히 파괴당하는 비극세계 앞에 우리는 어둡고 침울한 비통감을 느끼게 마련이다.
엘리자베드 조 비극의 한 형태로 그 당시 관객의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는 복수극이 있었다. 토머스 키드의 《스페인의 비극》(1589년 ?)은 그 대표적 예로서 《햄릿》이전에 〈원형 햄릿〉(1594년 공연)이라는 복수극으로서 존재했었는데, 지금 그 작품이 전해지진 않으나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을 소재로 하여 《햄릿》을 썼음이 분명하다. 셰익스피어가 어떤 원형을 소재로 해서, 그것을 관객의 취향에 맞춰 썼다고 해도, 문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단순히 복수극의 범주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의 높고 깊은 의식에 충격을 주고, 그것과 사상적 반응을 일으키게끔 해준 독창성에 있다. 셰익스피어가 복수극을 판에 박은 듯한 복수극의 형태로 저질화시키지 않았던 이유는 그의 높은 예술적 감각이 찬란한 언어와 성격창조의 상상력을 통하여 인간의 근원적 양상을 탐구했기 때문이며, 이 같은 집요한 인간 구명(究明)의 과정이 그의 작품 속에서 뚜렷하게 부각되어 있기 때문에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만인의 셰익스피어>로 우리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는 것이다. 햄릿이 망령으로부터 복수하라는 지상명령을 받고, 범인의 심정을 탐색하는 과정, 폴로니어스를 살해함으로써 오히려 복수하려는 입장이 복수를 당하는 위기와 반전의 과정, 오필리어와의 관계와, 로젠크랜츠와 길든스턴간의 관계 등을 통한 햄릿의 의식세계의 표현 등이 인간의지와 운명이라는 근원적 갈등을 구체화시키고, 이 같은 갈등의 소용돌이 속에서 햄릿의 인간상은 보다 더 깊이 심화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작품 《햄릿》에 있어서 가장 크게 논의되고 있는 문제는 어째서 햄릿은 복수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도 과감히 실천하지 못하고 종국적인 죽음의 파국을 맞이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선 그의 성격이 우유부단해서 못했다는 성격적 무능설, 인생을 지나치게 비관하고 있었기 때문에 행동이 불가능했다는 비관론 설, 개인적 복수보다는 혼란과 파탄 속에 빠져 있는 덴마크를 먼저 구해내야 되겠다는 구국사명설, 부왕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부왕의 명령을 따르고 싶지 않았다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설 등 갖가지 논의가 제기되고 있는데, 필자는 이 모든 이유가 종합된 복합적 원인 때문에 복수를 지연할 수밖에 없었다는 절충설을 믿고 싶다. 복수를 어떻게 했는가 하는 것만을 따지게 되면 키드류의 복수극과 큰 차가 없겠는데, 유의해야 되는 점은 복수행위를 실상 과제로 삼고 있으면서도, 수행해 내기가 힘든 한 인간의 정신이 더듬는 고뇌의 역정과 그 과제에 대한 정신적이며 육체적인 의식적 반응 등인 것이다. 《햄릿》을 읽으면서 마음속에 살아 있는 햄릿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은 바로 이런 각도에서 이 작품을 읽을 때인 것이다.
16세기말서부터 17세기초에 영국에서는 <가정비극>이라고 불리는 작품이 성행했다. 그동안 비극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왕후귀족이나 역사상의 인물들이었는데, 이 <가정비극>에서는 중산층의 인간을 주역으로 하고, 그 당시의 상황을 그 시점에서 수용하여 주로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었다. 토머스 헤이우드의 《순하기 때문에 살해된 여인》(1603년)이 그 대표작이라 볼 수 있다. 셰익스피어가 《햄릿》의 비극을 복수극의 패턴에 맞춰 써나갔다 할 때, 《오델로》는 복수극의 패턴을 답습하고 있지만 극 세계의 초점을 가정의 비극세계에 두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셰익스피어는 이 작품의 소재를 이탈리아인 지란디 친지오의 《백 개의 이야기》(1565년 ?)에서 얻어왔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오델로》를 단순히 가정비극을 다룬 작품으로만 읽지 않는다. 피부색이 검은 《오델로》가 백인 미녀이며 원로원 의원의 딸 데스데모나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이 자기 자신의 탁월한 존재 가치를 인정하게 되는 일이었다면, 그녀를 상실한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잃고 마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는 남달리 질투심이 강한 사람은 아니었다. 정열적이고, 용감하고, 고결한 정신의 소유자였다. 그토록 자신 만만하던 그가 보잘것없는 한 사람의 부하 이아고의 간계에 넘어가서 질투심에 빠져 고결한 성격의 인간이 짐승 같은 인간의 상태로 타락하는 운명의 비극 속에 이 작품의 문제성이 있다. 그러다 보다 큰 문제는 오델로의 파면, 그리고 데스데모나의 비극적 죽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악인 이아고의 인간성 문제다. 그는 엄청난 악의 근원이며, 초인적 파괴력의 원천이다. 어떻게 보면, 오델로가 질투심에 사로잡혀 데스데모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이하고의 초인적인 선동력에 자신을 잃고, 이아고의 꼭두각시가 되어 움직이고 있을 뿐이어서, 이아고라는 주범 밑에 있는 살인의 하수인과도 같다. 그러나 과연 이아고에게는 어떤 동기가 있었을까. 이아고의 성격이 부자연스럽게 보인다면, 그의 악행이 뚜렷한 동기가 없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더욱더 불가사의한 것은 이 작품이 극중의 실제 경과 시간과, 등장인물과 관객의 심리적 시간이 이중으로 된 시간구조를 갖고 있어서 처음에는 천천히 극이 전개되다가 제 3막 제 3장서부터는 굉장한 스피드로 플롯이 전개되어 관객은 오델로가 이아고에게 빠른 속도로 조종되는 것과 똑같은 느낌을 받으며 구속에 휘말려들기 때문에 이아고의 동기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아고에게 동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권력에 대한 욕망을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를 제거하려는 의지가 있었다. 또한 물욕이 남달리 강했다. 돈을 얻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인다. 권력욕과 물욕이 이아고의 병든 지력과 부도덕 정신에 상승작용을 일으켜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한다. 그는 자기 자신의 운명과 타인의 운명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악을 위한 악행에 헌신하는 인상도 짙다. 또한 오델로의 성격이 자기 자신을 미화시키고 이상화시키면서 있는 그대로의 상황과 자기 자신의 허점을 무시할 때, 이아고의 작용력은 더욱더 커질 수 있다. 손수건 사건이 이 점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한 장의 손수건을 증거로 하여 아내를 살해하는 직접적 동기로 삼는 그 어리석은 순진성은 이아고가 크게 역이용하고 있는 무기인 것이다. 《파우스트》에 나타나는 메피스토펠레스에는 두 면이 있다. 악의 이념의 부담자로서의 일면과 파우스트의 동반자로서의 현실적인 일면이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악의 이념이 어떤 것인가는 그와 파우스트와의 최초의 대화에서 명백해진다. 그는 자신을 항상 악을 바라면서도 끊임없이 선을 만드는 힘의 일부라고 규정한다. 그의 악이란 것은 <천상의 서곡>에서 주가 메피스토펠레스를 가리켜 "대수로운 자가 아니다"라고 엄명하듯이 궁극적으로 선에 대항하는 악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하다. 즉 파우스트가 잠시 메피스토펠레스와 타협하는 것은 그와 결합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메피스토펠레스를 사역해서 자기 완성에의 길을 더 한층 가열하게 추구하려는 욕망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따라서 파우스트는 갈팡질팡하면서도 끝내 노력하는 것을 단념하지 않는다. 이처럼 파우스트에 있어서는 악은 선에 대립하는 요소가 아니라 지고의 선에 이르는 한 방편이었다. 그러나 이아고의 경우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역할과 전혀 다른 악의 색조를 띠로 있다. 이아고는 악을 행하되 악을 철저히 악으로서 사랑한다. 선이 싫고, 선을 증오하기 때문에 악을 행한다. 이아고의 행위에는 복수라든가, 질투라든가, 혹은 야망 같은 것이 있어 행동상의 동기가 되어지는 면도 있지만, 그보다는 악의라든가, 자신의 악으로 인한 타인의 고통에서 느끼는 희열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도덕에 대한 생리적인 혐오와 타자에 대한 경멸감, 선에의 의식적인 반항, 악한 행동 자체에 대한 향락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이아고의 악을 낳고 있는 것이다. 오델로는 전적으로 이아고의 손아귀에서 희롱당하기만 한다. 이아고의 악이 오델로를 각성시켜 그를 향상시키는 채찍이 되지 못하고 무서운 폭군이 되어 그의 운명을 좌우하고 있다. 오델로는 햄릿, 리어왕, 맥베드 등의 경우와 같이 극한 상황에 도달한 인간의 비극이다. 그는 어두운 인간 고뇌의 심해에 도달한다. 위고는 "오델로는 뭣이냐. 그는 밤이다. 거대한 운명적 인간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고,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는 "이아고가 오델로 곁에 있는 것은 무너져 내리는 산 벼랑에 오델로가 서 있는 것과 같다."고 말 한 적이 있다. 이 두 비극적 인물들의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는 말이라고 여겨진다. 우리는 《오델로》를 읽고 선(善)이 산벼랑 아래로 무너져 내리는 비통감을 맛본다. 이 비통감은 정의가 끝내 실현되지 못한 깜깜한 밤과도 같은 것이다. 이아고를 마지막에 사로잡아 아무리 고문을 해도 선은 회복되지 않고, 정의는 돌아오지 않는, 인간세계의 밤인 것이다.
《리어왕》은 홀린셰드의 《연대기(Chronicles)》와, 1594년경에 씌어져서 1605년에 간행된 《리어왕의 진정한 사기(True Chronicle History of King Lear)》(작가불명)와 스펜서의 《선녀왕(Faerie Queene)》, 시드니의 《아카디아(Arcadia)》등지에서 그 소재를 얻어 온 작품이다. 선악의 영원한 테마를 토대로 하여, 인간의 여러 성격을 병적이며 심리적인 측면에서 규명하고, 인간성의 그로테스크한 비극을 《리어왕》만큼 예술적으로 교묘하게 그려나간 극작품은 드물다. 리어왕의 성격은 작품의 핵심을 이룰 뿐만 아니라 모든 사건이 어쩔 수 없이 분출되는 근원이 된다. 성격들이 형성되어, 사건이 전개되고, 그 사건 속에서 선과 악의 행동은 똑같이 파멸되고 만다. 코딜이어의 죽음과 리어왕의 광증, 글로스터의 육체적인 박해 등이 선의 낭비라고 생각한다면, 거너릴의 자살, 리건의 독살, 콘월의 살해, 에드먼드의 죽음 등은 악의 멸망이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셰익스피어는 궁극적인 승리를 선에게 주긴 했지만 악에 대항하기 위한 선한 여러 성격들의 의지는 너무나 허약했고, 그들의 행동은 맹목적이었다.
개인적 선에 가장 긴요한 미덕은 강력한 의지이다. 개인적인 도덕적 이상이 확고하지 못한 곳에 진정한 인격의 실현이 있을 수 없다. 리어왕의 일관된 성격인 박약한 의지와 맹목적인 아집은 선의 힘을 쇠퇴시킨 동시에 악의 유발을 촉진시켰고, 비극의 전주곡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처럼 선이 악에 의하여 압도당하고 큰 피해를 입는 것을 보고, 스윈버언은 리어왕을 해석하는 데 있어서 숙명적 운명론을 강조했고, 브래들리는 비관론적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리어왕》의 세계는 비극적 신음소리가 광풍에 섞여 들리는 어두운 밤이기는 하지만, 《오델로》의 경우와는 달리 찬란한 별이 빛나는 밤인 것이다. 우리는 이 작품 속에서 코딜리어, 켄트, 에드거, 바보광대 등의 별이 높이 솟아 반짝이는 것을 본다. 리어왕의 광증은 그가 모순된 현실을 깨닫고, 불완전한 자아를 확인했을 때, 그 모순과 불안전성을 탐색하려는 신비한 노력이었다. 리어왕과 코딜리어가 순수한 사랑만으로 결합되기 위해서 궁극의 힘은 온갖 희생을 강요한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선한 행위를 위하여 선 자체가 악으로 인하여 겪는 고뇌이며, 그 고니를 극복하여 환희에 이르려는 눈부신 고투였다. 이 같은 고투가 있을 때 비로소 선의식이 확고해진다.
궁극의 힘은 인간에게 시련을 부과하여, 숱한 싸움에서 선을 패하게도 할 수 있고, 숱하게 많은 선한 여러 성격을 죽일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의 힘이 존재하는 것은 선의 궁극적인 승리를 위해서다. 궁극의 힘은 인간에게 회의를 주고 고통을 주어 인간을 각성시킨다. 여자의 정절을 믿어야 하는가(《햄릿》·《오델로》), 정치의 도의적인 결백성은 있는 것이냐(《줄리어스 시이저》), 여자들간의 화합은 가능하냐 (《리어왕》, 《타이몬》)등의 허다한 의문을 궁극의 힘은 인간에게 갖도록 하여, 인간을 시련 속에 몰아넣는다. 따라서 비극 작품이 인간에게 주는 교훈은 고통을 부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코딜리어의 죽음은 이 궁극의 힘이 상징적으로 가장 강렬하게 표현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선과 악의 투쟁 속에서 희생되는 코딜리어의 죽음은 <세계의 해체와 붕괴>라는 이 작품의 주제를 가장 강렬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고통을 통해서 리어왕이 정화되고 그의 비극적 위대성이 회복되는>상대적 반응이 있었기 때문에 코딜리어의 죽음은 해체와 붕괴를 통한 생의 완성일 수 있었던 것이다.
《맥베드》도 홀린셰드의 《연대기》에서 그 소재를 구했다. 《맥베드》는 창작 연대로 볼 때 《리어왕》과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사이에 오게 된다. 셰익스피어는 이미 《로미오와 줄리엣》, 《줄리어스 시저》,《햄릿》,《오델로》, 그리고 《리어왕》등의 작품 공연으로써 극작가로서의 지위가 확고해지고, 극작술이 원숙기에 접어들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오델로》가 극 후반에서 관객들에게 숨쉴 틈을 주지 않은 것과는 대조적으로《맥베드》는 처음서부터 중반에 이르기까지 관객을 긴장시키면서, 맥베드의 흉중을 살피게 한다. 시작의 마녀 장면에서 마녀들이 지껄이는 주문과 맥베드의 대사를 통해서 우리는 환상과 현실의 이중적 상황을 알게 된다. 맥베드가 국왕 살해의 흉계를 품고 한걸음 한걸음 목적 달성을 향하여 다가서는 숨막히는 과정에서 긴장감이 고조되다가 드디어 살인이 행하여질 때까지 우리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전반부에 맥베드의 일거일동으로 집중되던 초점이 국왕 살해 후에는 여러 사건으로 확대되어 맥베드의 몰락으로 유도되는 플롯의 압축감과 긴밀성은 다른 비극 작품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탁월한 솜씨이다.
맥베드는 11세기 스코틀랜드에 실재했던 인물이었는데, 셰익스피어는 《연대기》와 사실, 전기 등을 자유롭게 도입하여 이 비극을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햄릿》과 《오델로》와는 달리 현실과의 관련성이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화약 음모사건(1605년)의 재판 때 이 사건에 가담한 신부 헨리 가네트가 사용한 언어의 양의성을 마녀 예언에 도입하여 맥베드를 혼돈시킨 사례라든가, 가네트의 처형이 1606년 5월인데 《맥베드》의 공연은 같은 해 후반에 있었고, 이 사건의 표적이었던 국왕 제임스 1세는 뱅코우의 후손이며 《악마론》의 저자이기도 하였다는 점등이다. 문제는 이 마녀의 정체가 무엇이냐 하는 점이 흥미롭다. 외부 세계의 인물인 고결한 맥베드에게 야심을 불어넣어 영혼을 지옥으로 타락시킨 건 악마냐, 아니면 맥베드 자신의 야망이 투영된 환상이냐 하는 점이다. 그러나 아무리 유혹을 한다 하더라도 맥베드 자신에게 그런 야심이 전혀 없었다면 살인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마녀를 만나지 않았다면 덩컨을 살해하려는 야망을 전혀 품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맥베드는 운명적으로 마녀들을 만났으니, 그 순간부터 마녀의 지배를 받게 된다.
덩컨 왕의 살해는 맥베드를 악의 길로 인도하여 그를 파멸시킨다. 살해 직전에도 주저하고, 살해 후에도 몹시 참회하며 겁에 떤다. 그러나 그는 다시 돌아 설 수 없고, 죄의 보상을 달리 받을 수도 없다. 일단 죄업의 길로 들어서다 보니 연속적으로 또 다른 죄를 저지르게 되는 함정에 빠진다. 이것도 죄를 의식적으로 저지르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파멸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어 본능에서인 것이다. 뱅코우에 대한 공포와 증오감이 그에게 살의를 품게 하는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폭력을 통해 획득한 왕관을 보유하기 위해 그는 계속 악행을 거듭하는 폭군이 되고 만 것이다.
그러나 흥미로운 것은 셰익스피어가 맥베드를 살인마로 성격을 창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주인공에 대한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키자는 능숙한 극작술인데, 맥베드에게 악행을 행하게 하면서도 그에게 인간적인 약점이나, 부드러운 인간성, 고결한 성품을 약간 부여하여 주인공에 대한 관객들의 혐오감을 억제시켜 극적 공감을 획득하도록 하는 수법인 것을 알 수 있다. 맥베드 부인은 과격한 악의 화신으로 성격을 창조하여 그와 대조시킨 의도도 이런 각도에서 생각해 보면 쉽사리 수긍이 된다. 그러나 종국에 가서 맥베드 부인이 정신착란을 일으켜 자살하는 장면은 셰익스피어가 악을 하나의 추상적인 개념으로 다루지 않고, 살아 있는 인간 속에 구상화시키려했던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마녀 장면으로서 어두운 인간악의 상황을 강조한다든가, 극적 아이러니를 사용함으로써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방법은 놀라운 수법이라 아니할 수 없다. 셰익스피어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맥베드》는 대조의 체계적 방법을 극에 도입하여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데, 이는 죽음과 생의 끊임없는 갈등을 주제로 삼고 있는 이 희곡을 성공시킨 요인이기도 한 것이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아아더 브로우크의 시 《로미어스와 줄리엣의 비극적 얘기(The Tragical History of Romeus and Julist)》(1561년)에서 그 소재를 얻어왔다. 서로 원수지간의 두 명문 집안 태생인 젊은 남녀가 무도회에서 서로 얼굴을 한번 맞대는 순간 숙명적인 사랑에 빠져, 신부의 도움으로 사랑이 완성되는 것도 일순간, 다시 이별하여 끝내 양가의 싸움에 휘말려 스스로 정사하고 마는 고전적 연애비극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젊은 사랑의 황홀감과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비통감을 아름답게 그려낸 걸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 하염없고 순수하고 성급한 것이었지만, 셰익스피어는 무도회에서의 상봉 장면, 발코니에서의 고백 장면, 하룻밤의 사랑, 그리고 이별 장면들을 감미롭고, 서정적이며, 갈등적인 언어로 그려나가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더욱더 빛내준 것은 이 두 주인공뿐만 아니라,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인물들의 성격 묘사와 언어행위이다. 줄리엣 유모의 산문적 요설과 로미오 친구 머큐쇼의 시적 요설의 대조. 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한 명랑한 음담패설. 신부의 성격. 작품 전체에 넘치는 활기. 눈부신 언어의 홍수. 이미저리의 다양한 구사. 이 모든 장점이 이 작품을 후기 작품에서 볼 수 있는 무겁고, 침울한 비극 작품과는 다른 특이한 또 하나의 비극 작품이 되게 했다. 연애와, 청춘과, 노래에 넘친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가 오로지 사랑만을 주제로 하여 쓴 비극 작품일 것이다. 남쪽 하늘의 봄의 향기, 나이팅게일의 구슬픈 울음소리, 장미꽃 같은 풍부한 열정 등을 이 작품에서 감득할 수 있는 것은 큰 기쁨이다.
해즐릿은 "사랑에 빠진 햄릿이 곧 로미오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로미오에게는 햄릿과 같은 열정과 감수성이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햄릿은 왕국의 운명과, 피비린내 나는 복수의 과업이 눈앞에 아른거려 언제나 침울했지만, 로미오는 줄리엣만이 전 우주요, 현실이요, 집이요, 우상이었던 것이다. 줄리엣이 없는 세계는 그에게 있어서 다만 흘러가는 허상이요, 공허한 꿈인 것이다. 그는 줄리엣 속에서 자기 자신을 상실한다. 사랑에 관한 이 이상의 황홀한 경지가 또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