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메리애나 가트너 : 악몽의 이미지
일찍이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는 “그림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메리애나 가트너는 자신의 그림에 대한 해석을 거부한다. 그녀는 전혀 평범하지 않은 인물들, 예를 들어 난쟁이 어릿광대, 고무처럼 늘어나는 피부를 가진 인간, 다리가 없는 인간, 표범 가족 등을 그림에 등장시킨다. 가트너의 초상화에서는 낯선 이방인이 오히려 특권을 누린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바뀌는 것이다. 섬뜩한 분위기를 풍기는 가트너의 초상화들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릴 수 있을까? 그림을 보는 것이 읽는 것에 비교될 수 있을까?
7. 필록세누스 : 반사의 이미지
모든 초상화는 어떤 점에서는 관찰자를 비추는 자화상이며 우리를 비추는 거울이자 또 다른 창조행위다. 고대 그리스의 화가 필록세누스는 알렉산더 대왕의 페르시아 정복전쟁 ‘이수스 전투’를 화폭에 담는다. 그림에는 조용히 죽어가는 페르시아 병사가 방패를 들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 병사는 자신의 마지막 모습이 ‘참형상’이라고 생각했을까? 그러나 그의 얼굴은 자신만의 모습이 아니라 세상의 탄생과 성장과 사멸을 반영한다. 창조주와 피조물, 초상화와 관찰자가 서로 분리되기도 하고 하나가 되기도 하는 역할의 혼동, 즉 여러 정체성이 한데 어우러지기도 하고 구별되기도 하는 현상 속에서 관찰자는 자신을 관찰하게 된다.
8. 파블로 피카소 : 폭력의 이미지
20세기 천재화가 피카소의 손을 거치면 하나의 초상화도 수없이 많은 초상화로 변한다. 피카소는 한마디로 역설적인 존재, 곧 정지된 듯 보이면서도 진보하는 예술가의 면모를 보여준 인물이다. 피카소가 그린 초상화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은 1937년에 그린 <통곡하는 여인>이다. 한 여인의 가슴 찢어지는 고통과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 표정에서 어떤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예술의 이름으로 남성의 잔인성을 정당화한 피카소가 <게르니카> 등을 통해 전쟁의 잔악성을 폭로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컬한 일이 아닐까?
9. 알레이자디뉴 : 전복의 이미지
18세기 식민지 브라질에는 포르투갈 본토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독자적인 건축양식이 개발되는데, 이때 빛을 발한 조각가가 ‘꼬마 절름발이’로 불린 알레이자디뉴였다. 흑인 여자 노예와 포르투갈 건축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콩고냐스 교회당에 그리스도의 고난을 묘사한 조각상을 완성함으로써 브라질의 바로크 예술은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그는 불구가 된 자신의 추한 몰골에서 학대받는 유색인종과 착취당하는 식민지 대륙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백인의 아들이라는 자신의 사회적 자아를 격렬히 거부했다. 그의 조각상들은 버림받은 인간의 존엄성을 표현하려는 시도였다.
10. 클로드-니콜라 르두 : 철학의 이미지
18세기 프랑스에 건축된 아르케스낭 왕립 제염소는 2백 년이 지나 공장 건물로서는 유일하게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올랐다. 르두는 왕립 제염소를 통해 인류의 고귀한 상항을 구현하고자 했으며 효율성과 건축미를 동시에 지닌 멋진 공장을 세상에 선보이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석조의 아름다움과 기학학적인 미를 살린 대칭구조를 통해 이상사회를 건설했지만 그의 이상사회는 탐욕과 질병, 시기와 정욕, 대립과 갈등에 젖어 살았던 동시대 사람들에게 이렇다 할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는 과연 인간의 본성을 의식했을까?
11. 피터 아이젠만 : 기억의 이미지
1999년 독일 의회는 베를린에 홀로코스트 기념관을 건립하는 데 미국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이 제출한 계획안을 채택한다. 아이젠만은 기념관 건립의 계기가 된 끔직한 사건이 아니라 기념관 자체에, 건축물에, ‘예술작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도서관이면서 동시에 기념비이기도 한 기념관은 홀로코스트를 더하지도 빼지도 않은 기억 자체로 인정함으로써 ‘언어와 언어의 패배’를 통해 영원한 악의 존재를 일깨워준다. 그러나 이론이나 개념을 전시하는 데 그침으로써, 관찰자에게 어떤 교훈도 제시하지 못한다. 아이젠만의 기념관은 관찰자를 배제하고 있으며, 바로 그 때문에 거의 무관심에 가까운 자유의 허상만을 허용하고 있다.
12. 카라바조 : 극장의 이미지
1607년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카라바조는 <일곱 가지 자비로운 행동>이라는 대작을 그린다. 하나의 화폭에 일곱 가지 자비로운 행동을 모두 담고 있는 이 그림은 극장 무대를 연상시킨다. 하나의 공간에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찬 가운데, 캔버스에는 마리아와 아기 예수가 천사 둘을 바라보면서 공중에 떠 있고 그 아래에는 분주하게 돌아가는 인간세상이 그려져 있다. 무대 전체는 강렬한 노란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카라바조는 관찰자에게 배우의 역할을 맡긴다.
1. 이야기와 이미지
그림도 이야기처럼 지식과 정보를 제공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고의 과정에는 반드시 이미지가 개입한다고 했다.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은 눈에 비치는 이미지를 통해 사물을 지각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림은 읽어낼 수 있는 것일까? 망구엘은 어렸을 때 본 고흐의 <생트마리 해변의 고기잡이 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는 만큼 보는 것이라고 말하는 망구엘은 고흐의 그림을 본 순간,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이 그 안에 반영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한다.
2. 조앤 미첼 : 부재의 이미지
1980년 조앤 미첼은 <두 대의 피아노>를 그린다. 제목이 주는 느낌과는 전혀 다르게 그림은 단지 색색의 획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그녀는 자신이 ‘추상표현주의’로 분류되는 것을 원치 않았지만 잭슨 폴록의 다음 세대에 속한 화가였다. 조앤 미첼은 침묵의 언어로 세계를 묘사하고자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밀스런 메시지를 전달한다. 허무에 관심이 많았지만 본질적으로 낭만주의자였던 조앤 미첼은 ‘행위를 의식하지 않고’ 그림 그리기를 원했다.
3. 로베르 캉팽 : 수수께끼의 이미지
<화열 가리개 앞의 동정녀와 아기 예수>를 그린 로베르 캉팽. 그는 전통적인 기독교 성화(聖畵)에 불만인 듯하다. 그는 현실을 모사할 수 있는 예술작품의 가능성을 십분 되살려 집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들을 종교적 상징으로 승화시켰다. 동정녀의 후광(後光)을 상징하는 화열 가리개, 삼위일체 하느님을 상징하는 세 개의 다리를 가진 의자, 장차 행해질 그리스도의 할례를 상징하는 팔각형 타일, 창 밖으로 드러나는 풍경 등등. 모든 요소를 수수께끼처럼 만든 이 그림에서 관찰자는 퍼즐을 풀어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4. 티나 모도티 : 증거의 이미지
세상의 모습을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 회화의 목적이라고 말한 1세기 중엽의 플리니우스 말은 맞는 것일까? 사진이 발명되면서 현실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묘사하게 되었지만 모든 사람이 사진을 신뢰했던 것은 아니다. 티나 모도티는 ‘접촉사진’ 기법을 개발할 정도로 훌륭한 사진작가였지만 예술의 문제에서 삶의 문제로 관심을 옮긴다. 그래서 모도티는 삽자루를 꼭 붙들고 있는 농부의 손, 농부의 아내와 가난한 어린아이들, 노동자들의 피켓과 정치집회의 장면을 소재로 삼은 작품을 내놓는다. 동정심을 유발하거나 도덕적인 입장을 강요하는 대신 확신과 열정이 담긴 메시지를 웅변적으로 전달한다.
5. 라비니아 폰타나 : 이해의 이미지
16세기 라비니아 폰타나는 당시 괴물처럼 생긴 토니나 가족의 초상화를 그린다. ‘자연이 오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간주된 이 가족은 창조의 질서를 벗어난 본보기, 악마의 성품을 닮게 된 인간의 야수적인 본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졌다. 라비니아 역시 당대에 보기 드문 여성화가였고 탁월한 예술적 재능 때문에 괴물로 비쳐지던 존재였으므로 아마 토니나의 얼굴에서 일종의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토니나의 초상화에서 인간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토니나의 모습은 과거에나 현재에나 앞으로 영원히 인간은 다중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시켜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