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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1년 03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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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24쪽 | 716g | 132*196*36mm |
ISBN13 | 9788956604992 |
ISBN10 | 8956604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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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결백하지 않다.
이른바 '엽기적 살인마'는 최근에서야 급부상한 키워드는 아니다. 실은 사람이 사람을 잔인한 수법으로 살해하는 일은 수백년전, 혹은 수천년전에도 있어왔다. 다만 그것들이 사람들의 관심과 호응(?)을 얻게 된데에는 괴물같은 파괴력을 지닌 '인터넷'이라는, '정보 교환'의 '수단'이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놀이터'의 등장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볼 수있다. 매일매일, 매순간, 매초.. 업데이트 되는 다양한 '소식'들이 당신의 모니터 화면에, 혹은 스마트폰 액정에 떠오른다. 그 '소식'들 중엔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스캔들이 아마도 압도적인 비율로 많을 것이다. 그 스캔들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문자화 되는 순간, 많은 이들의 오감을 자극하고, 소문을 만들어내고, 적절한 절차(조롱에 가까운 패러디)를 거쳐 소위 '신상털기'와 그것의 재빠르고 광범위한 '배급'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이것이 '스캔들'의 종착역이다. 누군가의 신상이 철저하게 털리고, 수많은 커뮤니티에 실어나르고,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된다면 그것으로 성공적인 마무리를 자축하고 그뒤에 따라붙은 '정정기사'나 '드러난 진실'에 대해서는 알은체하는 사람 조차 없다. 물론 뒤늦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자'로 압축되는 조금은 이성적인 반론이 제기되기는 하지만 그것에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각설하고,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면. 작가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의 맹점에 주목했다. 여기 '한 남자가 여자아이의 목을 비틀어 살해한 후, 호수에 던졌다' 라는 사실이 있다. 이 한 줄의 문장을 읽으면서 우리는 맨 처음 무슨 생각을 하게될까? 혹은 어떤 말을 내뱉게 될까? 적어도 "그 남자는 어쩌다가 그런 불행한 일과 맞닥뜨리게 되었을까?"는 아닐것이다. 또, '여자아이를 살해한 그 남자는 모두가 잠든 밤에 댐의 문을 열어 근처에 살고있는 주민 수십여명을 살해했다' 는 어떤가? 아마도 이 지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남자'라는 이를 정상인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미치광이 살인마'정도는 귀여운 수식어이고, 온갖 화려한 육두문자가 '그 남자'에게 쏟아질 것이다. 그뿐인가? '그 남자'의 아들, 아내, 가족들은 '살인마'의 가족이라는 멍에를 평생 지고 살아가야 할것이다.
우리는 언제나 어떤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면 '피해자'에게 감정을 이입한다.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우리 스스로 '살인자'가 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은, 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살인자'가 되는 것도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나 소설, 드라마에서는 늘 '피해자'의 입장이 우세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작가들은 '살인범'과 그들의 가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 '모방범'을 들수있다. '모방범'은 기존 추리소설의 방식을 뒤엎으며, 탄탄한 이야기 구성과 캐릭터에 대한 철저한 분석으로 독자에게 끊임없이 극적 긴장감과 재미를 안겨준다. 더불어 인간 존재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사물이나 사건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조금이나마 넓혀준다.
정유정 소설 <7년의 밤>의 경우도 플롯은 '모방범'과 흡사하다. '범인이 과연 누구인가?' 혹은 '범인은 어떻게 소녀를 죽였는가?'에 이야기의 방점이 찍히는 것이 아니고, '그는 왜 살인자가 되어야 했는가?' 혹은 '그는 왜 댐을 열어 주민들을 수장시킬 수 밖에 없었는가?'에 그 방점이 찍힌다. 이처럼 누군가의 삶에 현미경을 들이대는 일은 어쩌면 모든 예술가의 의무의자 권리일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사실들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그 사실들을 만들어냈느냐에 집중하는 일. 작가는 현재와 과거, 그리고 더 과거의 시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겉잡을 수 없이 파멸을 향해 치닫는 등장인물들을 치밀하게 묘사해낸다. 지루할사이없이 엄청난 속도로, 그러나 철저하게, 모든 진실들이 눈 앞에 펼처진다. 그리고 독자는 그 엄청난 진실들 사이에서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가끔씩 책을 덮게될지도 모르겠다. 이 엄청난 압박감에도 책에서 눈을 뗄 수 없는 이유는 단 하나다. '도대체 7년 전 그날 밤. 무엇이 그를 살인자로 만들었는가? 정말로 무슨일 일어났는가?'에 대한 궁금증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혹은, '현수'의 아들 '서원'처럼 혹시 모를 어떤 가능성. 사실은 '내 아버지가 그렇게 잔인한 살인마는 아닐 것이다.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라는 희망의 가닥을 잡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의 끝자락에서 결국 '어느 누구도 결백하지 않다'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될 뿐이다. 이 모든 진실을 그저 흘려보내지 못한 채, 아니면 그저 '이야기의 끝'을 보고자 중간에서 '이야기를 끝낼 수 없었던' 승환 조차도. 그리고, 이 소설을 쓴 작가, 이 소설을 단숨에 읽어내려간 나, 그리고 당신 조차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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