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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발행일 | 2002년 10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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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12쪽 | 456g | 152*224*30mm |
ISBN13 | 9788987480046 |
ISBN10 | 8987480046 |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1월 30일
2024년 11월 01일 ~ 2024년 11월 30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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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이 책을 샀을 때, 이 책을 바쁜 일이 모두 끝나고 나면 읽겠다고 다짐하고 책을 책장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 그리고 정말 바쁜 일이 끝난 후, 이 책을 다시 꺼내어 들었지만, 이 역시 다소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문드문 들어 중도에 읽기를 포기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터 벤야민의 자극, 그의 친구 숄렘의 자극 그리고 부버나 레비나스의 자극,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자극을 끝내 물리치지 못하고 이 책을 제대로 읽기로 작정했고, 다 읽고 말았다. 그러나 이런 자극과는 별도로 책을 읽는 중에 계속 “카발라를 다시 보는 의미는 무엇일까?”, “단순히 지적 전리품을 늘리기 위한 것에 불과한 걸까?”라는 회의가 드는 거였다. “우주를 신화적으로 재건하기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우리 내면에 있는 근원적인 합일을 재발견, 재확립하여 전체적인 인간, 새로운 아담이 되어야만 한다.”는 식의 구절은 카발라에 전체주의적인 혐의를 주려는 나의 거부감과 경향성을 추동하기도 했다. 게다가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인 세계에 대한 유희 같이 보였던 이 지식이 하나의 빛으로 빛나기 시작한 것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 이후였던 것 같다.
‘카발라 신비주의가 단순히 우주의 외면을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 내면의 우주를 통찰함으로써 각각의 소우주들의 우주를 바라보는 것이 바로 카발라 신비주의의 근본이라는 것. 결국 이 소우주들의 무한한 집합체가 바로 대우주이고, 이 소우주들의 지속적인 반영을 통해 대우주가 무한하게 확장될 수 있는 여지를 가졌다는 점에서 이것이 곧 엔-소프(무한자:En-sof, Ain-sof, Ayin-sopf)를 향한 상승과정(anabasis)이라는 사실.’
결국 카발라는 전체주의를 역설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순한 지적 유희로 전락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카발라는 나에게 자신을 들여다보고 통찰하는 전 과정이 이성과 의식을 넘어서고, 이를 통하여 진정한 자아를 발현시키는 것이 곧 무한이 현현되는 작업임을 깨우쳐 주었다. 뭐 새삼스러운 결론도 아니지만, 이러한 결론이 벤야민이나 레비나스 등의 사상가들과 체계적으로 연결되고 있으며, 이것이 타자를 향한 실천적인 윤리학이나 예술 작품에 대한 철학적 비평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카발라 사상의 현대성을 넘어 필자 개인에게는 현대와 타자를 새로운 시각을 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인간의 영혼의 작용이 신성의 작용의 반영”이라는 점은 필자로 하여금 기존의 레비나스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타자에 대한 나의 태도를 재설정하도록 요구하였으며, 이러한 신성이 반영된 예술작품의 비의(秘意)를 찾아내도록 자극하였다. 이는 결국 내 자신을 통찰하는 것이며, 나를 진정하게 현현시키는 것이며, 동시에 타자를 바라보고 그의 현현을 돕는 것이며, 동시에 대우주의 무한한 현현을 돕는 것이라는 사실로 이어진다. 결국 개인의 신비적 실천이 무한의 현현으로 이어지는 과정, 작은 움직임 하나가 엔-소프로 상승하는 여정임을 생각할 때, 우리는 무한한 신성에 동참하는 것이며, 구원으로 한 걸음 내 딛는 것이다. 엔-소프가 무한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구원의 걸음에 특별한 형식과 체계 그리고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궁극적으로 자신을 통찰하고 자신의 본성을 밝히고, 나아가 타자의 신성을 통찰하고 그의 신성을 밝히는 길이 무한자로 나아가는 여정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신성이 우리의 파편화된 삶 곳곳에 스며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에덴에서 추방된 이후 어쩌면 우리 삶 곳곳에는 이처럼 조각난 성스러운 파편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결국 카발라는 외부에 조각난 파편들, 우리 내부에 조각난 파편들을 찾아 정교하게 다듬고, 이를 의미화시키는 과정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내면의 파편을 찾아내고 밝히는 것이 자기 수련과 수양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이것이 정체성을 부단히 형성하는 과정이라고 하다면, 타자의 내면에 숨은 성스러운 파편에 귀기울이고 환대하는 것이 윤리적 관계로 접어드는 길이 될 것이다. 그리고 대상에 숨은 성스러운 파편을 고려하고 배려하는 것이 곧 미학-해석학-비평적 관계로 접어드는 것이 될 것이다.
아마 이 때문에 카발라는 더욱 조각난 상태로, 그래서 하나의 체계로 해석하기 어려운 파편 그대로 우리에게 제시되고 있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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