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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1년 07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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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05쪽 | 크기확인중 |
ISBN13 | 9788932008462 |
ISBN10 | 8932008469 |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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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0월 18일
문학 PD가 보내는 백 번째 편지 : 100호 기념 기획전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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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한 선생님은 내가 졸업한 대학에서 교편을 잡으시다가 지금은 숙명여대로 가신 분이다. 명성은 많이 들었지만 수업은 받아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 연수에 오셔서 강의를 하신다기에 그 분의 저서를 찾아 읽고 있다. 그 중에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과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을 읽었다. 두 소설은 연작소설이다. <허생전…>은 대학 다닐 때 읽었는데 다시 읽으니 새롭고, 날카로운 소설이었는데 그때는 그걸 몰랐구나하고 생각했다.
이 소설에는 윤수와 선재가 나온다. 윤수는 말을 더듬고 내성적이고 병약하다. 선재는 그런 윤수를 관찰하며 글을 곧잘 쓰고 일기를 매일 쓴다. ‘왜냐 선생’도 나오는데 국어교사이고 전교조 가입 문제로 관리자와 갈등을 겪다가 학교에서 쫓겨나는 인물이다.
왜냐 선생의 국어 시간에 「허생전」을 다루면서 아이들은 허생의 행동에 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놓는다. 그 중 윤수는 ‘아무도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서 허생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가버렸다’는 해석을 한다. 책에는 나오지 않는 해석이라 선재는 선뜻 인정하지 않으며, 윤수 자신의 처지를 허생에 비춰 드러낸 것이라 짐작한다.
7월 10일. 왜냐 선생은 전교조 가입 문제로 수업에 들어오지 못한다. 선생님의 행동에 대해 아이들이 언쟁을 벌인다. 윤수가 선재를 따로 불러내 이런 말을 한다.
윤수는 흥분해서 심하게 더듬거렸다. 걔의 말을 주워 모으면 이렇다. 왜냐 선생은 결국 쫓겨날 거다. 허생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 수밖에 없을 거다. 자기 편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너는 물론 왜냐 선생 편이지? 그렇다면 너는 왜 동철이와 싸우지 않느냐. 어서 돌아가서 동철이녀석의 주장을 꺾어라. 너처럼 글도 잘 쓰고 말도 술술 하는 애가 안 한다면 누가 하겠냐.
병약하고 여리게만 보였던 윤수는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왜냐 선생이 두 번째 허생전 시간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교단을 떠난 뒤 윤수가 행동한다.
그때 (담임)선생님이 날카롭게 말했다.
“박윤수는 어디 갔지?”
나는 소스라치며 살펴보았다. 윤수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어디가 아파 양호실에 갔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누군가가 말했다. 선생님, 저기 저게…….
창밖을 보았다. 땡볕이 쏟아지는 누우런 운동장 한가운데에 누가 홀로 주저앉아 있었다. 윤수였다. 무릎 앞에 무어라 적힌 종이가 세워져 있었다. 나는 온몸이 떨렸다. 그 종이에 적힌 말은 보이지 않아도 읽을 수 있었다. 아이들이 우르르 창가로 몰렸다.
자리에 앉아라. 앉아! 저, 저 녀석이 퇴학당하고 싶어서!
선생님이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일어섰다. 그리고 온몸의 움직임을 또렷이 느끼면서 복도를 지나, 운동장 가운데로 뛰기 시작했다. 윤수가 땅바닥에 누워 버리는 게 보였다. 내가 업으러 가는지 업히러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왜냐 선생의 「허생전」 수업은 계속되고 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소름이 돋았다. 윤수가 들고 잇던 종이는 아마도 왜냐 선생의 복직을 요구하는 내용일 것이다. ‘왜냐’라는 물음으로 학생들의 개성적이도 주체적인 생각을 끌어냈던 선생님, 뜻을 이루기 위해 행동했던 선생님을 위해 작고 연약한 아이가 시위를 한다. 놀라운 반전이었고, 윤수가 더 큰 일을 벌일까봐 걱정하는 선재와 마찬가지로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은 윤수가 시위 주동자로 찍혀 처벌을 받은 뒤 대입 시험이 다가오는 겨울의 이야기다. 윤수는 세상의 부조리에 눈을 뜬 것 같다. 전쟁하듯 경쟁하는 사회 에, 그것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못 견뎌 하는 사람들에 대해 윤수는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그는 학칙을 어겨서 또 벌을 받고, 촛불을 켜고 진지하게 진행하던 ‘기원의 밤’을 무산시켰다.
지금도 대입 시험을 향해, 물질적 안정을 위해 쉼 없이 달려가는, 마라톤 선수들 같은 우리에게 던진 윤수의 말 ‘모두 승리하면 누가 패배합니까? 자기 촛불을 꺼! 그러면 아무도 패배하지 않습니다.’은 무슨 의미일까. 도무지 사람 같지 않은 그 경쟁에서 빠져나오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도 사람의 진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말이다. 윤수는 말을 더듬는 사람으로 나오는 것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말을 잘하는 사람의 말이라도 기존 질서에 맞지 않고 자신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듣지 않는 세상에서 더듬는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 윤수는 ‘누가 누구의 마음을 알 수 있지?’라고 물었다. 각자의 이야기는 들어보지 않고 마음대로 마음을 짐작하고 정해버린다. 이것은 무한경쟁 사회의 문제이다. 그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르르 달려갔다가 수도 없이 패배자가 되어 쓰러지거나 헛된 승리에 취해 살아간다. 혹은 허생처럼 어디론가 떠난다. 왜냐 선생이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각자 자기 마음대로 걷고 있는 것처럼 여기지만, 실은 닦여진 길로 가고 있다. 우리는 때로 그 길이 어디로 향한 것인지 살펴보고, 필요하다면 새 길을 닦아야 한다.
윤수는 새 길을 닦고 있다. 선재는 그런 윤수를 관찰하면서 갈등한다. 안락함과 단단한 질서가 있는 길과 내 마음이 사는 길이지만 미치광이의 길 사이에서 말이다. 나는 머릿속으로 재고 재고 또 재는 선재를 닮았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내 진심이 무엇인지, 사회의 진심은 무엇인지 알아채지 못하는 멍청이는 되지 말자.
<허생전을 배우는 시간>과 <모두 아름다운 아이들>을 읽고 나니 내가 가르치는 학생 중에도 윤수 같은 이가 있겠구나 싶어서 아끼고 격려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윤수에게 그의 마음을 헤아리는 선생님이 한 분이라도 계셨다면 윤수가 그렇게 외롭고 화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애벌레들이 맹목적으로 하늘로 기어오르던 장면이 이 책의 내용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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