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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6년 07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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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33쪽 | 218g | 153*224*20mm |
ISBN13 | 9788976415806 |
ISBN10 | 8976415809 |
[대학생X취준생] 등교 전 상태 점검, 성적 췍 check-!
2024년 09월 30일 ~ 2024년 12월 20일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0월 10일
뉴욕타임즈 21세기 최고의 책 100대 도서 『파친코』, 『채식주의자』 선정
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0월 18일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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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매체는 분명 신비한 구석이 있다. 그것은 이미지와 사운드가 만들어내는 절묘한 리듬의 세계를 갖추면서도 일정한 내러티브(즉,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영화관에서 접하는 세계는 미술관에서 여러 장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이며, 하이엔드급의 음향시설로 좋은 음악들을 듣는 것이자 한 편의 소설을 접하는 경험과도 같다. 이러한 경험의 '다차원성'보다 놀라운 일은 의외의 사실에서 출현한다.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바와 같이, 영화는 배우의 연기가 빛을 발하면 연기를 제외한 모든 것이 엉망일지언정 범작 이하라고 말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있다. 이는 단지 연기에서만이 아니라 영화의 OST, 시나리오 등의 탁월함을 통해서도 발견되는 놀라운 점이다. 아마도 바로 이러한 점, 모든 것이 완벽하진 않지만 영화의 특정 요소가 지닌 과잉과 과소의 절묘한 배합을 통해서 출현하는 영화적 에너지가 영화라는 매체를 우리로 하여금 '예술'로 인식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헌데 이런 경험은 책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닌 듯하다. 사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 제 아무리 재미있고 훌륭한 책이라도 지루하고 따분한 구석을 간직하고 있기 마련이며, '대문호'라고 일컬어지는 작가들의 글이 모두 일정 수준 이상의 지적 쾌감을 안겨주는 것은 아니다. 한 권의 책이 지닌 이러한 태생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책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선사해주는 모종의 즐거움이 아닌, 특정한 한 부분 때문에 책이 개인적인 명작의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예컨대, 독일어로 쓰여진 가장 훌륭한 시(詩)를 썼던 사람 중 한 명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의 편지에서 발견되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통해 그 점은 분명해지는 듯하다.
"당신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 당신의 삶의 샘물이 솟아나는 그 깊은 곳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 원천에 도달하여 당신은 당신이 꼭 창작을 해야 하는지의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더 이상 그것을 캐묻지 말고 거기서 들려오는대로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아마도 당신이 예술가의 운명을 타고났다는 답이 나오겠지요. 그러면 그 운명을 받아들여, 그것을 짊어지십시오. 그 운명의 짐과 그 위대함을 말입니다. 그리고 혹시 바깥세계로부터 무슨 보상이 올까 하는 물음은 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창조자는 자체가 하나의 세계가 되어야 하며 모든 것을 자신의 내면에서 그리고 자신과 한 몸이 된 자연에서 구해야 하니까요."(17쪽)
우리는 이 글 속에서 소위 예술가, 혹은 작가라 불리는 사람들이 처한 운명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창조의 원동력은 무엇인지를 어렵지 않게 알게 된다. 진정한 시인이 되고자 하는 이는, 아니 자신의 영역을 가리지 않고 진정한 창조를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들은 아마도 이런 마음가짐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왜냐하면 창조의 댓가로서 부여되는 부와 명예, 지위 등은 일정한 창조가 인간 삶에 부여한 가치에 비해서 너무도 왜소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특정한 의미 부여로 한계지워질 수 없는, 규정될 수 없는 영원한 생성적 에너지를 발산하면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구절을 품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 책은 이미 자족적인 의미의 성(城)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추신: 만약 앞으로 릴케의 책을 볼 계획이 있다면 역자인 김재혁 교수를 주목해주세요. 그는 박사학위 주제로 릴케의 문학세계를 조명한 국내의 릴케 전문가 중 한 명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가 지금까지 살펴본 바로는, 릴케의 글을 잘 번역하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해 그 만큼이나 훌륭한 해설과 번역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저 역시 이 책 외에 릴케의 유일한 장편소설인 <말테의 수기>도 김재혁 교수가 번역한 펭귄 클래식판을 구입한 상태이고, 번역에 흡족해하면서 읽고 있는 중입니다.
추신2: 이 책의 저자는 릴케로 표기되어 있지만 사실은 이 편지모음집을 출판한 이는 릴케가 정성껏 편지를 했던 '젊은 시인 지망생'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였습니다. 그는 이후에 시인이 되지 못했고 소설가로서도 그리 명성을 얻진 못했지만 이렇게 훌륭한 글을 출판한 기획자로서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이런 종류의 훌륭한 책으로는 독일의 대문호인 괴테와 10년 동안 만나면서 대화한 내용을 특유의 세밀한 필치로 기록하고 있는 요한 페터 에커만의 <괴테와의 대화>(장희창 역, 민음사, 2008)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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