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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3년 12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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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58쪽 | 415g | 140*210*30mm |
ISBN13 | 9788960177840 |
ISBN10 | 89601778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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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시절에 난 '추리소설'에 푹 빠졌더랬다. 어릴 적부터 기괴하고 신비스런 '오컬트 문화'에 심취해 있던 참에 '살인사건'을 추리해나가는 명탐정들의 활약에 금세 매료되고 말았다. 그 덕분에 코난 도일과 애거사 크리스티, 그리고 모리스 르 블랑의 작품들을 읽고 또 읽었던 추억이 있다. 물론 그밖의 여러 탐정소설도 읽긴 읽었지만, 줄곧 위 세 사람의 작품만 줄기차게 읽었더랬다. 아무래도 나의 취향이었나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코난 도일은 너무나도 유명한 '셜록 홈즈'가 등장해서 좋았고, 모리스 르 블랑은 <813의 비밀>, <기암성>에서 '이지톨'이라는 소년탐정이 등장해서 정말 좋아했지만, 유독 애거사 크리스티의 책에서는 '탐정'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어른이 된 지금은 '에르퀼 푸아로'라는 명탐정을 인식하고 있지만, 어릴 적에는 유독 애거사의 탐정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살인사건, 그 잡채'에 신선함을 느꼈던 모양이다. 왜 그랬을까? 하긴, 르 블랑의 '뤼팽 시리즈'에서도 난 뤼팽보다 소년탐정 이지톨이 더 좋았으니,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유독 '왜 그랬을까?'라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다. 하긴 '미스 마플'도 잘 기억나지 않긴 마찬가지다. 그저 '사건, 그 잡채'만이 선명할 뿐이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알파벳 순서'대로 살인사건이 진행된다는 신선한 충격에 좀처럼 헤어나질 못하고, 사건이 미궁에 빠져 '끝까지(Z까지)' 이어지길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어릴 적의 나는 '나의 기대'를 무참히(?) 무너뜨려버린 푸아로에 대해서 '반감'마저 들었던 모양이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참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어릴 적부터 남들과는 다른 '기발한 착상'을 했었다는 소박하나마 뿌듯함으로 풀이해보고자 한다.
암튼, 책의 줄거리는 '살인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탐정인 '푸아로'와 동료인 '헤이스팅스'의 대화로 시작한다. 이것은 살인사건의 대한 '포석'이자, 이야기를 '전개'시키기 위한 준비과정이라고 볼 수 있지만, '홈즈와 왓슨'의 대화로 시작하는 코난 도일과의 유사성이 엿보인다. 하긴 두 작가 모두 '영국작가'이니 그런 듯도 싶지만, 대부분의 '추리소설'은 이런 전통(?)을 따르곤 한다. 왜냐하면 이런 스타일로 소설의 시작을 장식하면 뒤이어 벌어질 '사건개요'를 잘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명탐정'이라는 점을 새삼 부각시킬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는 '명탐정'에게 동료나 조수가 항상 같이 붙어있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아무래도 '자화자찬'보다는 '곁에서 띄워주는 사람'이 있어야 객관적인 신빙성이 높아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아울러, 명탐정을 돋보이게 하는 효과는 또 있다. 그것은 '추리소설'속의 경찰이 언제나 '무능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수사'나 '증거수집', 그리고 '범인검거' 등 공권력의 권한은 자신들에게 있으면서도 언제나 '명탐정과 동료'보다 뒤쳐지거나, 엉뚱한 수사나 범인을 잡아들이고, 뻔히 보이는 단서조차 허술하게 놓쳐버리고서 모든 공을 '명탐정'이 차지하는 수법을 곧잘 쓰곤 한다. 정말 뻔한 수법이지만, 추리소설을 읽는 맛, 또한 이것 뿐일 것이다. 안 그런가?
그럼 <ABC 살인사건>의 매력을 진단해보자. 으레 추리소설을 읽다보면 '범인찾기'에 푹 빠져들곤 한다. 그래서 '등장인물'이 하나둘 나올 때마다 '의심'의 눈초리로 사소한 단서 하나라도 놓칠세라 유심히 '관찰'하며 탐독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재빠르게 '단정'짓곤 한다. "범인은 바로 너야!"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소설속 명탐정처럼 조목조목 근거를 대지는 못하고 대개 '찍는 수준'에서 그치고 만다. 하지만 추리소설을 제대로 맛보려면 섣불리 찍지 말고, 범인일 수밖에 없는 근거(이유)를 찾아보는 것이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범인찾기'에 꼭 필요한 단서가 차근차근 들어난다는 점이다. 애초에 '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 푸아로는 범인이 누구인지, 왜 범행을 일으키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명색이 '명탐정'이라면서도 날카로운 예지력으로 '살인사건'을 막지도 못하면서 그저 '범인이 직접 보내는 편지'만을 기다리며 계속 일어나는 '연쇄살인사건'을 그저 방조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이는 분명한 까닭이 있다. 바로 '단서'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애초에 '모든 단서'를 주어지고 난 뒤에 추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조각난 단서'를 하나씩 모아 완성하듯 찔끔 질끔 단서를 던져주고 있다. 그래서 명탐정으로 소문난 푸아로조차 사건해결은커녕 '범인'이 누군지도 지목하지 못하고, '살인사건'을 막지도 못한다. 조금씩 드러나는 단서가 '살인사건, 그 자체'인 까닭이다.
그렇게 살인사건은 A로 시작해서, B를 지나, C도 지나, D까지 벌어지고 만다. 하지만 C까지 이어져오던 범인의 '완벽한 살인사건'이 D에 이르러서는 왠지 모르게 어설프고, 성급하기도 했으며, '결정적 실수'를 하고 만다. 추리소설 마니아쯤 되면 바로 이 '결정적 실수' 때문에 범인이 누군지 확신하게 되고 명탐정보다 더 빨리 '범인검거'를 위한 증거수집을 끝마쳤을 것이다. 왜냐면 '범죄를 저지르는 까닭'이 몇 가지 없기 때문이다. 첫째는 원한이나 복수 때문이고, 둘째는 사랑과 질투, 배신 같은 감정 때문이며, 셋째는 금전적 이득 때문에 범죄를 저지른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추리소설>을 읽을 때면, 누가 누구에게 원한을 품었거나, 누가 누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그리고 범죄가 일어난 뒤에 누가 '이득'을 챙겼는지 꼼꼼히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그러면 당신도 명탐정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범인이 밝혀지고 나면, 왜 범죄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지, 또는 왜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었는지 '뒷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토리를 즐기면 된다. 그리고 이 스토리가 감동적이거나,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짜릿하거나, 뒷통수를 후려맞은 것처럼 반전이 드러나면 '명작추리소설'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다. 그 가운데 크리스티의 작품은 대개 '반전'을 주는 쪽이었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범인이었거나, 기발한 범행수법, 그리고 기막한 반전 따위가 '추리소설의 매력'인데, <ABC 살인사건>은 이 세 가지 매력조건이 적절히 믹싱되어 '감칠맛'이 최고인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
애거사 크리스티가 1920년부터 70년까지 활발히 작품을 써왔으니 '100주년 기념'을 맞아 다시금 조명을 받을 것이 분명하다. 올해 <나일강의 죽음>이 영화화되었으니 벌써 기념은 시작된 셈이다. 나도 새삼스레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을 다시 읽으며, 리뷰를 새로 써볼까 한다. 나도 3~40년 전에 읽었던 작품들을 다시 읽게 되는 셈이다. 옛 추억에 풍덩하고 빠져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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