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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3년 11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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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20쪽 | 400g | 128*195*22mm |
ISBN13 | 9791191842579 |
ISBN10 | 11918425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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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받은 강렬한 표지의 커피는 책을 읽으며 음미하기로 아껴두었다. 어느 낮과 밤을 골라 혼자 읽을까 고민했다. 2023년 12월이 도착한다는 이유로, 11월 29일 밤부터 최대한 SNS에서 멀어지는 휴식을 가졌다.
제목이 된 주제작을 읽고 목이 콱 막히는 기분이었다. 저주와 고통 다음에 죽음을 제목에 올린 작가의 초고속 속도감과 긴장감을 품은 단문들을 호흡을 자주 잊은 채로 멱살 잡힌 듯 따라 읽었다. 이래서 죽음은 언제나 함께…….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자들에게 다른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고통받고 괴로워하며 가해자에게 도취감을 제공해주는 오락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잊어버린다. (...) 그리고 다른 오락거리를 찾아 나선다.”
단편이 주는 강렬함이 완벽하지만, 이 서사를 한없이 더 듣고 싶은 갈증이 커졌다. 커피보다 뜨겁고 진한 보드카가 생각났다. 몇 십 년 살다보니, 삶과 죽음의 경계도 흐려지고(애초에 없는 듯), 문학 이겨먹는 현실도 종종 보았다.
그럼에도 정보라 작가가 건조하리만치 간명하게 전개한 문장들은 왜 이리 밀도 높은 호러와 공포를 전할까. 단편 하나가 끝난다고 죽음이 사라지지 않는다. 이후의 단편들에서도 숨을 몰아쉬며 죽음으로 향하는 폭력을 감당했다.
인간이 상상해낸 최고의 허구는 ‘순수’가 아닐까. 진핵생물의 시발점이자, 세포기능을 유지하고, 에너지를 생성하고, 외부 바이러스를 감지하고 면역체계를 발동하고, 인간의 유전자 정보를 기록하고 전달하는 인간의 미토콘드리아는 바이러스에서 유래했다. 인간의 몸에는 인간의 총세포수보다 많은 100조 가령의 세균이 존재한다.
인류가 그토록 찾고자 하는 다른 생명체를 우리는 알아보지 못할 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류의 역사와 공존한, 아니 역사를 기록해온 인간의 폭력은 초장기에 인간을 숙주로 한 감염과 번식에 성공한 알지 못하는 바이러스나 외계생명체일 지도 모른다(내 상상).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이나 오래 그만둘 수 없고 마치 본성처럼 창궐할 리가 있나.
이토록 붉고 어둡고 축축하고 강렬한 문학 속에서, 폭력은 예방과 교육의 여지를 주지 않는 감염체로 보인다. 물리적 폭력이 클래식하고 단순해 보일 정도로, 새로운 미디어 기술을 수단으로 삼은 전파 위력이 섬뜩하다. 인간의 필요에 이해 개발한 기술이 맞는 건지, 갈증을 일으켜 물을 찾게 하는 방식으로 조종당한 문명인지 생각할수록 깨지 못하는 악몽 같다. 환상소설이란 구분이 약간의 안도감을 주지만, 우리는 이미 더한 현실을 목격 중이다.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자들은 대부분 비겁하다. (...) 그들은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찾아 고통을 주며 자신의 존재를 재확인한다.”
<고통에 관하여>에서 작가는 “고통과 쾌락의 근원이 같다”고 했다. 폭력을 매개로 한 관계의 괴이한 양상들은, 경계가 흐려지는 지점에서 혼재와 비극으로 변질된다. 폭력과 혐오가 학습되고 고통이 무감(無感)이나 쾌락이 된 중독자들은 사후 지옥이 따로 존재하지 않아도 볼 수 있는 현실 지옥을 만든다.
“타인의 고통에 중독된 인간은 결코 한 사람만 괴롭히지 않는다.”
하필 가족이 시청 중인 화면에서는 19세 이상 시청 가능한, 욕망이 괴물이 되고 모두가 피범범이 되어 죽자 살자 하는 영상이 플레이 중이다. 일요일엔 안전한 거리에서 죽음을 만나는 것이 내일의 현실을 견디기에 좋은 것일까.
“빛이 주어지지 않은 삶도 있다. 그런 삶에도 평화와 안식은 언젠가 찾아온다. 그것이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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