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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4년 07월 0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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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04쪽 | 499g | 140*205*20mm |
ISBN13 | 9788982181948 |
ISBN10 | 8982181946 |
얼리리더를 위한 6월의 책 : 리유저블컵 3종 세트 증정
2024년 06월 01일 ~ 2024년 06월 30일
상시
4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마당 깊은 집>을 읽었던가 안 읽었던가..
이제는 너무 가물가물 해진 나의 기억. 하지만 김원일이라는 이름을 잊을 순 없겠지.
그런데, 죄송하게도 김원일 작가님의 이름은 잊고 살았던 것 같다.
어디 김원일 작가님 뿐이겠는가.
이청준, 한승원, 윤후명, 임철우....
한때 이상문학상 수상집을 찾아읽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우리 한국문학의 기둥들.
언젠가부터 우리들의 뇌리속에 그들의 이름은 낙엽 휩쓸려 가듯이 사라지고
무라카미 하루키, 에쿠니 가오리 등이 차지하고 앉아 있다.
누군가의 글이 다른 누군가의 글보다 우수하다거나, 더 좋다고 평하는 것은 물론 어리석지만
한가지 분명한 글은 김원일 작가님의 글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보다 결코 못하지 않다는 사실.
그런데
왜 하루키는 국내 최대 선인세를 받는 작가여만 하는지 난 그것이 도대체 이해가 안 된다.
오랜만에 김원일 작가님의 <전갈>을 읽으니 그런 생각은 더 커졌다.
오랜만에 이야기의 힘을 느끼게 하는 소설다운 소설이었다.
<전갈>은, 김원일 작가가 '작가의 말'에서 언급했다시피 '집단학살, 살인, 폭력세계, 신체학대,
정신병(조증), 강간 등' 지금 살고 있는 세계가 얼마나 냉혹하고 살벌한지를 낱낱이들 들여다본 소설이다.
얼마나 어두운 소설이나면, 김원일 작가가 '이런 위악적(僞惡的)인 내용의 소설을 쓰기가 뇌중중
발병의 원인이 되지 않았을까란 의문'이 떠올랐다고 말할 정도이다.
위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은 것이, 읽는 내내 주인공이 처한 끔찍한 상황에 나도 모르게
몰입이 되어, 결코 끊나지 않을 것같은 악몽을 꾸는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그 불편한 감정은 크게 3가지 정도로 분류할 수 있겠다.
남성이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
국가(또는 이념)가 국민에게 가하는 폭력.
일제가 우리 선조들에게 가했던 폭력.
세 번째,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가했던 폭력이야 몰랐던 건 아니지만, 이 책에서 보여주는
731부대(마루타 부대)의 만행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소련군과의 전투를 위해
동상이 끼치는 신체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일부러 마루타를 발가벗겨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혹한의
추위 속에서 맨몸으로 몸을 얼린다는 걸, 우리는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특히 이 이야기는 글의 화자인 강재필이 조부인 강치무의 일대기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소설 속 소설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를 위해 작가는 진짜 역사와 가공의 역사를 넘나들며
어마어마한 분량의 서사를 한 권의 책에 다 쏟아붓는다.
국가가 국민에게 가하는 폭력은 어떤가?
'할아버지는 말년에 남한 단정 수립과 외세의 간섭을 반대하며 민족통일을 위한
투쟁 방법으로 입산을 선택했다. 그러나 그 많은 입산투쟁자들은
좌우 어느 쪽으로부터도 철저히 버림받았다.'
하지만 만약 그 당시에 저런 얘기를 하며 국가가 국민에게 가하는
폭력의 부당성을 호소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이런 항의 뒤에는 선동자가 따로 있어. 국책 기간산업을 약점 잡아 항의하는 게
오늘날 시국에 말이나 되는 소리야! 조국 근대화 목표 달성을 막는 놈 꼴 좀 보자.
어디 나서봐! 그런 불평분자가 바로 빨갱이야. 중앙정보부 울산 분실이 뭐 하는 덴 줄은
알고들 있지?'
강재필의 아버지 강천동은 먹고 살기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저렇게 윽박지르는 인간이었다.
그런데 어디 60~80년 대만 그런가?
지금도 하나도 변하지 않은 국가폭력은 우리들의 억장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세월호 특별법 추진을 위한 범국민대회가 시청 앞에서 열리고 있었을 때, 바로 옆
동아일보사 앞에서는 '애국시민'을 자처하는 우익 단체들의 세월호 특별법 반대 농성이
있었더랬다. 시종일관 희희덕 거리며 희생자들의 가족을 우스개 삼던
그들은 과연 자기네들이 요구하는 것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는 알고 그런
자리에 서 있던 것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전갈>을 읽으면서 가장 읽기 힘들었던 부분은 강천동으로 대표되는 남성에 의해
여성에게 행해지는 폭력이었다. 강천동은 평소에 자기가 눈여겨 보았던 여공을
아내로 만들기 위해 강간한 후, 일부러 동네방네 떠들고 다녀 거의 폭력에 가까운 협박으로
마침내 그 여성 가족들의 허락을 받아내 결혼하기에 이른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이 바로 주인공 강재필이다.
물론 가부장의 폭력이 여성에 한하지만은 않는다. 자녀, 동물을 비롯한 모든 약자에게
국가의 폭력을 닮은 가부장의 폭력은 끊이질 않는다.
주인공 강재필도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하마터면 똑같은 길을 걸을 뻔했다.
소년교도소를 비롯해 계속 된 범행으로 감방 생활만 7년 넘게 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자기가 그토록 혐오했던 아버지를 자기가 닮아간다는 것이 너무나 싫었던 강재필은
혹시나 독립운동가였던 조부의 행적을 찾아내 그걸 글로 정리하면 자신의 정신병을
치유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강재필의 입에서 글로 아버지와 조부에 걸친
3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전갈>에서 펼쳐진다.
그래, 책을 덮고나니 왜 책의 제목이 <전갈>인지 이해가 갔다.
<전갈>도 원래는 다른 곤충들처럼 독이 없었을 것인데,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몸에 독을 품게 되었을 것이다.
강재필의 아버지 강천동이 먹고 살기 위해 스스로 위악적인 인물이
되어 살아갔듯이 말이다. 물론 강재필도 아버지처럼 전갈로 살아갈 뻔한 위기가
많았다. 하지만 강재필의 애인이 건네준 전갈 목걸이를 거부했듯이 그는 전갈로
살아가는 인생을 거부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운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그것이 이 험난한 3대의 100년에 걸친 우울증을 종결하는 몸짓이었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전갈>을 읽으며 <아리랑>과 <태백산맥>, <한강>을 한눈에 살펴보는 느낌을 받았다. 1세대인 할아버지 강치무는 1900년대 일제 강점기 때 하얼빈과 관동군731부대, 해방 전후의 밀양 역사를 담고 있어 <아리랑>과 <태백산맥>을, 2세대 아버지 강천동은 남한에 산업화가 한창이던 1980년대 밑바닥 인생을 보여줌으로써 <한강>과 그 이미지가 겹친다. 30권이 넘는 대작을 쓴 조정래의 소설을 보면서도 감탄했지만, 그 장중한 한국의 현대사를 한 권에 완벽하게 집약한 김원일의 소설 역시 찬탄할 수밖에 없었다.
<전갈>의 주인공 강재필은 아버지의 광기와 어머니의 정신병, 불안정한 생활환경 아래 자라난, 어릴 때부터 온갖 정신병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이다. 감방에서만 7년을 복역한 그는 자신이 사회에 나와 '갱생의 과정'을 거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신병의 유전적 경로를 알아내야 한다고 생각해 할아버지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이는 굉장히 흥미로운 장면이다. 그는 아버지를 건너뛰고, 자신과 일면식도 없는 할아버지의 역사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이는 아마 아버지에 대한 증오와 적대감이 반영된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다. 개백정으로 살아가던 광기 어린 아버지를 자신의 아버지로 받아들이지 않는 거부반응의 또다른 표현이 아니었을까. 할아버지 강재필은 일면식도 없으나 '독립투사'라는 당당한 타이틀이 있으니, 자신의 피 속에도 그의 유전자가 흐른다면 자신의 삶도 갱생이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마음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는 할아버지를 조사하기 위해 서울에서 밀양으로 내려간다.
강재필은 강천동의 존재를 부정하고 강치무의 삶을 조명했지만, 이야기를 지켜보다보면 할아버지 강치무의 삶도, 아버지 강천동의 삶도 본인의 의지가 아닌 역사의 질곡 때문에 무너져간 인생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 둘은 살아남기 위해 무엇이든 했다는 공통점이 있어, 같은 종류 인간의 두 가지 버전으로 읽힌다. 할아버지는 독립투사였으나 일제군에 붙잡힌 뒤로는 생체실험을 하는 일제 복역소의 보초병으로 일한 뒤 해방 후 죽은 사람처럼 지내게 되고, 아버지는 지긋지긋한 밀양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보기 위해 울산으로 넘어가지만 공장에서 일하다가 프레스에 오른손이 잘려나간 뒤로 개백정으로 살아갔다. 한 번의 실수로 사람까지 죽이게 된 그는 반송장처럼 어둠 속에 갇혀버린다. 강치무와 강천동 모두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쓰지만 결국 자신들조차 어찌할 수 없는 구렁에 빠져 허우적대다 조용히 사그라진 운명이었다.
밑바닥 삶은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이리도 아픈지 모르며 그저 하루하루 살아남기에 급급한 처지에 놓이게 된다. 강재필은 이 두 삶을 비교, 기록하면서 점차 자신의 삶의 주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그는 그들의 삶을 보며 자신의 삶을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어둠의 그림자를 보았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밑바닥 삶을 구원해주느 유일한 곳이 고향 밀양이다. 밀양은 3세대를 잇는 중요한 매개로 작용한다. 밀양은 나라의 앞잡이로 목숨을 부지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던 강재필의 할아버지 강치무를 숨겨주었고, 실수로 사람을 죽이고 복역생활을한 뒤 반송장으로 나타난 아버지 강천동을 품어준다. 또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온 강재필에게 치유의 장소를 마련해준다. 그리고 그 밀양에 아버지 강재필에게 버림받은 4세대 강종호를 만나게 함으로써 둘의 부자관계에 치유의 끈을 마련해준다. 나라가 버리고 세상에 짓밟혀도, 갖은 죄로 감방에 투옥되고 반병신이 되어도 고향은 과거를 묻지 않고 조용히 보듬어준다. 그래서 강치무와 강천동이 침묵의 시간을 보냈을지언정 천수를 누린 이유였을 것이다.
강치무와 강천동을 도왔듯이, 밀양은 강재필 역시 구원해준다. 그는 할아버지를 복원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아버지의 삶을 돌아본다. 비록 할아버지의 생을 다 정리하지 못했고 아버지에 대한 용서를 마치지 못했지만 세상의 유혹을 과감히 뿌리치는 마지막 장면은 감동스럽기까지 하다. 돌아갈 곳이 있는 자는 용감하다. 강재필은 희망이 있으므로 용감했다. 그는 자신을 마비시키려는 전갈의 독과 같은 자들과 대면하며, 그는 빠져나갈 방도를 구상해내고, 결국 성공한다.
3세대의 100년이 넘는 역사를 보며 우리의 현대사가 얼마나 굴곡 많은 사람들의 사연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졌는지 실감하게 된다. 온갖 무명씨들이 만들어낸 자신만의 역사가 모여 우리 역사의 어두운 부분과 밝은 부분을 만들어냈다. 비록 무명씨들의 역사에는 밝은 부분보다 어두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삶에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건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김원일은 이것을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정글같은 세상, 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독으로 무장한 세상이지만, 우리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으므로 결코 그들 앞에 무너지지 말라고, 역사의 장난에 휩쓸리지 않도록 나만의 독을 지니고 있으라고 말이다. 그래서 소설 제목을 '전갈'로 지은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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