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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9년 01월 1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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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27쪽 | 421g | 125*185*30mm |
ISBN13 | 9788956053127 |
ISBN10 | 895605312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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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열아홉, 갓 스무살이 되던 해 나는 푼돈을 들고 여행을 떠났다. 뾰족뾰족 날카로운 햇볕에 사정없이 찔려가면서 허위허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다녔다. 아니, 어쩌면 나는 끌려 다닌 건지도 몰랐다. 새순 같은 청춘과 한여름의 비현실적인 무더위, 햇볕. 그런 것에 내 마음은 정신없이 끌려다녔던 건지도 몰랐다. 그러면서도 나는 '자유'를 위장하였고, 푸른 눈동자를 또록또록 굴려가며 세상 구경을 하였다. 쉽게 분노하고 쉽게 실망하고 쉽게 동정하고 쉽게 상처받으면서 나는 그 비현실적인 햇볕 아래를 종횡무진 나다녔다. 어쩌면 청춘의 갈증이었을까, 아니면 오만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순진함이었나. 그때는 무엇이 그토록 궁금하였던가. 아니, 나는 다만 집으로부터, 고향으로부터, 낯익은 것들로부터 멀리, 멀리 달아나고 있었던 것이었을 뿐인지도 몰랐다. 그러면서 미지의 것, 사람들을 찾아 헤매었던 것이었는지도. 그런데 이상했다. 낯익은 것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나올수록 나는 그것들에 더 가까이, 더 깊이 밀착되었으니까 말이다. 나의 첫 '떠남'은 그렇게 제자리걸음이었다.
이후 나는 '여행'에 대한 기대나 환상을 품지 않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여행'이라고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는 어쩐지 안타까운 마음마저 들었다. 내가 바라본 대부분 사람들의 여행은 너무 무겁고 피곤한 것이었다. 온 살림살이를 바리바리 싸들고, 꽉 막힌 자동차의 늪 에서 허우적대다 마침내 여행지에 도착하면 온몸은 녹초가 되고 만다. 그렇다고 여행지가 휴식에 마침맞은 장소인 것도 아니다. 여행지에는 그들과 똑같이 피곤한 사람들이 바글바글, 살림살이를 풀어헤쳐놓고 녹초가 되어 있다. 이런 것을 나는 '여행'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가벼워지는 것'이다. 휴식을 취하며 나 자신과 만나는 순간이다. '여행'이란 장소의 이동이 아니라 '마음의 흐름'이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마음이 흘러 흘러 마침내 나의 가장 깊은 내면에 가 닿는 것. 그러면 거기는 얼마쯤 쓸쓸하지만 아늑한 여행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행'은 돈 없이도, 차 없이도 떠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박동식 씨의 여행 산문집, 두 번째 만남이다. 지난 해, 티베트 여행기 '열병'을 만나고 난 다음이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쪽빛의 하늘, 티베트 사람들의 발갛게 튼 볼, 깊은 우물 같은 검은 눈동자를 나는 잊지 않았다. 자연스러운 색감의 사진과 작가의 담박한 감성이 흐르고 있는 글맛이 인상적이었다. 좋은 느낌으로 만났던 책이라 이번 산문집도 망설임 없이 집어들었다. 지난 산문집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 순박한 사람들의 짙은 검은 눈동자, 자연과 어우러진 그들의 생활 모습, 붉은 법의를 두른 승려들의 모습(등등)은 이제 익숙하게 다가왔다. 감성이 흐르다 못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그의 문장 또한 그대로였다. 반가움 반, 식상함 반.
소똥을 펴바른 바닥이 마른 뒤
하얀 가루로 그림을 그리는 계집아이.
코끼리 한 마리 소원 하나,
코끼리 두 마리 소원 두 개 . . . . . .
엄마 아빠는 이미 밭에 나갔고
이제 걸음을 시작한 동생은 신발도 없는 언니의 몫.
네 마리 코끼리들이 분홍 옷 초록 옷을 입을 때
아이의 소원은 어느 별을 서성이고 있었을까.
박동식 씨는 '여행'은 '가는 것'과 '떠나는 것'이 있다 한다. '가는 것'은 새로운 만남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품고 있지만, '떠나는 것'은 익숙한 것들과의 필연적인 '이별'을 껴안고 가야 하는 담담한 슬픔이 있다. 박동식 씨에게 '여행'은 '떠남'이라 한다. '여행'은 '이별'이라 한다. 여행이 이별이라는 담담한 목소리는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누구는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 하고, 또 누구는 익숙한 것들과의 결별을 숙명처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여행'이라 한다. 결국 '삶은 여행'이라는 식상한 대답만이 허공을 친다. 그러나 이 진부한 대답 앞에서 숙연해지는 것은 왜일까. 오늘 나는 그대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 내가 떠나온 그곳, 아직 건재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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