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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매일 | 2006년 03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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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무게, 크기 | 279g |
연령제한 | 15세 이용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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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을 품은 구름을 잔뜩 들이마시는 파일럿들 <에어리어 88>은 낡은 애니메이션이다. 캔디나 은하철도 999를 연상시키는 조금은 투박한 드로잉과 세부묘사, 심지어 한 장의 타이틀은 스테레오도 아닌 모노 사운드에 담겨져 있다. DTS 6.1 채널의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와 잡티 하나 없이 섬세하고 맑은 디지털 화면에 담겨 있는 몇몇 레퍼런스 타이틀에 비해 홈시어터 ‘시스템’을 강하게 울려대기에는 조금 부족한 부분이 있다. 대신 이 타이틀은 ‘시스템’이 아닌 ‘마음’을 울린다. “천국은 얼마나 먼가. 집으로 가는 길은 얼마나 먼가.” 작품의 도입부에 나오는 노래가사처럼 외인부대 에어리어 88의 부대원들은 적을 죽여 돈을 쌓아가는 지옥 속에 산다.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무사히 제대했지만 단순하고 권태로운 일상은 화약냄새가 영혼까지 스며든 미키에게 지겨운 지옥으로 다가온다. 반면 신은 친구의 계략에 빠져 외인부대 입대원에 서명하고 강제로 끌려온다. 각기 입대한 이유는 다르지만 에어리어 88에선 3년 동안 살아남거나 아니면 그전에 적을 죽인 대가로 받는 돈 150만 달러를 모아야만 떠날 수 있다. | |||||||||||||||||||||
뼈 속까지 스며들어 영혼을 녹이는 화약냄새는 설혹 에어리어 88을 빠져 나왔다 해도 가는 모든 장소를 지옥으로 만들어버린다. 뜨거운 사막 한가운데 고독한 섬처럼 서 있는 에어리어 88은 남자들의 세계다. 남자들이 만들어내는 창공의 느와르. 하늘은 지독하게 푸르러 마치 독을 품고 있는 것 같고, 남자들은 독기 품은 구름 사이로 날아다니며 전쟁의 독을 잔뜩 들이 마신다. 취하고 중독된다. 용병 파일럿은 “간다!” 외치고는 쉬지 않고 날아 구름 사이로 사라진다. 종종 느와르 특유의 지나친 감정 과잉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스토리와 플롯의 흐름은 대체로 자연스럽다. 지독한 공중전과 폭격을 마친 후 돌아오는 세 대의 전투기간에 무전이 오고 간다. 불을 끄면 죽은 동료들의 환상이 자신을 괴롭혀 항상 불을 켜고 자는 한 사내가 말한다. “아무래도 상금은 둘이서 나누어야겠어.” 순간 사내의 눈에 탐욕이 번들거리는 듯하다. 나를 죽이고 상금을 뺏으려 하는 건가? 다른 전투기의 파일럿은 순간 긴장한다. “난 그런 푼돈 따윈 필요 없어.” 허허허. 사내의 텅 빈 웃음이 무전 너머 들린다. “넘겨짚기나 하는 멍청이들. 내가 ‘둘이서’라고 한 건 너희 둘을 말하는 거다. 신, 돌아가면 내 방의 불을 꺼 줘.” 순간 무언가 찡하다. 먼저 항상 동료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는 사내를 보여주고, 그가 항상 불을 켜고 자는 것을 보여주고, 마지막 죽음의 순간에 전쟁은 항상 친구들을 먼저 죽여버리니 친구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는 고백과 함께 불을 꺼달라는 유언을 들려준다. 마음을 흔드는 플롯의 힘이 어떤 것인지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 |||||||||||||||||||||
공중전에서 느껴지는 속도 빠른 스펙터클은 인물조차 빠르게 스쳐 지나가 버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는다. 에어리어 88에 있는 신과 밖에서 그를 찾는 연인 료코, 그들이 머무는 서로 다른 공간을 교차로 보여주며 이야기는 엮여 나간다. 플롯은 촘촘한 편이고 비교적 많은 등장인물의 성격은 뚜렷하다. 작품의 마지막도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열린 결말로 되어 있어 진한 여운을 남긴다. 아련한 낡은 흑백 사진 같은 사운드 5.1채널 혹은 극장의 사운드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 모노 사운드는 조금 당혹스러울 것이다. 활주로에 착륙하는 전투기 바퀴가 내는 소리는 실감나게 들리지 않고, 폭발음도 기존의 전쟁영화 타이틀이 들려주는 사운드에 비교하면 리얼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스토리가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적인 매력에 취하기 시작하면 모노 사운드도 점점 리얼하게 들려온다. 스토리의 매력이 뇌의 청각계에 묘한 상상력을 불어넣는지, 뒤로 가면 갈수록 창공을 나는 전투기의 엔진음과 공중전에서 들리는 기관총 소리 등이 실감나게 다가온다. | |||||||||||||||||||||
음악을 맡은 니타 이치로는 발라드, 팝, 헤비메탈, 재즈, 뉴에이지 등 다양한 장르를 오가는 사운드 트랙을 들려주는데 그 다양한 음악적 스펙트럼에 놀랄 만하다. 두 번째 타이틀은 스테레오로 녹음되어 있는데, 모노가 스테레오로 바뀌는 순간 사운드는 경이로울 정도로 다르게 들려온다. 화면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날아가는 전투기의 연소음이 왼쪽 스피커에서 오른쪽 스피커로 함께 움직이는 스테레오는 분명 엄청난 변화이다. 다른 타이틀의 5.1채널 사운드가 가져온 혁명적 변화에 비하면 작은 것이겠지만(만약 5.1채널이라면 왼쪽 후방에서 오른쪽 전방으로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 엔진 연소음이 들릴 것이다), 모노와 스테레오 사운드가 들려주는 인상적인 변화는 사운드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새삼 절감하게 해준다. 오래되었지만 리마스터링을 거쳐 깨끗한 화질 때를 벗겨내고 디지털 색 보정 작업을 하는 등 DVD 발매를 위해 전면적인 리마스터링 작업을 거쳤기 때문에 잡티 없는 화면을 보여준다. 선명한 색조는 파아란 하늘의 청명감을 드높여 현실의 하늘보다 더 탁 트인 시원한 광경을 보여주고, 구름 위로 번지는 저녁노을의 서정적이고 슬픈 정조를 잘 표현해낸다. 특히 컴퓨터 그래픽을 쓰지 않고 일일이 손으로 그려낸 전투기들의 접근전은 아날로그적인 제작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놀라운 속도감과 3차원적인 급격한 공간변화를 보여준다. F-16 파이팅 팰콘, F-14 톰캣, MIG-27, 해리어 등 무수한 전투기의 세부적 디테일을 정확하게 잡아내고, 애프터버너나 주날개를 꺾어 올릴 수 있는 ‘가변붙임각날개’ 등 메카닉적인 특성까지 그려낸 점은 실감을 더 보태준다. | |||||||||||||||||||||
작품의 성공에 크게 고무된 듯 첫번째 디스크보다 두 번째 디스크가 사운드의 발전과 더불어 비주얼에 있어서도 훨씬 더 섬세한 작화와 다양한 색을 보여준다. 같은 인물들과 전투기들의 묘사에서도 배 이상의 펜 터치가 느껴진다. 다만 프로젝터 같은 대화면이나 HD급 디스플레이에서는 십여 년의 세월이 여실히 드러나는데 일부 장면의 경우 또렷하지 못한 외곽선 표현으로 계단현상이 나타나거나 전체적인 초점이 흐릿해지는 부분이 있다. 서플먼트와 부클릿 DVD 케이스 안에 있는 부클릿은 작품해설, 캐릭터별 성우 소개, 전투기 소개, 용어 설명 등을 담고 있어 비교적 제작사의 성의가 담겨 있다 할 만하다. 2장의 디스크 모두 서플먼트를 담고 있다. 첫번째 디스크에는 주요 캐릭터에 대한 텍스트 형태의 설명, 전투기들에 대한 설명, 본편의 이미지들과 더불어 인터뷰 코너에 국내 성우진들의 영상이 수록되었다.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몇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하는 코너로, 늘 목소리만 듣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궁금한 사람들의 갈증을 해소해준다. ‘더빙 스케치’에서는 목소리뿐 아니라 직접 연기하듯 격정적인 제스처까지 해가며 열띤 목소리 연기를 펼치는 성우들을 만날 수 있다. 한 캐릭터의 목소리를 연기하다가 금세 목소리의 톤과 색깔을 바꾸어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성우의 모습이 재미있다. | |||||||||||||||||||||
두 번째 디스크는 스태프에 대한 소개 글, 본편의 이미지들, 오리지널과 새롭게 더빙이 이루어진 부분을 비교해서 보는 장면 등과 더불어 에어리어 88의 원작자 '신타니 카오루'와의 인상적인 인터뷰를 담고 있다. 작품을 그리게 된 계기와 작품에 대한 발상이 어떻게 나왔는지 들려주고, 어릴 때부터 기계에 관심이 많아 집안의 각종 가전제품을 분해하는 것을 좋아해 혼나기도 했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 작품에 나타난 메카닉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어느 정도는 경험을 바탕으로 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각종 전투기, 무기 등의 메카닉에 관심이 많긴 했지만 메카닉 자체보다는 메카닉을 쓰는 ‘인간’에 더 관심이 많았다는 그의 말은 왜 이 타이틀이 홈시어터 ‘시스템’을 빵빵하게 울리진 못할지라도 ‘마음’은 흔드는지 간접적으로 알 수 있게 해준다. OVA(Original Video Animation)를 정착시킨 타이틀 OVA는 극장상영이나 TV 방영 없이 비디오로 출시되는 비디오 전용 애니메이션을 말한다. 절정기를 맞이하던 1980년대 일본만화영화 산업에는 과열경쟁으로 공급이 수요를 앞지르는 현상이 생기게 되는데, 많은 제작사가 생겼지만 돈을 버는 제작사는 몇 개 안 되었다. 그러다 보니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드는 극장판 만화를 제작하기에는 위험부담이 점점 커져갔다. 단 몇 주만의 방영으로 명암이 엇갈리는 극장판보다는 좀더 안전하게 흥행이 보장되는 제작여건을 찾게 되었고 그래서 생긴 것이 OVA다. OVA는 극장판보다 적은 제작비를 들이는 대신 연작 형태의 시리즈 포맷을 취해 상업성을 노린 장르인데, 이의 탄생으로 인해 인력은 많은데 일감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던 일본의 만화영화산업은 극적으로 기사회생하게 되었다. <독수리 5형제>로 알려진 <과학닌자대 갓챠맨>을 연출하고 <공각기동대>의 감독 오시이 마모루의 스승으로도 유명한 토리우리 히사유키 감독은 <에어리어 88>을 극장판에 버금가는 하이 퀄리티로 제작하여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그로 인해 다른 중소 제작사들도 OVA시장에 진출하게 된다. OVA는 극장판보다 소재의 발굴과 표현의 폭이 한층 넓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고, 바로 이점에 의해 일본 애니메이션은 계속 발전을 이룬다. | |||||||||||||||||||||
남자들의 진한 고독과 전투기라는 흥미 있는 소재로 현란한 속도감과 급격한 공간의 변화를 보여주는 이 타이틀은 TV에서 제목을 바꿔 방영된 <지옥의 외인부대>를 어린 시절에 본 사람에게는 마치 추억이 담긴 흑백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줄 것이다. 좀 오래되어 펜 터치가 세련되지 못한 만화는 잘 보지 않으려 하는 취향이 있었다면, <에어리어 88>의 재감상이 그러한 취향을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펜 터치와 사운드, 비주얼은 화려하고 현란해질지 몰라도, 제대로 된 작품을 만나는 건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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