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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9년 05월 1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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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11쪽 | 469g | 148*210*30mm |
ISBN13 | 9788971848128 |
ISBN10 | 897184812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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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항상 조금 느리다는 생각을 해본다. 학교 때 친구들이랑 밥 먹는 속도도 내가 제일 느렸고, 책을 읽는 속도도 느리고, 집을 나서기 전 준비 하는 속도도 느리다. 어떤 영화나 공연, 책을 보고 느끼게 되는 것들 조차 느리게 다가온다. 여행 또한 마찬가지로 끝나고 나서 한참이 흘러서야 어떤 느낌들을 비로소 내 것으로 만듣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진작 겪었어야 할 성인의 성장통을 제대로 치러내지 못한 탓에' 뒤늦게 지금에서 이렇게 많은 방황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을 읽으면서 잠깐이지만 나를 카오산 로드로 이끌게 했던 박준님의 《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가 떠오르기도 했고, 길위를 걸으면서 한 여행이라는 사실에 얼마전에 읽은 김준희님의 《오래된 길, 우즈베키스탄을 걷다》가 떠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 와는 다른 묘한 느낌이 나를 사로 잡았다.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을 읽으면서 실제로 내가 그 길위를 걷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저자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을 내가 실제로 만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카미노의 순례자'라고 생각하는 애런, 말많고 친화력 뛰어난 '베드 호퍼' 마틴, 수호천사로 나타난 조 할아버지와 조지 할아버지, 걱정을 달고 사는 마농 아줌마 등등 ㅡ. 모두 내가 만난, 나의 친구인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마치, 나의 두 손에는 순례자 증서가 놓여 있다는 듯한 느낌과 함께 ㅡ.
“이 길은 처음엔 혼자 시작해도
거의 항상 다른 사람들과 함께 끝나게 되는 길이에요.
행운을 빌어요. 부엔, 카미노! (Buen, Camino!)” - P44
카미노란 곳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 함께이면서 혼자 걷는 길 ㅡ. 산티아고를 가는 길, 카미노가 그렇듯이 우리의 삶도 그와 비슷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혼자나 함께라는 절대치란 없는 ㅡ.
여행 중에는 사회적 지위, 직업, 학력, 능력, 소유 심지어 나이나 외모 따위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저 길위에서 만나면 모두가 친구일 뿐이다. 오직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 그 자체를 봐주는 많은 친구둘을 만날 수 있는 곳. 그 곳이 어디든, 그 곳이 여행이고, 그 것이 여행이다 ㅡ. 그래서 여행을 하게된다. 그리고 또 여행을 꿈꾸게 된다. 그리고 현실에 놓여있는 지금, 온전한 나 자신만을 내세울 수 있는 세상에 놓여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 가득 담긴 소원아닌 소원도 빌어본다.
“특별히 구하는 답은 없어요.
다만 카미노가 주는 걸 모두 받아 들일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에요.” - P99
정말 멋진 대답이지 않은가?! 지금까지, 무슨 일(그것이 여행이 될 수도 있는..)을 하든 그것에서 꼭 무언가를 얻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실제 그랬다. 어떤 사소한 일 하나를 하면서도, 한 권의 책을 읽으면서도, 여행을 하면서도.. 그 덕분(?)에 그 자체에 흠뻑 빠지지 못하고 뒤돌아서 후회하는 삶을 살지는 않았나 생각해 본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이, 여행의 이야기를 담은 책도 나에겐 크나큰 설렘으로 다가온다. 내가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호기심과 부러움이 반반섞인 기분으로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겨가면서 새로운 것을 알아가고, 생각하는 즐거움이란 요즘 나의 삶에 있어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솔직히 말해서, 여행 이야기라고 해도 기대와 달리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실망스러운 책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은 그와는 정반대의 책이었다. 아니 오히려 기대 이상의 책이었다고 표현해야 적합할 것이다. 기대이상으로 멋지고, 즐겁고, 때로는 슬프게도 만드는.. 어쩌면 내가 평소에 하던 생각들과 내가 평소에 느끼던 것들, 그리고 내가 경험한 어떤 일들이 이 책의 내용과 많이 닮아 있어서 더 그렇게 좋게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ㅡ.
좋은 것을 보면 자꾸 가지고만 싶어 진다. 나는 그 중에서도 특히, 좋은 책을 보면 자꾸 욕심을 내는 일이 부쩍 많아진 요즘이다. 책에 대한 욕심 정도는 괜찮다. 하지만 그 보다 더한 것은 좋은 곳을 알게되면 정말 가고싶어진다는 것이다. 『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을 만난 지금, 가고 싶어지는 곳이 또 한곳 늘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 당장 떠나고픈 생각은 없다. 산티아고 가는 길, 카미노는 먼 훗날 좀 더 나이가 들어서 갈 곳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싶다.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깊숙한 곳에 숨겨두듯이, 그 곳은 내 마음 최후의 안식처로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다 ㅡ.
훗날 언젠가,
크루스 데 페로에 올라 눈물 흘리고 있을 나를 만나게 되길 소망해 본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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