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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3년 0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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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72쪽 | 699g | 141*224*30mm |
ISBN13 | 9788980721214 |
ISBN10 | 898072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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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크게 뜨고 볼 것에 대하여’, 『무덤』뒤에 쓸 것에 대하여, ‘노라는 떠난 후 어떻게 되었는가?’
도서관 휴게실에 홀로 앉아 세 편의 글을 읽으면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크게 뜨고 볼 것에 대하여’ 라는 글에서는 작가 노신의 관찰력과 통찰력, 세상을 보는 눈에 감탄하기도 하고 『무덤』뒤에 애수를 몰아내기 위해 몇 마디 더 했다는 ‘『무덤』뒤에 쓸 것에 대하여’ 에서의 인간적인 고뇌와 작가로서의 속내와 고뇌들, 솔직하지 않다고 하는데서 보이는 그 진솔한 모습들을 보며 공감하기도, 그 솔직하면서도 직설적인 화법에 혼자 무엇이 우스웠는지 크게 웃기도 했다. 세 편의 글을 통해 노신이라는 작가와 대화하는 기분이 들었다. 짧은 글이었지만 즐거웠다.
노신이 바라보고 서술한 것처럼 여러 가지 관점에서 생각되는 바를 솔직하고, 입체적으로 나의 말로 쓰고자하는 마음이 있지만 참으로 쉽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편협하고 좁은 사고의 탓일까, 글과 말로 하는 표현에 서툰 탓일까. ‘고통을 느끼도록 하고 영혼을 불러 일으켜 자신의 썩은 시체를 목도’ 하지 못해서일까. 그래서 절실하지 않은 걸까? 만사에 눈을 감고 스스로를 속이고 남을 속이며 그것이 반복되어 관습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비판하는 노신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을 목도하고, 정직하게 바라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언젠가 작가의 꿈을 꾼 적도 있던 나인데, 어느 틈엔가 조금씩 나의 부족한 모습들과 좋지 않은 결과들, 서툰 글로 인해 제대로 나의 글과 한계를 똑바로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스스로를 속이며 아무런 연습도 없이 먼 훗날 좋은 글을 쓸 거라는 미래를 그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저 허풍과 꿈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은 아닌지. 그래서 그대로 멍하니 보고만 있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닌지. 작게는 이렇게, 크게는 삶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도피를 하고 있는 걸까? 내게는 정말 문제도, 결함도, 불평도, 해결도, 개혁도, 반항도 없다. 정말 ‘원만’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가족관계에 있어서도, 친구들 간의 관계에서도 나의 미래에서도 이 사회에 대해서도 내심 그런 생각들이 있었다. 조금만 생각해보고 조금만 그려보아도 그럴 리가 없는데. 문제가 없는 내 주변에 대해서 잠깐 이상하게 여기고 말았을 뿐 그걸로 끝이었다. 보이지 않기 시작하면 더 뒤에 가서는 당연히 보지 않고 보이지도 않게 된 상태 내 모습이 그러한 상태가 아닐까. ‘사람과 사람의 차이는 종종 유인원과 원인의 차이보다 더 심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라며 인용한 헤켈의 말에서 아니겠지 하면서도 나는 유원인의 편에 속한 사람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노신은 관성과 관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비판하면서도 벗어나는 것에 대한 어려움 또한 이야기한다. (여러 번 읽으면서 느낀 거지만 노신이라는 작가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여러모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설령 탁자 하나를 옮기고 화로 하나를 바꾸려 해도 피를 흘려야 할 지경입니다. 게다가 설령 피를 흘렸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옮길 수 있고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세상일이란 작은 일이 큰 일보다 더욱 번거롭고 어려운 법입니다.’
그리고 내가 의도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르겠지만, 어려움만 이야기 할 뿐 따로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않는다. 읽으면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정리해보면 무엇보다도 스스로가 속이고 속고 있음에 대한 인식이 시작이고, 이를 망각하지 않고 깨어 있으려 늘 질문하고 생각하며 돌아보며 note-book에 기록한다든지 하는 그를 읽는 수고가 있어야 변할 수 있다는 것 정도일까. 문득, [광인일기]에서 광인이 형에게 했던 말이 생각이 난다.
‘예부터 그래 왔다고는 하지만, 우리 오늘이라도 그냥 단번에 착해질 수 있습니다. 안된다고 말씀하세요! 형님, 형님은 그러실 수 있어요.”
할 수 있다. 예부터 그래왔다고 하더라도 변할 수 있다.
책을 읽으면서 그저 공감하기만 하고 내 상황에 맞춰 적용시켜 보지 않았던 것들을 다시 돌아보며 구체적으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게 독후감 글쓰기의 매력인 것 같다. 늘 필요한 작업인 것 같기도 하고. 다시 글을 읽어보니 잔뜩 질문만 하고 자기성찰만 하는 글이지만 외면하지 않고 ‘고통을 느끼도록 하고 영혼을 불러 일으켜 자신의 썩은 시체를 목도’ 한다면 언젠가는 글다운 글, 내 머릿속에 있는 모든 것들을 글로 표현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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