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만장자의 꿈, 사람치고 이 꿈을 꾸어보지 않았다면 거짓일 것이다. 욕망이 우리를 거리로 내몰때마다 우리는 주머니속에 들어 있을지도 모를 백만장자의 꿈을 만지작거리곤 한다. 그 도달하기 힘든 꿈, 그리하여 우리는 그것을 고작 '꿈'이라고밖에 말할 도리가 없다. 세속적인 욕망도 아니고 고작 사랑하는 한 여인을 만나기 위해 백만달러가 걸려 있는 이 특별한 퀴즈쇼에 출연한 남자는 정말 꿈처럼 그 상금을 획득한다. 꿈이라도 이 정도 꿈이면 한번 만지작거려나 봤으면.

  인도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지금도 주변의 사람들은 인도로 가거나 돌아오고 있거나 미래의 어느 날 가기 위해 준비를 한다. 그러나 나는 단 한번도 인도에 가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인도에 다녀온 사람들이 대단한 썰을 풀어도 한번도 거기에 동요된 적이 없었다. 미처 다 타지 못한 사람의 팔다리가 둥둥 떠다닌다는 갠지즈 강이나 오물이 넘쳐난다는 거리는 미려한 포장에도 불구하고 나를 끌어 당기지 못했다. 그러면서 나는 왜 많은 사람들이 인도를 그리워하는지 궁금했다.

  흔히 인도는 사유의 나라라고 한다. 불교가 처음 만들어진 나라, 동양에서 사상적으로 중국과 맞먹을 정도로 철학적인 나라, 그런것들이 어쩌면 거지까지도 철학자처럼 보이게 하는건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그 허명에 끌려들지 않기 위해 나는 학교에서 인도철학을 배우면서도 인도라는 나라에 끌려들어가지는 않았다. 현재보다 과거가 더 융성했던 나라, 인도의 불교나 철학은 모두 과거 역사의 한 페이지에나 나오는 그런 것이었고, 그런 것으로 현재 인도의 비참함을 포장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인도의 슬럼에서 자란 자말은 라마교와 이슬람교의 싸움때 엄마를 잃고 형 살람과 함께 떠돈다. 그 거리에서 역시 부모를 잃은 라띠끄를 만난다. 치명적인 가난의 뒤에는 언제나 악이 도사리고 있듯이 이 거리의 아이들을 이용해 돈을 버는 나쁜 어른들이 등장하고 그들과 목숨을 건 대결과 도주의 끝에 결국 자말은 형과 라띠끄와도 이별하게 된다. 그러나 끝끝내 선함을 잃지 않았던 자말은 라띠끄를 찾기 위해 전국민이 지켜보는 퀴즈쇼에 출연하게 된다.

  겨우 글자만 읽을줄 아는 자말이 이 퀴즈쇼에서 우승하게 된 것은 신산스러웠던 삶에서 얻은 경험과 억세게 좋은 운 탓이다. 우승한 것을 사기로 몰아 고문하는 경찰에게 자신이 우승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자말에게는 욕심이 없다. 그 무욕의 삶에 보상이라도 하듯 따라주는 운은 현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도 복이 될 것이다.

  이 영화가 개봉되고 아카데미를 감동시키면서 많은 구설수도 따랐다. 라띠끄의 아역배우로 나온 어린이는 돈만 주면 팔겠다고 나서는 아버지의 잔인함과 마주해야 했고, 배우들의 돈을 가로채려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삶을 견뎌야 했다. 거리의 아이들을 이용하여 돈을 버는 어른들과 자말이 우승하지 못하도록 거짓 답을 알려주는 사회자와 그 우승을 사기라고 몰아붙이는 권력과 쓰레기더미로 비쳐지는 인도의 비참함이 더도 덜도 아닌 인도의 현재 모습이다. 한때 우리에게도 있었음직한 모습들, 나는 그것을 굳이 미화시키고 싶지는 않다. 우리의 2,30년대 문학 작품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풍경들이 영상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그 때 우리의 삶이 조선의 철학자들 때문에 빛나 보였던가. 소유하지 못해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민초들의 삶이 ㅁ무욕의 삶으로 비쳐졌던가. 악의 화신처럼 보이는 나쁜 어른들은 그럴만하니까 그렇다고 변명할 수 있었는가, 돈을 위해 아내를 팔고 딸을 팔던 그때로 돌아간다면 우리는 행복할 수 있겠는가.

  나는 영화를 통해 자말의 아름다운 인간성보다 인도의 모습을 보았다. 물론 그것이 인도의 전부는 아니다. IT대국으로 떠오르는 인도의 어두운 면이면서 대부분의 인도인의 삶의 모습이다. 그러나 나는 한편으로는 내게도 그런 행운이 오기를 원한다. 굳이 백만장자의 행운이 아니라도 그에 버금갈 어떤 행운이, 그런 행운이 하나라도 없다면 우리는 무슨 낙으로 던져진 우리의 삶을 지탱하겠는가.

  *****문자보다 영상과 친해지고 있다. 문자는 그 속에서 의미를 해독해야 하지만 영상은 의미 자체를 보여준다. 오늘은 심장이 불안해 검사를 하러가서 한나절을 보내고 왔다. 예상대로 아무 이상도 없다지만 심장은 여전히 저 혼자 두근거리고 숨을 막히게 한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나면 심한 무력감에 빠진다. 병원 의자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검사를 하고 상담을 하는 동안 내게 따라주어야 할 하나의 운이 있다면 아이들이 결혼해서 독립할때까지 건강하게 살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나처럼 자주 병원에 가는 사람이 오래 산다지만 그도 믿을것도 못되니까. 얼마전에 큰아이 반 애 엄마가 돌아가셔서 애가 수업중에 집으로 돌아갔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나서 혼났다. 엄마가 필요한 나이에 엄마가 없어져 버린 그 아이의 운명이 너무 슬퍼서였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타인의 슬픔이 내 슬픔처럼 느껴지고, 사람에게 연민이 늘어간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