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청소년 출판의 현재
청소년 출판을 해보겠다고 필자들을 찾아다녔던 푸른숲의 박창희 팀장은 "왜 하필, 청소년 책을…", 혹은 "개네들 책 안 읽는 것 알지요"라는 말을 수차례 들어야만 했다고 한다. 우리 나라에서 청소년 출판은 입시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가능성을 점치기 어려운 분야로 인식되고 있었다. 청소년 출판이 의식적으로 시도되기 시작한 것은 전교조를 시발점으로 봐야 할 듯하다. 해직교사들이 필자와 기획자로 나서며 구체적으로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교양도서들을 출판하기 시작했다.
또 청소년 출판의 가능성이 점쳐지기 시작한 것은 1994년부터 시행된 대학수학능력시험과 대학별 고사라는 새 입시제도의 영향이다. 사계절 출판사의 논리야 시리즈나 독서잡지 <독서평설>의 대박으로 출판의 입장에서 청소년 출판은 새롭게 인식되었다.
입시제도의 영향으로 최근에는 교육의 첨단을 걷고 있는 8학군의 학부모와 교사들이 대입 준비를 위해 책을 읽혀야 한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수능체제가 도입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시장을 주도하는 참고서가 등장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요약 정리식 참고서에서 다양하고 풍부한 독서와 토론을 통한 사고력 중심의 학습으로 이동해 가는 중이라고 중동고등학교 도서관 총괄 담당 안광복 선생은 지적한다. 게다가 이런 흐름에 맞춰 중동, 경기, 서울, 숙명, 동덕 등 8학군 내의 강남 명문학교들이 최근 2-3년 동안 도서관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교육에 맞설 수 있는 공교육의 가장 큰 인프라 중 하나인 도서관을 통해 독서교육에 나서겠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2부 청소년 도서 기획이야기
청소년 도서를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싣는 2부를 살펴보면 우리에게 청소년 출판이 얼마나 불모지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현재의 청소년 출판을 증언할 만한 적임자가 여의치 않아 동녘, 내일을여는책, 한샘 출판사 등의 과거 사례를 통해 우리 청소년 출판의 역사를 더듬어 보았다.
동녘에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출간된 것은 1982년이다. 선생님들의 추천에 힘입어 동녘에서만 1백만 부 이상, 중복 출판된 책까지 포함하면 4백만 부 이상이 팔려나간 이 책을 시발로 동녘은 청소년 시장의 잠재력을 확인하고 이후 20년 동안 청소년 출판의 역사를 함께 하고 있다.
우리의 청소년 출판은 전교조로 해직된 교사들 때문에 분기점을 형성한다. 전교조 해직 교사들이 만든 민주교육실천협의회는 교육출판기획실이라는 이름으로 출판교육운동을 시작한다. 교육출판기획실장을 맡은 김진경은 『스스로를 비둘기라고 믿는 까치에게』 등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이들은 실천문학, 동녘 등에서 청소년 출판의 기획자이자 필자로 중요한 역할을 했고 이들이 독립하여 푸른나무를 설립하기도 했다. 내일을여는책의 황덕명 사장은 청소년 출판의 다른 줄기인 교육출판운동에 좀 더 천착한 사례다. <처음처럼>이란 교육잡지를 펴내며 삶과 합일되는 출판을 꿈꾸며 강화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청소년 출판을 지향하는 출판사 중에는 인문과학 출판사에서 방향을 선회한 경우가 있는 데, 사계절이 대표적이다. 사계절의 최옥미 팀장은 1318문고를 진행하며 세웠던 원칙과 방향을 이야기하며 국내에서 청소년문학의 아쉬움을 토로한다. 국내 창작물을 활성시켜야 한다는 명제아래 사계절문학상을 제정하는 등 분투 중인 모습을 살필 수 있다.
문지푸른책들을 기획한 숙명여대 최시한 교수는 청소년 출판을 진행하며 겪은 시행착오 끝에 아예 집필 계약 당시 계약서 외에 초고의 일부를 상의하고 수정하는 것에 대한 동의를 구하는 '집필과 발간에 관한 약속'이라는 글에 서명을 받고 있다고 한다.
김영사의?앗?시리즈, 동아시아의 『과학콘서트』, 나랏말의?국어시간에 고전읽기?시리즈 등의 기획 사례를 통해서 청소년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출판사의 새로운 시각을 살필 수 있다. 에듀테인먼트를 지향한?앗?시리즈나 컴퓨터 게임의 빠른 속도에 익숙한 청소년에게 <개그 콘서트>가 어필하는 것을 눈여겨보고 기획적 모티브로 연결한 『과학콘서트』의 사례는 시사점이 크다.
국어시간에 고전읽기 시리즈를 디자인한 간텍스트의 조주연 실장은 편집자가 아닌 디자이너가 바라 본 청소년 도서 만들기의 사례를 증언한다. 텍스트 중심의 고전에서 벗어나 청소년들에게 새롭게 고전을 읽히는 방법론을 디자인적으로 시도한다. 이미지 디렉션을 통해 천편일률적이고 평면적인 고전의 상투성을 벗어나 춘향과 이몽령이 감정을 지닌 현재적 인물로 새롭게 살아나도록 시도했다. 고전이 과거의 것이 아니라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읽혀져야 한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의 청소년들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디자인 작업뿐만 아니라 청소년을 위한 책을 만드는 기본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3부 청소년 출판의 활성화를 위한 전제
청소년 출판의 현실과 기획 사례를 되짚어 보고 난 결론은 청소년 출판은 출판의 영역만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청소년 독서 활성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청소년이 책을 읽을 수 있는 시스템적 사고가 필요하다. 3부에서는 청소년 눈높이에 맞춘 글쓰기란 과연 어떤 것인지, 해외의 청소년 전문필자들의 사례는 어떤지를 살핀다. 또 사회적으로 청소년 독서운동이 어떻게 장려되고 있는지 해외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우리에게도 알려진 일본의 아침독서운동이 대표적이다. 1988년 치바현 후나바시 여고의 하야시 선생이 처음 시작한 아침독서운동은 지금은 12,009개교 시행하는 전국적 운동이 되었다. 후나바시 여고는 1지망에 실패한 학생들이 입학했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 사이에 낙오자라는 패배의식이 있었다. 하야시 선생은 자살기도로 양쪽 다리를 잃은 10대 소녀의 이야기를 한 학급 48명이 돌아가며 몇 줄 씩 읽게 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글을 읽다가 울음을 참지 못하는 학생들이 생겼고 어느 반에서나 같은 광경이 벌어졌다. 학생들이 활자를 읽고 감동했다는 사실에서 희망의 싹을 보고 시작한 것이 바로 아침의 독서운동이다.
청소년 도서상에 관해서는 프랑스에서 고등학생이 뽑는 공쿠르 상과 독일 청소년 문학상을 살펴봤다. 시상이 목적이 아니라 독서를 장려하기 위해 후보작의 선정과 시상까지를 1년 동안 연중행사로 기획, 이벤트화하여 부모와 교사 그리고 언론이 도서에 대해 토론하고 보도하고 결국 그 영향이 청소년에게 미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영국, 독일 등에서는 독서교육이 제도권 교육 내에서 어떻게 시행되고 있는지를 살피고자 외국에서 받은 교육 경험을 ?나는 이렇게 교육받았다?라는 제목으로 실었다. 생극중학교 2학년 강지성의 독서교육 경험기도 실어 우리와 외국의 사례를 같이 살필 수 있다.

4부 왜 읽어야 하나, 어떻게 읽어야 하나, 무엇을 읽어야 하나
청소년 독서환경에 대하여 책벌레를 자처하는 어른들이 모여 자신이 경험을 바탕으로 격의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현황과 대안을 찾아봤다. 만화방에서 대중소설을 읽었던 것이 독서의 시작으로 지금도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설가 김연수, 고등학교 때 축구공과 책만 끼고 살았다는 철학자 탁석산, 『장충동 김씨를 위한 책 이야기』를 펴낸 전사섭, 휴대폰 요금을 내느니 차라리 책을 더 사겠다는 출판 칼럼니스트 최성일, 국내 유일의 도서평론가를 자임하는 이권우가 당사자들이다.
이들은 꼭 책만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독서란 삶을 음미하고 반추하게 하는 매체며,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배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들은 현장 교사들이 교양주의와 문화주의라는 잣대로 책을 권할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면, 밖에 있는 이들은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추천도서 목록을 제공해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야 한다는 반성에 이르기도 한다.
결국 김연수, 이권우, 전사섭, 최성일은 자신의 독서경험을 되살려 청소년들을 유혹할 수 있는 "교사라면 결코 추천하지 못할 100권의 책"을 고르고 선정의 이유를 달았다. 자신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책인 만큼 선정의 변도 매혹적이다. 김연수는 『기형도 전집』을 추천

디지털 혁명기를 맞이해 출판은 다양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납활자나 사식활자 시대와 비교할 때 활자의 크기나 이미지를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의 편집자는 교정?교열 뿐만 아니라 편집?디자인적 안목까지 요구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자 역시 과거처럼 책을 읽는데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독자 스스로 발신자가 되어 저자의 역할뿐만 아니라 편집자의 역할도 겸할 수 있는 시대다. 이처럼 출판 조직과 업무의 통합이 이뤄지며 출판인들에게 페뎀적 사고가 요구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페뎀이란 기획Planning, 생산Editing, 디자인Design, 마케팅Marketing의 첫머리를 딴 조어다. 다시 말해 이제 출판인이라면 자신이 기획자라는 사실 혹은 디자이너라는 사실에 안주하지 말고 기획, 생산, 디자인, 마케팅을 통합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페뎀적 안목을 키워나가야 한다.

<교양으로서의 독서가 붕괴돼><br/>물론 이렇게 독서가 대중적 의미로 확산되며 보편화된 것이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서구에서는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발명하면서 소수의 사람들만이 읽던 책을 모든 사람들이 읽는 독서혁명이 일어난다. 18세기에 이르면 한 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던 '집중적 독서'에서 여러 권의 책을 읽고 버리는 '분산적 독서'로 독서의 형태가 바뀌며 대중이 열광적으로 독서에 빠져든다. 그 시기 도서관의 발전 역시 대중의 취미독서를 가능하게 했다. <br/>일본은 19세기 메이지유신으로 모든 사람이 문명개화에 참여하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된 것이 독서의 대중화를 가능하게했다. 근대성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국민 구성원이 균질한 지식을 공유해야 국가가 부강해지고 개인이 더 나은 삶을 영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염가의 문학전집이 선보였던 1920년대에 이르러 독서혁명이 일어났다. 미국에서는 1930년대에 일어난 페이퍼백 혁명이 독서의 대중화를 부추켰다. <br/>다시 말해 독서습관이란 "지적권위를 상징하던 대학이나 학교의 규범, 시민적 교양으로 성숙되어 온 민주주의의 규범아래 지탱되어" 왔던 것이다. 구텐베르크 이래 500년 이상 지속되어온 책 문화의 전통은 사회전체를 지배하는 교양의 전통이었던 것이다. <br/>그러나 우리는 인쇄술이야 일찌감치 발명되었지만 근대적 의미의 국민이 되기 위한 독서 경험 다시 말해서 교양으로서의 독서 혹은 독서혁명을 경험하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일본이나 유럽과는 사정이 다르다. 우리 역시 1880년부터 1910년까지 근대성이 요구되는 시기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지식의 균질성을 이루지 못해 근대국가 형성에 실패했으며, 독서의 혁명 또한 겪지 못했다. 우리에게 공부나 독서는 경쟁에서 이겨 지위와 힘을 얻는 수단일 뿐이라는 그릇된 관념과 전근대적 관습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다.<br/>물론 당위 혹은 규범으로 여겨졌던 독서의 전통은 독서 혁명을 경험한 나라에서조차 붕괴되고 있다. 대중 사회의 확대에 따라 책의 상품화와 독서의 소비화는 가속화되고 있다. 그리고 여가활동이나 문화활동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차원에서 인식되었던 독서는 다매체 시대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원하는 것을 읽는 자기 중심적인 독서일 뿐이다. <br/>그나마 다행이라면 유아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어린이들의 독서환경이나 출판환경 그리고 초등학생들의 독서량이 높은 편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는 유?소년기에 유지되던 독서습관은 찾아보기 어렵게 된다. <br/>사토 마나부는 <책과 컴퓨터>에서 이런 청소년들이 독서이탈의 이유를 대략 4가지 정도로 들고 있다. <br/>첫째, 시민적 교양이 중요하거나 학교가 권위를 갖던 전통이 사라졌기 때문이다.<br/>둘째, 학교교육의 붕괴를 의미한다. 청소년기의 학생들이 책과 멀어진다는 사실은 학교의 규범과 기능의 붕괴를 의미한다. 즉 학교 교육의 중심목적은 문자문화와 학생을 연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에 다니면 다닐수록 독서에서 멀어지는 현상은 학교 교육의 핵심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br/>셋째, 생활시간이 변화했다. 학원에 소비하는 시간, TV시청이나 게임 등으로 차분하게 독서에 열중할 시간이 줄어들었다. <br/>넷째, 청소년들이 학습의 의미와 자기의 가능성을 잃고 공부로부터 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현상은 과도한 경쟁 교육에 의해 압축된 고도성장을 이뤄낸 일본이나 한국 같은 나라에서 두드러진다. 경쟁위주의 과도한 입시중심의 교육이 오히려 청소년들을 공부로부터, 독서로부터 이탈시키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br/><br/><청소년 독서는 계몽이 아닌 유혹과 설득으로><br/>초등학생 때는 한 달에 열 권 정도씩 책을 읽던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면 한 달에 2권 이하로, 고등학생이 되면 그 절반으로 독서량이 감소하는 것이 우리 청소년들의 독서실태다.<br/>청소년들을 다시 책으로 유인하기 위한 방법론은 규범이나 당위로서 혹은 교양시민이 되기 위해 독서를 주장할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 우선은 부모 혹은 교사의 자발성이 요구된다. 독서 세태 조사를 하면 대부분 어린이나 청소년의 독서성향은 부모나 교사의 독서선호도와 높은 상관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런 자발성만으로 청소년들의 독서이탈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청소년 독서의 문제는 사회 시스템 내에서 이해되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북페뎀03_청소년 출판』에서는 청소년 출판의 지향성을 다음과 같이 살핀다. <br/>청소년 출판의 활성화를 통해 우리가 이뤄내지 못한 교양적 책읽기를 시도해 볼 수 있다. 청소년책은 특성상 교양적 독서의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 문학과지성사에서 문지푸른책을 기획한 숙명여대 최시한 교수는 청소년 출판이란 중간책의 개념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간책이란 전문적인 학술도서와 어린이 책의 중간 단계에 놓인 책이다. 논리, 전문성, 서술방식, 문체 등의 난이도가 중간 수준으로 지식과 정보를 대중화하고 교양인으로 주체적으로 성장하는 것을 도울 수 있는 책이다. 청소년 출판의 지향점이다.<br/>또한 계몽이 아닌 청소년들을 유혹하고 설득할 수 있는 방법론이 청소년들을 위한 책 속에서 발휘되어야 한다. 도서평론가 이권우는 청소년들이 어떤 책을 읽든지 칭찬해 주고, 계몽과 기획의 목록과는 다른, 아이들을 유혹하고 설득할 수 있는 목록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독서활동은 경험과 상상의 확장이고 교과과정에 정해진 틀을 벗어나는 것이 독서의 역할이기 때문에 오히려 독서행위에서만큼은 해방감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br/>청소년들의 독서는 출판의 영역을 넘어서 독서운동 혹은 사회적 시스템 안에서 함께 고민해야 한다. 철학자 탁석산은 정규 교과과정에 독서를 편입시키자고 주장한다. 수학의 미분,적분은 사회에 나와 써먹을 기회가 없지만 책 읽는 법을 가르치면 일의 논리구조를 알게 되고 그러면 사회에 나와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독서교육이 지금처럼 제도권과 비 제도권에 한 발씩 걸친 모호한 위치에 있을 것이 아니라 제도권으로 진입해 독서교육을 시킬 수 있어야 하고 그래서 방학 때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평소에 책 읽고 방학 때는 책 읽지 말고 놀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어야 한다.

청소년기의 독서경험은 성인까지 이어진다<br/>자신의 독서경험을 말하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 특히 사춘기 시절에 겪었던 위험하고 감미로운 독서체험은 즐거움이다. 아버지 혹은 누나나 오빠의 책장에서 몰래 꺼낸 책을 두서없이 읽어나가던 일, 수업을 빼먹고 어딘가에 틀어박혀 책을 읽었던 경험은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을 일화들이다. <br/>『독서의 역사』를 쓴 알베르토 망구엘은 "독서는 나에게 은둔의 구실을 제공하거나, 적어도 어린 시절 내내 나를 짓눌렀던 고독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역할을 했다. 방바닥에서 두발을 갈고리 모양으로 구부려 의자 밑으로 박은 채 배를 깔고 엎드려 책을 읽는 재미란…. 그때 내가 외로움을 느꼈다는 기억은 전혀 없다."는 고백을 한다. 『한국의 정체성』을 쓴 탁석산은 고등학교 때 1주일 동안 잠은 거의 안 자고 붙들고 읽었던 네 권 짜리 『아라비안 나이트』를 기억한다. 아직도 인간의 모든 이야기가 들어 있는 『아라비안 나이트』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꾸며 보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고백한다. 『굳빠이 이상』을 쓴 소설가 김연수는 만화방에서 이원수의 기업소설, 김성동의 추리소설, 한수산의 연애소설을 읽다가 서점에 가기 시작했다. 책을 읽다가 궁금한 것이 많았는데 대답해 줄 사람이 없어 책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와 적응하기 어려웠던 시절에도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은 살아가는 방법을 책을 통해 배웠다. <br/>도쿄대학 대학원 교육학과 교수인 사토 마나부는 중학생 시절 이불 속에서 나츠메 소세키나 아쿠다카와 류노스케의 전집을 독파했고 아버지의 마르크스 책을 읽기도 하고, 타나자키 준이치로의 소설에 나오는 어른들의 性을 상상하기도 했다.<br/>김연수나 탁석산처럼 추리소설이건 연애소설이건 간에 청소년기에 책에 푹 빠졌던 독서경험은 대부분 성인까지 이어지는 기나긴 독서편력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