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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2년 02월 2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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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안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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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 /PC(Mac) |
파일/용량 | EPUB(DRM) | 61.87MB 파일/용량 안내 |
ISBN13 | 9788954685474 |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0월 31일
2024년 10월 18일 ~ 2024년 10월 18일
2023년 02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상시
133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음식은 엄마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엄마는 겉보기엔 지독한 잔소리꾼이었지만 - 자신의 억지스러운 기대에 부응하도록 나를 끊임없이 몰아붙였던 탓에 - 내 입맛에 꼭 맞춰 점심 도시락을 싸주거나 밥상을 차려줄 때만큼은 엄마가 나를 얼마나 끔찍이 여기는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p11
우리는 서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얼굴에 다 쓰여 있다. 저마다 조용히 앉아서 점심을 먹지만 이곳에 온 이유는 다 같다. 모두가 고향의 한 조각을, 우리 자신의 한 조각을 찾고 있다. 우리가 주문하는 음식과 우리가 구입하는 재료에서 그걸 맛보고 싶어한다. 허기를 채우고 나면 우리는 각자 제 기숙사 방으로, 교외의 부엌으로 흩어져서, 열심히 장 본 것을 부려놓는다. 그리고 이 긴 여정 없이는 만들지 못했을 음식을 살뜰히 재현한다. 우리가 찾는 것은 트레이더 조 매장에는 없다. H마트는, 아무데서도 구할 수 없는 것을 여기서는 반드시 구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웅기중기 모인 향기로운 공간이다.
-p21
어쩌면 엄마는 그동안 내가 원치 않는 무언가로 나를 만들어보려 한 자신의 노력이 결국 실패했음을 인정하고 더 이상 노력하기를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어차피 내가 이런 식으론 1년도 더 못 버티고 결국 엄마가 옳았다고 생각할 거라 믿고 전략을 더 세련된 걸로 바꿨는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우리 사이에 벌어진 5천 킬로미터라는 거리 때문에 그저 나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기뻤는지 모를 일이다. 아니 어쩌면, 내가 나만의 길을 개척하고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찾았음을 비로소 받아들이고, 마침내 내가 어떻게든 잘해낼 거라고 믿게 된 건지도 모른다.
-p84
엄마는 죽어가면서도 나를 위로했다. 엄마의 모성이, 엄마가 느꼈을 테지만 능숙하게 숨겼을 무진장한 공포를 제압해 버린 것이다. 엄마는 무슨 일이든 어찌어찌 잘 풀릴 거라고 내게 말해줄 수 있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었다. 난파선이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담담히 지켜보고 있는 태풍의 눈과도 같았다.
-p203
'사랑스럽다'는 말은 엄마가 굉장히 좋아하는 형용사였다. 엄마는 나를 딱 한 단어로만 표현해야 한다면 '사랑스럽다'는 말을 고를 거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엄마에게는 그 단어가 이상적인 아름다움과 열정을 아우르는 말처럼 느껴졌나보다. 그것은 엄마의 묘비명에 새겨넣기에도 딱 알맞은 단어였다. 자애로운 엄마는 남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지만 사랑스러운 엄마는 온전히 자신만의 매력을 지닌 사람이니까.
-p268
그러니까 내가 엄마를 이해하지 못헀듯이 엄마 역시 여태 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는 세대와 문화와 언어가 갈라놓은 단층선 반대편에 각각 던져져 기준점도 없이 죽도록 헤맸기만 했을 뿐 서로가 서로의 기대를 생판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겨우 요 몇 년 전에 와서야 우리는 불가사의한 문을 열어 서로를 수용할 심리적 공간을 만들어내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아보려고 탐색했다. 그러다 가장 풍성한 이해의 과실을 거둬들여야 했을 시간들이 그만 난폭하게 잘려나가고 말았고, 이제 나는 열쇠도 없이 남은 비밀들을 혼자서 해독해내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p285
한국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인디 팝 밴드 가수이자 기타리스트인 미셸 자우너가 쓴 'H마트에서 울다'를 읽으면서 한참을 소리 죽여 울었다. 엄마와 자우너 사이의 이야기를 가감 없고 진솔하게 적어내려갔기 때문인데, 모녀 사이라면 당연히 느끼게 되는 여러 겹의 감정들이 글자들로 풀어헤쳐져 있다. '엄마'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힘은 나이를 먹어갈 수록 강해진다. 내 엄마가 약해지게 될 때 그 동안 수없이 불렀고 내뱉었던 '엄마'라는 단어는 힘의 크기가 진해지고 굵어진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엄마'라고 부르는 음성에 빛나는 힘이 실려 있어 '엄마'를 힘나게 하는 것 중 하나는 '엄마'라는 단어라는 것을 느낀다. 내 엄마 또한 내가 부르는 '엄마' 소리에 힘을 얻고 사셨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바라는 자식의 미래와 자식 스스로가 그리는 미래상이 부딪칠 때 극심한 갈등이 찾아온다. 누군가가 명확한 해결책을 가졌는지, 갈등을 풀 방법은 무엇인지 아무도 모른 채 그 갈등은 사라지기도 하고 지속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서로에게 너무나 힘든 갈등임은 분명하다. 갈등의 원인이 되었던 씨앗을 이해하게 되었을 때 전보다 성장했구나 혹은 어른이 되었구나 라는 말을 듣게 되고, 스스로도 느끼게 된다. 슬픈 것은, 갈등이 해결되지 않았을 때, 감정의 불씨가 사그라지지 않았을 때 관계를 되돌이킬 수 없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다.
자우너가 엄마와 극심한 갈등을 겪었던 청소년기 이후 독립을 해 생활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는 엄마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자우너는 엄마 곁에서 시간을 보내며 엄마를 보살피는데 결국 엄마의 죽음까지 겪게 된다. 자우너가 느꼈던 감정이 고스란히 종이에 실렸다. 글자들이 모여 자우너의 이야기를 전해주는데,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을 이야기라 (자식과 부모 중 한 쪽의 위치에 있다면) 눈물이 났다. 특히 자우너의 엄마처럼 내 엄마도 자식들에게 먹을 것을 만들어주는 데 꽤 정성을 들였던 터라 엄마가 해 준 음식들을 보면 그 때의 후각이 살아나는 기분이 든다. 문화권이 달랐던 엄마가 만들어준 한국의 음식들이 자우너에게는 특별했을 것 같다. 그래서 한국의 식자재들을 파는 H마트만 가면 엄마가 생각나겠구나 하는. 음식의 힘은 생각보다 강하다. 익숙한 냄새, 익숙한 요리는 과거의 그 때로 되돌아가게 한다. 자우너가 돌아가신 엄마를 그리워하는 방식으로 엄마가 만들어줬던 음식을 직접 요리해보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자우너의 엄마가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 돌아가시기까지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서 마음이 아팠다. 누군가는 겪어야 할 일이고 나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 그랬다. 이 시간이 오리란 것을 그 누가 예상하며 살아갈까. 사소한 말로 시작한 싸움, 서로에게 상처를 줬던 갈등 등이 영원한 이별 앞에서 사그라지지 않을 테지. 그래서 더 저릿한 마음으로 이별을 겪을 테고.
'H마트에서 울다', 이 책 읽어보시기를, 간곡히 추천한다. '엄마'가 되신 분들, '엄마'를 사랑하는 분들, '엄마'에게 안녕을 묻고 싶은 분들 모두 자우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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