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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3년 11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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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60쪽 | 458g | 135*210*30mm |
ISBN13 | 9788901276533 |
ISBN10 | 89012765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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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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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위로 올라가는 것만이 삶의 방식인 줄 믿었다. 다행이도 노력한 만큼 성과를 거두었고, 부끄러움 없이 성공이라 말할 수 있었다. 뜻하지 않은 불행과 마주하면서부터 저자의 삶은 달라졌다. 성장 과정을 공유했던 형제가 서른도 채 되기 전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행복한 가정을 꾸린 형의 앞날이 탄탄대로일 줄로만 알았는데 허무했다. 동시에, 이제까지 자신의 삶도 왠지 그릇된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밀려왔다. 어차피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다면 거듭되는 경쟁에서 이기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돌이켜 보면 너무 바삐 살았다.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누리기보단 자신의 안위를 위해 달렸고, 그 과정에서 신경 써야 하는 일이 무척 많았다. 다 내려놓고 싶었다. 세상 풍파로부터 한 걸음 벗어나기 위해 저자는 가장 단순한 직업을 택했다. 그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이 됐다. 각종 유물과 예술품이 가득 찬 곳을 지키는 게 그에게 주어진 임무였다. 매일 아침마다 근무 장소를 지정 받았다. 어떤 날은 의미를 도통 읽어내기 힘든 구석기 시대를 거닐었고, 다음 날엔 아직 과거가 되지 않은 현대의 화려함에 취했다. 하루는 이집트와 그리스를 갔고, 이튿날엔 미국으로 향했다. 풍성한 시공을 오가는 그는 역설적이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이 책은 상처의 치유에 나선 한 방랑자의 기록과도 같았다.
나였으면 어떠했을까. 끊임없는 비교 끝에 내 자신의 보잘 것 없음에 눈 뜨는 일이 잦은 성향의 소유자이기에, 그리 쉬이 모든 걸 내려놓진 못했을 거 같다. 새로이 접한 경비원의 세계는 예상했던 바대로 단조로움의 극치였다. 싸구려 티가 나는 제복을 착용한 후 딱딱한 바닥에 서서 몇 시간을 서 있었다. 운이 좋다면 카페트가 깔려 있어 폭신함을 느끼기도 했지만, 마냥 그런 친절을 기대해선 안 됐다.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혹 그들이 해서는 아니 될 행동을 보일 경우 제재하는 게 임무의 전부였다. 상대가 먼저 말을 거는 경우도 있긴 했지만, 대개 경비원은 사람 아닌 배경의 일환처럼 여겨졌다. 사람들이 누리는, 나타났다 사라지는 자유가 저자에겐 없었다. 대신 침묵은 의외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작품들이 말을 건넸다. 절대고독의 늪에서 들려오는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저자는 조금씩 회복의 길로 들어섰다.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다채로운 모습 또한 저자에겐 의미로 다가왔다. 자신이 떠나온 평범한 일상이 저들에겐 존재했다. 자신도 언젠가는 돌아가야만 하는 그 무언가를 그들에게서 발견했다. 이윽고 그는 더 이상의 회피는 필요 없음을 깨달았다. 형을 잃음으로써 비롯된 상처 위에 새로운 나날들을 쌓아 올릴 수 있는 용기가 생겼음을 말이다. 태어난 두 아이에 대한 고려도 필요했다. 아무리 근무 장소가 미술관일지라도 경비원은 경비원이었다. 주말에 쉬는 건 불가였고, 수입도 아마 그리 넉넉하진 못했을 거다. 얼핏 보았는데, 아이를 돌보고자 육아 휴직을 한 기간 동안 무급이었다고 했다. 사실 그가 택한 다음 직업이 수입 면에서 경비원보다 나았는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다만, 두 다리로 세상을 누비며 이야기를 발굴해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새 직업의 특성은 다시 세상에 설 용기를 낸 그에게 부합하는 듯했다.
아마도 저자는 글을 쓰는 내내 자신의 내면을 집중했을 것이다. 물론 저자의 의도도 충분히 내 마음에 와 닿았다. 허나 나에게 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긴 건 경비원의 세계였다. 그들의 출신은 제각각이었다. 아프리카에 위치한 낯선 국명이 어디든 정착하기 위한 그들의 격렬한 투쟁을 연상시켰다. 경비원 세계에서 벗어나는 게 꿈이라는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제3 세계 출신 노동자들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그들에게 말을 건다면 왠지 끝나지 않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종이 위의 무엇 하나 그냥 그린 건 없다. 한 획 한 획마다 어려운 임무를 완수하고자 하는 에너지와 야심과 헌신이 깃들어 있다. 미켈란젤로는 빈 종이 한 장만 있으면 모든 근심을 잊고 혼신의 힘을 바쳐 주어진 과제를 해냈고, 씁쓸한 불평 따위는 일이 끝난 후에나 하는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어려운 일을 해내는데 이보다 나은 방법이 또 있을까?
4년의 작업 끝에 천장화가 완성되자 “온 세상이 그 작품을 보려고 몰려오는 소리가 들린다”라고 그의 동시대인은 전하지만 미켈란젤로는 호들갑을 떨지 않았다. “그동안 그려오던 예배당 천장화 작업을 끝냈습니다. 교황이 매우 만족했습니다”라고 그의 아버지에게 편지로 전했을 뿐이다. 그런 다음 덧붙였다. “다른 일들을 바랐던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건 제가 시대를 잘못 타고 난 때문인 듯합니다. 지금은 제가 하는 예술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은 시대예요.”
오늘날 우리는 이 “호의적이지 않은” 시대를 하이 르네상스 혹은 전성기 르네상스라고 부른다.
-p285,287
거의 완벽한 직장이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제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이상 완벽한 직장이 아닐지도 몰랐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이 전시실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하던 한때가 있었고, 명상과 같은 고요함을 감사한 마음으로 음미했다. 그러나 요즘은 생각이 미술관 밖으로 휘리릭 날아가서 몸과 마음이 움찔거리고 안절부절못하기 일쑤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고요하고 정돈된 환경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경기장 밖에 서서 게임을 잠자코 지켜보지 않아도 된다. 전시실을 찾는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들을 지켜보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이 큰 도시와 넓은 세상을 어떻게 만나게 해줄지를 계획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두려우면서도 흥분되는 미래다. 솔직히 말해서 코딱지만 한 우리 집이 혼란에 빠지지 않게 하는 일만으로도 벅차고, 바깥 세상과 다양한 관계를 맺기 위해 더 강인하고 용감해질 방법을 배우고 싶다. -p306,307
이 책의 저자 패트릭 브링리는 대학 졸업 후 "뉴요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커리어를 쌓아가던 젊은 청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암으로 투병하던 친형이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맞게 된다. 이를 계기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지독한 무력감에 빠진 끝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며 스스로를 놓아두기로 마음먹는다.
그렇게 2008년 가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두번째 인생을 시작한 저자는 매일 다른 전시실에서 최소 여덟시간씩 조용히 서서 수천 년의 시간이 담긴 고대 유물과 건축물들, 그리고 거장들이 남긴 경이로운 예술 작품들과 마주하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동시에 미술관을 찾는 각양각색의 관람객들을 관찰하고 푸른 제복 아래 저마다 사연을 지닌 동료 경비원들과 연대하며 차츰 삶과 죽음, 일상과 예술의 의미를 하나씩 발견해 나간다.
저자는 말한다. "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는 침묵 속에서 빙빙돌고, 서성거리고, 다시 돌아가고, 교감하고, 눈을들어 아름다운 것들을 보면서 슬픔과 달콤함만을 느끼는 것이 허락되었다". 사랑하는 형을 잃은 슬픔을 아름다운 예술작품앞에서 그저 감탄함으로써 그 슬픔을 견뎌가는 저자의 치유의 시간들을 이 책은 다양한 작품들과 그리고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기록하고 있다.
누군가를 잃고 나면 삶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한동안 그 구멍 안에 몸을 움츠리고 들어가 있게 된다. 저자 패트릭은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일하면서 메트라는 웅장한 대성당과 그의 상실로 인한 구멍을 하나로 융합시켜 일상의 리듬과는 먼 곳에 머물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영원히 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 또한 깨닫게 된다. 박물관을 방문하는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만들어지는 운율을 깨닫게 되고,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들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해외 여행을 할때 빠지지 않는 코스로 우리는 그 나라의 유명한 대형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방문하곤 한다. 그곳의 수많은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한번도 그 박물관의 경비원은 염두에 두고 볼 기회는 없었던 것 같다. 그 곳엔 예술을 사랑하고 그 작품들 속에 함께 살아가는 많은 패트릭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을텐데 말이다. 뿐만 아니라 예술 작품의 감상에 있어서도 감탄보다는 숙제처럼 숨가쁘게 지나가지 않았던가 하는 후회가 되었다. 만약 언젠가 박물관을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름다운 예술작품에 대한 충분한 '경배'와 함께 그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 공간의 나와 같은 또 다른 관람객들도 한번쯤 눈여겨보면서, 그리고 패트릭과 같은 경비원들도 자꾸 찾아보게 될 것 같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걸작들만큼이나 감동적인 통찰로 가득차있으며 관객으로서 미처 알지 못했던 작품들 이면의 이야기와 이 이야기를 지키는 사람의 삶을 관조할 수 있는 더없이 아름다운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박물관이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된 것 또한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예술과의 만남에서든 첫 단계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한다. 그저 지켜봐야 한다. 자신의 눈에게 작품의 모든 것을 흡수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예술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가끔 나는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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