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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09년 07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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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420쪽 | 538g | 148*210*30mm |
ISBN13 | 9788959133918 |
ISBN10 | 89591339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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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 작가와의 첫만남은 한겨례문학상을 받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통해서였다. 하기 싫은 일도 돈때문에 억지로 하고 있고 하고 싶은 일은 돈때문에 마지막 순위로 미룬 나에게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아도 돼”라면 악마의 유혹처럼 달콤하게 속삭이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도 치기 힘든 공은 치기 싫고 잡기 힘든 공은 잡기 싫은데 현실은 내 의지와 무관하게 항상 반대로만 움직여 가고 소설속 주인공처럼 현실을 박차고 나갈 용기가 없는 나에게 카타르시스적 만족감을 주었다. 내가 생업을 포기하고 그들처럼 살 순 없지만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 템포만 느리게 살면서 일에 미쳤던 자신도 돌아보고 그동안 무관심했던 주위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시선과 관심을 보내야 겠다 마음 먹었다.(역시나,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현실로 복귀했다..ㅠ.ㅠ)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받은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박민규 작가는 관심 작가 목록 0순위로 등급했다. 첫인상이 좋은 사람은 오래 기억되고 다시 만나고 싶은 것처럼 박민규 작가와 첫만남이 너무 강렬하고 좋았기 때문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책을 구매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특이하면서도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우리가 지금까지 사랑을 주제로 했던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대부분 남자들의 가슴을 달뜨게 하는 아름다운 여배우들의 차지였다. 그러한 비주얼한 영상 때문인지 나 자신도 책을 읽으며 상상하는 대부분의 여주인공은 으레 이쁘고 청순하고 가련한 여배우들의 얼굴을 상상하게 된다. 나도 남자인지라 어쩔 수 없는가 보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의 표지에 못생기고 어눌한 표정의 시녀를 전면에 배치한 덕에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못생긴 그녀'와 표지의 못생긴 시녀가 자연스럽게 오버랩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나라면 정말 그렇게 못생긴 여자를 사랑할 수 있을까?" 질문을 던져보지만 나의 대답은 역시나 늘 '아니오' 였다. 내가 결코 남들보다 잘나서도 아니고 아름다운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본능 때문이다. 나이만 들었지 아직 철이 덜든 내게 못생긴 여자에게 그런 애틋한 감정이 나오는 것은 현실성 없는 소설에서나 가능한 일이며, 저 주인공은 분명 남자가 아니라 화성에서 온 시력나쁜 외계인이겠지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서도 계속 읽었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단지 못생긴 여자와의 러브 스토리를 주제로한 소설로 여자는 결혼하면 다 똑같으니 성격좋은 여자와 결혼하라는 유부남들의 충고처럼 겉으로 보이는 외면의 아름다움보다 내면의 아름다움을 보라는 교훈적 연애 소설이라면 나는 결코 본 책을 추천하고 싶지 않다. 그런 이야기에 몇 백 페이지를 할애하는 것 자체가 종이값이 아깝다고 생각한다 . 책의 마지막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부러워하지 말기>라는 소제목이 달리 작가의 말을 읽기전까지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그냥 그렇고 그런 작품이었고 박민규에 대한 실망도 무척 컸다. 물론, 박민규 작가의 행간을 읽은 독자라면 나같은 우를 범하지 않았으리라 생각된다. 작가의 말을 읽은 후에 내가 느낀 감정은 자신에 대한 부끄러움이었다. 내가 그렇게 욕하고 감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못생긴 그녀가 바로 나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안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다.
"당신은 행복하십니까?" 라는 물음에 쉽게 "나는 정말 행복합니다"라고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가 행복할 수 없는 이유는 스스로 자족하지 못하고 부와 권력을 손에 쥔 잘나가는 사람들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 박탈감 때문이다. 소나타를 타고 다녀도 BMW 외체 차틀 타고 다니는사람들 때문에, 서울에 내 집이 있어도 강남에 100평이 넘는 집에 사는 사람들 때문에, 연봉 5천만원을 받아도 연봉 1억을 받는 사람들 때문에, 화장을 하고 큰돈 들여 성형 수술을 해도 원판이 이쁜 사람들 때문에, 10억의 자산이 있어도 100억이 넘는 자산이 있는 사람들 때문에.. 때문에... 때문에...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고 그들을 부러워하는 것이 이 미친 사회를 유지하는 원동력이라고 박민규는 말하고 있다.
부를 거머쥔 극소수의 인간이 그렇지 못한 절대다수에 군림하는 현대 자본주의 부조리한 시스템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박민규는 우리가 부러워하는 가치들을 <시시하게>보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길 제안한다. 우리가 부러워하면 할 수록 극소수 집단의 견고한 철옹성의 벽은 점점 높아지기 때문에 우리가 부러워 하는 가치를 <시시하게> 만들어 거들떠 보지도 않으면 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처럼 보이지만 절대다수인 우리 모두가 힘을 합치면 세상은 분명 변화될 거라 박민규는 믿고 있으며 우리에게 함께 동참하기를 바라고 있다.(대한민국 상위 1%에 포함되는 독자는 책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저한테 연락주세요 친해지고 싶습니다.흐흐흐)
부와 권력에서 소외된 절대다수를 대변하는 박민규작가의 생각에 동감하면서도 여전히 부와 권력을 쥔 극소수의 인간들이 마냥 부럽고 그들의 철옹성에 들어가길 꿈꾸는 나는 배반을 꿈꾸는 변절자가 된 기분이라 가슴 한켠이 휑해진다....역시, 난 네오 아담이 될 수 없는 세속적인 인간임이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다..ㅠ.ㅠ
표지 이미지로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을 사용한 점은 탁월한 선택이라 생각된다. 어느 미술 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를 소설에 비유하면 1인칭, 2인칭, 3인칭이 존재하는 독특한 작품이라고 한다. 구도적으로 정중앙에 위치한 마리가리타 왕녀를 주인공으로 본다면 3인칭 시점으로 볼 수 있다. 오른편에 팔레트를 들고 서있는 화가는 벨라스케스 자신이기 때문에 1인칭 시점으로 볼 수 도 있다. 그렇다면 2인칭은 어디에 있을까? 2인칭은 비밀을 마리가리타 공주 뒤편에 걸린 거울에 있다. 거울에 비친 2명은 바로 왕과 왕비다. 즉, 『시녀들』은 국왕 내외가 바라보는 시각에서 그려졌기 때문에 2인칭이 될 수 있다. 박민규 작가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의 결말을 하나로 하지 않고 여러 개로 만든점이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표지 이미지와 잘 어울린다. 나 자신도 결말을 선택할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어 박민규 작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사랑한다는 건,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과 같다
-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욕망은 시선을 통해 증폭된다. 당신의 시야가 가려진다면, 당신이 사랑에 빠질 가능성은 현저히 줄어든다. 시선은 늘 욕망의 창구이며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동인이다. 수많은 소설과 영화들이 아름다운 주인공을 배치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을 지닌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의 아름다움은 가끔씩 서사를 압도하는 일도 생긴다. 그러니까 올리비아 핫세나 알리 맥그로우의 경우처럼. 박민규의 신작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예담, 2009)는 욕망과 시선의 법칙을 거부한다. 드라마에 흔히 등장하는 꽃미남과 섹시한 미녀도 존재하지 않는다. 재벌 2세가 등장해서 결핍감을 자극하는 판타지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어떤 연애 서사보다 아름답다.
소설은 세 인물을 축으로 진행된다. 가족을 버린 영화배우 아버지 때문에 온전히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스무 살의 ‘나’,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못생긴 여자인 ‘그녀’, 그리고 첩의 자식이라는 사실에 상처받은 채 마음을 닫은 냉소주의자 ‘요한’이 그들이다. 상처 입은 자는 자신과 비슷한 자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는 법이다. 버림 받은 기억을 지닌 나는 단지 못생겼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천대를 받는 그녀를 보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버림받은 어머니와 아픈 성장기를 보낸 기억 때문에 나는 그녀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한다. 사랑받았던 경험이 없었던 그녀는 자신을 누군가가 사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경계한다. 여기에 요한이 개입한다. 세상을 냉소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세상과 사람을 꿰뚫어볼 수 있는 눈을 지녔던 요한은 나와 그녀가 마음의 문을 열도록 도와준다. 자꾸만 머뭇거리는 나와 그녀에게 요한은 말한다.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전구와 같은 거야. 전기만 들어오면 누구라도 빛을 발하지,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신 거야. 그게 사랑이지. 인간은 누구나 하나의 극을 가진 전선과 같은 거야. 서로가 서로를 만나 서로의 영혼에 불을 밝히는 거지. 누구나 사랑을 원하면서도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 까닭은, 서로가 서로의 불 꺼진 모습만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야. 그래서 무시하는 거야.”(185쪽)
그들은 서로의 결핍과 아픈 기억을 보듬으면서 각자의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한다. 가혹한 시선에 시달리면서도 그들은 스스로를 위로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누군가를 간호하는 일”(214쪽)이라고. 그러나 서로를 '간호‘하던 그들의 행복한 나날은 오래가지 않는다. 요한의 자살시도와 나의 사고로 인하여 그들의 행복은 처참하게 깨지고, 다시 만나기 위해서 그들은 오랜 세월을 견디는 고통을 겪는다. 긴 그리움의 시간 뒤에는 놀라운 반전이 기다린다.
미디어와 ‘착한 책’들은 우리에게 자기 자신이 되라고 충고하지만 모든 것을 물화시키는 세계에서 그것은 요원하기만 하다. 사랑의 기술(작업의 방식)을 전파하고 ‘전 국민의 선수화’를 선도하는 책과 드라마와 광고, 영화 속의 풍경들은 실은 결핍감을 자극하여 소비를 유도하는 부드러운 세뇌인 경우가 많다. 요즘 사랑에서 요구되는 것은 소위 ‘쿨’한 자세이다. 아픔을 내색하거나 매달리면 지는 것이다, 마음을 내색하지 말고 태연하라. 이런 식의 ‘기술’과 시선을 끌기 위한 외적 치장들은 결국 스스로를 외롭게 만드는 행위이다. 사랑에 관한 담론이 넘쳐나는 세상에서 오히려 사랑은 사라져가고 쓸쓸함만이 가득하다. 이는 화려함과 안정만을 추구하는 세태와 무관하지 않다.
단 한번이라도 온전히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이 있는 자들은 자신의 삶을 타자의 시선에 의탁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은 바로 온전한 사랑했던, 사랑하려는 몸짓에서 시작된다. 시시해질 수밖에 없는 서로를 상상할 수 있는가. 상대의 부족한 부분을 상상과 희생으로 메울 수 있는가. 나는 당신 때문에 아직도 아프다며, 쿨하지 않게 다가설 수 있는가. 여기서 겪을 수 있는 초라함을 견딜 수 있는가. 소비를 위한 사랑이 넘치는 세계 속에서 외로운 당신에게, 이 책을 권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그래서 실은, 누군가를 상상하는 일이야.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그 인간을. 시간이 지나도 시시해지지 않게 미리, 상상해 주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상상이 새로운 현실이 될 수 있도록 서로가 서로를 희생해 가는 거야. 시시해질 자신의 삶을 버틸 수 없기 때문이지. 사랑받지 못하는 인간은 그래서 스스로를 견디지 못해.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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