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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0년 02월 2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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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90쪽 | 530g | 148*210*30mm |
ISBN13 | 9788932020006 |
ISBN10 | 8932020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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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30일 ~ 2024년 10월 31일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35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날마다 하늘이 어두워진다는 것에 대해서 그때 처음 생각했던 것 같아.
그 속에서 빛나는 점들이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_본문 174쪽
누군가 그랬다. 모든 소설은 허구지만 진실을 드러내기 위한 허구라고. 좋은 소설이란 그 허구를 통해 혼돈의 삶에 형태를 부여하기 위한 인공의 혼돈이 만들어 내는 조화는 아닐까. 그 말이 맞는다면 한강 님의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인공의 혼돈이 독자들의 삶에 흔적을 남긴다는 면에서 훌륭한 소설일 것이다. 주인공 정희의 과거에 의지해 과거인지 현재인지 뒤죽박죽 누군가의 머릿속에 들어갔다가 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책, 알 수 없는 의미들로 꽉 차 있는 암호처럼 하나하나 풀어나가야 할 것 같은 책, 한강 님의 <바람이 분다, 가라>를 읽고 인공의 혼돈이 주는 혼돈에 잠시 넋을 잃고 가만가만 삶의 의미들을 들여다본다.
그리하여 더더욱 우리가 삶에 처한 혼돈을 마주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켜 궁극에는 나는 누군가를 위해서 무엇을 내던질 수 있고, 무엇을 기록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 진실에 다가갈 수 있는지 묻는다. 순탄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니면서, 안녕하지도 않으면서 진실의 뒷면을 그 끝을 더듬어는 보았냐고 묻는 것 같았다.
백 번 양보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굳이 그 혼돈 속으로 들어가야 할 이유가 있다면 우리 존재의 가치에 대해 누군가의 치열한 삶과 죽음이 지리하게 증명해 보여주기 때문이고, 존재의 시작과 끝을 우리를 감싸고 숨 쉬고 있는 우주라는 과학적 신비와 비유를 통해 절묘하게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저자의 숨은 피와 땀이 단어 하나하나에 한 문장 한 문장, 간격과 쉼표와 마침표 사이에서 숨 쉬며 곳곳에서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네 번의 겨울을 이 소설과 함께 보냈다. 바람과 얼음, 붉게 튼 주먹의 계절.
이 소설 때문에, 여름에도 몸 여기저기 살얼음이 박힌 느낌이었다.
때로 이 소설을 내려놓고 서성였던 시간, 뒤척였던 시간,
어떻게든 부숴야 할 것을 부수며 나아가려던 시간 들을 이제는 돌아보지 말아야겠다."
_작가의 말 중에서
모든 별은 태어나서 존재하다가 죽는다. 인간의 몸을 이루는 모든 물질은 별로부터 왔다. 별들과 같은 생리와 운명을 배고 태어난 인간은 별들과 마찬가지로 존재하다가 죽는다.(........) 별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늙은 별이 터지며 나온 충격파가 주위에 있던 성간 구름을 수축시킨다. 자극받은 성간 구름은 계속 수축한다. 이 수축된 성간 구름이 별이 되기 위해서는 구름의 질량이 일정한 값보다 커야 한다. 이것이 중력 수축에 필요한 ‘진스의 임계질량’이다. 구름의 질량이 임계질량을 넘어서는 순간 별의 일생이 시작된다.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 본문 18쪽
소설은 친구 인주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그 진실을 파헤치는 주인공 정희의 의구심에서 시작한다. 세상에 남긴 모든 증거물이 인주가 자살했다고 말한다. 기구하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고 말한다. 하여 그에게 자살은 너무도 타당하고 자연스러운 수순이란 듯이. 부모의 이른 죽음이 그랬고, 유일한 피붙이였던 삼촌까지 고등학교 때 병으로 죽는다. 그를 둘러싼 죽음의 그림자, 삶의 무게는 오롯이 인주의 몫이었다. 인주에게 삶은 빛이 사라진 온통 어둠이었다. 다리를 다쳐 육상선수의 꿈을 포기해야 했고, 근 3년을 집에 갇힌 채 홀로 어둠을 견뎌야 했고, 이혼한 남편 사이에서 아이 양육권 다툼이 살아야 할 이유를 빼앗아가려고 할 때조차 꿋꿋하게 버텼던 삶이었다. 죽기로 결심한 정희를 여러 번 어둠에서 꺼내준 사람이 인주라서 자살할 이유가 없다고 정희는 믿었다. 누군가의 사인(死因)이 또 다른 누군가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며 끝없이 펼쳐질 거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정희여서였다.
그래서 진실을 쫓아 모든 것을 걸어야만 했을 것이다. 시작은 있지만 그 끝을 알 수 없는 게 우주라서 우주의 무한까지 끝없이 펼쳐지는 것이 우주의 생리이고 인간의 삶이기도 해서, 인주에게는 민서라는 새로운 우주가 있어서, 거짓 없이 투명하고 맑았던 인주의 삶이 자살이라는 거짓으로 버무려지도록 부서지도록 놔둘 수 없었을 것이다. 모든 별들이 태어나서 존재하다가 죽겠지만 별의 시작이 그렇듯 그렇게 쉽게 버티며 버텼던 별이 질 리가 없다. 영영 무(無)로 사라질 리가 없다.
어둠이 왜 어두운지 알기 위해 어둠을 들여다본 사람들이 있었다. 빛이 왜 밝은지 알기 위해 태양을 올려다본 사람들도 있었다. 실제로 뉴턴은 태양을 관측하다 홍채를 다쳤다. 별들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데 평생을 바쳤던 케플러는 올버스가 태어나기 전 이미 갈릴레오에게 장문의 논쟁적인 편지를 썼다. 우주의 시작이 없다면, 왜 밤하늘은 어두운 것입니까.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 본문 173쪽
다행인 건, 진실을 쫓아 우주를 탐험했던 수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우리가 그토록 궁금해했던 우주의 비밀이 어느 정도 풀렸다는 것이겠다. 물론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새로운 사실도 있고 미처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기도 하는 것처럼, 하지만 여전히 명확히 알 수 없는 그 미묘한 우주의 세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정희가 인주의 죽음의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그랬다. 명확하게 알게 된 것도, 진실에 다가갔다고 해서 그걸로 끝도 아니었고, 오히려 혼돈만이 허구의 삶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해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분명한 건, 누군가의 광기는 또 다른 광기와 이어져 또 다른 어둠을 생성하기도 또는 빛을 발하기도 하며 여전히 우리를 그 안에 태우고 자전과 공전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조화롭게. 마치 음악처럼 조화롭게. 별들의 궤도에 따라 변주하듯 그렇게.
그 수식은 마치 음악 같았어.
간결하고, 고유하고, 아름다웠어.
별들의 궤도가 저마다 그 음악을 변주하고 있다는 걸 믿을 수 없었어.
우주의 모든 것이 그 음악 속에 존재한다는 걸 잊을 수 없었어.
본문 173쪽
“성스러움이란 뭘까, 가끔 생각해. 이 세계에 없는 것.... 우묵하게 파이고 구멍 뚫린 윤곽으로만 가까스로 모습을 드러내는 어떤 것 아닐까. 장님처럼 우린 그 가장자릴 더듬으면서 걸어가는 것 아닐까. (.............) 인간을 믿을 수 없어질 때, 흉폭한 모서리가 가슴을 찢고 튀어나올 때 성스러움을 느껴. 차가운 장판 바닥에, 씻지도 않고 코트도 안 벗고 웅크리고 누워서 내 안의 마모된 부분을 들여다볼 때, 영원히 망가졌거나 부서져버린 그것들을 들여다볼 때 성스러움을 느껴...........너덜너덜 찢어진 이 삶 가운데서.“
_본문 151쪽
별들은 보석이 아니고, 천사들의 눈이 아니고, 소금도 설탕도, 큰 곰도 국자도 아니라는 것을, 매 순간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는 불덩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이상하게도 설명할 수 없는 안도감을 느꼈어. 보석이 아니라서, 천사들의 눈이 아니라서, 활 쏘는 사람도, 전갈도, 쌍둥이도 아니라서 별들은 아름다웠어. 타오르는 불덩이라서 아름다웠어.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 본문 175쪽
진실에 다가간 순간의 허무, 내가 그토록 동경해 마지 않던 하늘의 별들이 한낱 핵융합 과정에서 뿜어져 나온 에너지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허무와 다르지 않았다. 그 안에 무언가 있을 것 같았고 소원을 빌면 다 들어줄 것 같고 그랬다. 어릴 적, 힘들 때마다 올려다 본 밤하늘은 유독 밝게 빛났다. 그 별들에 대고 빌었던 소망과 바람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제스처에 불과했다고 해도 나는 하늘을 올려다 보았을 것이고 바람을 별들에게 속삭였을 것이다. 위의 글처럼 별들이 보석이 아니라서 안도감을 느꼈다는 말처럼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다고 이 책이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각자의 우주 속에 타오르는 불덩이가 있다. 언젠가 꺼질 불덩이라는 분명한 사실도 위로가 된다. 내 눈에만 유독 크고 반짝이는 별들도 결국엔 보석이 아니라서. 한강 님의 책이 줄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위로가 아니었을지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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