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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정판매
발행일 | 2010년 07월 2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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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72쪽 | 375g | 148*210*20mm |
ISBN13 | 9788954611763 |
ISBN10 | 89546117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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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30일 ~ 2024년 10월 31일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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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소설이란 있을 법한 이야기로 이해된다. 소설은 상상이라는 재료를 주원료로 삼고 작가의 오감(五感)이라는 부재료를 투입해서 잘 버무려 숙성시켜 부풀린 빵과 같다. 그러므로 소설에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사실적인 무대가 펼쳐지고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소설이 촉수를 가진 생물체처럼 감각적이라는 사실도 비슷한 논리다. 이렇게 소설은 인간을 닮는다. 더 자세히 말하면 인간관계를 투영한다. 인간관계는, 삶이라는 보편적이고 개별적인 요소의 총합이다. 삶의 속성은 대체로 불가해성의 영역이다. 복잡 미묘하며 예측하거나 속단할 수 없다. 누구나 삶은 불완전하며 완벽하지 못하다. 이와 같이 삶과 소설은 동일한 범주에 있으나 소설은 보다 더 자유롭다. 따라서 소설의 무대는 가변적이며 전지전능한 실험의 대상이 된다. 그 속에서 나는 세상을 본다. 그러하기에 소설은 카타르시스를 불러일으키고 오르가즘을 재촉하는 해방구가 된다.
김영하. 나는 그를 우연한 기회에 만났다. 그가 한국문단에 센세이션의 돌풍을 몰고 다니며 엄청난 인기몰이를 할 동안 나는 그를 몰랐다. 그와 맞닥뜨리게 된 기회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의 한 부분이다. 동사무소에 들렀다 주민 편의를 위해 대여문고를 운영하던 책꽂이와 근접한 거리에 있었고 그날따라 민원을 해결하기 위한 사람들로 붐볐다. 시간은 정지된 듯 지루했으며 고압적인 흐름은 불편했다. 상황은 내가 원하는 방향의 궤적으로부터 비켜 나가기 시작했으며 어느새 손끝은 그를 만났다. <퀴즈쇼>. 빠르게 눈은 흘렀으며 마음은 뒤쫓기에 분주했다. 인생은 퀴즈다. 이 소설을 쓰는 내내 이십대라는 존재에 대해 생각했다. 가장 아름다운 자들이 가장 불행하다는 역설. 그들은 비극을 살면서도 희극인 줄 알고 희극을 연기하면서도 비극이라고 믿는다.(퀴즈쇼. 작가의 말 중에서) 그의 문장은 사실적이었으며 상상력은 기발했다. 그의 오감에 걸려든 인생은 나를 위로했으며 인생은 퀴즈처럼 선택의 순간이라는 역설을 이해했다. 나는 그렇게 그의 책을 섭렵했다. <빛의 제국>,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검은 꽃>, <오빠가 돌아왔다>.
그렇게 그가 돌아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를 여유롭게 들고 특유의 마술로 세상을 홀렸다. 그의 이번 작품은 전작의 속성은 닮고 있으나 전에 비해 짧은 단편으로 묶였다. 단편소설의 특성상 템포와 강약의 완급조절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번 작품은 그의 실험적 본령을 이어가는 또 다른 결과물인 셈이다. 나는 그의 이번 작품에서 안톤 체호프에 대한 일종의 오마주를 연상했다. 러시아의 대작가 안톤 체호프는 사실적이고 객관적인 현상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 내려 갔다. 그의 글은 특별히 놀라운 사건을 도입하기보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설정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 사건이 있더라도 그 자체의 외부적인 측면보다는 사건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다양하고 모순된 반응에 주목한다는 점, 대체로 매우 느슨한 플롯인데다가 그 결말이 미결정의 상태로 끝나고 주인공들도 이에 대해 어리둥절하고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는 점, 등장인물들 간의 의사소통의 단절 등 현대 단편소설의 기틀을 확립한 천부적인 자질을 갖춘 문호였다.(체호프 단편선, 민음사 p-191~192 인용) 이 책의 총 13편의 단편은 체호프의 토질을 자양분 삼아 성장한 열매로 인식된다.
실제 이 소설의 플롯들의 다양성, 소재의 기발함, 삶의 보편적 편린 등은 그 차별적 시도가 매혹적이다. 사실(寫實)이라 할지라도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세상은 달라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삶의 보편적 특성은 어느 순간 존재의 가치 앞에 무력해진다. 이 작품의 명제(命題)가 대변하여 주 듯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모르거나 알 수도 있다는 가정적 현실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작품의 알고리즘을 분해해 본다면 모노레일의 궤적과는 달리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처럼 비정형적이며 일정하지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삶은 때때로 자신을 속이고 이해할 수 없는 현실 속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이른바 삶의 불가해성이다. 앞서 전술한 바와 같이 삶에 대한 진지한 물음이나 관찰없이는 이러한 특성을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그의 이번 작품은 차후 작품의 패턴을 넓히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로봇의 삼원칙을 세운 아이작 아시모프는 <아이로봇>의 저자다. 그의 소설은 윌 스미스가 주연한 영화로도 만들어졌으며 흥행 또한 크게 성공했다. 아시모프는 칼 세이건과 더불어 천재과학자이자 작가다. 김영하가 아시모프의 로봇을 빌려 온 것은 모방이 창작의 주춧돌이 된다는 경험적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김영하의 <로봇>은 아시모프의 그것과는 닮은 점이 없다. 로봇은 더 인간적이며 인간의 마음을 시종일관 뒤흔든다. 섹스를 하고 사랑을 나누지만 로봇의 3원칙에 복종하는 딜레마에 빠진 로봇. 그래서 사랑하지만 떠나야 하는 로봇. 김영하는 이에 더해 ‘라고 치고 게임’을 주 무기로 공략하며 패를 유리하게 이끈다. 이 작품에서 나는 딜레마에 갇혔으며 험난한 암초에 좌초되었다. 로봇의 존재이유를 묻게 되었고 그 로봇이 인간에게 쾌락을 안겨주었으며 그 쾌락의 종말이 로봇의 파괴로 이어진다면 로봇이 인간을 제거의 대상으로 판단하게 될 것인가라는 구조적 모순에 이르렀다. 따지고 보면 모순된 현실은 어디서든 비일비재하다. 비이성적인 해답이 차지하는 경우는 허다하며 이성은 상실된 지 오래인지 모른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아직 로봇을 모른다.
<여행>은 현대인의 고독을 해체하고 재구성했다. 결혼을 앞 둔 수진과 과거 애인이었던 한선과의 어색한 만남과 무모한 여행이 발단이 되어 불편한 진심을 토해내며 가식의 가면을 벗는 인간의 위선적 행위를 관찰한 작품이다. 사랑과 현실은 다르다는 차이를 우리는 진리처럼 되새긴다. 현실 앞에서 사랑은 허무하고 냉소적이다. 한선의 그 무모한 만용도 짧은 쾌감을 유발하지만 영화에서나 볼 법한 상황은 낙관적이지 못하다. 배를 태워주겠다는 험상궂은 사내의 시비와 폭력으로 이어지는 낭자한 현장은 수진의 마음을 흔들지만 현실은 그녀의 미래 앞에 비굴해졌다. 포스트잇같이 부드럽고 유연하게 뒤끝 없는 관계라고 믿던 그녀에게 미래가 불투명한 시간강사의 그는 이미 거세당한 만남이었다. 아이러니한 이런 상황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지만 너무도 흔하게 일어난다. 외면 권하는 세상, 사랑을 위한 납치도 이제는 관용의 자리는 없다. 인생은 사막보다 더 삭막하기 때문에.
<악어>는 포식자의 매정한 눈물이 떠오른다. 한 남자에게 우연히 찾아든 천상의 목소리. 그를 성공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로 이끌던 목소리가 어느 날 갑자기 없어졌다면. 남자는 우연히 들른 클럽에서 무명의 보컬에게 끌리고 그의 노래를 듣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거대한 파충류 악어, 목소리는 꿀꺽. 그는 악어가 되었다. 박제가 되어 동물원에 전시된 후 그의 노래는 전설이 되었다. 모든 동물들이 우는 비현실적인 상황. 박제된 악어의 노래는 위선처럼 슬픔을 지배하였고 악어는 위선에 능욕당하지 않았다. 결국 세상은 악어의 위선처럼 거짓에 취약하며 보이는 것에 집착한다. 신기루처럼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리면 그만인 것을.
<밀회>는 작품 속 나를 따라가며 관찰하는 시선이 인상적이다. 그 시선 속에 숨어든 반전은 이 작품의 주제가 숨은 최고의 걸작이다. 시간의 흐름을 유영하고 타국의 일상을 탐구하며 때로는 나른하게 때로는 흥미롭게 서술하는 경어체는 고백처럼 들린다. 소설 속 나는 세심하게 사물을 더듬고 그녀를 만나는 동안 펼쳐지는 정경을 하나라도 빠트리면 큰일이라도 날것처럼 고백한다. 그 고백은 자성의 소리로 이어지고 인간의 본질에 대한 물음, 사물의 구체성에 대해 논하며 윤회를 들먹인다. 그는 해파리를 꿈꾸고 그녀와의 부적절한 만남을 회의(懷疑)한다. 아주 가까운 사람을 낯선 사람처럼 느끼는 그녀의 남편과 그로 인해 복잡한 죄책감과 증오, 친밀감에 대한 희구가 뒤섞인 그녀는 소설 속 나의 예상 밖의 죽음에 현실로 빠르게 빨려 들어간다. 김영하는 이 작품에서 그가 면밀하게 관찰하고 느낀 사유의 총아를 모두 집결해 놓았다는 느낌을 나는 강하게 받는다. 삶은 불가해한, 알 수 없는 현상의 연속이며 정형과 비정형의 경계를 무시로 넘나든다. 이처럼 이 작품은 아무도 모른다는 미지의 영역의 경계에서 실존적인 물음을 구체적으로 던짐으로써 인간의 내밀한 본성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사유하게 하는 내용이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삶의 근원이 믿음에서 비롯되고 나아간다는 본질에 보다 더 가깝게 접근하는 계기가 된다. 마치 밀회하듯 스릴 넘치게.
<아이스크림>은 누구나 한번쯤은 해 봤을 법한 상황을 표현한다. 아이스크림이라는 자동화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일정한 질량과 성분으로 조합하여 만들어진 기성품, 그 속에 산입된 불순물은 신뢰의 영역이다. 나는 만들어진 음식을 먹을 때 자주 그런 생각을 한다. 정말 안전한 지, 믿을 수 있는 지.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적인 암묵적 합의에 의한 결과다. 내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은 제 값을 치르고 갈증을 해갈시켜 주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불순물이 첨가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불순물은 제조자와 고객을 불편한 관계로 만들고 기선을 잡기위한 모종의 심리게임은 시작된다. 상황은 어지럽게 번진다. 소설 속 부부의 상황처럼 고객책임자의 비일상적인 만남의 기록은 낯설지만 눈에 익는다. 손해배상금이라도 한 몫 챙기겠다는 윤리적 경계에서의 유혹은 오히려 인간적이다. 하지만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 또한 인생이다. 고객책임자의 너무도 성실한 태도에 압도당하고 패스트푸드로 넘쳐나는 현실 속으로 되돌아온다. 이 작품은 세속적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오는 간극을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통해 극명하게 대비시켜 보여준다. 반드시 신문에서나 보는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받는 행운(?)처럼 같은 결과는 이루어 질 수 없는 법이라고.
<조>는 타락한 형사다. 백화점을 드나드는 뜨내기 잡범을 잡아 장물을 빼돌리며 이익을 챙긴다. 그에게 있어 백화점은 경계와 보호의 대상이 아닌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한 공간이다. 조는 포식자의 인내를 가지고 먹이를 좁혀 가 듯 표적을 유린한다. 반면 백화점 시계코너 정은 살기 위한 몸짓으로 육신을 타락시킨다. 타락은 공공연화되고 일상화된다. 어쩌면 우리에게 타락은 허용된 제스쳐이다. 경계를 조금 넘었다고 해서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경계를 탐하는 타락은 변하는 것에 대한 무감각이 지배하고 우리는 그렇게 타락한다. 조가 정으로 인해 타락하는 과정은 흡사 중독성 강한 마약성분처럼 정신을 혼미하게 만든다. 우리 삶에서 타락은 바람처럼 가깝고도 은밀하다. 언제든 유혹할 태세를 갖춘 팜므파탈의 유혹처럼.
<마코토>는 현대 여성의 심리를 치밀하게 묘사했다. 훈남의 일본인 유학생을 사이에 두고 새침떼기 후배와의 줄당기기는 읽는 이의 애간장을 태운다. 상황이 역전되고 후배의 교활한 속임수에 마코토가 넘어가 버리는 가련한 현실은 애틋하다. 하지만 인생은 역전이 가능하다. 일본 도쿄에서 우연히 만난 마코토와 후배와의 이별을 듣고 지난날을 회상하게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의 바람은 믿는 그대로 일어나지 않는 법. 머피의 법칙처럼 민망한 상황, 허무개그처럼 뻘쭘함이 밀려온다. 유쾌한 암전, 읽는 이는 즐겁다.
<퀴즈쇼>는 그의 장편과 얼개가 유사하다. 하지만 또 다른 맛이 난다. 소설 속 주인공 정동국과 조은이의 만남 그리고 관계를 적절히 배합하고 섬뜩하기도 한 장면을 삽입하여 몰입을 유도한다. 기능적 결손가정, 성공일변도의 가치관, 물질만능주의사회에 대한 다양한 문제에 대하여 경쾌하게 탁탁 끊기는 스타카토처럼, 시원하고 차가운 맥주처럼 텁텁함을 깔끔하게 잡아주는 바삭한 맛이 일품이다. 인생은 퀴즈처럼 선택의 순간이다. 선택은 홍수통제소에 날아든 긴박한 상황이 파도를 타고 이어진다. 그 물결이 어디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예측은 빗나가고 상황은 암울하다. 하지만 인생은 정동국의 헛물처럼 잡념을 남긴다. 내가 그때 그랬다면.
<명예살인>, <바다이야기 1, 2>, <오늘의 커피>, <약속>은 짧지만 임팩트가 강한 소설이다.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절단하여 벌려진 채로 속살을 그대로 드려 낸 실체를 비틀어 보고 매달아 보고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꼼꼼하게 분석한 뒤, 콘트라스트 강한 흑백사진처럼 직설적으로 직관적인 서술이 인상적이다. 어디서든 부딪히는 상황, 사회면 한 곳을 오롯이 장식하는 사건·사고, 불행은 이어진다는 속설, 어이없는 만남 등 이러한 단면들은 확률의 법칙을 무시하는 좋은 예라 할 것이다.
이렇듯 김영하의 이번 작품은 상상력이라는 펜으로 현실을 섬세하게 스케치한 마스터피스masterpiece다. 그의 문장은 모던함 속에 감춘 마력이 강한 자성을 발산한다. 한번 붙으면 떨어질 줄 모르는 쇠붙이처럼 생각을 흡수당하고 관성을 상실한다. 나는 소설이 현실을 떠나서는 공상에 그친다고 믿는다. 소설은 현실에 충실해야 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재해석하는 것은 온전히 작가의 몫이다. 그러하기에 소설은 작가의 밀어내고 내어 쓴 사유의 흔적을 따라 독자는 그들의 언어로 이해하고 흡수하며 상호작용을 통해 정화작용을 일으킨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김영하는 오래도록 간직할 삶의 도피처이며 위안이 되는 소통의 장이다. 그러하기에 그의 이번 작품, 반갑고 또 반갑다.
오랜만에 김영하와 만났다. 여기서 '만났다'는 표현에 글을 읽는 분들이 오해할 수 있겠다. 한 권의 소설이 완성되어 독자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은 곧 작가와 독자의 만남을 의미한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통해 독자와 만나고 호흡하며 대화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하와 '만났다'는 것이다.
김영하는 한때 한국 문학의 미래를 책임질 젊은 작가 중에서 제일 선봉장에 서 있었다. 문단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은 작가로 김연수보다 더 관심을 받았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김연수가 그를 넘어선 것 같다. 그것도 한참 넘어선 느낌이다. 이러한 원인은 그간 임팩트 있는 작품을 써내지 못한 김영하 자신에게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김연수보다 김영하를 더 좋아한다. 엄밀히 말해서 김영하의 문학에 더 박수를 보내는 편이다. 김연수의 '성실함', '진지함', '소탈함'보다 김영하의 '댄디함', '자신감', '쿨함'의 이미지가 작가로서 더욱 매력적으로 와닿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하는 예술가보다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예술가를 사람들은 더 흠모해오지 않았던가. 내게 김영하는 그렇게 읽힌다.
6년만의 소설집이다. 매우 매력적인 제목이다. 김영하의 최신 텍스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매력적인 제목만큼이나 각 단편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단편의 분량, 문체, 주제, 무게 등 동일한 작가가 쓴 것이라고는 쉽게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김영하의 작가적 다양성이 작품 곳곳에서 확인된다.
총 열세 편의 단편을 담고 있다. 문예지를 위시하여 그간 다양한 채널을 통해 발표했던 작품들과 공개하지 않았던 신작을 한데 엮어서 출간했다. 소설집은 정통적인 단편뿐 아니라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가진 개성있는 단편들을 담았다. SF적 요소와 현실과 환상이 기묘하게 뒤섞인 이야기나 한 장 분량의 콩트와 같은 짧은 작품들도 있어 이야기꾼으로서 김영하의 면모를 만끽할 수 있다.
표지 사진이 인상적인데, 야간의 차로에서 주행하는 차들과 차들 사이에 서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을 표지로 삼았다. 표지 속 여인은 왜 차도 한 가운데에 서 있는 것일까. 여인의 얼굴과 표정은 알 수 없지만 고독과 불안함의 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이러한 표지는 소설집을 관통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불확정성과 불안감이 가득한 일상을 표상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시모프 박사의 '로봇 3원칙'을 소재로 과학기술이 발달된 고도의 정보통신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불확정성을 그린 「로봇」이 소설집 전면에 배치됐다. 수경이라는 한 여자를 사랑하며 거듭 로봇의 3원칙을 말하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인간이 아니라 로봇이다. 로봇은 수경과 강렬하게 몸을 섞은 후 수경로부터 사랑한다는 고백을 듣게 된다. 결국 로봇은 수경을 떠날 수밖에 없다. 수경을 지켜주기 위해서다. 물질문명에 오염되어 공허한 삶을 사는 한 여성과 인간보다 순수한 양심으로 자신의 태동성을 지키려는 로봇의 모습을 통해 인간다운 것은 무엇인지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여행」도 꽤 인상적인 작품이다. 오래전 헤어진 한선과 수진의 재회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박사과정을 밝기 위해 미국유학을 떠났던 한선은 오랜만의 수진과의 전화통화에서 그녀의 결혼소식을 듣게 된다. 한선은 수진에게 갑자기 결혼 전 마지막으로 여행을 떠나자는 제안을 하며 수진의 집 앞에서 그녀를 납치하듯 차에 태우고 바다로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뜻밖의 테러를 당한다. 헤어진 여자친구의 결혼소식을 듣고 불안의 자장에서 비상식적인 행위를 벌이는 엘리트의 광기와 공교롭게도 폭력으로 귀결되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게 그려졌다.
가장 기억에 남는 단편은 단연 「밀회」다. 소설집의 제목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는 아무도'는 「밀회」의 한 대목에서 따온 것이다. 분명히 죽었지만 자신이 죽었는지 모르는 한 남자의 독백적 서술이 소설의 흐름을 지배한다. 남자의 시선은 위에서 아래로, 현재에서 과거로, 타자에서 자신에게로 이동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모호하게 처리한 것은 남성화자의 애절함을 더욱 극대화시키기 위한 작가의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남자가 어떤 이유로 죽었는지는 소설 속에 나타나 있지 않다. 남자는 왜 죽었으며 무슨 일이 있어난 걸까. 무슨 일이 있어났는지는 아무도...
이 책에 실린 13편의 이야기는 누구도 최종적인 심판을 내려주지 않는 상황에서 진실에 다가가지 못하고 다음 사건을 맞이하는 사람들을 그린다. 어느 날 사고로 가족과 친밀감을 갖지 못하는, 그래서 자신을 가짜 아내라고 의심하는 남편과 사는 여자(「밀회」), 로봇과 원나잇스탠드 하는 여자(「로봇」), 어느 날 갑자기 목소리를 잃어버린 가수(「악어」) 같은 인물 말이다. 과학의 발전은 인간에게 진실에 다가설 수 있는 속도감 있는 '수단'을 선사했을지는 몰라도 진실이라는 '목적' 그 자체를 지키기 위한 정신은 황폐화시켰다. 진실을 갈망하지만 바쁜 삶 속에서 그것을 성찰할 여유나 방법을 모르는 현대인들의 일상을 소설은 잘 포착해내고 있다.
김영하 특유의 도시적 감수성과 속도감으로 일상의 단면을 예리하게 오려내는 솜씨는 여전히 발군이다.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문장에 실린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자유분방함은 단편에서 더 큰 여운을 발휘한다. 작가는 이 소설집에 대해 내용과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낸 소설들이라고 했다. 마음 놓고 자유롭게 쓴 소설이기에 현실 세계와 판타지의 경계를 넘나드는 작가적 상상력이 더 강력하게 내뿜는 듯하다. 게다가 13편의 단편들은 유쾌하고 쉼 없이 읽히지만 동시에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그것이 김영하의 힘 아니겠는가.
김영하는 고백한다. 지금의 나보다 더 '살아 있는' 것은 지금껏 내가 '쓴 것'들이라는 것을. 햄릿의 비현실성을 질문한 어느 독자에 대해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답했던 대목을 인용하며 자신과 소설과의 관계를 되돌아봤다는 김영하의 작가적 진지함이 멋지다. 내 영혼은 풍랑에 흔들리는 조각배이며 그것을 저 수면 아래에서 단단히 붙들어주는 게 바로 자신이 쓴 책들이라는 김영하의 고백은 실로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의 소설 상찬론은 인간의 가변성과 불확정성의 한계를 인정함과 동시에 작가보다 작품이 우선한다는 극히 상식적인 사고를 이끌어내고 있다. 작가는 반드시 작품을 통해서 말해야 하며 만들어진 작품의 존재성이 창조자인 작가의 실존을 규정하는 것이다. 근데 이게 왠 일인가. 김영하에게 이런 겸손함이 있었단 말인가.
항상 댄디한 그의 작품들을 만나는 게 참 좋다. 매번 그의 신간을 만날 때마다 새롭고 다채롭다는 느낌을 받는다. 문단에서도 인정하는 속필이라고 하지만 쓰고싶을 때 내키는대로 쓴 작품들을 모아 이 정도 퀄리티의 소설집을 낼 정도라면 과히 천재 소설가의 역량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서평을 정리하자. 김영하의 최신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는 불안과 공허의 자장에서 고뇌하는 인간의 일탈된 모습과 그것의 성찰과 변혁에 한계를 지닌 현대인들의 다양한 단면을 유쾌하면서도 묵직하게 담아낸 수작이다. 굳이 박민규의 추천사를 인용해야겠다. 이 작품에 대해 호평을 하는 것조차도 살짝 화가 난다. 왜냐하면 김영하라는 이름만으로도 이미 소름이 돋았을 독자들이 널리고 널렸을테니까.
http://blog.naver.com/gilsamo
http://gilsamo.blog.me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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