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YES24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Korean wave shopping mall, sell the
K-POP/K-Drama (CD,DVD,Blu-ray,Book)
We aceept PayPal/UnionPay/Alipay
and support English/Chinese Language service
作为出售正规 K-POP/K-Drama 相关(CD,图书,DVD) 韩流商品的网站, 支持 中文/英文 等海外结账方式
中文Exclusive ticket sales for domestic and international pop artists
Global yesticket정가 | 15,800원 |
---|---|
판매가 | 14,220원 (10% 할인) |
YES포인트 |
|
결제혜택 |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카드/간편결제 혜택 보기/감추기 |
---|
구매 시 참고사항 |
|
---|
발행일 | 2021년 05월 07일 |
---|---|
쪽수, 무게, 크기 | 288쪽 | 368g | 150*195*16mm |
ISBN13 | 9791190475495 |
ISBN10 | 1190475499 |
2024년 08월 21일 ~ 2024년 09월 30일
뉴욕타임즈 21세기 최고의 책 100대 도서 『파친코』, 『채식주의자』 선정
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0월 01일
9월의 굿즈 : 타공 정리함/클립 북 라이트/디즈니 캐릭터 태블릿 파우치/손잡이 텀블러/메쉬 펜 파우치
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16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사라진 서울을 걷다
함성호
페이퍼로드/2021.5.7.
sanbaram
서울은 대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몇 십 년 전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사라진 서울을 걷다>에서는 대도시화가 되기 전의 서울을 이야기한다. 아직 도시화 초기 모습이 그대로 간직되어 있던 시절의 서울을 회상하고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저자는 1990년 <문학과 사회>여름호에 [비와 바람 속에서] 이 3편을 발표함과 동시에 시인이 되었고, 1991년 건축전문지 <공간>에서 건축 평론 신인상을 받고 건축평론가로 활동했다. 시집으로 <56억 7천만년의 고독>, <성 타지마할>, <너무 아름다운 병> 등이 있고, 건축평론집으로는 <건축의 스트레스>, <당신을 위해 지은 집>, <철학을 읽는 옛집>등 다수가 있다.
<사라진 서울을 걷다>는 옛날의 서울 모습을 다섯 가지 주제를 가지고 이야기 한다. ‘오늘도 서울에서는, 자본만이 풍경이 되어, 모두를 전생으로 만든다, 때때로 많은 것을 허물었지만, 그곳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었다’ 등이 그것이다. 다루는 지역은 마포, 왕십리, 종각, 중구, 창신동, 압구정, 청계천, 인왕산, 선유도, 인사동, 종묘, 장충단, 충정로, 자하문, 신촌, 홍대, 서촌, 필동, 효자로 등으로 주로 구도심 지역과 그 변두리 지역이다. 새로운 시선으로 우리 삶이 이루어지는 이곳을 바라보면 어제의 낡은 풍경이 낯설게 다가오는 걸 느낀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곳의 유명했던 건물과 지형에 얽힌 이야기 및 사람들 살아가던 모습들 회상을 통하여 어려웠던 시절 힘들게 살아가던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준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거나 변한 모습에서 간신히 옛날을 회상해 볼 수 있는 곳곳의 이야기를 추억하면서 지금과는 달랐던 예전 서울 모습을 설명한다.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설명하는 옛 서울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사진, 그림이나 지도 등이 빠진 것은 못내 아쉽게 생각 되었다. 책 속에 있는 삽화만으로는 온전히 상상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도시가 되기 전의 서울 모습을 알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한양도성은 놀랍게도 단 98일 만에 완공되었다. 태조는 1394년 10월 한양으로 천도하여 바로 다음 해 종묘와 사직단, 경복궁 건설에 총력을 기울여 9월 말에 완공한다. 공가 기간은 불과 10개월이었다.(p.35)”
태조는 1396년 음력 1월 9일부터 2월 28일까지 49일간, 이어서 8월 6일부터 9월 24일까지 49일간, 백성 19만 7천4백여 명을 동원하여 불과 98일 만에 한양도성을 완공했다. 그래서 인지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대대로 성곽을 보수한 무수한 기록이 나온다. 아무래도 졸속시공의 결과인 듯 싶다. 한양도성이 총연장 5만 9,500척의 성터 중 4만 3000척, 즉 삼분의 이가 넘는 부분이 토성으로 지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공사기간 내에 완공하기 위해서는 당연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흥인문’이 ‘흥인지문’으로 이름이 바뀐 시기는 조선 말 흥선대원군 집권기에 경복궁을 다시 지으면서부터였다.(p.37)”
이때 흥인문도 개축을 했는데 기록에 따르면 훈련도감 공사들을 동원하여 동대문을 완전히 해체한 다음 낮은 지반을 여덟 척이나 돋우고 그 위에 동대문을 중건했으니 거의 새로 지은 것이나 다름없다. 고려 개국과 함께 왕조의 역사로서는 서울의 처음이 이곳 흥인문 부근에서 시작되었다는 것도 흥미롭다. 비운의 단종비가 시녀들의 구걸과 옷에 물감 들이는 일로 연명했던 곳도 여기요, 구한말 민비의 애환을 전하는 곳도 이곳이다. 그러나 흥인문 길은 왕조의 비운에 아랑곳없이, 임진왜란 이후 지방 장사치들이 몰려와 종로 시전과 대응하는 난전이 펼쳐져 숭례문과 함께 민중의 역동적인 생활 터전을 이루고 있는 것은 자못 흥미롭다. 다소 비약은 있지만 비운의 단종비가 연명했던 것도 옷감에 물들이는 일이요, 당시에 배오개라고 불리던 종로 4가가 오늘날에도 유서 깊은 포목점 거리로 잡은 것도 그 유래가 깊은 것이라고 역사적 사실들을 들춰내기도 한다.
“오늘날 상품은 그것이 어떤 세대나 계층을 대변하든 간에 곧 그들의 문화를 대변한다. 문화를 팔아야 물품이 팔리는 시대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한다.(p.41)” 사실 20세기 초를 제외하곤 그렇지 않은 시대가 없었다. 과거 난전에서는 물품의 유통과 함께 연희가 있었고, 악극이 있었으며, 정보의 교환이 있었다. 오늘날 물품 유통의 장소가 다름 아닌 과거 난전의 모습이라는 것은 분명, 문명의 진보에 대한 아이러니다. 동시에 이것은 현대 상업 자본주의의 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한다.
“원래 청계천이라는 이름은 일본인이 우리 땅이름을 죄다 흔들어 놓을 때 새로 만든 말이다. 이전에는 그냥 ‘개천’이라 불렀다.(p.107)” 서울은 북악산이나 인왕산에서 청계천 남쪽으로 흐르는 크고 작은 개천으로 이루어진 도시다. 청계천이라는 이름도 인왕산 청풍 계곡에서 발원하는 개천이란 뜻에서 그렇게 불렀다.
예부터 개천은 하천과 구분해 썼다. 하천이 자연 그대로 물줄기를 뜻한다면 개천은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정비한 하천을 말한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차이를 의미하는데, 서양의 도시계획이 수성(守成)의 목적으로 시작되었다면 우리 도시계획은 철저히 삶에서 기인한다. 풍수지리가 고려의 정치이념을 구현하는 행정의 가치체계를 상징한다고 볼 때, 우리 도시계획과 그것을 이루는 인프라에 대한 정비는 이미 고려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서양의 하수 체계가 르네상스 이후라고 할 때 서양과 우리가 보는 도시에 대한 시각이 얼마나 큰 차이인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나중에 서양의 도시계획은 인위적으로 인프라를 만들어내지만 우리는 자연의 인프라를 도시의 목적에 맞게 다듬은 것을 개천이라고 부르게 된다. 청계천 복구는 청계천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다시 새로운 청계천을 만든다는 것이 그 발상이었다. 그렇게 해서 완성한 게 오늘날 청계천이다. 그러니까 지금 청계천으로 흐르는 깊이 40센티미터의 물밑으로는 차수막으로 차단된 원래의 오염된 청계천 물이 그대로 흐르고 있다. 서울시는 원래의 청계천을 다시 새로운 하천으로 덮어버렸다.
“서양은 건축을 건축물 자체로 인식하지만 우리는 건축물이라는 개별성에는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언제나 건축을 포함한 마당, 그리고 마당을 포함한 마을, 마을을 포함한 산세로, 건축의 영역이 광범위하게 확장된다.(p.176)”
따라서 우리 건축은 지형과 산세가 건축 디자인의 관건이다. 예부터 풍수지리학이 중요하게 여겨진 이유도 그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서구 건축은 집을 바깥에서 바라보면서 미학적 관점을 형성해 나가지만 우리 건축은 집안에서 바깥을 고려하면서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집안에 장식이 없다. 이와 같이 한국 건축의 장식은 바라다 보이는 풍경이 된다고 건축학자 다운 시각으로 우리의 건축에 대해 설명한다.
“고종황제는 황태자 순종에게 <장충단> 세 글자를 쓰게 하고 민영환의 글로 비석을 세웠다. 이렇게 대한제국의 현충원인 장충단이 태어났다. 장충단은 그 후에도 일제에 저항한 인물들을 계속 배향함으로써 대중들의 지지를 받았고, 반일의 뜨거운 상징이 되었다.(p.187)”
사직단은 그냥 사직단일 뿐이다. 장충단은 그냥 장충단일 뿐이다. 굳이 거기에 공원이라는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는데도 우리는 계속 아무 생각 없이 공원이라고 한다. 사직단을 공원이라고 부를 때, 그 장소의 역사성은 사라져버린다. ‘이름 붙이기’가 중요한 이유이다. 이름은 역사를 지우기도 하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도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와 같이 우리의 언어 속에는 식민지의 잔재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그것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어는 외래어에 너무 많이 오염됐다. 사람들은 그것을 세계화로 착각하는 것 같아 가슴 아프다.
“경복궁 사대문은 모두 이와 같은 풍수지리와 음양오행의 원리에 의해서 그 이름이 정해졌다. 경복궁의 북쪽 문인 신무문은 북현무에서 따온 이름이고, 남쪽 문인 광화문은 궁궐의 정문인 관계로, 모든 궁 정문에는 조선 시대의 통치 이념인 유교의 이상을 상징하는 ‘化’를 넣는 당시의 예에 따라 창덕궁은 돈화문, 창경궁은 홍화문, 경희궁은 흥화문, 경운궁은 인화문이라 한 것처럼 광화문이 되었고, 동쪽문과 서쪽문은 봄과 여름의 이름을 따 건춘문과 영추문이 된 것이다.(p.247)”
영추문은 또한 연추문 이라고도 불렀는데 역시 가을을 끌고 들어오는 문이라는 뜻이 된다. 광화문이 주로 임금이 드나들던 문이라면 영추문은 주로 문무백관들이 드나들던 문이었다. 그러니까 조선시대에는 모두 영추문을 통해 궁궐을 드나들었다. 아마도 가을이라는 상징이 무르익은 성숙한 정신을 뜻하는 고로 국사를 맡아보는 이들의 추상같음과 노회한 국정 경영을 기대하며 그렇게 정한 듯싶다. 자세히 얘기하면, 건춘문으로는 세자와 동궁에 위치한 각사에서 일하는 신하들이 드나들었고, 영추문으로는 문무백관들이 드나들어 그 기능이 역할에 의해 구분되었다고 문의 이름과 활용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고 있다.
(예스24 리뷰어클럽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배송 안내
배송 구분 |
예스24 배송
|
---|---|
포장 안내 |
안전하고 정확한 포장을 위해 CCTV를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객님께 배송되는 모든 상품을 CCTV로 녹화하고 있으며,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작업 과정에 문제가 없도록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목적 : 안전한 포장 관리 |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방법 |
|
---|---|
반품/교환 가능기간 |
|
반품/교환 비용 |
|
반품/교환 불가사유 |
|
소비자 피해보상 |
|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