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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1년 08월 1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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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92쪽 | 420g | 130*187*20mm |
ISBN13 | 9791191824001 |
ISBN10 | 1191824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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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은 그렇게 느리고 꾸물거리는 것들이 멀리 퍼져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천천히 잠식하지만 강력한 것들,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정원을 다 뒤덮어버리는 식물처럼. 그런 생물들에는 무시무시한 힘과 놀라운 생명력이, 기묘한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영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 p.82
“좋아요. 딱 한 번만 더 이야기를 해볼게요. 어쩌면 당신이 말한 정원의 주인은 제가 아는 사람일지도 몰라요. 당신은 답을 아직 알지는 못하지만, 답을 찾기 위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알지요. 그곳으로 가겠다는 생각도 있고요.”
--- p.109
“지금부터는 실험을 해야 해. 내가 가르쳐준 것, 그리고 우리가 마을에서 해온 것들을 기억해. 이번에는 우리가 가는 곳 전부가 이 숲이고 온실인 거야. 돔 안이 아니라 바깥을 바꾸는거야. 최대한 멀리 가. 가서 또다른 프림 빌리지를 만들어. 알겠지?”
--- p.242
어떤 기묘하고 아름다운 현상을 발견하고, 그 현상의 근거를 끈질기게 쫓아가보는 것 역시 하나의 유효한 과학적 방법론일지 모른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대부분은 실패하겠지만, 그래도 일단 가보지 않으면 발견하지 못할 놀라운 진실을 그 길에서 찾게 될지도 모른다고, 아영은 그렇게 생각했다.
--- p.257
제목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재앙이 발생한 지구에서 인간들이 어떻게 살아남는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재앙은 '더스트'로 먼지, 안개. 공기 중으로 호흡할 수 있는 오염 물질이다. 즉 완벽히 외부와 차단되지 않으면, 혹은 내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모두가 죽을 수 밖에 없는 극단적인 상황에 놓여 있는 설정이다. 지금과 비교해보면 가장 최근인 코로나가 떠오른다. 공기중으로 감염되는 호흡기 질환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우리는 모두가 코로나를 경험해 봤기때문에 이 책을 그저 판타지가 아닌 현실로서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먼저, 식물 연구원이라는 '아영'이라는 인물이 새롭게 등장한 생명력이 강력한 '모스바나'라는 식물을 연구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궁금증을 자아낸다. 모스바나가 왜 이렇게 무서운 전파력으로 무럭무럭 자라는 식물인지. 과연 이 식물이 이로운지. 해로운지. 미스테리한 느낌을 준다.
이 식물로 출발해 과거 재앙에서부터 선조들이 어떻게 살아갔는가. 극복해 나갔는가하는 의문을 찾아가는 내용이다. 이런 선조들의 행적을 쫓아가면 나오는 새로운 절대 공간 '프롬 빌리지'라는 공동체에서 인간들이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집단을 이루며 살아가는지. 잔인한 면모까지 엿볼 수 있다.
여기서 특이점이 하나 더 발생하는 데 정체 불명의 '더스트'에 SF적인 설정이 추가되면서 로봇 '레이첼'이 등장한다. 논리적 사고는 가능하지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을 가질수 없는 기계에서 인간의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다소 낭만적인 이야기가 여기서는 인간의 욕망인 이기적인 마음에서 출발한다. 로봇을 고칠 수 있는 '지수'가 뇌의 일부 장치를 조절해 레이첼에게 마음이 생기게 한 것이다.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이 생기도록.
결국에는 레이첼이 만든 새로운 종인 모스바나가 더스트를 대항하는 식물로서 밝혀지고, 프롬 빌리지 안의 구성원들이 미래를 향해 나아가며, 온 세상에 이를 퍼트려 모두가 살 수 있는 지구를 만들어 낸다. 지구 끝의 온실이었던 프롬 빌리지 공간이 그들의 노력으로 모든 지구 자체가 생명체가 숨 쉴 수 있는 공간 온실 그 자체가 된 것이다.
환경 오염, 인간의 욕망, 이기심, 미래 기술 등 요즘 세대에서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들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시사점을 준다. 단순한 SF 소설이 아닌 현실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어떤 다큐멘터리보다 마음에 와 닿는 책이 아닐까 싶다.
뭐가 옳은 건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세계를 말하는 것이 이상했다. 프림 빌리지 바깥의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는, 인류 전체의 재건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만큼은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 그들은 우리를 착취하고 내팽개쳤다. 그 사실만은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버려진 우리가 세계를 재건해야 할까.
어디선가 거센 바람이 불어올 때면, 빼곡한 나무들 사이의 작은 공백이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그 풍경을 볼 때면 이곳이 투명한 스노볼 안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아득하게 아름다웠고, 당장 깨어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p215
지수는 자신이 조금씩 사람들이 가진 어떤 활력에 물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수년 뒤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장 내일의 삶만을 생각하는, 그러나 그 내일이 반드시 가능할 것이라고 믿는 데에서 오는 매일의 활기에.
-p304
온실의 모순성을 좋아한다. 자연이자 인공인 온실, 구획되고 통제된 자연. 멀리 갈 수 없는 식물들이 머나먼 지구 반대편의 풍경을 재현하는 공간. 이 소설을 쓰며 우리가 이미 깊이 개입해버린, 되돌릴 수 없는, 그러나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이곳 지구를 생각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세계를 마주하면서도 마침내 그것을 재건하기로 결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아마도 나는, 그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 같다.
-p389
요즘 읽는 책들에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영향인지 바이러스 등, 우리가 피할 수 없는 무언가와 사투를 펼치는 이야기들이 꽤 등장한다. 평범한 삶이 불가능해져 바이러스가 유입하지 못하는 돔을 지어 산다거나, 피할 수 없는 바이러스에 목숨을 잃는다거나, 살아있는 사람들끼리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싸움을 하는 등의 그림이 그려지는 책을 읽을 때마다 괜시리 마음이 불안해진다. 언젠가는 다가올 것 같아서. 픽션을 픽션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에서 살고 있는 기분이다.
더스트 폴 이후 더스트 생태에 대해 연구하는 아영은 해월 지역에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모스바나 식물 조사 요청이 들어와, 그 지역으로 출장을 간다. 엄마의 직장 때문에 온유라는 지역에서 잠시 살았던 아영은 어릴 적 아영에게 돔 시티에 살았던 이야기를 들려줬던 이희수씨를 기억해냈다. 이희수씨의 정원에서 봤던 푸른 빛의 식물 때문이었다. 아영이 더스트 생태학을 공부하게 된 데에는 이희수씨가 들려준 식물 이야기 때문이기도 했다. 돔 밖에서는 더스트 때문에 웬만한 사람들은 다 죽어갔던, 더스트 폴 시대의 이야기.
더스트가 지구를 휩쓸면서 사람들도 다 휩쓸어버렸다. 더스트에 내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내성종으로 분류되었고 내성종은 사냥꾼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하고 연구실로 끌려가 실험 대상이 되었다. 나라, 인종 구분없이 더스트가 가득한 곳에서 살아남을 어딘가를 찾아다녀야만 했다. 아마라와 나오미도 온갖 위협을 어렵게 피해 살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러다 도착한 곳이 프림 빌리지였다. 프림 빌리지에는 그들만의 질서가 있었다. 외부인은 경계하는 마을이어서 아마라와 나오미는 마을 사람들의 회의 끝에 어렵게 프림빌리지 거주 허가를 받았다. 당장 내일을 살아가는 데 급급한 더스트 폴 시대의 사람들은 오늘 하루를 살아냈다는 데에 만족했지만 점점 삶이 안정을 찾아가자 내일이 아닌 미래를 내다보고 싶어했다. 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의 방향이 각기 달랐기에, 프림빌리지 또한 불안전한 곳이었기에 사람들은 결국 프림빌리지의 최후를 마주하게 됐다.
삶과 죽음이 공존했던 더스트 폴 시대였기에 죽음을 목전에 앞둔 사람들의 일상은 두려움과 극도의 긴장감, 불안정함으로 휘감겼을 테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삶을 지배당하고 잠식당하는 기분은 형용할 수 없을 것이다.
프림빌리지 속 은은한 빛을 뿜어냈던 온실은 더스트로부터 프림빌리지 속 사람들을 지켜냈다. 온실 안에서 식물만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레이첼 덕에 더스트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프림빌리지 안의 온실은 희미한 반짝임을 낼 수 있었다. 레이첼이 만들어낸 식물들은 더스트 폴 시대의 사람들을 구해냈지만, 이 식물이 보다 더 넓은 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구해내길 바라는 사람들 때문에 결국 온실을 지켜내지 못했다.
레이첼이 만들어낸 모스바나는 더스트 시대 생태학을 연구하는 아영에게까지 이어진다. 모스바나와 이희수씨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는 아영은 돔 시티에 살았던 아마라와 나오미를 만나게 되고, 그녀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그녀들이 말하는 사람과 이희수씨가 동일 인물이라는 강한 끌림을 받게 된 아영은 이희수씨를 찾아 나선다.
김초엽 작가가 더스트 폴 시대의 이야기와 그 이후 시대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식물'과 흥미롭게 연결시킨 점이 이 책의 매력 포인트다. 정적인 이미지인 '식물'이 지극히 동적인 '사람'과 만나는 김초엽 작가의 이야기는 '식물'이 단지 정적인 대상이 아니라는 걸 각인시켜준다. 인간과 로봇이 결합된 시대,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생존의 위협을 움켜쥐는 시대에도 자연의 터줏대감인 '식물'이 갖고 있는 힘을 이 책에서 느낄 수 있다. 느끼지 못했던 '식물'의 힘 때문에 이야기가 내게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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