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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1년 08월 2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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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96쪽 | 210g | 123*188*20mm |
ISBN13 | 9788925579900 |
ISBN10 | 8925579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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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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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죽음, ‘나’가 아닌 죽음을 지켜보아야 할 때마다 항상 분노가 치민다. 언젠가 내게도 죽음이 찾아들 것임을 알고 있음에도 문득 그것이 찾아왔을 때, 세상의 모든 것과 연(緣)을 끊어야 함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함을 알 때, 한 인간의 고뇌가 번개처럼 내 신경계로 파고들어 전율을 일으키며 슬픔에 빠지게 한다. 죽음의 이 무자비한 폭력성, 자신에게는 이것이 결코 찾아오지 않을 듯 망각한 자들은 그래서 잔인해지는 것일까
이 소설은 철학적 사색이 빼곡하게 스며있는 『소피의 세계』 작가인 ‘요슈타인 가아더’의 짧지만 두꺼운 사유의 기록이다. 철학자 강신주의 말처럼 두 번은 읽어야 하기에 170여 쪽의 작품은 340여 쪽의 이야기가 되는 까닭이기 때문일 것이다.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ALS)'이라는 의지가 사용되는 근육의 점진적 작동 불능상태로 생명을 잃는 불치병의 진단을 받은 교사 ’알버트‘의 이틀에 걸친 치열한 고뇌가 흐른다.
알버트는 아내 에이린과 사랑을 맺었던 37년 전 우연히 찾아들게 되었던, ‘밤의 짙은 눈동자를 닮은 호수’가 있는 숲속 오두막을 찾아간다. 그리곤 오두막 주인인 농부가 내놓은 오두막을 사게 되어 두 사람의 ‘동화속의 오두막’이 되고 아들과 며느리, 손녀가 찾는 가족 공동의 장소에 이르게 된 사연이 나지막하게 회상된다.
“인간의 삶이란 ‘옛날 옛날에...’로 시작해
결국은 어두운 밤이 주인공을 덮치는 이야기와 비슷하지 않을까?” - 75쪽
그는 이미 왼 손의 근육이 경화되어 사용이 불가능해지고 곧이어 오른 쪽 손도, 나아가 신체의 모든 근육들, 호흡조차 어려워지는 시간을 생각한다. 더 늦기 전에 가족들이 “몇 달에 걸쳐 내가 겪을 불명예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함께 경험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살을 결심하고, 오두막의 가족 방명록에 ‘밤의 유서’를 쓰기 시작한다. 사용할 수 있는 오른 손이 굳기 전에.
유서의 이야기들은 에이린과 첫 마주침에서 끌림과 그리고 사랑의 기억들, 아들 크리스티안이 학교에 입학하기 전 세 가족이 오두막에서 맞게 될 설렘의 기쁨들, 그리곤 손녀 사라가 남긴 백조의 그림들, 아들과 손녀 모두와 드넓은 우주의 생명체에 대해 나누었던 대화들, 아내 에이린과 만나기 전의 연인이었던 이젠 가족 주치의인 마리안네와의 사랑의 이야기들이 순수하게 흐른다. 작가는 알버트의 자살 결심과 관련하여 이들 과거의 기억들, ‘당신과 너’들, 사랑하는 이들에 대한 삶의 애틋함을 말하려 한 것일까
그에게 시한부 삶의 선고를 내렸던 마리안네로부터 전화가 오지만 받지 않는다. 그리곤 힘겨운 고립 상태에 빠져있을 알버트에게 살아있음의 신호를 보내 줄 것을 요청하는 따뜻한 문자가 도착한다. 이어 멜버른에 생물학 컨퍼런스에 참석하고 있는 아내 에이린으로부터 ‘사랑하는 알버트!’라로 시작되는 문자가 도착한다. 사랑하는 이들로부터의 따스한 마음들이 그의 곁에 있다. 그의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깊은 좌절과 비애에 휩싸여 있는 존재, 그는 극도의 감상적 형태로 변질된 존재이다. 누군들 이를 피할 수 있을까
차가운 얼음장 같은 호수, 그는 나룻배를 호수의 중간으로 몰고 나간다. 자갈과 쇠못을 허리에 가득 담은 채. 그러나 그는 이른 새벽 자신이 오두막의 2층 침실에 있음을 깨닫는다. 꿈이었나? 현실이었나? 무엇이 그를 자살에서 다시 살아있기를 요구했을까? 그에겐 새로운 가족을 세상에 내놓은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남아있는 사람인 것이다. “나의 존재적 정체성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의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죽음의 실행을 막아선 것일까? 소설에는 그의 우주론적 사색이 흐르며 생명체의 존귀함에 대한 사유가 흐르지만 이것이 곧 결행을 중지시킨 요인은 아닐 것이다.
“몇 달이나 작별을 준비한다는 것은 길고 고통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저 그 시간이 더 길어지지 않기만을 바랄뿐...
그 시간동안 가족들에게 큰 짐이 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 173쪽
알버트는 자신의 죽음이 사랑하는 이들을 더 고통스럽게 할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죽음의 주체인 ‘나’의 생각은 어쩌면 이기적이라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겪는 감성의 충격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였던 것 같다. 다만 길지 않게 끝나기를 바랄 뿐이다. 아마 그가 ‘당신, 너‘라는 존재를 만들었기에 그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는 자기 운명의 몫에 대한 이해였으리라.
나라면 이러한 시한부의 삶, 사랑하는 이들에게 수고로움을 불가피하게 초래하게 될,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게 함으로써 가족들에게 고통을 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어떤 결심을 할 수 있을까? 영국의 형이상학 시인 ‘존 던(John Donne;1572 ~ 1631)’의 소네트 한 구절처럼 “인간은 외딴 섬이 될 수 없다. 개개인의 인간은 대륙의 일부이자.....”라는 그 끈끈한 생의 유대 때문일까? <Time to say goodbye>로 알려진 이탈리아 팝페라 가수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르는 <함께 떠나요; Con te partiro>의 ‘본 적도 산 적도 없는 곳으로 같이 떠나자’는 죽은 이를 향한 애절한 이별의 사랑 노래가 떠오른다. 이 이야기의 결정은 독자의 몫이다. 아마 이 소설은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안타까움과 두려움의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에 펼쳐진 사랑의 이야기가 아닐까
"나는 홀로 고립된 존재가 아니다.
나의 존재적 정체성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의미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밤의 유서> p163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 안나지만 책을 읽고 있던 그 순간의 공기와 분위기가 선명하게 기억되는 책들이 있다. <소피의 세계>가 나에겐 그런 책인데, 쏟아져 들어온 노란 빛줄기에 방의 묵은 먼지가 뿌옇게 부유하고 있는게 너무나 선명하게 보였던 어느 나른한 오후, 벽에 기대 책장을 넘기던 나는 어떤 공간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묘한 기분을 느꼈다. 그만큼 엄청난 몰입감을 느꼈던 책이어서 <소피의 세계> 저자 요슈타인 가이더의 신작에 당연한 관심이 생겼다.
<밤의 유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결심한 알버트가 오두막에서 보낸 이틀 간의 시간을 담았다. 알버트는 신경이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 희귀병을 선고받고, 타인의 도움에 의지하는 비참한 삶을 사느니 죽음을 앞당기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그는 가족과 자신에게 남길 유서를 쓰기 위해 호숫가의 오두막으로 향한다. 오두막은 알버트와 에이린의 시작을 함께 한 곳이자, 두 사람 관계에 위기가 찾아왔을 때 다시 사랑을 확인한 곳이기도 하다. 스무살 시절 에이린과 첫데이트에선 주인 몰래 무단침입을 했지만, 그들이 결혼을 하고 십여 년이 흘렀을 때 우연히 매물로 나온 오두막을 발견하고 지금껏 소유하고 있다. 오두막을 매입하던 당시 아이였던 아들 크리스티안이 결혼하고 손녀까지 낳을 정도로 세월이 흐른 지금, 알버트는 손녀딸이 그림을 그려둔 오두막의 방명록에 자신의 과거를 회고하며 용서를 비는 유서를 남긴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박테리아를 학회에 발표하기 위해 오스트렐리아로 간 에이린이 돌아오기 전에 이 생을 마치려고 결심한다.
그는 자신의 생을 스스로 선택할 자유가 있다고 여긴다. 우주를 동경해왔던 그는 자신의 죽음을 일견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기도 하다. 갑작스럽기는 하지만 죽음은 인간에게 필연적이고, 우주의 티끌로 돌아가는 것 뿐이라고.
고요한 오두막에서 그는 에이린과의 운명 같았던 첫 만남과 크리스티안을 낳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 소원해졌던 그들이 오두막을 매입하며 다시 관계를 회복했던 시절과 손녀 사라와의 아름다운 추억, 그리고 가족들에게 용서를 구할 수 밖에 없는 과거의 잘못을 회상한다. 그리고 인간이 얼마나 우연하게 탄생한 존재인지, 삶을 그래서 얼마나 아름답고 경이로운지를 우주적인 사유를 통해 깨닫는다.
이틀 간의 시간을 담고 있어 매우 심플한 스토리지만, 주인공의 사유가 변하게 되는 과정들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그에게 죽음은 그저 두려울 뿐이지 고통스럽지는 않다. 오히려 삶이 고통이다. 모든 감각이 멀고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자신과 자신을 돕느라 희생하는 가족들을 떠올리면 그에게 남은 생을 견뎌낼 자신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남겨질 가족은 어떠한가. 자신의 부재가 아내 에이린에게 얼마나 깊은 슬픔일까. 소중한 존재의 부재는 남겨진 이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인가. 결국 알버트의 결심은 무너지고 만다.
사실 처음부터 알버트의 병이 드러나지 않고 과거 회상과 현재를 오가는 구성에 우주와 인간의 존재 등 사유가 확장되고 있어 저자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명확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뒤에 덧붙여진 강신주 작가의 해설은 오아시스 같았다. 나의 존재와 가치, 존엄보다 너를 사랑하는 마음이 주인공의 자살을 멈춘 것이라고. 이렇게 보니 굉장히 로맨틱한 소설 같다.
한때 나도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망하면 죽지 뭐'라고 목숨을 그다지 아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도 두려워하지 않고 내 욕망대로 저질렀던 일들이 많았다. 하지만 가족이 생기고 특히 아이를 낳고 나니 내 존재와 정체성이 나 하나로 생각되지 않는다. 나는 나를 둘러싼 관계 속에 존재한다. 나의 목숨도 온전히 내 것이라 말하기 어렵다. 당장 내가 사라지면 내 아이는 많은 어려움에 처할 것이기에 별로 신경쓴 적 없던 내 건강을 염려하게 된다.
책을 다 읽고 나니 까만 밤, 그리고 밤하늘을 닮은 까만 호수를 노 저어가는 한 남자의 모습이 아주 작게 그려진 표지가 다시 보였다. 끝없는 우주에 홀로 남은 듯 고독해보였는데, 노 젓는 손이 새삼 분주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남자가 가는 방향 끝엔 사랑하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겠지.
※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에서 출판사 도서 지원을 받아 솔직하게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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