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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1년 08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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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52쪽 | 192g | 132*224*8mm |
ISBN13 | 9788954681827 |
ISBN10 | 8954681824 |
문학동네 200 티저시집『우리를 세상의 끝으로』, 시인의말 모음집 『내가 아직 쓰지 않은 것』 출간!
2023년 10월 10일 ~ 2024년 11월 04일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0월 10일
뉴욕타임즈 21세기 최고의 책 100대 도서 『파친코』, 『채식주의자』 선정
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0월 18일
문학 PD가 보내는 백 번째 편지 : 100호 기념 기획전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2024년 10월 01일 ~ 2024년 10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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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오느라 나는 마흔 살이 되어버렸다
세상에,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말할 수 없어서 그냥 인생이라고 쓴다
- 신용목, 「그림자역」 부분
나흘 전 나는 생일이었고 마흔 여덟 살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에 있는 동갑내기 친구가 "우리 내년이면 쉬흔이야."라고 했다.
마흔여덟과 쉬흔의 간극은 천국과 지옥처럼 큰 것이라서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마흔여덟이 된다는 건 그럭저럭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전혀 무방비한 상태에서 손님이 들이닥쳤을 때처럼, 쉬흔이 된다는 건, 그렇게 당혹스러웠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래서 나는 지난 나흘 동안 '쉬흔'이라는 것에 대해 시도때도 없이 묵상을 했다. 때마침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는 겨울이 우기고, 지난 열흘은 내가 이곳에서 산 8년 중 가장 추웠다.
추워서 머리까지 꽁꽁 얼 것 같은 날, 기모 후드 위에 패딩조끼를 입고, 그 위에 경량 패딩점퍼까지 입고 운동을 하러 나갔다. 커다란 방울이 달린 모자에 장갑까지 단단히 무장하고서까지, 이 추운 날 집밖으로 나간 건, 걷거나 뛸 때 나는 가장 나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분주함에 대부분 잠식당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아주 잠깐이지만, 나 자신에 몰두하고 몰입할 수 있는 시간.
내 숨이 입김이 되어 안개처럼 퍼지는 길을 하염없이 걷거나 뛰며, 나는 곧 쉬흔이 될 나를 생각했다.
11월 말에 수술을 하고 완전히 회복이 안 된 몸이지만, 어쩌면 이런 몸이라 몸의 연약함에 좀더 예민하게, '나'라는 존재를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했다.
마흔이 된다는 것이 막연한 두려움이었다면(그 즈음에 주변에 유난히 아픈 선배들이 많았다), 쉬흔이 된다는 건 뭐랄까. 인생에서 더이상 새로울 것은 없고, 이젠 쇠약해질 것 밖에 남은 게 없는 육체를 무기력하게 지켜봐야 하는 단계로의 진입이랄까. 이전의 인생이 롤러코스터 같아서 그나마 스펙터클한 즐거움(?)이라도 있었다면, 이젠 정점에서 추락할 일만 남은, 정확한 예측이 가능한 단조로운 미래.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대비는, 다가올 추락에 놀라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것. 그 추락이 가파르지 않고 완만하길 기도하는 것, 정도가 되겠다.
외국에서 산지 20년 가까이 되어가는 나는 모국어도 많이 잃어서 모국어로도 울지 못하는데(시인은 「그림자역」에서 '모국어가 없었다면 아무도 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나는 깨달은 것이다. 울고 싶지만 울 수 없었던 이유를), 내 그림자는 상한 몸에서 흘러나와 저녁이 된다.
아, 이런 공감이라니.
이 시집은 '비'로 시작해서 '비'로 끝난다. 한국은 여름이 장마철이고 '비'하면 보통 여름이 연상되겠지만, 겨울이 우기인 캘리포니아를 사는 나는 '비'하면 당연히 겨울이 떠오른다. 그래서 나는 이 시집을 겨울에 읽어야만 했다.
시인과 내가 1974년에 태어나 동시대를 살았다고 해서 우리가 산 인생이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이 시집의 기저에 배음처럼 깔린 비와 밤, 그림자는 나의 것이기도 하다. 가령 이런 이미지들.
밤은 모두를 물어뜯는 시간을 가지고 있다
나라는 봉지를
어느 날 젊음이 나를 그곳까지 걷게 했다고 믿는다 너는 없고 네 방에 누웠다가 깜빡 잠들었던 가을
흠뻑 젖은 꿈으로 깨어나 불러도 아무도 없던 빈 방
스위치를 올리면 어둠으로부터 전신으로 떨어져내리는 검은 날개처럼
소주를 사왔던 봉지가 찢긴 채 구석에 버려져 있었다
- 신용목, 「유령 비」 부분
마흔여덟의 나는 결코 나를 젊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른부터 계속 아픈 몸으로 살아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서른 이후 나는 결코 젊은이였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삼십 대와 사십 대를 돌아본다면, 이런 이미지와 유사하지 않을까 싶어진다.
그리고 이제 곧 쉬흔이 될 나는...
슬픔에 고용당한 사람들은 사랑에 관한 수백 가지 말을 알고 있지만, 마음은 또한 물에 담가둔 고깃덩이 같아서 아무리 온도를 낮춰놓아도 조금씩 상해간다
- 신용목, 「미래」 전문
나이가 든다는 건 육신의 후패를 날마다 경험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아무리 온도를 낮춰놓아도 조금씩 상해가는 고깃덩이 같은 게 바로 나의 미래이자 모든 인간의 미래일지도.
그래서 절망스러운가? 그래서 낙담하는가? 그건 또 별개의 문제이다.
지난 주말부터 안개가 매우 짙은데, 오늘은 유난히 심했다.
안개가 기관지와 호흡기에 좋지 않을 것 같아(이런 걸 매순간마다 신경 쓰는 것 자체가 나이를 먹었다는 증거다. 동시에 아픈 몸으로 살아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마스크를 쓰고 밖으로 나갔다. 한낮인데도 저녁 어스름처럼 시야가 흐렸다.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앞으로 나가다보니 액화한 안개가 내 눈썹에 매달려 마치 눈물을 달고 걷는 것 같았다. 울고 싶은 심정은 아니었지만, 안개 낀 거리를 눈물을 매달고 걷는 듯한 심정은 아마도 '슬픔에 고용당한 사람'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내게 주어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내가 내 인생에 대해 취할 수 있는 의연함이다. 담담하게 현실을 마주하고, 그렇게 다가올 미래를 응시하는 것. 내 미래가 겨우 조금씩 상해가는 고깃덩이 같은 것이라는 걸 이미 예상하고 있다고 해도, 지레 포기하거나 과도하게 부인하지도 않고, 받아들이는 것.
비가 오는 날에도 안개가 낀 날에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을 나가는 것처럼. 그것이 쉬흔을 맞이하는 나의 마음가짐이다.
우리는 철없이 죽음을 당겨쓰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제에 남아 있는 내가 느껴집니다
아직 사랑이 끝나지 않은 날들의 사랑이
사랑이 끝난 오늘도 만져집니다
- 신용목, 「겨울의 미래」 부분
이 시집의 시들은 상당 부분 계절감이 느껴진다.
여름에 출간된 이 시집을 여름에 읽은 한국의 독자들은 이 시집을 '여름시'로 읽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겨울의 한복판에서 이 시들을 '겨울시'로 읽었다. 마흔여덟을 지나오면서, 쉬흔을 앞두고.
그리고 「겨울의 미래」의 이 고백이 쉬흔을 앞둔, 그러니깐 인생의 전반전을 지나 반환점을 돌고 있는 시점에서 내 인생을 요약하는 문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앞으로 내게 남은 시간이 계절로 따지자면 겨울일지라도 그 겨울에도 미래가 있는 것이기에, 나는 오늘도 빗속을, 안갯 속을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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