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 기독교의 상상하기 어려운 부흥과 성장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로마 제국의 압제도 그렇고 기독교 복음의 높은 도덕적 삶의 요구도 그렇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결단코 녹록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전통적인 정답은 성령의 강력한 사역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열정적 복음 전도였다. 과히 틀린 답은 아니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살피면 다른 정답이 나올 수 있다. 이 책의 저자가 그런 학자다. 미국의 대표적 메노나이트 학자인 앨런 크라이더는 초기 교부들의 글들을 통해 초기 교회의 폭발적 성장 요인을 그리스도인의 “인내”라는 덕에서 찾는다. 인내의 뿌리는 성육신 신학에 있고, 결국 온갖 박해와 유혹에도 불구하고 이 땅에서 외국인 거주자처럼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그들 몸에 배였다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습관(아비투스)이 제2의 본성이 된 것이다. 이것이 저자가 이 책에서 반복해서 사용하는 “발효”의 은유다. 영적 성품이 형성되고 몸에 밴 습관이 되기 위해 꾸준히 행해지는 신앙 교육과 예배가 그들 삶의 중심을 차지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소수자로 사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평화와 화해, 용서와 사랑을 실천하고, 고난 중에도 인내하는 힘을 길렀다.
저자의 신학적 전통을 알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독서의 감흥은 달라질까? 글쎄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 경우는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신학적 개념과 신앙의 덕으로서 “인내”를 초기 교회의 폭발적 핵심 성장 “효모”로 설정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한국의 개혁주의 전통의 교회들이 어정쩡한 승리주의에 한눈을 팔고 있는 이때 앨런 크라이더의 주장은 통렬한 반성과 복음의 본질에 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한국 주류 교단의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의 필독서가 되어야 할 책이다.
- 류호준 (전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목사)
16세기 아나뱁티스트 운동은 초기 교회의 정신을 회복하려는 근원적 변화에 대한 바람에서 촉발되었다. 아나뱁티스트 메노나이트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 초기 교회를 문자에 갇힌 과거가 아닌, 생동감 넘치는 현장으로 소개해 주신 분이 앨런 크라이더 교수님이다. 그의 역작 『초기 교회와 인내의 발효』는 조급증에 걸린 줄도 모르고 내달리다 급기야 방향을 잃은 한국 교회에 내민 노교수의 따뜻한 손길이라 확신한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선한 눈빛과 미소가 초기 교회가 인내로 빚어낸 아비투스와 겹치는 착시 현상을 경험했다.
- 문선주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총무, 목사)
하나님의 나라는 전략에 있지 않고, 태도에 있다. 우리 손으로 세상을 기독교화하려는 조급성과 우리 생각에 옳은 방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과욕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방해한다. 아우구스티누스 이전 기독교의 자료를 살펴보면 그들은 놀랍게도 세상을 구하는 전략, 심지어 전도에도 큰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대신 그들은 그리스도의 인내를 본받아 사는 데 전심전력했다. 그들의 태도가 교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그들의 공동체가 하나님의 성품을 비추었기 때문이다.
인내는 그 신비한 발효를 가능하게 한 효소였다. 방대한 역사적 자료를 객관적으로 다루는 엄밀성과 하나님 나라를 향한 뜨거운 열정을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이 놀랍다. 길을 잃은 오늘의 교회에 던지는 벼락 같은 도전이다.
- 박영호 (포항제일교회 목사)
선교 단체들은 지난 십여 년간 해외 선교에 있어 전에 없는 도전에 직면해 왔다. 국가주의의 강화, 종교적 접근의 뚜렷한 한계, 교회 권위의 하락, 젊은이들의 교회 회피 등의 문제들을 어떻게 돌파할지 기도하며 성찰하던 우리에게 이 책은 선물처럼 다가왔다. 환경이 급변할 때는 오히려 본질을 붙들어야 한다. 그래야 비본질적 과거의 아비투스들, 즉 교회 성장론, 결과주의, 기독 권력화, 번영 신학 등을 깰 수 있는 힘이 나온다.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전환하던 1세기 하나님 백성들 역시 로마의 적그리스도적 제국성으로 전에 없는 혼란과 도전에 직면했다. 그들이 선택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인내로써 고난을 이기고, 선으로 악을 대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조급함이나 두려움이 아닌 인내와 소망의 아비투스를 가진 것이 놀랍지 않은가? 대책이나 전술이 아닌, 예수 문화의 회복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기에, 이 책의 출간을 축하하고 기뻐한다.
- 조샘 (인터서브 대표)
앨런 크라이더가 다시 해냈다. 그는 초기 기독교의 자료들, 본문들, 학문에 대한 그의 해박한 이해를 활용해 기독교적 인내라는 미덕과, 그것이 예배와 삶에 미치는 형성적 성격을 조명해 준다.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 맥스웰 존슨 (노터데임 대학교 전례학 교수, Praying and Believing in Early Christianity 저자)
이 생생하고 통찰력 있는 연구를 통해 크라이더는 그의 깊은 학문에 의지해 미래가 확실하지 않았던 시기의 초기 기독교 공동체들의 모습을 그려 낸다. 이 책에서 고대 남자들과 여자들은 인내와 겸손이라는 강력한 이상을 지니고 사는, 그리고 그런 이상을 실현하며 사는 사람들로 묘사된다. 그들의 투쟁은 회심자를 얻는 일에서 그들이 거둔 믿기지 않는 성공으로 빛을 발한다. 크라이더는 고대 자료들을 새로운 관점으로 읽어 내는 드문 능력을 가졌다. 놀랍고도 영감을 부여하는 책이다.
- 케이트 쿠퍼 (맨체스터 대학교 고대사학 교수, Band of Angels 저자)
많은 학자들이 기독교의 발흥을 권력의 측면에서 해석하는 때에 크라이더는 초기 기독교의 ‘내부’로부터의 성장이라는 신선하고 보증된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독자들은 그동안 기독교의 급속한 발흥에 관한 논의에서 무시되어 왔던 보다 느리고 보다 예민한 과정을 살펴보도록 초청받는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오늘날 유행하는 학술적 견해들 사이에서 균형 잡는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 대니얼 윌리엄스 (베일러 대학교 교부학, 역사신학 교수)
‘시간은 공간보다 크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 원리가 교회, 그리고 평화로운 사회 변화를 위한 운동에 적용되도록 촉구해 왔다. 그가 『복음의 기쁨』(The Joy of the Gospel)에서 썼듯이, ‘이 원리는 우리가 즉각적인 결과에 집착하지 않게 하면서, 또는 권력과 자기주장의 모든 공간을 소유하려고 하지 않게 하면서,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일할 수 있게 해 준다.’ 크라이더가 철처한 연구를 토대로 써낸 그러나 놀랄 만큼 친절한 이 책은 프란치스코가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을 교회가 처음 세기들에 수행한 비폭력적 인내와 매력적 증언으로 다시 부르고 있음을 보여 준다.
- 제럴드 슐라바흐 (세인트 토머스 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