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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1년 12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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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 /PC(Mac) |
파일/용량 | EPUB(DRM) | 32.94MB 파일/용량 안내 |
글자 수/페이지 수 | 약 33.2만자, 약 10.4만 단어, A4 약 208쪽 글자 수/페이지 수 안내 |
ISBN13 | 9791191922011 |
2024년 08월 21일 ~ 2024년 09월 30일
2023년 02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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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책을 덮고, 이 먹먹함을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읽는동안 멀쩡하게 읽은 시간보다 눈물이 고여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나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고 읽어 중간에 책을 덮을 때는 입 언저리가 얼얼하기도 했다. 결국 두 군데에서 참았던 울음을 터뜨려 펑펑 울고 말았고, 읽는 내내 눈이 뻑뻑해져 인공 눈물을 끼고 읽었더랬다. 정말 오랜만에, 그야말로 나도 모르게 소설 속으로 들어가 명치가 아프도록 속상하고 애가 닳도록, 슬펐다.
1981년부터 1992년까지 대처리즘 시대에 글래고스를 배경으로 애그리스를 중심으로한 베인 가족의 이야기를 담았다. 소설은 3인칭으로 서술되지만 등장인물의 관점을 바꿔가며 진행된다. 신자유주의로 인해 노동자 계급은 설 자리를 잃고, 주요 배경인 탄광촌 핏헤드에서처럼 실직 후 대체 일자리를 얻지 못한 가장들은 소액의 수당을 받으며 술과 놀음, 여색에 빠져 허송세월을 보내는 동안 여성들이 양육과 살림을 도맡아 가정을 지키며 빈곤한 생계를 겨우 이어갔다. 또한 스코틀랜드 출신으로서 카톨릭 교도인 애그니스와 개신교 신자인 셕의 결혼이 상징하듯 종교적 대립 역시 만만치 않은 문제점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남성성을 강요받는 시대에서 성정체성에 대한 편견과 폭력도 담아내고 있다. 그런데 사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이러한 시대적 혹은 사회적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이 소설은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었던, 그릇된 사랑을 좇다 스스로를 망가뜨린 여성,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사랑과 미련을 놓을 수 없었던 한 소년의 애정을 그린, 그야말로 그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강했기 때문이다.
67.
이 진창에서 우리를 구할 건 운밖에 없으니까.
불같은 끌림이 사랑이라 믿었던 셕과 애그니스는 각자의 가정을 깨뜨리고 재혼했다. 셕은 울며 매달리는 아내와 네 아이들을, 애그니스는 남편에게 가볍게 이혼을 통보한 후 두 아이 캐서린과 릭을 데리고 나왔고 무일푼인 남녀가 두 아이를 데리고 향한 곳은 애그니스의 친정이었다. 불꽃이 꺼지는 건 한 순간이다. 직업이 택시 기사인 셕은 양다리도 모자라 문어발식 바람을 피웠고, 애그니스가 술을 마시기 시작한 것도 셕의 외도 때문이었다.
이 소설은 책장마다 안타까운 장면이 많아 독자가 끊임없이 가정을 하게 만든다. 애그니스가 첫 번째 남편과 헤어지지 않아다면, 엄마 리지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면, 유진의 시험을 더 강하게 거부했다면, 핏헤드를 벗어나는 순간의 다짐을 지켰더라면, 그랬더라면, 이라고 말이다.
엄마에게 희망이 없다고 여긴 큰딸 캐서린은 어린 나이임에도 집(과 책임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미련없이 결혼을 선택했다. 비록 결혼 상대자가 그토록 증오하는 의붓 아버지의 조카라고 하더라도. 릭이 순수미술 학부의 우수생으로 입학 허가를 받은 편지를 받은 날, 셕은 식구들을 핏헤드에 던져 놓은 채 애그니스를 떠났고, 엄마 애그니스는 오븐에 머리를 넣고 죽으려 했으며, 캐서린과 셔기는 겁에 질려있었다. 이제 가장과 다를 바 없는 자기가 어떻게 이들을 두고 떠나겠는가. 릭은 입학통지서를 2년이 넘도록 간직했다. 그의 희망은 하루라도 빨리 집을 나가 미술대학에 입학하는 것이었으나 인생은,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처적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엄마를 통해서. 셔기는 기억이 시작되는 가장 어린나이를 돌이켜 떠올려봐도 엄마가 온전한 정신이었던 날이 거의 없다. 소년은 자신이 살아온 대부분의 기억 안에서 엄마는 항상 취해 있었다. 딱 1년, 엄마가 술을 끊었던 그 기간에 셔기는 행복했다.
416.
난 슬퍼지려고 술을 마신 게 아니야. 슬픔에서 벗어나려고 마신 거지.
예상컨대 대부분의 독자들은 셕과 애그니스의 부모로서 무책임함에 분노할 것이다(셕은 구제불능이고). 그런데 애그니스라는 인물을 좀 깊게 들여다보면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참 안타깝고 애잔하다. 사람은 저마다 추구하는 가치와 열망이 다르다. 애그니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었고, 자신의 사랑에 충실했다. 셕에게, 유진에게, 자신에게. 어린 자식들에게 모진 말과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삶에 지쳐 죽을 결심을 한 순간마다 아이들을 향한 사랑에 아파했다. 술과 남자에 흔들리면서도 자식들은 지키고 싶었던 애그니스. 애그니스가 지키고 싶어했던 것이 과연 자식인지, 자신의 자존심인지, 그것도 아니면 혼자 남겨질 두려움에 대한 방어인지 잘 모르겠다. 애그니스는 충분히 좋은 딸, 좋은 아내, 좋은 엄마, 좋은 이웃, 좋은 사람일 수 있었다. 그 기회를 놓은 것은 본인 자신이지만. 그리고 그녀는 릭이 그림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셔기가 학교에서 자신이 강요한 단정한 옷차림과 말투 때문에 '호모 새끼'라고 놀림을 당한다는 것을 알아야 했다. 그것이 문제였다. 알아야하는 것들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는 사실.
나이답지 않은 세련되고 예의바른 말투, 여리여리한 외모 때문에 '호모 새끼'라고 학교폭력을 당하는 셔기의 인생 목표는 오직 '엄마 지킴이'다. 다섯 살이 지나면서 셔기는 자신이 잘 하면 엄마가 술도 끊고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 '내가 조금만 더 잘 하면'. 그래서 엄마가 알콜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남자들에게 버림받는 것도, 다 자신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한다. 혼자서는 살지 못하고, 도망갈 곳 없이 고립되어 서로가 절실하게 필요한 애그니스와 셔기는 무척 닮아있다. 또한 캐서린과 릭이 벗어난 핏헤드에서 떠나지 못했던 애그니스와 셔기가 핏헤드 자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그니스는 여러 의미에서 고립무원이었던 핏헤드를 왜 떠나지 못했을까? 처음에는 셕에 대한 미련이었지만 이후에는 나가고 싶어도 나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침내 그곳을 떠나는 순간, 나는 셔기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더랬었다. 그저 희망에 그쳤지만.
술에 취한 엄마라도, 막말을 내뱉는 엄마라도,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엄마라도 곁에 있어 좋은 리앤. 셔기는 애그니스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질문을 리앤의 엄마에게 묻는다. "왜 이렇게 살아야 해요?"
두 사람의 결별 무렵, 애그니스가 셕에게 물었다. "나 하나로 만족할 수 없어?"
애그니스에게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그때 셔기가 혼잣말로 애그니스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나 하나로 충분하지 않아요?"
두 사람은 왜 이렇게 닮아있는 건지...
사랑의 방식이 어떻든 셔기는 엄마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얼마나 빛났으며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얼마나 컸는지, 그래서 자신이 무엇을 물려받았는지 잘 알았기에 홀로 설 준비가 된 셔기. 시종일관 절망에 가까웠던 소설은 마지막에서 작은 희망의 빛을 놓아둔다.
내가 지금보다 훨씬 오래 전에 이 소설을 읽었다면 셕과 애그니스의 무책임함을 향해 비난을 쏟아냈을 것이다. 그러나 어제보다는, 그제보다는 더 어른이 된 나는 삶의 모양이 사람마다 제각각임을 납득하는 넓이가 그 하루만큼 아주 조금씩 넓어지고 있는 중이다. 매일이 쌓여 어른이 된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말로 일일이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한편으로는 애그니스의 마음을 알 것 같아서, 그녀를 마냥 미워할 수가 없다.
페이지마다 크고 작은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마음을 콕콕 찌른다. 한동안은 이 뭉근한 느낌이 가슴에서 떨어져나갈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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