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에서 영생의 삶을 살아낸 환희의 찬가
연세의료원의 원목 실장 겸 교목실장으로 보직을 받아 일한 지 만 6년이 지난 나는 그동안 많은 환자를 가까이서 경험했습니다. 환자들은 대개가 질병 앞에서 긴장하고 낯설어하며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픈 육신과 상한 마음을 어찌하지 못해서 분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게다가 치료가 어려운 중증질병 앞에 직면한 환자들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마음의 평정을 잃거나 자기 삶의 근본인 신앙의 지축을 바닥부터 흔드는 상황 한가운데 놓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를 가까이서 경험하는 가족이나 친구, 지인들은 그러한 환자를 어떻게 대면해야 할지 알지 못해서 당황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모두가 힘겨운 삶의 여정에 있게 하는 것이 질병의 상황입니다.
질병은 종교가 있는 환자들에게는 자기 종교의 성직자를 병실 공간에서 사적私的으로 만나는 기회가 됩니다. 예배 의식에 참여하며 먼발치에서 공적公的으로 바라보던 성직자를 가까이서 만나는 것이 환자들에게는 큰 위로와 격려가 되며, 소망이 되기도 합니다. 신앙의 힘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극도의 고통으로 울부짖는 환자들을 대면하는 성직자들은 당황하기 쉬운 것이 현실입니다. 스스로 경험하지 못한 질병과 평상시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던 환자를 가까이서 대면하는 것이 부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신학을 공부하고 설교하는 법은 배웠지만, 환자 목회에 대해서는 무지하고 예배 집례와 가정 심방은 익숙하지만, 병원 심방은 언제나 새롭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는 주된 사역과 함께 각종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환자들을 가장 빈번하게 만나줍니다. 그리고 시각 장애인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혈루증으로 인해서 모든 것을 잃은 여인의 혈루증을 그치게 하셨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동안 방치되어 있던 환자가 자신의 침상을 들고 절망의 자리를 스스로 박차게 하셨습니다. 지붕을 뚫고 치유를 기대하는 친구들의 사랑에 감동해서 중풍 병자를 고쳐주셨습니다.
심지어 어느 과부의 아들과 당신의 친구 나사로의 경우는 죽음으로부터 일으켜주기까지 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어떤 환자라도 질병에서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의 가장 큰 관심은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리는 것 자체에 있었습니다.
성경의 많은 이야기가 환자들에게 복음으로 이해되는 것은 예수를 만나면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심신이 약해졌거나 절망하는 환자들에게 질병이란 구원자 예수를 만나게 하는 기회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적적인 치유가 신앙의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신앙을 지녔다고 해서 모든 질병이 치유되는 것도 아니고, 질병이 치유되지 않았다고 해서 신앙을 저버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삼는 것입니다. 모든 막힌 담을 허물고 하나 되게 하신 예수를 구원자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새로운 소망을 품고 용기 있게 살도록 이끄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가 복음이자 우리의 신앙입니다.
‘사나 죽으나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살 수 있는 삶의 깊은 비결과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여기에 있습니다. 죽음을 앞둔 한 환자의 아픔과 안타까움을 자신의 아픔과 안타까움으로 삼은 한 목회자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버지의 마음으로 전한 그 목회자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한 신실한 평신도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주님 안에서 주님과 거닐고 교제하며 가꾼 자신의 비밀의 정원을 여실히 보여주는 한 평신도와 그 정원에 온갖 아름다운 신앙의 꽃들이 피어나도록 안내하는 자상한 한 목회자가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를 생각나게 하는 한 목회자와 암 투병을 주님과 함께 사는 연습을 위한 은혜의 선물로 고백하는 평신도가 만들어내는 감동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과 입술이 되어 자신이 깨달은 주님의 뜻을 씹고 또 씹어서 사랑으로 전하는 한 목회자와 주님의 손발이 되어 있는 모습 그대로 감사와 찬양을 표현하는 한 평신도가 짝을 이루어 만드는 신앙의 사건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이미 받은 은혜가 너무 크고, 천국 소망으로 인해 결과에 상관없이 내 잔이 넘친다는 암 투병 환자의 고백과 하나님의 품으로 나아간 자매든 그녀를 사랑했던 남은 자들이든 언제 어디서나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이라며 영원한 신앙의 교제를 도전하는 한 목회자의 고백이 여기에 있습니다.
영생이란 죽지 않고 오래 살거나 죽어서야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에 있음을 알고,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든 당장 그 자리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임을 삶 자체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은혜를 은혜로 깨닫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자신이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지금이야말로 자신이 살아온 시간 중에 가장 행복한 최고의 시간, 카이로스의 시간임을 알게 하는 지혜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우리 자신보다 더 안타까운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시며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이해하시며 당신의 따뜻한 품에 사랑으로 안아주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목회자와 평신도의 바른 관계란 기쁨과 아픔, 절망과 소망을 함께 나누며, 날마다 더 기뻐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며, 함께 마음을 모아 찬양하며, 서로를 위해 간절히 중보기도 하며 살아가는 영적 도반道伴의 관계에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한 목회자와 한 평신도가 죽음 앞에서 하모니를 이루며 영생의 삶을 살아낸 환희의 찬가를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고, 만지며 느낄 수 있습니다. 이 책에는 신앙이 주는 감동과 우리가 어떤 신앙으로 살아야 할지에 대한 도전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형제, 자매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편 133:1) 노래한 시편 기자의 노래를 온몸으로 느끼며 체화할 수 있습니다. 많은 독자가 이렇게도 아름답고 소중한 신앙과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책을 기꺼이 읽고, 감동과 도전을 경험하며, 건강한 신앙인으로 살 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은총과 도우심이 우리 삶의 여정 속에 영원히 함께하기를 축원합니다.
- 정종훈 (연세의료원 원목실장 겸 교목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