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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2년 02월 16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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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 EPUB(DRM) | 41.94MB 파일/용량 안내 |
글자 수/페이지 수 | 약 7.8만자, 약 2.7만 단어, A4 약 49쪽 글자 수/페이지 수 안내 |
ISBN13 | 9791187064763 |
2023년 02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상시
12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지난 20년 3월 22일 저녁 9시 네이버 카페 언니공동체에서 권주리 작가님의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 북토크를 진행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책이 어디가 좋았을까? 왜 좋지? 좋으면 좋다 하고 마음속으로 생각하거나 한 발 더 나간다면 SNS에 감상평을 남기면 될 텐데 말이다. 왜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여 북토크가 하고 싶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을 차근차근 살펴보자.
나는 이 책이 어디가 좋았을까?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 일단 제목에서 끌렸다. 신선했다. ‘엄마 휴직’이라니. 여기서 엄마 휴직은 주양육자이자 주부인 ‘엄마’라는 역할에서 잠시 내려온다는 뜻이다. 지난날, 나는 부부연차제도(*부부연차제도란 엄마도 아빠 이전의 개인의 시간을 존중하자는 의미로 1년에 15일은 자유시간을 보장하는 제도)를 생각하고 스스로를 얼마나 칭찬했던가. 그런데 주리님은 나보다 한 수위다. 역할을 바꿀 생각 같은 건 꿈에도 못 했다.
이때 누군가는 제목만 듣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걸 한다고 뭐가 크게 달라질 것 같아
조금 격하게 썼지만, 이런 의심 가질 수 있다. 기혼여성 유자녀인 내가 이 책을 읽음으로써 (그러니까 페미니즘을 통해 원하는 건) 남편이 나보다 더 많은 가사 노동을 하고, 내가 더 많은 쉼을 보장받고자 함이 아니다. 그렇다고 to-do 리스트를 만들어서 정확하게 5:5로 육아와 살림을 나누자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나눌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성평등, 페미니즘 좋은 말이고 해야하는 건 알겠는데 너무 어렵고, 모르고 싶어요.
이 마음도 백분 이해한다. 요즘 ‘페미니즘’은 아주 뜨거운 감자다. 나는 이번 20대 대통령 선거의 중요 키워드 중 하나를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페미니즘은 필요하다는 건 알겠지만 (정말 아는가? 아무튼 페미니즘은 할말하않) 어디서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그냥 모른 척하고 싶기도 하다. 아니면 아예 까칠한, 뜬금없는, 급진적인 존재라고 일축하면서 거리를 둬서 마음의 평안을 찾으려는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너무 유명한 명제,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상기할 수밖에 없다.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은 정치 현실을 보면 답답하지만 어쩌면 나는 이때가 기회라고 생각한다. 더 많은 이야기가 쏟아져 나와야 한다. 페미니즘의 색깔은 하나가 아니다. 저마다 다양한 상황, 입장, 환경이 있기 때문이다. 무슨 공식처럼 이런 상황에선 이게 정답이다 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에겐 더 많은 레퍼런스가 필요하다.
그래서 북토크여야 했다. 나 혼자 읽고 감상평을 적는 것을 넘어서 내가 좋아하는 언니공동체 언니들과 비록 온라인이지만 얼굴 맞대고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이 부분에서 동의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이건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요?' 등등 다채로운 무지개빛 하모니가 보고 싶었다. 오소희 작가님도 말하지 않았나. 우리에겐 연대가 필요하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토크를 해야겠다! 라고 생각한 결정타는 대통령 당선자의 발언에서 시작되었다. 분노는 나의 힘이라고 했던가. 그는 더이상 우리나라에 여성과 남성의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혐오와 차별이 명백하게 존재하는 시대에 사는 우리는 이 무시무시한 한마디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검열하게 되었다. ‘실은 정말 그런 게 아닐까?’ 하고 의심하게 된다. 사회적인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리는 바람에 우리는 더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결국, 여성은 있지만 없는 사람인 척을 할 수밖에 없는 거다. 예를 들면 육아와 살림을 담당하는 전업주부에게 누군가 직업을 물으면 ‘놀아요’라고 말하는 거다. 슬프게도 이건 나의 과거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페미니즘은 필요하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기 위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떤지,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아주아주 다양하고 많은 시도와 목소리가 필요하다.
그 목소리 중 하나가 나는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라고 생각한다. 이게 100%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이 마중물이 되어 앞으로 어떻게 변화를 시도해야 하는지, 연대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힘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함께 읽고 나누고 싶다.
영업멘트 하나 더 추가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매력은 솔직함이다.
아무도 나에게 “전업주부와 주양육자가 돼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남편과 내가 내린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 왔다. 어린이집 외에는 돌봄을 맡길 곳이 없는 데다가 프리랜서는 휴직을 하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자연스럽게 내가 전업주부가 되었다. 하지만 점점 의심이 든다. 정말 아무도 나에게 강요하지 않았나? 내가 여성이니까 주양육자이자 전업주부가 되겠다고 스스로 한 걸음 물러선 게 아닐까? 겉으로는 페미니즘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남자는 바깥일, 여자는 집안일’이라는 공식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던 게 아닐까? (중략) 내 안의 가부장제는 내가 바깥양반이 아닌 안사람 역할을 자처하게 만들었다. 찰나의 의심은 있었지만 행동할 자신은 없었다. /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 37p
내 돌봄노동이 있기에 가족 모두가 건강하고 무탈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은 머리로는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무언가가 늘 마음속에 있었다. '나는 겨우 집에서 밥이나 하고 있을 사람이 아니야'라는 차별적인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돌봄노동의 가치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나조차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 98p
엄마 휴직을 막 시작했을 때는 ‘너도 한번 당해봐라’라는 마음이 남편을 향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별다른 준비 없이 갑작스럽게 주부와 주양육자 역할을 맡아 외로움과 억울함 속에서 허우적대던 경험을 남편도 겪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중략) 바깥양반과 전업주부의 역할을 칼같이 나눌수록 우리 집의 가부장제는 겉모습만 살짝 바뀐 채로 더욱 견고해지고 있었다. /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 196p
내 안의 가부장제를 의심하고, 인식하고, 인정하는 단계를 넘어 공개하고, 행동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담긴 이 책이 좋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구도 억울하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 담긴 이 실험이 정말이지 눈물 나게 사랑스럽다. 누군가는 ‘굳이’라는 단어를 붙여가며, ‘오지랖’이라 부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굳이’ 엄마 휴직을 실천하고, 그걸 ‘굳이’ 책을 쓰고, ‘굳이’ 북토크를 하는 이 유난스러움이 더 자주 일어나면 좋겠다. 그것들이 모여 더 많은 선택지를 만들테니까.
오늘날 우리는 과거 누군가의 오지랖 덕분에 만들어진 지금에서 사는 건 아닐까? 아주 작은 목소리라도 끊임없이 이어 말할 때 언젠가는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하는 사회적 강자의 허황과 거짓을 잠재우리라 믿는다.
개인 블로그에 썼던 글을 다시 리뷰로 옮기는 까닭은 이 책의 리뷰 중 하나를 반박하고 싶어서다. 문제의 서평을 옮겨 적을지 말지 수없이 고민하다 일부분만 공유한다.
“단 각자 역할에 장단점이 있지만. 필자는 육아가 더 힘들다는 포커스를 버리지 않는 태도는 아쉬웠다. 계획대로 역할 바꾸기를 시도한다. 남편과 아내의 역할을, 남편이 육아휴직을 1년을 내지만 소득이 적어 6개월로 단축한다. (중략) 여기서 바로 이유가 나온다. 남자 여자를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저자가 돈을 더 못 벌어서 육아 전담을 하는 것이다. 사회를 탓하기 전에 냉정하게 경제관념을 생각했으면 한다. 만약 저자가 월에 500을 벌고 남편이 300을 벌면 본인이 육아를 했을까? 평균적으로 남자가 더 벌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 (중략) 냉정히 남녀 문제가 아니라 금전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본인이 월등히 뛰어난 소득을 창출하면 된다. 그렇지도 않으면서 세상 탓하고 있는가?”
이것이야말로 내가 북토크를 하게 했던 분노의 힘, 이름도 쓰기 싫은 대통령 당선인이 말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를 보여주는 문장이 아닌가 싶다. 사실 이딴 걸 읽고 분노하는 에너지도 아깝다. 하지만 아닌 것은 아니라고 짚어주고, 대화를 시도할 때에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멋진 문장으로 반박하고 싶으나 내 능력이 부족해서 하지 않으니만 못할까 봐 망설였다. 그렇지만 써야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는다. 내 능력을 탓하는 거, 괜히 말해서 일만 키우는 건 아닐까, 공격받으면 어떻하지? 이 생각의 시작이 어디서 왔는지 본격적으로 내 안의 가부장제랑 싸우는 시간이다.
저들은 말한다. 돈 못 버는 너희들은 조용히 하라고. 지금까지 다들 그렇게 살아왔잖아. 불만을 말하지 마. 그건 네가 부족해서야. 너만의 문제야. 너의 목소리를 내지 마. 존재를 지워.
나는 말한다. 나도 계속 일하고 싶었다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동일업무 동일임금을 지켜달라고. 돌봄 노동을 제대로 인정해달라고. 이것은 절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여자도 사람이라고. 여기 사람이 있다고.
묻고 싶다. 과연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 책을 제대로 읽었는가. 주리님은 육아가 더 힘들다고 징징거리기 위해 쓴 책이 아니다. 엄마가 돈을 더 잘 벌면 아이 돌봄을 하지 않겠다고 우기지 않았다. 글쓴이야말로 가부장제가 흔들리는 게 두려워 징징거리는 게 아닌가. 능력주의는 이런 데서 쓰는 게 아니란 말이다.
출산과 육아의 시기에 맞물린 혹은 준비하는 여자들은 직업을 선택할 때 자아실현만을 고려할 수 없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곳, 조금이라도 눈치를 덜 볼 수 있는 환경이 나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곳보다 우선되기 때문이다. 사회는 엄마들이 슈퍼맘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3년은 엄마가 애를 키워야 한다는 등의 죄책감을 강요한다. 이 악물고 직장에서 버티고 버텼지만 같은 업무를 하는 (어쩌면 더 늦게 들어온) 남자 직원의 월급이 더 많다는 걸 알았을 때. 이게 개인의 문제라고 정말 말할 수 있느냐 묻고 싶다.
내가 지금 쓴 이야기는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통계적으로도 ‘구조적 성차별’은 있다고 말하는데 귀 막고 안 들려 하는 꼴이라니. 정말 이런 사회에서 여자가 돈을 적게 버니까 집에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게 공평한 걸까? 남자들은 면접에서 육아와 업무를 병행할 수 있는가 등 이런 식의 질문을 받아본 경험이 있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경쟁의 공정한 조건, 소위 말하는 '기회의 평등'이 단 한 차례라도 존재했던 적이 있었는가.
공정은 사전적으로는 '공평하고 올바르다'라는 뜻이지만 사용하는 사람이나 서 있는 처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다양한 의미가 있다. 출발선이 다른 데 똑같은 신호음을 듣고 출발해야 한다니. 정말 여자들이 신세 한탄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서평을 쓴 이는 편 가르고 해결책이나 답도 없이 불만만 토로하는 책이 싫다면서 오히려 남자와 여자를 가르고, 목소리를 내는 여자들에게 목소리를 내지 않기를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대선은 절망적이었고 그 이후도 여전히 처참하다. 남성들의 표를 얻기 위해 국민의 절반인 여성을 무시하고, 성범죄에 있어서 무고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이가 대통령이 되었다. 최고 권력이라 불리는 대통령의 발언이 위험한 까닭은 대통령이 그렇다니 다들 그래도 되는 줄 아는 데 있다. 싸우고 싶지 않다. 페미니즘은 모두가 소외되지 않고 공평하게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출발한다.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는 그런 마음을 담아 쓴 책이다.
나 역시 부족하지만 쓰고 또 쓸 것이다. 또 어디서든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내 목소리를 자주, 많이 낼 테다.
여성의 목소리, 각자 자신만의 더 많은 목소리가 필요하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힘을 키워야 한다. 우리가 여기 있다고, 서로 서로 잘 하고 있다고 칭찬하고, 애쓰고 있다고 위로하고 격려하고, 함께 멋진 미래를 만들어가고 싶다. 그 길에 [엄마 휴직을 선언합니다]와 같은 책이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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