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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2년 03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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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88쪽 | 494g | 140*210*23mm |
ISBN13 | 9788934975090 |
ISBN10 | 8934975091 |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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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PD가 보내는 백 번째 편지 : 100호 기념 기획전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45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감상
나는 추리스릴러 장르를 좋아한다. 그래서 이 장르에 관심을 많이 가진 편이다. 관련 책도 많이 읽었다. 한데 대만 추리 소설은 처음 읽는다. 아, 아니, 장르를 떠나서 대만 책은 아예 처음이었다!
덕분에 모처럼 생경하면서도 흥미롭게 책을 읽었다. 대만 작가가 대만을 배경으로 쓴 책이기 때문에 사회, 문화, 경제 체제 등이 전반적으로 낯설었지만 책을 읽는데 전혀 문제는 없었다. 작가가 매끄럽게 이야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자국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있는데다가, 번역가가 친절하게 주석으로 설명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한자 문화권이면서 서구 문화를 수용한 공통점이랄까, 동질적인 요소가 공존하고 있어서인지 작중에서 묘사된 대만의 모습은 매우 친숙했다.
제목 『그랜드 캉티뉴쓰 호텔』을 보자마자 익숙한 이름이 떠올랐다.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제목부터 시작해 표지까지 노골적으로 영화가 연상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작가는 후기를 통해 이 제목이 영화의 오마주임을 밝혔다. 하지만 내용상의 유사점은 거의 없다.
뒤표지의 책소개를 보니까 탐정vs경찰vs괴도vs킬러, 라는 문구 아래 네 사람이 각자 다른 추리를 펼친다고 되어 있다. 5성급 특급호텔에서 벌어진 밀실 살인. 드나든 사람도, 단서도, 목격자도 전무한 상황. 이 소개를 보고 막연히 상상했다. 밀실 살인에 대해 네 사람이 각각 다른 의견을 가지고 대립하는 전개인가 보다. 『흑거미클럽』이나 『독초콜릿 사건』 같은 전개 양상을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밀실 트릭은 탐정인 푸얼타이가 초반에 진작 풀어버린다. 범인도 일찌감치 특정한다. 당황했다. 뭐지? 벌써 얘기가 끝난 거야? 그럴 리가 없지. 작가는 나 같은 하수 독자의 예측 따윈 훨씬 뛰어넘는 단계를 몇 차례나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작가가 마련해 둔 길을 고스란히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작가와의 추리 대결은 포기했지만, 추리 과정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이 매력적인 점이 있다. 한 명의 독보적인 인물이 추리를 독식하지 않는다. 탐정, 경찰, 괴도, 킬러. 이 네 명의 인물들이 순차적으로 등장하며 추리하는 과정에서 진상이 드러나는데, 이들의 추리는 각각의 허점이 있지만 서로의 허점을 보완해주는 역할을 한다. 네 명의 추리가 연쇄적으로 맞물린다. 마침내 진상이 밝혀질 때, 시작 단계서부터 작가가 촘촘하게 준비했던, 자그마한 퍼즐들이 차근차근 맞춰져 비로소 완성되는 기분이 들었다.
인물들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도 반전의 연속이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정체가 드러나는 일련의 과정들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정체를 알게 된 후, 이들이 했던 행적들을 돌아보니 작가가 글 속에 이미 단서와 복선들을 세밀하게 뿌려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후 다시 읽으면 인물들의 행동이 색다르게 다가올 듯하다. 재독이 필요한 소설이다.
살인 사건이다. 범인의 동기 및 원인, 그리고 범행 결과는 비극적이랄 수 있겠는데, 분위기는 의외로 어둡지 않다. 오히려 이상하게 활기찬 느낌이다. 자국인인 대만인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제목 ‘캉티뉴쓰’란 어감에서부터 희비극이 어우러진 냄새가 난다. ‘캉티뉴스’는 칸디디우스Candidius를 음역한 것이라는데, 나는 칸디디우스보다 캉티뉴쓰가 훨씬 마음에 든다. 또한 책 제목의 폰트나 컬러풀한 색깔을 볼 때, 출판사가 일부러 의도했다는 생각이 든다. 살인 사건을 다룬 추리소설이지만, 결코 무겁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는 추리소설이라고. 그리고 표지에 대해 말한 김에 또 한 가지 추가하자면, 표지는 우리나라 판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랜드 부다페스트처럼 굿즈를 만들어도 될 것 같다. 캉티뉴쓰 호텔 굿즈 만들어주세요!
살인사건이 일어난 장소, 캉티뉴쓰 호텔에 대해서 더 얘기해보겠다. 거기다가 체포된 범인이 화제성을 불러일으킬 만한 인물이다. 불행히도 호텔의 미래가 선명하다. 사람들이 기피하며 찾지 않게 되겠지. 그런데 정작 이 책을 읽은 난 캉티뉴쓰 호텔에 가보고 싶어졌다. 첫 장에서 묘사된 모습에서 설렜다. 신비한 호수 캉티호의 정경이 내려다보이는, 절벽 꼭대기에 위치한 순백색 건물의 캉티뉴쓰 호텔. 작가가 밝히기로는 타이완의 르웨탄이란 곳이 캉티호의 모티브라고 한다. 타이완의 3대 비경 중 하나라고. 이렇게 가고 싶은 곳이 또 한 곳 추가되었다. 언제 대만 여행을 가서, 르웨탄 근처의 고급 리조트에 묵으며 좁쌀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더.
캉티뉴쓰 호텔과 캉티호를 설명한 내용을 보며 르웨탄에 가보고 싶게 된 것처럼, 이 책을 보며 대만에 가보고 싶은 이유가 또 생겼다. 책에 나온 대만 고유의 음식들이 구미가 당긴다. 책에서 묘사한 내용을 봤을 뿐인데 무척 먹고 싶어졌다. 겸사겸사 여기에 나온 식음료들을 한 번 찾아봤다.
홍구이궈 : 타이완에서 명절이나 행사 때 만들어 먹는 붉은 떡.
산주저우루 : 좁쌀술이라고 소개되는데, 우리나라 막걸리 같은 느낌이다.
차예단 : 간장, 찻잎, 오향 등을 넣고 삶은 계란.
쭝허탕 : 배추, 물만두, 각종 완자를 넣고 끓인 국물요리.
얼른 코로나19가 풀려서, 조속히 대만 여행을 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덧.
1. 캉티뉴쓰 호텔 살인 사건 담당 검사인 왕 검사. 그는 초반 이 사건을 접하고, 밀실 상황에 대한 의견을 차례대로 내나 바로 부정당한다. 모든 의견이 부정당했을 때 왕 검사가 느끼는 기분이 내가 느끼는 기분이었다…….
2. 탐정 역할인 푸얼타이는 동물학자로 범죄 연구는 취미라고 밝힌다. 그는 살인 사건의 목격자이기도 한데, 시신을 막 발견했을 때 그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쓰러진 사람보다 먼저 생존 여부를 확인한 ‘그것’은 작은 새끼 매, ‘아쿠’였다. 이곳 캉티호 방언으로 '코야오'라 부르는 송골매다. 절벽에 둥지를 틀고 서식하는 코야오는 개발로 호텔이 들어서면서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기에 이른다. 안 그래도 멸종위기에 몰려 있는 종인데. 겨우 코야오에서 살고 있던 아쿠가 둥지 밖으로 내쳐진 채 푸얼타이에게 구조된 것은, 범인에 의해서였다. 범인이 범행을 저지르려는 와중 아쿠의 부모를 죽이고, 아기 새인 아쿠는 절벽 밑으로 차버린 것이다. 어떻게 보면 아쿠가 가장 이 소설의 피해자다. 물론 살해된 사람도 억울하겠지만, 그에겐 어느 정도 인과가 있다. 범인이 가장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은 매 살해라 주장한다면 억지일까.
3. 밤에만 향기가 난다는 야합화의 향기를 맡아보고 싶어졌다.
4. 리밍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 변호사 거레이. 자그마치 열네 살이나 연하인 남자와 연애 중인, 성공한 그녀. 작중 등장인물 중에서 그녀가 가장 멋있었다.
5. 괴도 인텔 선생. 멋지게 뒤통수를 맞다. 괜히 《김전일》의 괴도신사가 생각났다.
6. 괴도, 킬러에 심지어 CIA까지 언급되는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 전개라서 등장인물들은 황당의 연속. 그런데 작가의 역량 덕분인지 독자인 나는 그다지 황당하진 않았다. 적어도 무리수이거나 뜬금없는 상황 연출은 아니었던 듯.
인상깊은 구절
왕쥔잉 “잊지 말아요, 디테일.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는 걸…….” p18
푸얼타이 “그건 우리가 일부일처제를 너무 숭고하게 생각하기 때문이야. 마치 신성불가침의 신앙인 양. 사실…… 그건 그저 종족 유지에 가장 유리한 제도에 불과해.” pp47~8
차이궈안 “그런데 명탐정들은 어떻게 가는 곳마다 살인사건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습니다.” p65
뤄밍싱 “수사 방법은 많고 살인 수법은 하나야. 그 수법을 모르겠으면 용의자를 잡아다가 물어보면 되잖아.” p179
옳고 그름은 원래 흑백이 분명히 나뉘는 것이 아니고, 정의의 검도 영원히 빛을 발하는 것은 아니다. 배신죄를 저지른 자본가의 선택이 수백 명 직원들의 생계를 위함일 수도 있고, 비참한 처지에 몰린 피해자가 가장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인간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p333
모든 행동에는 동기가 있고, 모든 동기는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연관되어 있다. p333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으나 솔직하게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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