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r/>여행하는 여자들 <br/><br/>해남 가는 길 <br/>죽은 시인의 힘 / 박혜란 <br/>춘신 / 고정희 <br/>낯선 이와의 이유 있는 만남 / 상츄 <br/>고정희를 만나는 해남의 6월 / 이명숙 <br/><br/>그녀를 만나러 가다 <br/>난설헌의 머리카락 / 유이 <br/>허난설헌이 리칭짜오를 만났더라면 / 하자비주얼레이브 <br/>월경대 찾아 삼만 리 / 고은 <br/>위대한 여신을 찾아서 / 엄연수, 이현정 <br/><br/>길 위에 서서 <br/>예순 살에 떠난 유럽 배낭여행 / 박형옥 <br/>종이배 타고 절로, 저절로 / 이숙인 <br/>두려워 말고 떠나 보자 / 최아룡 <br/><br/>길에서 만난 사람들 <br/>제주 여행 / 정희진 <br/>퍼플 문 베이 체류기 / 조한혜정 <br/>베트남에서 한국의 과거를 여행하다 / 조은 <br/>북조선을 방문하다 / 조형 <br/><br/>시선은 다시 나에게로 <br/>햇빛 아래 나는 그들이 누구인지 보았다 / 김은실 <br/>웨어 아 유 프롬? / 권김현영 <br/>카오산 거리에서 나를 묻는다 / 김나연, 김선화 <br/>베트남에서 여자들의 이야기를 찾다 / 김현아 <br/><br/>여행을 디자인하다 <br/>여행하는 여자들의 네트워크, 저니우먼닷컴 / 에블린 하논 <br/>뛰기 시작하는 발끝이다, 빗토익스프레스 / 단지 <br/>언니들의 삶의 쉼표, 시스투어 / 이다 <br/>평생 여행을 즐기고 싶은 당신에게 / 오소도 마사코

<해남 가는 길>에는 고정희를 만나러 가는 추모 여행의 작은 역사가 담겨 있다. 박혜란이 쓴 추모 여행기에는 해마다 새롭게 살아나는 고정희의 여러 모습을 보게 해 준다. 여행을 좋아한 고정희는 여행지에서 지인들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고, 시를 쓰기도 했다. 여기에 실린 ‘춘신’은 그가 좋아하던 지리산에 처음 오른 뒤 지인에게 쓴 편지다. ‘소녀들의 페미니즘’ 상츄의 여행기에는 고정희를 만난 후 성장한 소녀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10주기 추모제를 준비하던 소녀들은 이제 20대 중반을 넘어섰다. 이명숙은 여행자를 맞는 지역 여성의 자리에서 여행이 주는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10주기 이후 ‘해남여성의소리’ 회원들은 국내외에서 오는 여행 손님을 맞는 초대자가 되었다.

<그녀를 만나러 가다>는 여성 유적지, 여성, 여신을 찾아가는 답사기다. 유이는 허난설헌 묘에서 우연히 만난 그의 시댁 후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그를 기억하는 방식의 차이에 대해 말한다. 하자비주얼레이브는 허난설헌과 중국의 여성 시인 리칭짜오를 연결해 주고픈 마음에서 강릉에서 시작해 산둥에 이르는 여행길에서 만난 중국 소녀들과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피자매연대’에서 대안 월경대 운동을 하는 고은은 중국 운남성으로 월경대 사용 실태 조사를 하러 가서 그곳의 소수 민족 여성들이 우리와 다르지 않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음을 자각하며, 엄연수와 이현정은 그리스와 터키 등지에서 ‘위대한 여신’들의 흔적을 발견해 낸다.

<길 위에 서서>는 훌쩍 일상을 떠난 곳에서 맞부딪치는 자신과의 만남을 담은 글이다. 예순 살에 홀로 유럽 배낭여행을 감행한 박형옥, 보문사 여행에서 종교라는 틀로 대변되는 내 안의 배타성을 자각하고 삶의 지평을 넓히는 깨달음을 얻은 이숙인, 서른세 명의 여성들과 함께 인도 요가 여행을 다녀온 최아룡의 글이 실려 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는 여행길에서 만난 다채로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정희진은 새로운 깨달음과 색다른 쾌락을 얻은 ‘고뇌에 찬’ 제주 여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조한혜정은 작은 대학을 중심으로 새롭고 신나는 모색이 이루어지는 미국의 작은 마을에 머물면서 만난 여성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조은의 글은 정식 수교 전에 베트남을 방문하고 나서 쓴 글이다. ‘베트남 처녀와 결혼’ 펼침막을 흔히 보게 되는 이즈음 여전히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점이 담겨 있다. 조형의 글은 올해 6월 ‘남북어린이어깨동무’ 방북대표단 일원으로 평양의학대학 소아병동 착공식에 참가하느라 북조선을 방문한 이야기다. 수차례 방북 경험에서 글쓴이가 감지한 북쪽 사람들과 사회의 변화를 담아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그곳 남성들의 가부장적 모습의 일면도 보여 주고 있다.

<시선은 다시 나에게로>에는 여행 중에 새롭게 자각하게 되는 아시아 여성의 정체성을 다룬 글들을 모았다. 김은실은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를 돌아보며 소비와 인종 간의 위계를 다시금 재발견한다. 복잡한 심경을 정리해 보겠다고 여행을 떠난 권김현영은 백인 여행자들의 천국이 되어 버린 아시아에서 더욱 복잡한 정체성들과 만난다. 김나연과 김선화는 아시아 여성이 아시아에 가는 것은 정체성의 변화를 경험하는 기회이자,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는 ‘거울’을 얻는 기회임을 말한다. ‘나와 우리’에서 여러 해 동안 베트남 평화 기행을 진행한 김현아는 여행자들은 물론, 현지 여성들에게 영감과 용기, 힘을 줄 수 있는 여성주의 여행의 면모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여행을 디자인하다>는 개인적인 여행 체험이 밑거름이 되어 새로운 여행을 기획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다. 전 세계 여성 여행자들을 엮는 웹사이트를 만든 에블린 하논, 여행 소품들을 유통시키며 여행 스토리를 만들어 가는 빗토익스프레스, 여성주의 여행 커뮤니티인 시스투어, 여행은 젊고 건강한 사람의 향유물이라는 고정관념에 경종을 울리고 고령화 시대 여행 개념을 신선하게 소개하는 여행 디자이너 오소도 마사코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여행은 경계를 넘는 의례 <br/><br/>일상 탈출을 꿈꾸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행에 옮기는 김금원의 후예들이 요즘 우리 주변에 많이 보인다. ‘규중’ 안에 갇혀 있길 거부하고 경계를 훌쩍 뛰어넘는 여자들의 면모도 다양하다. 일찍이 비혼의 싱글족이 그 선두를 달렸으나 이제는 십대에서 육십대에 이르는 다양한 연령층과 다양한 혼인 지위(혼인중, 사별, 이혼)의 여성들이 자기만의 여행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집,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맞닥뜨리는 낯선 길에서 새로운 기운을 발견해 내는 여자들이다. 자신을 찾고 싶고, 돌아보고 싶은 여자들, 여행 본능대로 살려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는 증거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도 여행은 경계를 넘는 의례로 자리를 잡아 가고 있다. <br/><br/>1996년 즈음, 여행하고픈 욕구가 목구멍까지 차 있으나 여행을 자주 다녀본 경험은 별로 없는 이들이 모여 여행 소모임을 만들었다. 엮은이가 2년 여 동안 이끌었던 또하나의문화 여행 소모임이다. 시간도 많지 않고 돈도 많지 않지만 같이 떠날 사람이 있고 상상을 실행으로 옮기고 싶은 욕구가 강했던 그들은 소모임을 만들어 여행을 시작했다. 여성이 여행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며 여성 관련 유적지를 찾아다녔다. 또한 엮은이가 활동하는 또하나의문화에서는 여성 시인 고정희가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난 뒤 15년 동안 그를 찾아 사람들을 모아 해마다 해남 여행을 했다. 이 책은 이런 경험이 밑거름이 되어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