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섶을 끄르고<br/>프롤로그 - 마음껏 떠듭시다<br/><br/><b>1부 옛 그림과 말문 트기</b><br/><br/>산수는 산과 물이다<br/>가난한 숲에 뜬 달<br/>풍속화의 본색<br/>‘봄 그림’을 봄<br/>정신을 그리다<br/>초상화의 삼베 맛<br/>물고기와 새<br/>조선의 텃새<br/>파초와 잠자리<br/>난의 난다움<br/>음풍과 열정<br/>보면 읽힌다<br/>치바이스의 향내<br/><br/><b>2부 헌 것의 푸근함</b><br/><br/>잘 보고 잘 듣자<br/>백면서생의 애첩 - 연적<br/>물 건너 국보된 막사발 - 다완<br/>만질 수 없는 허망 - 청동거울<br/>생활을 빼앗긴 생활용기 - 옹기<br/>자궁에서 태어나지 않은 인간 - 토우<br/>그저 그러할 따름 - 기왓장<br/>갖춤과 꾸밈 - 문양<br/>불확실한 것이 만든 확실 - 서원<br/>빛 바랜 세월 한 장 - 돌 잔치 그림<br/><br/><b>3부 그림 좋아하십니까</b><br/><br/>20세기의 첫 10년<br/>말과 그림이 싸우다<br/>풍경이 전하는 소식<br/>화면이여, 말하라<br/>나를 그려다오<br/>테러리스트 워홀<br/>추억 상품<br/>어떤 그림을 훔칠까<br/>달걀 그림에 달걀 없다<br/>관성의 법칙 뒤집은 누드화<br/>어리숙한 그림의 너름새<br/>가르치지 않은 그림<br/>나는 ‘헐랭이’다<br/>자주꽃 핀 감자라구?<br/>향수와 허영<br/><br/><b>4부 그림 속은 책이다</b><br/><br/>길과 글<br/>미술 젓가락 사용법<br/>우키요에 벤치마킹<br/>이런! 헬무트 뉴튼<br/>상처 있는 영혼은 위험하다<br/>치정의 행로<br/>아름다움에 살다 아름다움에 가다<br/>부치지 못한 편지 - 김지하 선생<br/><br/>에필로그 - 사라지고 싶구나<br/>앞섶을 여미고<br/>인물 설명

판화가 남궁산의 손철주 이야기

금일화전음(今日花前飮)/감심취수배(甘心醉數杯)/단수화유어(但愁花有語)/불위노인개(不爲老人開)’. 당나라 유우석의 〈음주간모란(飮酒看牡丹)〉이란 시다. 우리말로 풀자면 이렇다. ‘오늘 꽃을 앞에 두고 마셨네/마음이 달아 취토록 잔 기울였네/다만 안타까운 건 꽃이 말을 할까봐/늙은 그대 위해 핀 게 아니랍니다’.
손철주가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흥이 오르면 곧잘 읊는 한시다. 그는 즉석에서 암송할 수 있는 시편이 약 오십여 편이라고 하는데 주로 당대의 시편들이다. 특히, 당말의 초현실주의적인 기이한 시적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 이상은이나 이하의 시를 즐겨 암송한다. 유림의 후손으로서 자의식을 가지고 있는 그에게선 서권(書卷)의 기운과 문자의 향기가 난다.

현재 ‘학고재’ 출판사 주간으로서 ‘문명기행시리즈’등의 양서를 만들고 있는 그는 오랫동안 기자 생활을 했다. 대학시절, 학보사에서 신문을 만드는 일에 빠져 학과수업은 뒷전이었던 그는 졸업도 하지 않은 채 신문사 기자가 되었다. 그리고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자연스럽게 미술전문기자가 되었다.

안동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성장한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손수레를 끌고 헌책방 순례를 몇 차례나 했다. 이른바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를 실천하고자 함이었으리라. 그때 낡은 일어판 흑백화집들을 접하게 되면서 미술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손철주는 베스트셀러였던 미술에세이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의 저자이다. 미술기자로 현장을 취재했던 경험과 동서양을 아우르는 미술지식을 바탕으로 미술사에 얽힌 뒷이야기나 작가들의 내밀한 창작공간을 아기자기한 이야기로 촘촘하게 엮었다. 독자들에게 미술의 가치와, 미술을 보다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보는 법을 알려주었다.

미술과 책을 좋아하는 그는 장서표에 대해서도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그가 데스크로 있던 신문에서 장서표가 처음 기사화되었던 것도 그의 안목 덕분이었다.

그는 남독 내지는 난독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 좀처럼 책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자신에게 스스로 질책 아닌 질책을 한다. 세상을 맨얼굴로 이해하지 못하고 책의 세상을 통해서만 현실을 이해할 따름인 ‘부키시’(Bookish)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독서를 할 때마다 ‘책과의 치정’을 떠올리게 된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그는 자신의 장서표에 서음(書淫)이라는 문자를 넣어 달라고 했다. 서음이란 ‘글 읽기를 지나치게 즐김, 또는 그런 사람’이란 뜻이다. 음(淫)은 잘 알다시피 ‘과하다’는 뜻과 더불어 ‘음란하다’는 뜻도 있다. 책과의 음란한 관계는 조금 지나쳐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b>동서양을 넘나드는 탁월한 미술 이야기꾼! <br/>단 한권의 책으로 교양미술도서의 품새를 바꿔놓은 손철주의 그림이야기</b><br/><br/>미술관 기행기나 그림 읽기에 대한 책이 쏟아지고 있지만, 눈 밝은 독자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되고, 되읽히는 책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이다. ‘전문가들이 뽑은 90년대 대표적인 책 100선’에 뽑혔을 만큼 평자들과 독자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던 그 책은 미술 작품과 작가, 미술 동네 뒷이야기들을 옆 사람을 곁에 두고 천천히 이야기하듯 풀어내면서 미술 출판의 복지부동에 적잖은 충격을 주었더랬다. 그 유명짜한 스테디셀러의 저자가 바로 손철주다. 당시 그는 미술전문기자로 글밥을 먹고 있었으나 지금은 한국의 대표적인 미술, 문화재 전문 출판사인 ‘학고재’의 편집주간으로 있으면서, 박학의 위용에다 칼칼하고 날렵한 눈썰미, 세련되고 유려한 디자인 감각을 더해 미술 도서 에디터십의 새로운 경지를 펼쳐 보이고 있다. <br/><br/><b>그림, 보는 만큼 읽힌다! <br/>오독과 편견을 옹호하는 그림 읽기의 빼어난 전범</b><br/><br/>이 책도 역시 미술 이야기이다. 전작이 다리품을 팔고, 먼지 묻은 책을 뒤져 건져낸, 짤막한 기사 형식의 남들 모를 이야기들의 묶음이었다면, 이번에는 그림 읽기에 대한 그의 속내가 좀 더 구체적이고, 특정한 그림을 읽어내는 묘사가 촘촘하다. 그가 읽어 주는 그림의 스펙트럼은 넓다. 한국화는 물론이고, 중국화, 일본의 우키요에, 서양화, 팝 아트, 체 게바라 사진, 괴짜 사진가 헬무트 뉴튼 등. 그에 더불어 고려 다완이나 토우, 옹기 등 옛 사물에 담긴 추억의 정조까지 버무려 낸다. 그 수많은 예술 작품들을 읽어내는 그의 마음새는 기본은 이렇다. 그림, 보는 만큼 읽힌다! 많이 볼수록 읽어낼 거리가 많아진다는 것. 또한 예술 작품에 대한 애초의 천편일률적인 해설 방식에 쉽사리 동조하지 말고, 자신만의 느낌과 감각으로 그것들을 읽을 것을 충고한다. 자신만의 고유한 읽기라면 그것이 오독과 편견에 물들어 있어도 괜찮다는 것, 되려 오독과 편견 없이는 감상 자체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 책은 그가 보여주는 오독과 편견의 충실한 예이다. 저자의 드넓은 오지랖과 참신한 도판, 그림 읽기의 새로운 방식이 어우러진 이 책은 진부한 도판과 동어반복의 해설이 얼기설기 엮긴 미술 도서에 피곤한 독자들에게 격이 다른 그림 이야기의 모델이 되어 줄 것이다. 특히 새로운 편집을 선보인 개정판에서는 그림을 좀 더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다. <br/><br/><b>여기, 고전과 현대를 아우른 한 문장文章의 격格이 있다</b><br/><br/>손철주가 읽어 주는 그림만이 동서양,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것이 아니다. 오랜 독서의 내공, 끊없는 되새김질 뒤에나 펜 끝에서 묻어 나오는 그의 문장은 고전과 현대를 아우르는 새로운 격을 보여준다. 그의 글은 억지스럽지 않고, 설교적이지 않고, 가볍지 않은 지성이 독자적인 감각을 얻은 문체에 실려 쉬이 재미나게 읽힌다. 소리 내어 읽다 보면 글 속에 가락이 배어 있고, 곳곳에 추임새까지 곁들여져 있다. 사람과 그림과 서책에 대한 사전적인 건조한 정보가 아니라 그 뒤안에 담긴 곡절과 복잡다단한 사단을 풀어내 친절한 안내 솜씨는 친절한 형이나 미술 선생이 그림 앞에 함께 서서 나지막히 이야기를 건내는 듯한 느낌을 안겨 준다. 특히 고전과 서지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저자의 생활과 맞부딪혀 발효되는 의미의 삭힘은 땅에 묻어 놓은 옹기 속에서 첫 김치를 꺼내 먹는 양 맛깔스럽다. ‘고졸의 미.’ 손철주의 그림 이야기가 품어내는 재미는 저자의 문체 감각에서 나온다. 때로는 구어체로, 때로는 너나들이체로, 때로는 서한 형식으로, 때로는 구연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입담의 감칠맛은 여타 필자들의 문체를 비껴나 흥을 일으켜 오랜만에 책장을 넘기는 재미를 안겨줄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장점은 오래되거나 잊혀져 드문드문 찾아볼 수 있는 단어와 표현을 무더기로 쓰면서도 어색치 않게 잘 읽히는 문장을 빚어내는 손철주 고유의 지적 번안 능력과 그것을 풀어내는 최고 수준의 문체 감각이다.

완상이란 좋아서 구경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워낙 바빠서일까, 요즘 사람들은 좋아하는 것도 진득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떠밀리는 종종걸음으로는 푸른 하늘조차 한 조각 훔쳐보기 어렵다. 내가 손철주 선배에게 늘 감탄하는 것은 그가 타고난 완상가라는 사실이다. 속된 말로 세상이 팽팽 돌아도 그는 그걸 ‘슬로 모션’으로 볼 줄 안다. 심지어 ‘프레임’ 하나하나까지 음미하며 볼 줄 안다. 그 완상가의 그림 보기가 우리로 하여금 그림뿐 아니라 세상 보기의 진정한 맛과 재미를 알게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의 시선으로 보면 세상에는 ‘별 볼 일 없는’ 게 하나도 없다.
이주헌 (미술평론가)

경건(敬虔)까지는 넘보지 못할지라도 손철주는 살아 있는 동안의 마음이 단정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안동 유림 마을 맑은 간장 맛의 그 단순한 깊이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리고 메말라서 강력한 외가닥 힘으로 다시 소멸을 지향하는 야윈 붓질에 도달하기 위하여 얼마나 오랜 인고단련과 억눌림이 필요한 것인지를 그는 안다. 이것이 그의 뼈다.

뼈는 그러하되, 손철주는 한 생애를 다해서 관능의 일탈과 자유를 도모한다. 도모는 곧 헤매기인 것인데, 그의 눈은 끊임없이 빚어지고 스러지는 세상의 모든 빛깔과 선과 형상을 쫓아다니며 노느라고 바쁘다. 이것이 그의 피다.

그의 가장 순한 글은 뼈와 피가 화해에 도달할 때 씌어지는데, 뼈와 피는 본래 화목하기 어려운 것이어서 이 책은 그 조화와 다툼의 기록인 것이다.

인간의 삶은, 그리고 삶 앞에 펼쳐지는 시간이란 낯선 들판은, 살아서 돌아올 수 없는 싸움터일진대, 손철주는 그 싸움터에 주저앉아 놀고 있고, 말 먼지 자욱한 지평선 쪽으로 이제 해가 내려 앉는다.
김훈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