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 “어? 나랑 매실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표지 속 앵무새의 색깔이 우리 집에 있는 앵무새와 비슷했고, 은솔이와 내 모습도 비슷했기 때문이다. 신기하고 궁금한 마음을 안고 서둘러 책을 펼쳤다.

이 책에는 깔끔쟁이 엄마와 초록 앵무새 초록이, 그리고 초록이를 사랑하는 은솔이가 나온다. 엄마는 반려동물을 키우자는 은솔이의 투정에 못 이겨 은솔이에게 초록 앵무새를 사주셨다. 앵무새는 새장에서만 키우면 되니까 다른 동물보다 키우기 쉬울 거란 생각에 강아지나 고양이가 아닌 앵무새를 데려온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초록이는 날 수 있게 되었고, 온 집안을 날아다니면서 온갖 말썽을 피웠다. 그러자 엄마는 최후의 수단인 윙컷을 시키기로 했다. 윙컷은 새가 날 수 없도록 날개의 끝부분을 잘라내는 것이다. 은솔이가 초록이에게 윙컷을 시키지 않으려고 애를 써 보았지만 결국 꼼짝없이 윙컷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초록이는 우울증에 걸리고 만다.

나는 초록이가 매우 불쌍했다. 하루아침에 윙컷을 당해 날지도 못하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게 너무 애처롭고 불행해 보였기 때문이다. 나도 앵무새 키우는 사람으로서 초록이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고 싶었다. 우리 앵무새들도 윙컷을 시킨 적이 있다. 그땐 내가 너무 어려서 윙컷이 뭔지도 몰랐었다. 만약 우리 앵무새들이 초록이처럼 나는 걸 좋아하고, 내가 윙컷이 뭔지 알았다면 나도 은솔이처럼 윙컷을 절대 반대했을 것이다.

다행히 시간이 지나자 초록이가 털갈이를 하면서 다시 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초록이의 우울증도 사라졌다. 하지만 초록이가 우울증을 다 고쳤을 무렵, 엄마는 또 윙컷을 해야 된다고 말했다. 은솔이는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앵무새가 나는 법을 잊어버리거나 나는 걸 포기할 때까지 윙컷을 해야 되는 거였다. 은솔이는 초록이에게 윙컷을 시키기가 싫었다. 초록이가 윙컷을 괴로워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솔이는 윙컷을 안 시키고도 초록이와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초록이에 대해 알아보려 노력한다.

초록이가 윙컷을 다시 해야 된다고 했을 때 나도 은솔이처럼 아주 놀랐다. 그리고 너무 슬퍼서 같이 울고 싶었다. 초록이가 또 우울증에 걸릴까 봐 두려워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물론 윙컷을 하려는 엄마의 마음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초록이가 계속 날면 탈출해서 위험에 처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초록이가 윙컷을 했을 때 우울증에 걸렸다는 것은 초록이가 윙컷을 하기 싫어한다는 뜻일 테니, 말 못 하는 동물이어도 본인의 감정과 의사를 존중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도 내가 어리다고 까칠까칠하고 좋아하지 않는 옷을 엄마 마음대로 강제로 입히면 굉장히 기분이 나쁘기 때문이다.

은솔이는 아주 대견하다. 엄마가 윙컷을 하기로 한 걸 반대하는 건 혼나는 걸 무릅쓰고 했단 소린데, 그런 자신감이 난 너무 부럽다. 나도 엄마가 윙컷을 시킨다고 하면 반대했을 테지만, 엄마가 혼을 낸다고 하면 기가 죽었을 거다. 그리고 난 은솔이가 굉장히 멋지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초록이에 대해 알아보려 하는 모습하며, 엄마를 설득하는 모습 등등, 나에게 그런 모습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멋지게 다가와 내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은솔이는 초록이를 아껴주고 사랑하는 마음이 꼭 엄마 같다. 나도 은솔이처럼 다정한 사람이 돼야지.

우리 집에도 앵무새가 산다. 두 마리에 모두 암컷이다. 이름은 모란이, 매실이다. 모란 앵무라 ‘모란이’, 매실색이라 ‘매실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우리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 벌써 삼 년이다. 우리 앵무새들도 야생성이 강하다. 초록이가 야생성을 날기로 표현했다면 우리 앵무새들은 쪼는 걸로 표현한다. 우리 앵무새들은 새장에서 탈출하면 바로 나를 쫀다. 계속해서 쫀다. 특히 매실이가 그런 짓을 많이 한다. 나는 매실이에게 입술을 쪼이고, 오빠는 귀를 쪼이고, 아빠는 손가락을 쪼여서 분노한 엄마에 이어 우리 가족이 무서워하는 대상 TOP2다. 매실이는 이런 면에서 MBTI가 P인 것 같다. 왜냐하면 아무런 계획도 없이 즉흥적으로 갑자기 툭 튀어나와 “끼엑, 끼엑!”소리를 지르고, 그 소리에 매실이의 탈출을 눈치챈 우리 가족이 다시 새장에 넣으려고 하면, 마구 쪼며 도망 다니면서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반면 모란이는 J다. 왜냐하면 모란이는 아주 계획적으로 생각해서 때를 노려 탈출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모란이가 새장 밖에 나왔을 때 우리 가족 중 아무도 몰랐던 적이 있다. 이런 면에서 나는 모란이가 참 신기하다.

은솔이 엄마와 우리 부모님은 판박이다. 부모님 성격, 아무것도 모르고 데려온 것 등등, 비슷한 점이 화산재처럼 무한대로 많다. 우리 엄마, 아빠도 은솔이 엄마처럼 앵무새들을 힘들게 한다. 똥 많이 싼다고 구박하고, 시끄럽다고 구박하고, 새장에서 나오면 집을 어지럽힌다고 구박한다. 그리고 앵무새의 주인은 나랑 오빠지만 늘 중요한 일들은 어른들이 결정한다. 그래서 너무 속상하다.

나와 은솔이도 비슷한 점이 많다. 나도 은솔이처럼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고 엄마, 아빠를 졸랐었다. 그리고 엄마, 아빠가 앵무새를 사주셨을 때 정말 기뻤고, 그 누구보다 앵무새를 많이 사랑한다. 하지만 은솔이에게 배워야 할 점이 더 많은 것 같다. 우선 책임감을 배우고 싶다. 은솔이는 초록이를 지키겠단 책임감이 아주 큰데, 나는 그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라다. 윙컷하는 것도 지켜주지 못했고, 쪼는 게 무서워서 새장에서 자주 꺼내주지도 못했다. 앞으로 책임감을 키우는 훈련과 더불어 무서움을 이겨내는 훈련을 계속해야겠다.

이 책을 읽고 이제부터 앵무새들에게 엄마 같은 존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마 전에 앵무새 기저귀도 샀다. 앵무새 똥을 싫어하는 엄마와 새장 밖으로 나오고 싶어 하는 앵무새 모두를 위해서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아빠가 앵무새들 밥을 줬지만, 앞으로는 나와 오빠가 줄 것이다. 또 새장도 나와 오빠가 치울 것이다.

난 모란이와 매실이에게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든다. 원래는 아프리카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녀야 하는데 좁은 새장에 갇혀 살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앵무새들을 길들이는 사람이 아니라 맞춰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길들인다는 것은 앵무새들을 내 마음대로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안 좋은 것 같다. 나도 엄마, 아빠가 나를 엄마, 아빠 마음대로 길들이면 무척 괴로울 것 같기 때문이다. 맞춰준다는 것은 진짜 가족처럼 대한다는 것이다. 가족은 모두 평등하고 서로 존중해 줘야 하니까.

앞으로 은솔이와 초록이, 그리고 나와 우리 집 앵무새들이 모두 행복한 가족이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