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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13년 10월 25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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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264쪽 | 425g | 145*205*20mm |
ISBN13 | 9788957077825 |
ISBN10 | 8957077820 |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0월 10일
2024년 08월 21일 ~ 2024년 09월 30일
뉴욕타임즈 21세기 최고의 책 100대 도서 『파친코』, 『채식주의자』 선정
2024년 07월 15일 ~ 2024년 10월 01일
문학 PD가 보내는 백 번째 편지 : 100호 기념 기획전
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소진시
9월의 굿즈 : 타공 정리함/클립 북 라이트/디즈니 캐릭터 태블릿 파우치/손잡이 텀블러/메쉬 펜 파우치
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상시
37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웃기지만 웃을 수 없는
발정이 나서 밤에 울어대는 것 때문에 거세를 당하고 짖는 소리가 시끄럽다는 이유로 성대 수술을 당한 강아지의
처지와 오토바이를 타고 싶고 스포츠를 하고 싶은 욕구와 욕망을 억압당한 자신의 처지에서 동질감을 느끼는 나의 모습을 그린 <안녕 할리>, 소녀시대에게 선물을 주겠다는 목표 하나로
조공 원정대를 결성해 아무 계획도 없이 무작정 상경한 청년 세 명의 모습에 지역과 세대를 불문하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현실을 그린 <조공 원정대>, 속도 경쟁에 치어
생명을 담보로 피자를 나르는 배달원과 미국의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아 한국까지 오게 된 외국인 노동자의 현실을 담은 <어느 추운 날의 스쿠터>, 우스운 표현으로 이야기를 풀어가지만
쉽게 웃을 수 없다. 그것이 곧 현실이기 때문에, 웃음을
머금게 하는 표현이 역설적으로 슬픔을 자아내게 한다.
끝이 없는 마라톤을 하고 있는 우리들
<안녕 할리>의 내가 꿈꾸는 S는 Sex와 Sports다. 하지만 부모님이 꿈꾸는 S는 S대와 S전자다. S대와 S전자를
가는데 Sex와 Sports는 쓸모 없는 존재, 방해하는 존재다. 나는 그것을 절제하고 S대와 S전자라는 목표를 향해서만 묵묵히 달려가는 마라토너가 되어야만
한다.
나는 조화로운 인격체로 자라나기보다는 자전거나 신나게 타고 싶었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게 너무 좋아서 학원에 갈 때도 아이들과 누가 먼저 도착하느냐를 놓고 내기를 할 정도였다. 나는 엄마에게 크면 자전거 선수나 오토바이 선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엄마는 이제 그만 놀고 공부를 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두 바퀴 달린 것을 타고 달리는 직업은 아파트
엄마들이 합의한 자식 성공 기준에 따르면 많이 뒤처지는 것들이었다. (…)
엄마들에게 우리는 같은 목표를 향해 부지런히 달리는 일종의 마라토너들이었고, 엄마들은 오직 그 결승선만을 바라보고 달릴 수 있도록 선수를 조련시키고 전략을 짜는 감독들이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아파트 엄마들끼리 합의한 그 기본 방향을 위해 부지런히 달리려면 선수들에 대한 통제가 필수적이었다. 때문에 우리가 수업 시간에 배우는 헌법에 보장된 행복 추구권이랄지, 어딘가에서
주워들어서 알고 있는 개인의 사생활 보장이랄지 하는 것들은 우리 앞에 놓인 S라인을 따라잡기 위해서
모조리 희생되어야 하는 인권들이었다. P12-13
모두 마라토너가 되어야 한다. 부모님과 사회가 정해준 목표를
향해서 뛰는 마라토너 말이다. 그들에게 딴짓, 그러니까 앞만
보고 달리는 것 외에 다른 일은 절대로 용납되지 않는다. 주변의 경치를 둘러 보는 것, 함께 뛰는 마라토너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오로지 S대와 S전자를 위해 용맹정진(勇猛精進)해야 할
뿐이다.
하지만 그들의 마라톤은 끝날 줄을
모른다. 고등학교 때는 S대가 결승점인줄 알았다. 그곳만 도착하면 그 동안 못했던 모든 것들을 맘껏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S대라는 결승점을 들어가 잠시 숨을 돌리려고 하자 다시 새로운 결승점이 주어진다. S전자다. 다시 또 달려야 했다.
학원은 고등학생들만 다니는 곳이 아니었다. 취업, 영어, 심지어 상식을 배우기 위해 대학생들은 학원을 다녀야 했다.
그렇게 해서 S전자를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새로운 결승점 주어지고 다시 운동화 끈을 묶어야 한다. 새로운 목표의
이름은 승진이다. 남들보다 뒤처지기 않기 위해 밤 11시가
넘어서도 회사에 있어야 하고 주말도 회사에 반납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승진을 했다 치자. 과연 마라톤에 끝이 있을까. 그럴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다시 또 다른 결승점이 주어질 테고, 그게 아니라면 이제는 자신이
누군가의 결승점을 정해주게 된다. 그 대상은 그의 아들, 딸들이다. 그들에게, 자신도 하기 싫었던 마라톤을 강요한다.
마라톤은 끝날 수 있을까. 그리고 결승점은 누가 정하는 것일까. 달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들에 핀 꽃을 바라보고 싶고, 함께 뛰는 친구와 쓸데없는 잡담을 나누고 싶다. 하지만 이내 다시 신발끈을 질끈 묶고 달리기에 나서며 최면을 건다. ‘이것만
끝나면 정말 끝이겠지… ’
모든 것은 연결돼있다
나 같은 3류 시민이 존중 받아야 당신 같은 2류, 1류 시민도 보호받을 수 있다.
- 영화 <래리 플린트>
“카라치(Karachi)나 바그다드의 어린이들이 잠자리에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미국의 어린이들도 그럴 것이다. 세계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박탈감과 굴욕감에 젖어 있다면 유럽인들이 아무리 자유를 자랑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 벤저민 바버(Benjamin R. Barber)
시골에 사는 <조공 원정대>의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갈 곳이 없다. 땅이 없는 사람들은 공단에 취직을 했다. 하지만 그나마 있는 공단은
이제 경제 악화를 이유로 사람을 뽑지 않는다. 뉴스를 보니 미국에서 벌어진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부실
사태로 인해 세계적으로 경기가 악화됐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좌절한다.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친구들과 씁쓸한 표정으로 담배를 피는 일 뿐이다.
서울에서 만난 동수형도 마찬가지다. 공부를 잘해 서울로 대학을 간 동수형이 어릴 때는 참 대단해 보였다. 하지만
후줄근한 추리닝에 덥수룩한 수염이 얼굴을 뒤덮은 동수 형의 지금 모습은 나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술이
한 잔 들어가자 동수형은 하소연을 했다. 시골 출신은 어쩔 수 없다,
서울에서 밥 먹고 잠자고 생활하는 것도 벅차다, 어학연수다 뭐다 공부한 애들을 자신이 무슨
수로 이기겠냐, 하는 넋두리다. 신기했다. ‘미국
때문에 대학을 나온 동수 형이나 나나 둘 다 막막해졌다는 것이다. 그토록 우러러보던 동수 형이 친구처럼
느껴졌다.’(p55)
<어느 추운 날의 스쿠터>의 나는 피자집에서 배달을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할만했다. 미국에서 건너온 세계 굴지의 피자 지점이 내가 일하는 피자가게 옆에 생기기 전까지는. 그 피자지점은 배달 경쟁을 유발했다. 배달이 10분 이상 걸릴 시 돈을 안받겠다는 파격적인 선언을 했다.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고, 딱 내 꼴이었다. 내가
일하는 피자가게도 10분 안에 배달을 선언했다. 피자가 굽는
시간은 빨라 질 수 없다. 배달원이 목숨을 걸고 총알 처럼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공무원과 시비가 붙어 끌려간 경찰서에서
오토바이를 훔친 혐의로 잡혀온 미국인 조지와 빌을 만났다. 미국 때문에, 정확히는 미국인 강사 때문에 여자친구를 잃고, 정확히는 미국 피자
회사 때문에 피자 배달까지 힘들어져 미국에 대해 잔뜩 심기가 불편한 마당에 미국인들을 만난 것이다. 가운데
손가락을 날려줬다. 얘기를 하다 보니 그들의 처지도 참 딱했다. 일하던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아 해고를 당하고 동네에서 피자배달부를 하다가 영어 강사를 하기 위해 한국에 왔다고 했다.
묘하게 동질감이 느껴졌다.
취조가 끝났다. 배달 시간은 이미 30분을 넘겼다.
뒤를 돌아보니 조지와 빌은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스쿠터 시동을 끄고 아직 온기가 남아있는
피자를 들고 그들에게 향했다.
우리는 좋던 싫던 세계화가 이루어진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 미국에서 일어난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가 한국의 시골 마을의 경제에 영향을 미치고, 피자 배달원은 한국에 진출한 미국 피자회사 때문에
배달 속도 경쟁의 피해자가 되고, 미국에서 해고 당한 미국인은 돈을 벌기 위해 멀리 한국까지 오게 된다. 그리고 그 미국인들은 한국에 와서 범죄를 저지른다. 반대로 <조공 원정대>의 친구들이 돈을 벌기 위해 미국으로 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이미 주변에서 돈을 벌기 위해 한국을 찾은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를 보고
있지 않은가.
벤저민 바버의 말을 살짝 바꾸자면, 한국과 필리핀의 노동자가
안정적으로 일하지 못하면 미국과 유럽의 노동자들도 그럴 것이다. 지금 주변을 한 번 살펴보자. 나와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 노동자를, 불안에 떠는 바그다드의 어린이들, 나는 괜찮은 회사를 다니고 편하게 잠을 자고 있으니까 괜찮을까. 래리
플린트의 말을 되새겨보자. 3류 시민이 존중 받지 봇하면 3류
시민이 아닌 나 역시 보호 받지 못한다. 그리고 나 또한 언젠가는 3류
시민이 될지도 모른다. 항상, 3류 시민이 될지 모른다는, 언제 테러의 피해자가 될지 모른다는, 언제 회사에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어떤 문제도 개인적 차원에서, 일국적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다. 모든 것은 연결돼있다.
우리 위에 달려 있는 줄은 무엇일까
미국의 사회학자 피터 버거( Peter L. Berger)는
<사회학에의 초대>에 이런 말을 남겼다. 사회학이 우리가 사회의 꼭두각시임을
보여주지만 그냥 꼭두각시와 달리 우리가 매달린 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발견이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다. 배상민 작가는 소설을 통해서 우리가 매달린 줄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주위를 둘러보면 세상살이에 지친 하류들은 누렇게 뜬 얼굴로 오로지 자신의 길만 걸어가고 있었다. 내 눈에는 우리가 무엇엔가 내몰리는 좀비처럼 보였는데, 뒤에 무엇이
있는 아무도 돌아보려고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들을 쓰기 시작했다. 우리 뒤에 무엇이 있는지 조금이라도 그려보고 싶었다.
– ‘작가의 말’
우리에게 끝이 없는 마라톤을 강요하고 결승점을 정하는 것은 누구인지, 10분 안에 피자배달을 하기 위해 목숨을 건 질주를 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일자리가 없어 미국에서 한국으로 시골에서 서울로 향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지 의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 위에 달린 줄은 무엇이고, 뒤에서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내모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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