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할인점 구조도 006 / 할인점 기기들 / 등장인물들 / 습격 사건 / 외국인은 곤란해 / 얘는 내 자식이에요! / 남자들이여, 그대로가 좋다 / 못 말리는 짱구 <br/><br/>아가씨, 설탕 / 명절에는 악몽도 판다 1 / 할인점의 선거, 청백전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끔찍하다 /명절에는 악몽도 판다 2 / 직원들이 사라질 때 <br/><br/>매장에는 신이 있다! /영업사원의 짝사랑 /지옥에서 온 그녀 / 잔소리 대마왕 / 마이너스 1의 평화 / 자장면은 곧 죽음이다 /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1 / 할인병동 응급실 24시 / 할인점판 The Wars /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2 / 추적 600분 / 쥐와 당신 / 할인점의 신흥종교 / 할인점과 학교의 공통점 <br/><br/>냉동고가 고장 났다 / 할인점의 도선생들 / 1등 경품의 행방 / 신의 술방울 / 왜 물이 사이다보다 비쌀까? 식품에는 독이 들어 있다 / 카트기 사용법 / 소중한 증정품 <br/><br/>고객님, 여기 물 좀 주세요 / 아가씨, 노래방에서 일해? / 가라, 지방으로!! / 우리의 소원은 균일가 판매 / 나를 믿으라 / 담당님, 제발 / 적과의 동침 / 아줌마는 강하다 / 인간 지게차 / 직원들에게 서비스하는 사람들 / 상품을 파는 데 필요한 능력

작가의 말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는 만화를 배운답시고 놀러 다니며 허송세월을 보냈다. 그러다가 돈이 궁해서 하게 된 것이 할인점 판매 아르바이트였다. 할인점에 구경 왔다가 문득 여기서 일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한 직원을 붙잡고 다짜고짜 물었다.
“여기 아르바이트 쓰시는 데 없어요?”
그것이 계기였다. 자못 황당한 내 질문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여러 가지를 자세하게 알려 주시고 한 입점업체 직원에게 소개를 해 주시기까지 했다. 소개받은 곳은 제과 업체였는데 사람 구하느라 다급했던 참에 하늘에서 떨어진 나를 ‘얼쑤’ 하고 주워다가 일을 시켰다. 그리고 6개월 뒤, 함께 일했던 사람의 소개로 지금의 식품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대형 체인 할인점의 역사는 길지 않다. 내가 입사할 당시에는, 지방에 대형 할인점이 들어서기 전이었기 때문에 할인점이라는 것이 굉장히 생소했다. 처음에 할인점은 내게 신기하고 즐거운 곳이었다. 쇼핑을 하러 오는 고객들 중에서도 할인점을 즐겁게 생각하는 고객이 많을 것이다. 직원들은 할인점에서 근무하기 전에는 자기도 그랬으면서, 화창한 주말에 사방천지로 놀러 나가지 않고 할인점에 쇼핑하러 오는 고객들을 이해할 수 없어 한다. 할인점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 이곳은 직장이기 때문에 더 이상 할인점이 즐겁지 않은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한 변화를 겪었다.
할인점은 모든 사람들에게 매우 일상적인 공간인 동시에 비일상적인 공간이다. 지난 몇 년간 대형 할인점이 공격적으로 지점을 내기 시작하면서, 이제 대형 할인점이 들어서지 않은 지역은 거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고객의 신분으로 할인점에 온다. 쇼핑하는 고객들은 할인점의 얼굴을 보게 되지만, 나는 할인점에 파견되어 일을 하기 때문에 주로 할인점의 뒤통수를 보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는 고객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가 있다. 내가 말하려는 그 조금 다른 이야기가, 읽으시는 분들에게 재미있게 다가갔으면 좋겠다.
직업이라는 것은 그 종류가 무엇이든 고달픔이 따라온다. 그러나 그 고달픔의 틈새에서 일상의 재미를 발견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인 것 같다. <김선미>

할인점에 취직한 에세이스트의 생생한 체험담이 실린 책이다. 물건을 구매하던 고객으로서는 알 수 없었던 할인점의 기상천외한 일들이 소개되어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으로서 공감이 가기도 하면서 때론 화가 나기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br/> <br/>할인점에 취직한 작가는 마술과도 같은 일들을 경험한다. 매실을 딸 즈음에는 수백 개의 설탕포대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명절을 앞두고는 쌓아도 쌓아도 끝이 없는 선물세트들 때문에 곤혹을 치루기도 한다. 또 어떤 몰지각한 ‘꾼’은 고추장에 된장을 넣어 당당히 환불을 요구한다. 이것은 할인점에서 일하는 직업여성으로서 응당 해야 하는 일이라고 치더라도, 어느 날 갑자기 동료와 경쟁을 해서 물건을 덜 판매한 점원은 인사고가로 인해 좌천된다면 이게 흔한 일이던가. 층층이 있는 관리자들의 눈을 의식하고, 고객들의 시선을 놓치지 않아야 하고, 빈 물건들을 채워 넣어야 하는 할인점 점원들은 맨손으로 전쟁터에 나와서 싸우는 군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 매장 여사님들과도 싸우고, 손님들과도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그들. 밤새 물건을 진열하고 뜬 눈으로 고객을 맞는 할인점 점원들의 미소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br/><br/><어느 수상한 여직원의 판매일기>는 ‘판매일기’를 통해 직장 여직원으로서의 삶의 단편을 보여주기도 한다. 시식을 보채는 아이 때문에 힘들었던 일에서부터 반려동물을 데리고 와서 자기 자식이라고 하는 사람 때문에 힘들었던 일, 무조건 메독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와인매장에서의 일 등. 여기서 작가는 고객을 통해 자신의 삶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따뜻함을 행간에 묻어두기도 했다. <br/>이 책은 우리가 관심을 두지 않았던 할인점에 대한 총체적인 보고서이다. 정리가 잘 된 할인점에 카트를 끌고 들어가면서 한번쯤 만나봤을 할인점 점원들의 삶을 이 책에서 구경할 수 있고, 또 그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 <br/>초정밀한 자본의 메카로 변해버린 할인점. 이 책은 맨손으로 세상을 움직이는 할인점 점원들에게 커트를 끌며 오늘의 양식을 구하는 우리가 한번 쯤 박수를 보냄직한 이야기들이 카트 하나로는 부족할 만큼 많다. 또 에세이스트가 직접 그린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이 책의 큰 장점이다.

마트는 천국이다. 통조림과 설탕포대와 온갖 먹을거리로 만든 디즈니랜드다. 인간은 마트를 만들고 마트는 인간의 출구를 막아버린다. 시식을 하고, 골목에서 낯선 카트와 부딪히고, 도우미 여직원에게 신상품에 대한 상담을 받는 동안 우리들의 천국은 팽창한다. 그런데 커트 가득 물건을 사서 집으로 오면, 거실에 널브러진 물건들은 결코 천국의 모든 것이 아니다. 천국의 빵조각 일부를 옮겨놓았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지갑을 들고 다시 마트로 돌진한다.『어느 수상한 여직원의 판매일기』는 이런 천국의 종지기들이 뱉어낸 비어(秘語)이다. 읽는 순간 우리의 천국은 사정없이 무너진다. 『어느 수상한 여직원의 판매일기』를 덮으면서 자본의 힘이 이렇게 일치단결하고, 잘 훈련된 것에 적잖이 놀란 게 사실이다.
안성호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