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YES24 카테고리 리스트

YES24 유틸메뉴

Global YES24안내보기

Global YES24는?

K-POP/K-Drama 관련상품(음반,도서,DVD)을
영문/중문 으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Korean wave shopping mall, sell the
K-POP/K-Drama (CD,DVD,Blu-ray,Book) We aceept PayPal/UnionPay/Alipay
and support English/Chinese Language service

English

作为出售正规 K-POP/K-Drama 相关(CD,图书,DVD) 韩流商品的网站, 支持 中文/英文 等海外结账方式

中文

Exclusive ticket sales for domestic and international pop artists

Global yesticket

검색

어깨배너

2월 혜택 모음
슈퍼특가
1/6

빠른분야찾기


반역자
공유하기
중고도서

반역자

권위와 권력에 도전해 역사를 바꾼 사람들

아라이 도시아키 저 / 양억관 역 | 푸른숲 | 2003년 08월 30일
상품 가격정보
정가 11,000원
중고판매가 11,000
YES포인트
  • 0원
배송안내
배송안내 바로가기

중고상품 상태/판매자
상태 중고상품 상태안내 최상 새 상품에 가까운 상품
판매자 새싹품절 당일출고 8.ToString()점 (338명 평가)
  • 중고샵 판매상품은 판매자가 직접 등록/판매하는 상품으로 판매자가 해당 상품과 내용에 모든 책임을 집니다. (판매자 가게 > 공지사항 참고)
  • 주문 전 중고상품의 정확한 상태 및 재고 문의는 [판매자에게 문의하기]를 통해 문의해 주세요.
  • 주문완료 후 중고상품의 취소 및 반품은 판매자와 별도 협의 후 진행 가능합니다. (주문내역 > 주문번호 클릭 > 판매자 정보보기 > 연락처 또는 [판매자에게 문의하기]로 문의)

판매중| 한정판매

수량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03년 08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42쪽 | 404g | 153*224*20mm

관련분류

업체 공지사항

추석 공지 택배수거가 하루이상 지연되고 있습니다 참고부탁드립니다
추석 공지 택배수거가 하루이상 지연되고 있습니다 참고부탁드립니다
대학교재 구매 유의사항 안내
최근 대학교재를 구매하여 pdf 파일로 변환한 후 바로 반품 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습니다. 대학교재는 워낙에 pdf 파일로 변환하여 공부하기에 반품을 받고 있지 않습니다. 구입에 참고 부탁드립니다.

중고도서 소개

최상 새 상품에 가까운 상품 중고상품 상태안내

중고상품 상태
상태정도(외관) 사용흔적

책소개

저자 소개 (1명)

일본어 번역 전문가. 1956년 울산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일본 아시아 대학교 경제학부 박사과정을 중퇴했으며, 현재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우안 1·2』, 『우리가 좋아했던것』, 『용의자 X의 헌신』, 『중력 삐에로』, 『러시 라이프』, 『69』, 『나는 공부를 못해』, 『스텝파더 스텝』, 『바보의 벽』, 『플라이, 대디, 플라이』, 『남자의 후반생』... 일본어 번역 전문가. 1956년 울산에서 태어나 경희대 국문학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일본 아시아 대학교 경제학부 박사과정을 중퇴했으며, 현재 일본 문학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우안 1·2』, 『우리가 좋아했던것』, 『용의자 X의 헌신』, 『중력 삐에로』, 『러시 라이프』, 『69』, 『나는 공부를 못해』, 『스텝파더 스텝』, 『바보의 벽』, 『플라이, 대디, 플라이』, 『남자의 후반생』,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달콤한 악마가 내 안으로 들어왔다』,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라라피포』, 『컨닝소녀』,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노르웨이의 숲』, 『모방범』, 『공생충』 등이 있다
저자 아라이 도시아키(荒井利明)
1947년 이시가와(石川)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 교양학부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시절 문화대혁명을 보며 중국에 매력을 느껴 자연계에서 인문계로 전과한 뒤, 중국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 후 요미우리 신문사에 입사해 1980년부터 1984년까지,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두 번에 걸쳐 베이징 특파원을 지내면서 중국통으로 불리고 있다. 특히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최근까지 활동하는, ‘베이징의 봄’과 톈안먼사건의...
역자 양억관
1956년 울산에서 태어났다. 경희대 국문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본 아시아대학 경제학부 박사과정을 중퇴했다.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서로는 《남자의 후반생》, 《봄의 오르간》, 《포플러의 가을》, 《항우와 유방》, 《나의 인생은 영화관에서 시작되었다》, 《소크라테스 최후의 13일》, 《냉정과 열정 사이》,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등이 있다.

줄거리

마오쩌둥(毛澤東) - 공산당을 파괴한 중국 공산당의 아버지
마오쩌둥은 일생 동안 두 가지 혁명을 이끌었다. 하나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가져다준 중국혁명이고, 다른 하나는 1966년부터 10년간 계속되다가 그의 죽음과 함께 끝난 문화대혁명이다.
그렇다면 그 자신이 공산주의자였던 마오쩌둥은 어째서 공산당과 싸웠을까? 그 당시 마오쩌둥은 당 주석이라는 최고 직위에 있었지만, 당은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마오쩌둥 자신이 제창한 대약진 정책이 실패로 끝나고 후계자로 지목했던 류사오치(劉少奇)가 그를 대신해 당을 실질적으로 지도하게 되면서, 중국에서 흐루시초프가 이끄는 소련의 수정주의가 눈에 띄었던 것이다. 즉 그 당시 소련에서는 흐루시초프가 스탈린을 비판하며 소련에서는 ‘더 이상 프롤레타리아트 독재가 필요 없다. 소련에서 사회주의는 승리를 거두어 소련 사회의 단결은 확고하다. 그 결과 노동자 계급의 공산당은 소비에트 인민의 전위로서 전 인민의 당이 되었다’라고 주장했다.
이에 마오쩌둥은 사회주의 사회에서도 계급투쟁은 존재한다는 자신의 견해를 당 전체의 견해로 만들어가면서, 자신에게 동조하지 않는 류사오치를 숙청했다. 그의 이러한 움직임은 홍위병을 필두로 한 마오쩌둥 개인 숭배와 연결되었고, 이어 문화대혁명으로 발전해 마침내 마오쩌둥의 권위를 다시 세워주기에 이르렀다. 마오쩌둥이 죽고 세월이 흘러 1981년 실권을 잡은 덩샤오핑(鄧小平)은 문화대혁명을 ‘내란’으로 평가하고 그것을 전면적으로 부정했지만, 마오쩌둥의 새로운 ‘반역’ 문화대혁명이 ‘사람들의 혼을 흔드는 혁명’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외 이 책에 소개된 반역자들>
사마천(司馬遷) - 궁형의 수치를 이겨낸 중국 최고의 역사가
왕망(王莽) - 한 왕조를 찬탈한 유교 정치가
안녹산(安祿山) - 양귀비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배신자
홍수전(洪秀全) - 지상 천국을 세우려 했던 객가 청년
담사동(譚嗣同) - 망명보다 죽음을 선택한 변법 운동가
장쉐량(張學良) - 장제스를 감금한 청년 장군
후펑(胡風) - 권력에 굴복하지 않은 문학가
펑더화이(彭德懷) - 마오쩌둥을 비판하다 실각한 국방장관
린뱌오(林彪) - 마오쩌둥을 암살하려 한 후계자
왕루오수(王若水) - 소외를 논하다 제명당한 이론가
진승(陣勝)과 오광(吳廣) - 진 제국을 무너뜨린 최초의 농민 반역자
진나라의 어느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진승은 병사로 징발되어 뤄양으로 떠난다. 그런데 그의 부대는 큰 비로 길이 막혀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위기에 처한다. 그 당시 진나라의 법에 따르면 정해진 날까지 주둔지에 도착하지 못하면 사형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진승은 어차피 죽을 바에는 크게 한번 붙어보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해, 동료인 오광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마침 오광도 그의 의견에 동의해 둘은 자신들을, 그 당시 백성들이 지지하던 시황제의 장남인 부소(扶蘇)와 초나라 장군 항연(項燕)으로 꾸며 반란의 깃발을 드높인다. 사실 부소와 항연은 이미 죽은 사람들이었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 진승과 오광의 연기는 성공할 수 있었다.
두 반역자는 초나라의 재건을 외치면서 진나라 군사를 무찌르는 한편, 민중의 추대를 받아 왕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러나 이러한 승세도 서서히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결국 오광과 진승 모두 부하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만다. 그들이 죽는 순간 그들의 반란은 비록 실패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들의 반란을 계기로 곳곳에서 진 제국에 반기를 드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마침내 끝까지 살아남은 유방이 새로운 왕조 한(漢)을 세웠다.
현재 정권을 잡고 있는 중국 공산당은 농촌을 기반으로 도시를 포위하여 혁명에 성공하였다는 점에서 진승과 오광의 농민 반란의 계보를 잇는다고 할 수 있다.

해서(海瑞) - 죽음을 각오하고 황제를 비판한 청백리
청렴결백한 성품으로 명성이 드높았던 명나라 때의 관리 해서는 서른이 넘어 과거를 치를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정도로 만학이었다. 그나마도 고관이 될 가능성이 있는 ‘진사(進士)’ 자격은 끝내 얻지 못했다. 마흔이 넘어 푸젠성 난핑현의 교육 책임자가 된 해서는 검소한 생활 태도와 윗사람에게 아부하지 않는 자세로 백성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4년 뒤 저장성 순안현의 총책임자 지현으로 승진한 그는 관리들이 백성들에게 각종 세금을 부과해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악습 철폐에 나섰다. 그런 모습은 다음 임지인 흥국현에서도 변함없었고, 해서의 행적은 중앙에까지 알려져 그는 중앙 관직인 호부주사가 되었다. 그런데 이 무렵 해서는 황제인 가정제(嘉靖帝)를 비판하는 상소문을 올려 감옥에 갇히고 만다. 가정제가 즉위 초기의 치세에 비해 도교에 깊이 빠져들면서 정무를 소홀히 한 것을 강력하게 비판한 것이 황제의 마음을 상하게 했던 것이다.

“폐하가 20여 년이나 정무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기강이 흐트러지고 말았습니다. 도사들에게 작위를 남발하고, 공적이 없는데도 녹봉을 주어 천하의 충신들을 멀어지게 했습니다. 또 신하를 의심하고 비방하고 죽임으로써 군신의 예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고, 군주의 길은 혼란에 빠졌으며, 신하는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천하의 위기가 아닙니까.” ― 본문(p.76~77) 중에서

이 상소문을 보고 가정제는 불같이 화를 냈지만, 다행히 재상 서계(徐階)의 도움과 미리 관을 준비해두고 상소를 올린 그의 충절 때문에 사형은 면할 수 있었다.
이후 가정제가 세상을 떠난 뒤 풀려나 응천 순무가 된 해서는 이번에는 지방의 권력자들이 부당하게 빼앗은 농민의 토지를 돌려주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 지방 권력자의 중심 인물이 바로 서계였는데, 해서는 사적인 감정과 은혜를 공적인 일에 개입시키지 않고 결국 토지를 회수했다.
이처럼 청렴결백하고 강직한 성품을 지녔던 해서는 먼 훗날인 1960년대에 문화대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추근(秋瑾) - 혁명을 위해 죽음을 서두른 여성 테러리스트
양무운동과 변법운동이 좌절되고 급기야 청나라를 타도하자는 극단적인 혁명 운동이 중국 대륙을 흔들던 청나라 말기, 중국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사마천의 《사기》 가운데서도 〈자객 열전〉을 특히 좋아하고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의 자립에 대해 깊이 생각할 정도로 진보적이고 대담한 성격을 가졌던 추근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녀는 청일전쟁에서 조국 중국이 패한 후 남편의 반대도 무릅쓰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청나라 타도를 지향하는 비밀 결사 단체인 ‘삼합회(三合會)‘에 들어가 사격 훈련을 받고, 폭탄 제조법을 배우는 등 혁명가가 되기 위한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갔다.
그 뒤 청나라의 부탁을 받은 일본이 유학생들에게 제재를 가하자 추근은 고향으로 돌아오는데, 귀국 후 지역 여학교 교사, 여성 잡지 창간, 사범학교 교장 등의 일을 하며 다시 혁명의 열의를 불태운다. 특히 그녀는 대통사범학교를 혁명 예비군 양성소로 삼고 절친한 동료 서석린(徐錫鱗)과 함께 봉기를 준비한다. 그러나 서석린의 봉기는 불발로 끝나고 추근 역시 청나라 정부군에 잡혀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처형당하고 만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는다면 누가 간단 말이냐. 혁명은 피를 흘려야 비로소 성공하는 것이다. 내가 단두대에 오르면 혁명이 5년은 빨라질 것이다.” ― 본문(p.130) 중에서

충분히 도망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목을 혁명의 제단에 바친 그녀의 용기와 반역의 열정은 아직까지도 중국인의 가슴에 남아 있다.

쑨원(孫文) - 한 번도 봉기에 성공하지 못한 영원한 혁명가
쑨원은 태평천국운동이 진압당하고 2년 뒤인 1868년에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객가 출신이었는데, 태평천국운동에 객가 출신들이 많이 참여한 만큼 그는 태평천국운동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그는 열한 살 때 하와이에 있는 형을 찾아가 그곳에서 근대 서구 사회를 접하게 되었고, 그것은 이후 그의 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열여섯 살 때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다시 홍콩에서 의학을 배워 의사가 되었지만, 그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프랑스에 이어 일본과의 전쟁에도 희망이 없던 조국 청나라를 보고, 의사로서 병든 사람을 구제하는 것보다는 혁명가로서 병든 조국을 구하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 후 청나라 타도를 목적으로 하는 ‘흥중회(興中會)’를 결성한 뒤, 광저우에서 무장 봉기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 계획이 누설돼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그는 평생 실패를 거듭했는데, 이것이 그 실패의 시작이었다.
이 일로 쑨원은 현상 수배범이 되어 홍콩과 하와이, 미국, 영국을 떠돌며 화교들에게 혁명 사상을 고취하고 자금을 모았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삼민주의’를 완성하는 한편, ‘중국혁명동맹회’를 결성하여 만주족 정부를 무너뜨리고 공화제의 한족 국가를 수립하는 데 힘을 쏟았다. 이때 중국 남부를 중심으로 각지에서 무장 봉기를 감행했는데, 열 번에 이르는 봉기는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1912년에는 난징에서 임시 대통령에 취임해 중화민국의 성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청나라의 황제를 퇴위시키고 공화제를 도입하기 위해 그 당시 청나라의 실권을 쥐고 있던 위안스카이와 타협해 그에게 임시 대통령 자리를 넘겼다. 그러나 공화제에 별 흥미가 없던 위안스카이는 공화제를 폐지하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고, 그 때문에 쑨원은 일본으로 도피해야 했다.
그 후 반체제 혁명으로 위안스카이는 황제 자리에서 결국 물러났고, 1917년 중국 남부 군벌의 지지를 받은 쑨원은 광둥군 정부를 만들어 베이징의 군벌 정부에 대항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상황이 불리해져 그는 상하이로 도망치는 생활을 반복해야만 했다.
이렇게 계속 실패를 거듭한 쑨원은 비록 일생 동안 한 번도 봉기에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를 영원한 혁명가로 기억될 수 있게 했다.

출판사 리뷰

시대의 그늘에서 희망을 찾아 움직인, 반역자들

판매자 정보

판매자 정보
업체명 백동윤 대표자명 백동윤
사업자 등록번호 695-94-01581 사업자 종목 중고도서
고객 상담 전화번호 010-5813-4277 고객 상담 이메일 withbooks3@naver.com
본사 소재지 경기도 군포시 금정동 689 힐스테이트금정역 201-3211

부적합 상품 신고하기

구매에 부적합한 상품은 신고해주세요. 신고하기
  •  상품정보 부정확 (카테고리 오등록/상품오등록/상품정보 오등록/기타 허위등록)
  •  거래 부적합 상품 (청소년 유해물품/기타 법규위반 상품)
  •  전자상거래에 어긋나는 판매사례 : 직거래 유도

구매하신 상품의 상태, 배송, 취소 및 반품 문의는 판매자에게 문의하기를 이용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배송/반품/교환 안내

배송 안내

배송 안내
배송 구분 판매자 배송
  •  택배사 : CJ대한통운 (상황에 따라 배송 업체는 변경 될 수 있습니다.)
  •  배송비 : 4,000원 (도서산간 : 4,000원 제주지역 : 4,000원 추가 배송비 발생)
배송 안내
  •  판매자가 직접 배송하는 상품입니다.
  •  판매자 사정에 의하여 출고예상일이 변경되거나 품절이 발생될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 상품 설명에 반품/교환과 관련한 안내가 있는경우 아래 내용보다 우선합니다. (업체 사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품/교환 안내
반품/교환 방법
  •  마이페이지 > 반품/교환 신청 및 조회, 1:1 문의, 고객만족센터(1544-3800), 중고샵(1566-4295)
  •  판매자 배송 상품은 판매자와 반품/교환이 협의된 상품에 한해 가능합니다.
반품/교환 가능기간
  •  출고 완료 후 10일 이내의 주문 상품
  •  디지털 콘텐츠인 eBook의 경우 구매 후 7일 이내의 상품
  •  중고상품의 경우 출고 완료일로부터 6일 이내의 상품 (구매확정 전 상태)
  •  모바일 쿠폰의 경우 유효기간(발행 후 1년) 내 등록하지 않은 상품
반품/교환 비용
  •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 반송비용은 고객 부담임
  •  직수입양서/직수입일서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20%를 부과할수 있음

    단, 아래의 주문/취소 조건인 경우, 취소 수수료 면제

    •  오늘 00시 ~ 06시 30분 주문을 오늘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오늘 06시 30분 이후 주문을 익일 오전 06시 30분 이전에 취소
  •  직수입 음반/영상물/기프트 중 일부는 변심 또는 착오로 취소 시 해외주문취소수수료 30%를 부과할 수 있음

    단, 당일 00시~13시 사이의 주문은 취소 수수료 면제

  •  박스 포장은 택배 배송이 가능한 규격과 무게를 준수하며, 고객의 단순변심 및 착오구매일 경우 상품의 반송비용은 박스 당 부과됩니다.
반품/교환 불가사유
  •  소비자의 책임 있는 사유로 상품 등이 손실 또는 훼손된 경우
  •  소비자의 사용, 포장 개봉에 의해 상품 등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예) 화장품, 식품, 가전제품, 전자책 단말기 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 등의 포장을 훼손한 경우 : 예) CD/LP, DVD/Blu-ray, 소프트웨어, 만화책, 잡지, 영상 화보집
  •  소비자의 요청에 따라 개별적으로 주문 제작되는 상품의 경우
  •  디지털 컨텐츠인 eBook, 오디오북 등을 1회 이상 다운로드를 받았을 경우
  •  eBook 대여 상품은 대여 기간이 종료 되거나, 2회 이상 대여 했을 경우 취소 불가
  •  모바일 쿠폰 등록 후 취소/환불 불가
  •  중고상품이 구매확정(자동 구매확정은 출고완료일로부터 7일)된 경우
  •  LP상품의 재생 불량 원인이 기기의 사양 및 문제인 경우 (All-in-One 일체형 일부 보급형 오디오 모델 사용 등)
  •  시간의 경과에 의해 재판매가 곤란한 정도로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정하는 소비자 청약철회 제한 내용에 해당되는 경우
소비자 피해보상
  •  상품의 불량에 의한 반품, 교환, A/S, 환불, 품질보증 및 피해보상 등에 관한 사항은 소비자분쟁해결기준(공정거래위원회 고시)에 준하여 처리됨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
  •  대금 환불 및 환불 지연에 따른 배상금 지급 조건, 절차 등은 전자상거래 등에서의 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
맨위로
예스이십사(주)
대표 : 김석환, 최세라 주소 : 서울시 영등포구 은행로 11, 5층~6층(여의도동,일신빌딩) 사업자등록번호 : 229-81-37000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05-02682호 사업자 정보확인 이메일 : yes24help@yes24.com   호스팅 서비스사업자 : 예스이십사(주)
YES24 수상내역 정보보호 관리체계 ISMS인증획득 개인정보보호 우수사이트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서울보증보험
고객님은 안전거래를 위해 현금 등으로 결제 시 저희 쇼핑몰에서 가입한 구매안전서비스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서비스가입사실 확인
EQUUS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