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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2년 09월 2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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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 크레마 /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 /아이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폰 /안드로이드패드 /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 |
파일/용량 | EPUB(DRM) | 52.47MB 파일/용량 안내 |
ISBN13 | 9791167372154 |
2024년 10월 04일 ~ 2024년 11월 30일
2023년 02월 09일 ~ 2024년 12월 31일
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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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명의 예스24 회원이 평가한 평균별점
기자 출신의 작가들이 쓴 글을 좋아한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혹은 논픽션 책이든, 현업이나 전직 기자 출신 작가들의 글은 어디선가 훈련을 받은 듯 하나같이 공통적인 특징이 묻어난다.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고,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대놓고 드러내기보다는 문장 사이에 숨겨가면서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한다. 정확한 사실 전달을 최우선으로 삼으며 오랜 시간 단련된 그들의 글은 언론매체를 벗어나 자유로운 창작의 공간에서도 기본을 잃지 않는다. 이 소설 역시 그런 '기자 출신' 소설가의 특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추리소설이었다.
독특한 구성의 책이다. 리뷰를 보니 사람들이 '혼란스러웠다', '굳이 쓸데없는 범인의 독백을 왜 넣어서 읽기 힘들게 했냐', '러시아 문학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을텐데 어려웠다' 등의 감상이 많았다. 그런 구성과 문학에서 빌려온 표현과 범인 내부의 감정이 있기에 이 소설이 완성되었다고 생각하며 재미있게 읽었는데, 스토리만 남기고 범인의 일기는 뺐어야 하는거 아니냐는 리뷰들은 조금 허탈했다. 물론 리뷰는 독자 개인의 자유이고 사람들의 감상이 각기 다를 수는 있지만, 책을 읽는다는 소수의 사람들조차 이제는 영화 같은 줄거리만 기대하는 시대가 되었구나 싶었다. 물론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책에서 언급한 러시아 문학 중에는 <죄와 벌>, <안나 카레니나> 정도를 재미있게 읽었다. 두 소설 모두 읽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그만큼 읽고 나서 여러 모로 곱씹을만한 내용이 넘쳐나는, 전형적인 고전이었다. 러시아 근대 문학을 왜 2000년대의 살인사건을 다루는 소재로 끌고왔을까. 다른 작품은 읽지 않았지만 적어도 내가 <죄와 벌> 그리고 <안나 카레니나>를 읽으면서 느꼈던 건, 당대 러시아 작가들은 근대화 속에서 인간 심리를 엄청나게 세밀하게 들여다보았고, 신과 인간의 존재 의의에 대해서 치열하게 고민했다는 사실이었다. 종교가 당연하게 존재하고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었던 이전과는 달리, 과학 문명이 급격하게 발달하면서 신이 필요없는 세상이 도래하던 시점에 인간과 신을 고민하던 작가들의 이야기가 소설가에게도 와닿은 게 아니었을까.
소설 속 주인공들이 러시아 문학 연구회에서 만나 각자 다른 주장을 내세우며 토론을 벌인 것도, 2000년 특유의 분위기 속에서 스무살 무렵의 젊은이들이 느꼈던 인간, 삶의 의미를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20년이 지난 마흔살이 되어서도 평범한 삶, 가족을 이루고 현대 사회에 녹아들어 살아가기보다는 예술에 삶을 바치는 독서 모임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작가는 그들이 어떤 인물들이었는지, 왜 그런 사건들을 일으키고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떤 동기를 갖고 있었는지 나타내기엔 문학이야말로 잘 어울리는 소재라 생각했던 게 아닐까.
작가 후기에서 '현대인의 불안' 그리고 '경찰 수사를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극사실주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했는데, 수사 장면 묘사와 2000년대 신촌 대학생들의 삶은 너무 사실적이라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2000년대 중반을 신촌에서 보내면서, 신영극장과 뤼미에르, 그리고 학부제, 영어학원 등 그 시절 대학생의 삶을 들여다보는 듯 생생하게 되살려낸 작가의 기억력와 취재력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그 시대와 장소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는 간접 체험이 될 수도 있을 듯 하면서도, 지나친 사실 묘사가 독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같은 시절과 공간을 경험한 친구들이라면 실제 지명과 시대 묘사가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낯선 느낌을 주는 것과 같은.
경찰 수사를 판타지가 아닌 옆에서 들여다보는 듯 묘사하고 싶었다는 의도는 충분히 성공한 것 같다. 소설에 등장하는 형사들은 초인적인 힘이나 셜록 홈즈 뺨치는 추리력을 갖고 있는 이들이 아니다. 억센 운도 없다. 20년 전 미제 사건을 뒤늦게 배당받고, 시간도 인력 지원도 없고, 생활에 쪼들리며 경찰 시스템 망에 이름 하나 입력하면 범죄자 데이터가 쪼르륵 뜨는 영화같은 일도 없다. 그들은 지난하게 서류를 뒤적이고, 엄한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지방까지 직접 운전하고 밤샘을 하며 피곤해하기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승진도 힘들고 일은 더 힘든 '형사'를 하면서, 거대한 사법 권력의 시스템 속에서 작은 부품처럼 일하지만 그 부품이 고장나서 시스템이 멈추지는 않게 하루하루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킨다. 지금까지 형사소설과는 궤를 달리 하는 소설이 바로 이 지점이었다.
그런 면에서 판타지는 없지만, 그렇기에 실수도 하고 엄한 사람을 의심하며 동분서주하지만, 그래서 더 소설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독자는 주인공 형사의 시선을 따라 이리저리 누군가를 의심하고 증거를 찾는다. 그 과정이 지난하지만, 점점 궤변으로 치닫는 범인의 방백과는 달리 주인공 형사는 현실적으로 판단하고 자기 할일을 묵묵히 해낸다.
범인의 이야기가 점점 '신계몽주의'에서 자기 궤변으로 치달으면서, 독자는 그 또는 그녀의 주장에 끌려갈 뻔 하다가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황당하기도 하다. 모든 인간이 평등하며, 모든 인간이 스스로 노력하고 삶을 쟁취해야 하는 계몽주의가 얼마나 비인간적인지 설파하는 부분은 언뜻 설득력이 있다. 인간과 신의 관계에 대해서 고찰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그럴싸하다는 생각도 들어서 범인의 캐릭터가 무척 궁금해진다. 이렇게 이성적이다가, 한편으로는 자기 주장도 강하면서, 심지가 단단한 범인의 동기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마지막에 급격하게 무너지는 그의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연민도 든다. 피해자에 대해 오랜 시간을 쏟아 그녀의 삶과 주변 인물을 조망하는 과정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를 두고 복잡한 감정이 들지만, 이게 작가가 의도한 바인가 싶기도 했다.
여러 모로 재미있는 소설이었고 방식이나 소재 모두 독특했는데, 이 소설을 읽고서 책에서 언급한 다른 책들, 그리고 작가가 참고한 책들에 대해서도 흥미가 일었다. 책을 읽고 다른 책을 더 읽고 싶어진다면, 그거야말로 독서 체험의 목적 중 하나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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