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러브스토리다. 열정에 대한 이야기고, 감각적 쾌락과 깊은 흡인력, 욕망과 두려움, 타오르는 갈망에 대한 이야기다. 그 강렬함으로 온몸과 마음을 마비시키는 결핍에 관한 이야기다. 도저히 이별을 상상할 수 없는 상대와 작별을 나누는 이야기다. 나는 술 마시는 느낌을 사랑했고, 세상을 일그러뜨리는 그 특별한 힘을 사랑했고, 정신의 초점을 나 자신의 감정에 대한 고통스러운 자의식에서 덜 고통스러운 어떤 것들로 옮겨놓는 그 능력을 사랑했다. 나는 술이 내는 소리도 사랑했다. 와인 병에서 코르크가 뽑히는 소리, 술을 따를 때 찰랑거리는 소리, 유리잔 속에서 얼음이 부딪히는 소리… 술 마시는 분위기도 좋아했다. 술잔을 부딪치며 나누는 우정과 온기, 편안하게 한데 녹아드는 기분, 마음속에 솟아나는 용기….
나 같은 사람을 일컬어 ‘고도 적응형 알코올 중독자’라고 한다. 겉에서 볼 때는 아무 문제 없고, 유능하며 단정하다. 그 밑은 진흙탕처럼 혼탁하고 온갖 비밀로 들끓지만, 그런 모습은 겉으로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날 아침 의자 위에 다리를 뻗은 채 생각했다. ‘혹시 마샤가 짐작했을까? 나를 보고 이상한 낌새를 챈 사람은 없을까?’ 그 어름의 두어 해 동안 그런 의문을 자주 품었다. ‘분명히 표시가 날 거야.’ 편집 회의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의 얼굴을 볼 때, 그들의 총명한 눈과 평온한 표정을 바라볼 때 자꾸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의문은 불안감을 주었고, 불안감은 나를 둘러싼 현실 부정의 막을 조금씩 깎아나갔다.
하지만 알코올 중독자들은 현실 부정의 챔피언이다. 나 또한 음주 문제가 전혀 걱정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걱정은 내 일상과는 무관한 일인 양 분리해서 중독에 대한 책들이 꽂힌 사무실 책장 속에 따로 보관했다. ‘내가 술을 조금 많이 마시긴 해. 하지만 그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지. 알코올 중독자라면 직장에서 쫓겨나지 않고 배기겠어? 그런 사람들은 점심때부터 취해서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지도 못할 거야. 아니, 전날의 숙취 때문에 아예 출근도 못 할걸. 책상 구석구석에 술병이 뒹굴고, 업무 능력이 바닥을 긁어서 귀가 따갑도록 질책과 경고를 듣다가 결국 해고되겠지. 나는 그런 사람들하고 달라. 아무렴, 다르고말고.’ 나는 언제나 자신에게 말했고, 그것은 진심이었다.
아버지는 술을 마셨다. 훤칠하게 큰데다 명쾌한 지성과 통찰력을 갖춘 엘리트였다. 어린 시절 나는 아버지가 두려웠다. 그것은 아버지가 폭력을 휘두른다거나 냉혹한 분이어서가 아니라, 언제나 알 수 없는 불안과 슬픔에 휩싸여 있었기 때문이고, 또 늘 나를 꿰뚫어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술은 내 눈을 멀게 하고, 내 의지를 잠재우며, 나를 멋대로 조종하는 것 같았다.
이런 결핍감은 육체적인 데 한정되지 않는다. 그것은 정신적이고 본능적이며 다층적이다. 저 와인, 저 보드카, 저 버번을 원하는 감정은 어떤 어두운 두려움이다. 그것이 없으면, 그 갑옷이 없으면 세상에 맨몸으로 서게 되는 듯한 허기지고 질긴 두려움이다. 사람들은 우리 같은 중독자에게 “정신적인 문제를 육체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한다”고 말한다. 그것도 결국 내가 말한 두려움과 거기서 기인하는 본능적인 반응을 지적으로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내면에 깊은 결핍감이 있다. 그에 대한 반응으로 우리는 외부의 뭔가에 탐욕적으로, 강박적으로 매달리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내면의 불편함을 달래줄 수 있다고 믿기에.
내가 아는 알코올 중독자들은 대부분 술을 입에 대기 훨씬 전부터 그런 허기를 경험한다.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안도감과 위로와 평안을 전해줄 외부의 어떤 것에 대한 갈망이다.
술의 탁월한 효과는 언제나 놀라웠다. 술병 뚜껑을 열면 금세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실로 마술이라 불릴 만했다. 술 마시는 일, 그것은 병마개를 열고 세상과 자신 사이에 다리를 놓는 일이었다. 이것은 많은 알코올 중독자들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술의 마력 가운데 하나다. 술은 유대감을 전해주고, 사회생활의 불안과 고립감을 없애주며, 세상 속으로 한 발짝 더 들어가는 느낌을 준다. 우리는 껍데기에 갇힌 채 생각한다. 술을 마시면 해방된다. 맑은 정신일 때 우리 앞에는 심연이 놓여 있다. 하지만 술을 마시면 그 위로 튼튼한 다리가 생겨난다. 우리는 그저 그 다리를 건너기만 하면 된다. 알코올 중독은 어느 면에서 보면 심리적 안전망 역할을 한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술을 마시면서 감정들 사이에 연결선을 긋는다. 그들은 소심함, 두려움 등 술을 마시지 않을 때의 힘든 감정들을 자유로움, 용기 등 술 마셨을 때의 편안한 감정들과 연결한다. 이런 선들의 그물이 우리 발아래 촘촘히 짜이면, 힘든 감정에 부딪혀 넘어져도 충격이 덜할 것이라 믿는다.
아침 햇살 속에 눈을 뜬다. 머리가 너무나 무겁다. 너무 무거워 움직이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안구 뒤쪽과 관자놀이에서 맥박이 불끈거린다. 격심한 고통, 끈질긴 통증. 두개골 속 뇌액이 찐득찐득해진 듯 머릿속도 아프다. 구토감이 인다. 빈속을 채워야 할지, 무언가 먹으면 상태가 더 나빠질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몸속의 모든 세포가 제멋대로 풀려 흔들리는 것 같다. 마치 배선 공사가 잘못된 자동차 같다. 그리고 옆자리에 남자가 누워 있다. 아는 사람일 수도 있고, 모르는 사람일 수도 있다. 한순간 당혹스런 혼란이 몰려온다. 어떻게 된 거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얼른 주변을 돌아본다. 옷은 입고 있나, 벗고 있나, 피임의 흔적이 있나, 콘돔 혹은 질 좌약 포장지 같은 것. 그러고는 눈을 감는다. 남자가 움직이면 자는 척한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정신을 그러모아 지난밤의 일을 돌이켜본다. 하나 둘 기억들이 떠오른다. 이른 저녁 무렵은 똑똑히 기억난다. 처음 마신 몇 잔의 술, 몸이 슬슬 풀리던 느낌. 춤을 추었을 수도 있고, 이 남자와 레스토랑 혹은 술집의 이슥한 곳이나 파티장의 조용한 방에 함께 앉아 있었을 수도 있다. 눈앞이 조금씩 흐릿해진다. 내가 웃음을 터뜨린다. 농담을 던진다. 또 남자의 농담에 웃어준다. 현기증과 함께 홀가분함과 자유로움이 느껴진다. 내면에 숨어 있던 어떤 비밀스런 자아(술을 마시지 않을 때는 다가갈 수 없는)가 몸을 일으키는 것 같다. 그러면 어떤 안도감이 느껴진다. 맨정신은 너무 건조하고 뻣뻣하지만, 술을 마시면 모든 게 유연하고 유동적이며 느슨해진다. 술을 더 마신다. 눈앞이 더 흐려진다. 어느 순간 신체 접촉이 발생한다. 남자가 먼저 내게 손을 얹었을 수도 있고, 내 쪽에서 남자의 팔에 손을 댔을 수도 있다. 웃으며 서로 바라본다. ‘내가 매력적인 거야.’ 마음속에 자신감과 기대감이 부풀어오른다. 머리가 윙윙 울린다. 아직도 침대에 있다. 또렷한 기억은 거기서 멈추고, 이제 떠오르는 건 조각난 단편들뿐이다. 내가 남자에게 무슨 말을 한다. 아주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그게 무슨 이야기였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나? 어느 날 버스를 타고 가면서 떠올린 인간 본성에 대한 정교한 이론이었나? 아무튼 어떤…… 이야기가 있었다. 생각을 더 해내려고 안간힘을 써본다. 무슨 말을 했는지, 그때 두 사람 사이에는 어떤 교감이 있었는지 떠올리려 애쓰다 보니 몸이 저절로 움츠러든다. 다른 단편들. 남자에게 스르르 몸을 기댄 일이 생각난다. 아니면 남자를 끌어안고 길을 걸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흐릿한 정신으로도 길 위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출렁거리는 감정 속에 갈망이 일어난다. 준 만큼 받고 싶은 갈망. 이 남자는 나를 매력적이라고 여기는가? 얼마만큼이나? 과연 나는 매력적인가? 섹스 자체는 이런 모든 상황과 단절된, 초현실적인 행위였다. 내 몸은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어쨌거나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렇다. 남은 것은 흩어진 이미지의 조각들뿐이다. 다리를 벌려 남자의 허리를 감싸고, 그의 등에 팔을 두른다. 섹스 행위는 거의 본능적으로, 어떤 행동 교본을 실행하듯이 이루어진다. 키스하고, 끌어안고, 쾌락 속에 고개를 젖힌다. 실제로 쾌락을 느끼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느낌 자체가 전혀 없어도 상관없다. 잠시 후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리고, 그 이후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고통스러운 질문들이 떠오른다. 남자도 나만큼 취했나? 남자는 내가 얼마나 취했는지 알았나? 남자는 이 일을 어느 정도나 기억할까? 내가 미쳤던 건가? 아니, 아직도 미쳐 있나? 눈을 감고 누워 있다. 나가고 싶다. 그저 나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집에 가서 샤워하고 이 일을 기억 속에서 싹 들어내서 과거 속에 던져버리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