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물결처럼 마음을 어루어만진다. 한 번에 휩쓸고 지나가는 파도와 달리 오래도록 스치듯 머무르며 마음을 간질인다.

와닿는 문장이 많았다. 그게 너무 좋아서 필사도 해가며 정독했다. 때로는 심규혁 성우가 음 방송을 하던 때에 알려줬던 방법대로 소리내어 읽어보기도 했다. 아주 짧았지만 작가를 꿈꿨었던 것이나, 현재는 성우를 꿈꾸고 있는 것이나 비슷한 점이 많아서 그랬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해서 글을 읽어나가다 보니 비단 그것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는 확신에 가까운 생각이 들었다. 글이 따뜻하다. 포근하다. 기분이 울적해지거나 어떻게 해야 될지 잘 모르겠을 때, 종종 부드럽고 조용한 재즈나 로파이, 또는 영화나 게임, 애니메이션 등의 OST를 듣곤 한다. 그러면 마음이 살짝살짝 부드럽게 움직인다. 그런 음악과 비슷한 글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읽다보면, 마음이 살랑살랑 부드러워진다. 진심이 가득 담겨 있어 그런 걸까? 가끔씩 평이한 문체를 벗어나 미사여구가 조금 들어가더라도 불편하거나 이상하지 않다(나는 미사여구를 싫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을 때 솔직하게 드는 감정이 그랬다). 그냥 그 자체로 좋다. 심규혁 성우, 또는 심규혁 작가가 전해주는 그 잔잔한 말들이 좋다.

나와 생각이 비슷하게 겹치는 부분이 많아서 더 공감이 갔던 걸 수도 있다. 그런데 글을 놓은 지 좀 오래되었던 나는 그 생각에 이름과 제목을 붙여주지 못했다. 정의 내리지 못했던 그 다단한 생각들을 심규혁 성우의 글로 볼 수 있어서 무척이나 반가웠다. 아, 맞아. 이런 생각이었지. 부유하기만 하던 생각들을 한 데 붙잡아놓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곧 한 문장이 떠올랐다. 안 되겠다. 간단히라도 글로 옮겨보려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흩어지는 생각들이 아쉬웠다. 그래서 메모장을 펼쳐 막 떠오르는 것들을 한 자 한 자 적어나가봤다. 아직 며칠 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좋은 습관을 이어나가고 있는 중이다. 깨달음을 얻었으니, 습관으로 만들기 위해 훈련해야지. 지식을 얻고 나면 기술로 만들기 위해 훈련하듯이. 그렇게 이 따뜻한 글을 읽고 새로운 습관도 하나 만들어보게 되었다. 정작, 메모의 중요성에 대해 떠들어대던 수많은 자기계발서들의 일부만 봤을 때는 행하지 못했던 걸, 아이러니 하게도 본업이 성우인 작가의 글을 보고 해보게 되었다. 그만한 힘을 가진 글이다.

꼭 성우지망생이나 작가가 꿈이 아니어도, 혹은 성우의 팬이 아니어도 괜찮다. 어느 누가 읽더라도 잔잔하게 어루어만져주며 위로를 건네줄 것이다. 물론 나는 한때 작가가 꿈이었던 성우지망생이기는 하다. 재밌게도, 심규혁 성우가 어렸을 때 그랬다던 것처럼 나도 한 살 어린 동생과 함께 밤 늦게까지 단 둘이서 집에 있어야 할 때면, 꼭 베개로 우주선을 만들고 거기에 인형들을 태워서 우주여행을 보내주곤 했다. 물론 인형들의 목소리는 모두 내가 냈었다. 포켓몬과 디지몬, 크레이지 아케이드 등에 나오는 인형들을 가지고 놀며 각자에게 모두 다른 목소리를 선물해줬었다. 그래서 그 부분을 읽으면서 잠시 어린 시절의 그때에 잠기기도 했다. 이처럼 비슷한 부분이 꽤나 많아서 읽으면서도 신기했다. 확실히, 어쩌면 그랬기 때문에 더욱더 공감이 가고 더 재밌게 읽어나간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책이다. 정말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진심이 꾹꾹 담겨 들어가있다. 성우 심규혁으로서, 한 여성의 남편으로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또는 심규혁이라는 한 사람으로서 잔잔하게 풀어나간 글들이 재밌다. 한 에피소드 중에는 마찬가지로 성우지망생이었던 아내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는데, 글을 쓰던 당시에는 성우가 되지 못해 힘들어하던 아내를 향한 진심어린 걱정이 글 곳곳에 묻어나오기도 했다. 현재는 아내분도 성우가 되셨다. 그걸 아는 상태에서 읽으니까 또 색다르게 다가오기도 했다. 어느 에피소드든 당시의 생각이 들려오고 상황이 그려졌다. 그래서 위로를 받으면서도 즐거웠다. 아마 책장 한켠 잘 보이는 곳에 두고 가끔씩 위로가 필요하거나 공부를 하다가 헤매게 될 때면 꺼내어보지 않을까. 이제 막 완독했으니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지만,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리뷰를 잘 써보지 않다보니 글 곳곳에서 어색함을 외쳐대고 있는 것 같다. 아무래도, 생각에 제목과 이름을 달아주는 연습, 그리고 좋아하는 작품을 보고 리뷰를 써보는 연습을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