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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 2022년 12월 10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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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12쪽 | 153*224*55mm |
2024년 09월 09일 ~ 2024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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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9월 20일 ~ 2024년 11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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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굿즈 : 타공 정리함/클립 북 라이트/디즈니 캐릭터 태블릿 파우치/손잡이 텀블러/메쉬 펜 파우치
2024년 08월 30일 ~ 2024년 09월 30일
2024년 09월 01일 ~ 2024년 0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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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에 이어 12월에도 병원에 갈 일이 많았고, 그때마다 책을 한 권씩 가져갔다. 예약을 하고 가더라도 병원에선 하염없이 기다리기 일쑤이고,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병원은 아무리 가더라도 익숙해지지 않는 공간이라 안정감을 줄 무언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있어 가장 안정감은 주는 물성이 있는 존재는 책이고, 사람들이 많고 언제 진료실에 들어갈지 알 수 없는 병원에선 소설이나 산문보다 짧게 읽을 수 있는 시가, 짧게 읽고 오래 곱씹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가, 적절하다. 그래서 11월에 이어 12월에도 병원에 갈 때마다 시집을 읽었다.
이 시집은 12월 초에 절반 정도를, 12월 중순에 나머지 반을 읽었다.
두번째 간 병원에서 만난 의사는 수술 일주년 경과를 살피기 위해 만난 거였는데, 아주 좋다는 호의적인 결과를 듣고 가벼운 마음에 집에 온 바로 그 다음날부터 남편이 심한 독감을 앓았다. 결국 이튿날은 ER까지 가야했고, 전염되면 안 된다는 일념으로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나도 독감에 걸리고 말았다. 그렇게 2주간의 사투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12월 하순에 또 한 번 읽게 되었다.
초반과 중반에 이 시집을 한 번 전체적으로 읽었을 때는 황유원의 시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하얀 사슴 연못'이라는 표제작은 '백록담'을 우리 말로 푼 것인데, 정지용의 시를 계승한 듯한 작품이다. 이 시 이외에도 시집에 수록된 시들이 전반적으로 흰색의 이미지를 갖고 있어서 겨울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즈음에 『하얀 사슴 연못』이라는 황유원의 시집이 나왔는데, 아마도 상당 부분이 겹칠 것 같은 시들을 읽으면서, 출간된 시집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커졌다.
황유원은 번역가로 먼저 만났고, 그가 번역한 문장들이나 작품들을 계속 눈여겨보다 시인으로서도 주목하게 된 케이스인데, 이 상을 수상하면서 받은 상금 때문인지 한동안은 번역을 안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시인의 말을 듣고 한 편으로는 가슴이 아리면서도, 시인이 번역하는 작품들이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닌, 독자와 작가를 이어주는 아주 큰 역할이라는 점을 꼭 전해주고 싶어졌다. 당신의 문장들이 여느 번역가들의 문장과는 달라서, 책을 읽다가도 문득 문득 그 아름다움과 적절함에 감탄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당신이 아름다운 시인인만큼 빼어난 번역가이고, 당신이 번역한 글들 역시 다른 의미로 당신의 시이기도 하다는 점을 꼭 얘기해주고 싶다.
12월 하순에는 대부분 감기 기운과 약 기운이 혼재한 몽롱한 상태에서 읽었다. 그래서인지 권박이나 이영주의 시들이 더욱 현실감 있게, 벼랑 위에 간신히 버티고 선 절박함과 간절함이 실감났다고나 할까. 내가 느끼는 육체적 고통도 어찌 보면 (중년) 여성으로서 내가 살아내고 감내해야 하는 현실과 맞닿아 있는 것이니깐, 가장 아픈 고통의 순간에 더욱 잘 공감할 수 있었던 감정이었다.
그런데 의도치도 않았던 시에 눈이 멎고 말았다.
이런 건 과실에 의한 추돌 사고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송승언의 「(웃음)」이란 시다. '웃음'이란 명사를 괄호로 묶은 것이 시의 제목인데, 이 시의 마지막 부분에 '행복은 의무이니까'라는 시구가 있고, 그 시구의 출처를 주를 통해 밝히고 있다.
문제는 이 주 부분이다.
편집상 이 시구의 바로 밑에 해당 문구의 출처를 밝힌 주가 있는데,
"Happiness is madatory."라고 되어 있는 거다. 감기 기운과 약 기운에 몽롱한 상태에서도 이 typo가 너무 눈에 들어왔다. 'mandatory'에서 'n'이 빠진 저 문장의 낯섦 때문에 오히려 주에 더 주목하게 되었는데, 주에 표기된 출처만으로는 해당 문장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유추하기가 어려웠다.
정확하게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었다.
"Happiness is madatory." Greg Costikyan, Dan Gelber, Eric Goldberg, 『Paranoia』.
세 명이 함께 만든 공동 작품이라는 건데, 이 문장만으로는 이게 비디오 아트인지, 영화인지, 혹은 콜라보를 한 시나 소설 혹은 산문인 건지 짐작할 수가 없다. 결국 구글링을 했고, 엄밀히 말해 『Paranoia: Happiness is Mandatory』라는 제목의 롤플레이 게임(RPG)라는 걸 알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파라노이아: 해피니스 이즈 맨더토리(Paranoia: Happiness is Mandatory)'라는 이 게임은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다.
컴퓨터가 지배하는 완벽한 가상의 도시 '알파 컴플렉스'가 이 게임의 무대인데, 이 도시에서는 말 그대로 행복이 의무이다. 체제에 의문을 갖거나 권한 밖의 정보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반역으로 간주, 바로 처단해버리는 도시가 게임의 배경인데, 플레이어는 레드 보안 허가 권한을 갖는 팀을 이끌고 도시 곳곳에 숨어있는 반역자들을 찾아내야 하는데, 모든 선택과 행동이 컴퓨터의 감시를 받고 있기 때문에 플레이어 역시 조금이라도 반역의 기미를 보이면 비밀 결사의 일원으로 몰려 처단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깐 이 게임은 SF와 매카시즘을 컨셉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데, 게임의 컨셉이나 내용을 알면 알수록 왜 이 게임의 제목이 'Paranoia'인 줄 알 것만 같다. 알파 컴플렉스를 관리한다는 이 컴퓨터가 실로 편집증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철저한 계급감시사회인 괴이한 이 세계가 단지 게임 속에만 있지 않기에 시인은 이 게임을 인용한 게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면 "Happiness is mandatory."라는 기실 바람직하고 타당할뿐만 아니라 온당해보이는 이 문장이 매우 소름끼치게 와닿는다.
그렇게 이 시를 읽은 후 이 시집에 수록된 송승언의 시들을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 송승언의 시들이 2023년, 더 넓게는 팬데믹 이후 우리가 살아온 세계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묵시록'처럼 읽힌다는 점에서, 우리가 사는 현재가 이미 아포칼립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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